개천에서 용 난다? 이무기겠지!!

안형영200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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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날때마다 고향을 얘기하는 것처럼 곤혹스러운 게 없다.  고향이 장흥이라고 하면 경기도 장흥을 떠올리다 전남 장흥이라고 하면 거기가 어디냐고 재차 묻는다. 어떤 사람은 장성과 헷갈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고흥과 헷갈리기도 한다.

 

강진과 보성 사이에 있는 곳이라고 하면 다들 그제서야 "아~"하고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번거로움이 싫어 나는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에겐 고향을 광주하고 말한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으니깐.

 

그 만큼 내 고향은 오지 중의 오지다. 조선시대때는 강진과 함께 대표적인 유배지였고, 6.25때는 빨치산들이 활동하던 곳이었으니......

 

하지만 고향에 대한 자부심만은 여느 사람 못지 않다. 아직은 철이 덜 들어서인지 고향을 얘기할 때면 고향 출신 유명인을 주저리주저리 읊곤 한다. 당신들의 천국의 저자 이청준, 해변의 길손 한승원과 같은 문인부터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김세옥, DJ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태정 등등...

 

지금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마을 어귀마다 "축 사법고시 합격"라고 적혀진 플래카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아직은 남들에게 고향을 숨길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아직은 개천에서 난 용들이 많으니깐..

  

그런데 문득 요즘 드는 단상 중의 하나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어린들의 덕담을 이제는 듣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축 사법고시 합격"의 플래카드는 그 숫자가 줄어드는 듯 하고, 이제는 하도 하도 없으니 "축 서울대 합격" "축 고려대 합격"이라는 플래카드가 등장했을 정도다.

 

한때는 명문으로 통했던 장흥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으로 통합됐고, 이제는 농어촌 특별전형이 아니면 서울 소재 대학으로 학생들을 보내기도 버거울 정도로 소락해 버렸다. 10만이 넘던 인구도 점점 줄어 선거구가 영암, 강진과 통합돼 버렸다. 

 

이런 곳에서 흔히 명문대를 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록 성적이 행복의 보증수표는 아니지만 믿을 거라곤 인적 자원 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시골에서 자란 꼬마들은 날개 한번 펼치지 못하고 세상의 변방에서 헤매야 하는 건 아닐지...

 

이미 서울대 신입생의 60%는 자신의 부모가 소득 상위 20%에 든다는 통계도 나와있고, 내가 나온 K대도 입학 당시만 해도 시골출신과 서울 춘신 비율이 6대 4정도였지만 이제는 그 비율이 역전됐다고 한다.

 

막강한 경제력으로 국영수는 물론이고, 체육, 미술, 심지어는 줄넘기까지 과외를 시키는 판국이니 시골에서 먼지 뒤집어 쓰고 친구들과 축구나 차는 녀석들이 도시 꼬마들을 공부로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0교시 수업이니, 우열반 편성이니 평준화보다는 서열화를 부추기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시골 촌놈들의 성공기는 이제 아련한 옛추억으로나 남지 않을까 한다.

 

대학교 때 빈민촌 어린이들을 돌보는 공부방 활동을 할 때도 &#-9;해맑고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과연 나중에는 어떤 모습이 될까. 부모들의 짊어진 가난의 둘레를 벗을 수 있을까&#-9;하는 걱정을 해 보기도 했다.

 

비단 대입 시험만의 얘기도 아니다. 법조 인력 충원과 다양화하는 미명으로 시행되는 로스쿨 제도도 자칫 잘못하면 부의 세습을 부추기는 도구로 전락할 판이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는 그 폐단에도 불구하고 지원자의 학력과 계층을 따지지 않았고, 때때로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사람이, 때론 40대의 늦깎이가 고시 합격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돈 없고 빽이 없어도 그들은 고시라는 제도를 통해 계층의 수직 상승이라는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 학기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학비가 없는 이라면 법조인이 되기는 난망한 일이 돼 버렸다. 그래서 벌써부터 법조 인력이 이제는 강남 출신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미 법조계에서는 광주일고-순천고로 이어졌던 법조 인력 최대 배출 고등학교가 대원외교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자유, 평등이라는 두 바퀴를 토대로 돌아가는....

 

하지만 과연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는 누구에게나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돈 없고 빽없는 사람은 이제 자본주의라는 괴물 앞에서 자신들의 꿈마저 접어야 하는 건 아닐까.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9;부의 대물림&#-9; 현상이 심해진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0교시, 우열반 등을 내세워 경쟁을 부추기면서도 경쟁에 낄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되지 못한 계층의 자녀들에 대한 정책 마련은 눈을 뜨고 찾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세상의 이무기들아! 당신이 자본이라는 덫에 잡혀 용이 되지 못하더라도 너무 노여워하지 마라. 그게 지금은 국민들의 선택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