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공지영씨를, 아니 공지영님을 오늘은 몇백마디의 인터뷰대화나 여러줄이나 되는 프로필을 읽은 것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이 제목부터 화려한, 그러나 첫눈부터 아련한 이책은 편지형식의 소설이다.
위녕이라는 자신의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을 딸로 설정해 자신의 삶의 지혜를, 그리고 자신의 삶을 가르쳐 주고 있는 나에게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다.
글쎄, 위녕은 누구일까. 나는 과연 위녕일수 있을까? 한번도 만난적 없는 공지영이라는 사람이 날 모티브로 해서 무엇인가를 썼을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나는 위녕이 된다. 책을 읽는 순간 위녕이 되는 것이다. 나의 엄마가 나에게 전하고 싶던, 피토하듯이 쏟아내고 싶던 인생과 엄마가 되기전의 여자로써의 자신과 엄마가 되고나서의 여자가 아닌 엄마로써의 자신. 같은 사람이지만 판이하게 다른 자신의 지나간 시절과 지나가고 있는 시절을 나에게 조금은 희석시켜서 말하고 있는것이다. 똑같은 과정을 겪으며 성장할 날 위해.
이 책은 사람의 박동소리 같다. 아니, 박동소리가 아니라 병원에서 심박수를 세는 기계의 그래프같다. 일직선으로 곧게 가다가 한번씩 불쑥 튀어오르는 모습의 그래프들.(내 표현력때문에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사람이 죽는것도 아니다. 행복한 결말이 있는것도 아니다. 감동적인 재회나 누군가를 애절하게 사랑해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눈물이 난다. 왜 눈물이 날까라는 질문마저 하게 한다.
왜울어,도대체. 슬픈부분 없잖아. 누가 죽은것도 아니야. 왜우는거야! 나에게 화를 낸다. 아니 투정이다. 왜 지금에야 이렇게 감동을 받은건지. 책을 많이 읽어왔다고 자만하기 전에 정말 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감동을 느낀책이 몇권이나 있었는지 생각하지 못한 나를 향한 투정이다. (생각해보면 읽고 울었던 책은 결국 주인공이 죽거나 헤어지는 내용들.) 감동없이 지나갔던 많은 책들이 사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것이다.
그렇지만 공지영은 대답한다. 아니다. 그런책마저 모두 너에게 무언인가이다. 너가 알지못하는 무엇인가이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건 아니지만 내가 모르는 무언가라는것이다. 입장에 따라 같은걸로 치부될수 있지만 이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모르는 무언가는 아무것도 아닌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가 취하게 될 무언가이다. 도전할 무언가인것이다. 내가 만난 감동없이 지나갔던 책들마저 과거의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았지만 어른이 된 내가 옛서점을 지나면서 낡아버린 책장을 볼때 아, 내가 저런 책들을 읽었었구나. 그때의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 같네. 그땐 어려워서 감동없이 지나갔지만 혹시 지금 읽으면 다를지 몰라. 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지영같은 작가가 되고싶다. 내 자만심이고 착각이겠지만 나에게는 공지영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나도 공지영처럼 시인이 되고싶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좌절하고 말았다. 그 이유를 공지영씨에게서 찾았다. 시는 천재들의 분야이고 소설은 노력의 분야이기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에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천재가 아닌 내가 글을 쓰고 싶다면 글쎄, 나도 역시 공지영의 소설같은 담백하고 잔잔한 글을 쓸수있지는 않을까.
공지영 같은 작가가 되어 위녕같은 딸을 얻어 같이 술 을 먹으며 김(다이어트를 위한.)을 이빨이 검게 될때까지 먹을 수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처녀시절 읽었던 , 내 눈시울을 적셨던 수많은 책들과 시들을 알려주면서 딸애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또다시 눈시울을 적시는 그런 엄마가 되고싶다.
공지영-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고3인 내게 그래도 그나마 시간이 덜 들고 가까운곳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어울리지 않는 독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거의2개월??????????)만에 내 책을 사서 실컷 읽었다.
워낙 책을 빨리 읽고 또 여러번 읽는 나라서 오늘 산 책 역시 오늘 끝내버렸지만.
공지영씨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게 없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작품을 워낙 슬프고 애절하게 봤기때문에 작가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지 다른 작품을 읽었다던가 사인회를 갔다던가 하는 건 없던 일.
그런 공지영씨를, 아니 공지영님을 오늘은 몇백마디의 인터뷰대화나 여러줄이나 되는 프로필을 읽은 것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이 제목부터 화려한, 그러나 첫눈부터 아련한 이책은 편지형식의 소설이다.
위녕이라는 자신의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을 딸로 설정해 자신의 삶의 지혜를, 그리고 자신의 삶을 가르쳐 주고 있는 나에게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다.
글쎄, 위녕은 누구일까. 나는 과연 위녕일수 있을까? 한번도 만난적 없는 공지영이라는 사람이 날 모티브로 해서 무엇인가를 썼을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나는 위녕이 된다. 책을 읽는 순간 위녕이 되는 것이다. 나의 엄마가 나에게 전하고 싶던, 피토하듯이 쏟아내고 싶던 인생과 엄마가 되기전의 여자로써의 자신과 엄마가 되고나서의 여자가 아닌 엄마로써의 자신. 같은 사람이지만 판이하게 다른 자신의 지나간 시절과 지나가고 있는 시절을 나에게 조금은 희석시켜서 말하고 있는것이다. 똑같은 과정을 겪으며 성장할 날 위해.
이 책은 사람의 박동소리 같다. 아니, 박동소리가 아니라 병원에서 심박수를 세는 기계의 그래프같다. 일직선으로 곧게 가다가 한번씩 불쑥 튀어오르는 모습의 그래프들.(내 표현력때문에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사람이 죽는것도 아니다. 행복한 결말이 있는것도 아니다. 감동적인 재회나 누군가를 애절하게 사랑해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눈물이 난다. 왜 눈물이 날까라는 질문마저 하게 한다.
왜울어,도대체. 슬픈부분 없잖아. 누가 죽은것도 아니야. 왜우는거야! 나에게 화를 낸다. 아니 투정이다. 왜 지금에야 이렇게 감동을 받은건지. 책을 많이 읽어왔다고 자만하기 전에 정말 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감동을 느낀책이 몇권이나 있었는지 생각하지 못한 나를 향한 투정이다. (생각해보면 읽고 울었던 책은 결국 주인공이 죽거나 헤어지는 내용들.) 감동없이 지나갔던 많은 책들이 사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것이다.
그렇지만 공지영은 대답한다. 아니다. 그런책마저 모두 너에게 무언인가이다. 너가 알지못하는 무엇인가이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건 아니지만 내가 모르는 무언가라는것이다. 입장에 따라 같은걸로 치부될수 있지만 이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모르는 무언가는 아무것도 아닌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가 취하게 될 무언가이다. 도전할 무언가인것이다. 내가 만난 감동없이 지나갔던 책들마저 과거의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았지만 어른이 된 내가 옛서점을 지나면서 낡아버린 책장을 볼때 아, 내가 저런 책들을 읽었었구나. 그때의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 같네. 그땐 어려워서 감동없이 지나갔지만 혹시 지금 읽으면 다를지 몰라. 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지영같은 작가가 되고싶다. 내 자만심이고 착각이겠지만 나에게는 공지영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나도 공지영처럼 시인이 되고싶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좌절하고 말았다. 그 이유를 공지영씨에게서 찾았다. 시는 천재들의 분야이고 소설은 노력의 분야이기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에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천재가 아닌 내가 글을 쓰고 싶다면 글쎄, 나도 역시 공지영의 소설같은 담백하고 잔잔한 글을 쓸수있지는 않을까.
공지영 같은 작가가 되어 위녕같은 딸을 얻어 같이 술 을 먹으며 김(다이어트를 위한.)을 이빨이 검게 될때까지 먹을 수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처녀시절 읽었던 , 내 눈시울을 적셨던 수많은 책들과 시들을 알려주면서 딸애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또다시 눈시울을 적시는 그런 엄마가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