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달자(65)가 24년 동안 남편 병구완에 보낸 시절을 회고한 에세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민음사)를 펴냈다. 이 책은 출판계 불황 속에서도 출간 일주일 만에 3쇄를
찍어냈을 정도로 화제다.
시인이 35세 되던 생일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일러줬다. 그러나 남편은 23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몸은 말이 아니었다.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병을 앓았고, 점점 폭력적이 됐다. 시인은 남편에게 매맞은 이야기까지 썼다.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쾅 하고 쏴 버리고 싶은 광기, 그러다 모든 걸 꿀꺽 삼키며 입 닫는
눈물겨운 침묵, 결혼하고 33년을 살면서 남편의 짐을 드는 노예이거나 보호자였던 운명을
생생하게 담았다.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죽었고, 그는 아팠지만 살아 있었던 셈이죠.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다 털어놓고 나니까 시원해요. 고요하고 편안합니다.”
남편은 1977년 5월11일 쓰러져 2000년 10월21일 사망했다. 24년의 고통도 함께 사라졌다.
아무리 힘든 순간도 지나간다’는 말을 되뇌인 세월이었다. 남편을 보낸 뒤 병원 식당에 앉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삶은 그러했다. 2001년부터 지난 삶을 메모했다.
시간을 묵혀 이제야 세상에 내놓았다.
“제 고생담을 자랑삼아 얘기한 책이 아닙니다. 가족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어요. 아무리 밉고 싫어도 가족은 가족이니까요.”
강자는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약자는 버릴 수 없다. 남편은 늘 약자였다. 버리기 힘들었다.
인간은 아무리 힘든 고통도 이기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비극 속에서도 자생력이 꿈틀댔다.
“제 묘비명을 지금 쓴다면, ‘신달자의 삶은 바보였는가, 천재였는가’로 하겠어요. 24년의
세월을 버틴 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묻고 싶어요.”
시인은 19일 오후 5시 광화문 교보문고, 20일 오후 2시 강남 교보문고에서 팬 사인회를
연다.
글 데일리 포커스 곽명동기자ㆍ사진 이효균기자
“7년전 떠난 남편 24년 병수발… 결혼은 후회아닌 화해하는 것”
신달자 시인 자전 에세이집 ‘나는 마흔에…’ 출간
“다시 말하지만 나는 빚이 없다. 나는 감히 말한다. 내가 겪은 불행만 한 세금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 수 있겠니. 더 이상 내가 어떻게 으깨어질 수 있겠니.”
누구일까? 어떤 고통을 헤치고 왔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소녀 같은 감수성의 시편들과 따뜻한 에세이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시인 신달자(65·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씨다. 며칠전 영랑(永郞)시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신씨의 시집 ‘열애’(민음사) 중에 실린 ‘소’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나운 소 한 마리 몰고/ 여기까지 왔다/ 소몰이 끈이 너덜너덜 닳았다/ 골짝마다 난장 쳤다/ 손목 휘어지도록 잡아끌고 왔다’/ (…)핏발 가신 눈 꿈벅이며 이제사 졸리는가/ 쉿! / 잠들라 운명.”
신씨가 2일 출간한 에세이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민음사)를 보면, 화사 하게만 보였던 작가가 지나온 지난한 역정에 우선 놀라고, ‘소몰이 끈이 너덜너덜 닳고, 손목이 휜’ 구절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씨는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이 전작 에세이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가 쓰러지고, 자신도 암투병을 해야 했던 세월의 상처를 피를 토하듯 쏟아낸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내년이면 정년이 되는데, 이젠 그 이야기들을 쓸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짧게 말했다. 책은 뒤늦게 소설가가 된 여자 제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마흔이 다 된 딸에게도 차마 입을 떼지 못했던 얘기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신혼여행부터 시작이었다. 서울역 출발부터 신혼여행 가방을 신부에게 들라고 명령하는 남편(“붉은 가방을 어떻게 남자가 들어!”), 예정된 부산이 아니라 인천의 허름한 여관방에서 의 신혼여행(“이 정도면 돼. 이제부터 허영은 버려!”)…, 신씨는 “그때부터 그 남자는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대방동에서의 신혼생활도 “행복했냐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을 거야. 그러나 늘 우리는 마음이 무겁고 서로 감정을 감시하는 긴장 상태에 있었다”고 했다. 밤이면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숨어 별을 보며 우는 세월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기막힌 경우에 하늘이 노랗다는 은유를 쓰지. 아니야, 정말 노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 내가 보았으니까.”
대학교수였던 남편은 1977년 5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때 막내가 세 살이었고 신씨는 서른다섯, 거기다 일흔여덟 살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남편은 기적적으로 23일 만에 깨어났지만, 몸을 가누지 못했고, 상대가 힘들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으며, 조울증 으로 극심한 폭력을 행사하고 자살기도를 반복하다 정신병원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남편이 2000년 2월에 작고했으니 꼭 24년을 병에 시달리다 간 셈이다.
“환자 생활 24년을 뒷바라지하면서 증오심도 억세게 끓어올랐고 억장 무너지는 순간순간을 맞으며 남편의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하느님께 질문하려다가 입을 닫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니.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죽었고 그는 아팠지만 살아있었다.(…) 나는 그동안 소리 없는 총을 구하고 다녔다. 그래, 물론 그의 심장을 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야.”
거기에다 시어머니까지 쓰러져 9년 동안 병상에 있다 돌아갔다. 신씨는 보따리 장사로 생활을 꾸리기도 한 어려움 속에서도 마흔이 넘어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 결국 대학교수의 꿈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도 이룬다.
신씨는 말한다. “나는 불바다의 결혼 생활을 지나온 사람이지만 결혼은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화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어. 결혼은 그냥 옆에 있는 것이야. ‘우리’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 그 정도로만 생각하면 어떨까.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그냥 필요한 존재로 그저 그렇게 말이야.”
책 소개 ;;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힘든 세월···그 또한 지나가더라”
시인 신 달 자
개인사 털어놓은 에세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출간
24년 남편 병수발 등 고단한 삶의 무게 고백
“세 명의 딸들이 이 책을 받아보곤 3일 동안 숨겨놨다고 하더군요. 아이들도 엄마인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게 두려웠던 모양이에요.”
시인 신달자(65)가 24년 동안 남편 병구완에 보낸 시절을 회고한 에세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민음사)를 펴냈다. 이 책은 출판계 불황 속에서도 출간 일주일 만에 3쇄를
찍어냈을 정도로 화제다.
시인이 35세 되던 생일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일러줬다. 그러나 남편은 23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몸은 말이 아니었다.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병을 앓았고, 점점 폭력적이 됐다. 시인은 남편에게 매맞은 이야기까지 썼다.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쾅 하고 쏴 버리고 싶은 광기, 그러다 모든 걸 꿀꺽 삼키며 입 닫는
눈물겨운 침묵, 결혼하고 33년을 살면서 남편의 짐을 드는 노예이거나 보호자였던 운명을
생생하게 담았다.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죽었고, 그는 아팠지만 살아 있었던 셈이죠.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다 털어놓고 나니까 시원해요. 고요하고 편안합니다.”
남편은 1977년 5월11일 쓰러져 2000년 10월21일 사망했다. 24년의 고통도 함께 사라졌다.
아무리 힘든 순간도 지나간다’는 말을 되뇌인 세월이었다. 남편을 보낸 뒤 병원 식당에 앉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삶은 그러했다. 2001년부터 지난 삶을 메모했다.
시간을 묵혀 이제야 세상에 내놓았다.
“제 고생담을 자랑삼아 얘기한 책이 아닙니다. 가족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어요. 아무리 밉고 싫어도 가족은 가족이니까요.”
강자는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약자는 버릴 수 없다. 남편은 늘 약자였다. 버리기 힘들었다.
인간은 아무리 힘든 고통도 이기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비극 속에서도 자생력이 꿈틀댔다.
“제 묘비명을 지금 쓴다면, ‘신달자의 삶은 바보였는가, 천재였는가’로 하겠어요. 24년의
세월을 버틴 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묻고 싶어요.”
시인은 19일 오후 5시 광화문 교보문고, 20일 오후 2시 강남 교보문고에서 팬 사인회를
연다.
글 데일리 포커스 곽명동기자ㆍ사진 이효균기자
“7년전 떠난 남편 24년 병수발… 결혼은 후회아닌 화해하는 것”
신달자 시인 자전 에세이집 ‘나는 마흔에…’ 출간
“다시 말하지만 나는 빚이 없다. 나는 감히 말한다. 내가 겪은 불행만 한 세금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 수 있겠니. 더 이상 내가 어떻게 으깨어질 수 있겠니.”
누구일까? 어떤 고통을 헤치고 왔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소녀 같은 감수성의 시편들과
따뜻한 에세이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시인 신달자(65·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씨다.
며칠전 영랑(永郞)시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신씨의 시집 ‘열애’(민음사) 중에 실린 ‘소’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나운 소 한 마리 몰고/ 여기까지 왔다/ 소몰이 끈이 너덜너덜 닳았다/ 골짝마다 난장
쳤다/ 손목 휘어지도록 잡아끌고 왔다’/ (…)핏발 가신 눈 꿈벅이며 이제사 졸리는가/ 쉿!
/ 잠들라 운명.”
신씨가 2일 출간한 에세이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민음사)를 보면, 화사
하게만 보였던 작가가 지나온 지난한 역정에 우선 놀라고, ‘소몰이 끈이 너덜너덜 닳고,
손목이 휜’ 구절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씨는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이 전작 에세이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가 쓰러지고, 자신도 암투병을 해야
했던 세월의 상처를 피를 토하듯 쏟아낸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내년이면 정년이 되는데, 이젠 그 이야기들을 쓸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짧게 말했다. 책은 뒤늦게 소설가가 된
여자 제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마흔이 다 된 딸에게도 차마 입을
떼지 못했던 얘기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신혼여행부터 시작이었다. 서울역 출발부터 신혼여행 가방을 신부에게 들라고 명령하는
남편(“붉은 가방을 어떻게 남자가 들어!”), 예정된 부산이 아니라 인천의 허름한 여관방에서
의 신혼여행(“이 정도면 돼. 이제부터 허영은 버려!”)…, 신씨는 “그때부터 그 남자는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대방동에서의 신혼생활도 “행복했냐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을 거야. 그러나 늘 우리는 마음이 무겁고 서로 감정을 감시하는 긴장
상태에 있었다”고 했다. 밤이면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숨어 별을 보며 우는 세월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기막힌 경우에 하늘이 노랗다는 은유를 쓰지. 아니야, 정말 노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 내가 보았으니까.”
대학교수였던 남편은 1977년 5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때 막내가 세 살이었고 신씨는
서른다섯, 거기다 일흔여덟 살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남편은 기적적으로 23일 만에
깨어났지만, 몸을 가누지 못했고, 상대가 힘들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으며, 조울증
으로 극심한 폭력을 행사하고 자살기도를 반복하다 정신병원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남편이 2000년 2월에 작고했으니 꼭 24년을 병에 시달리다 간 셈이다.
“환자 생활 24년을 뒷바라지하면서 증오심도 억세게 끓어올랐고 억장 무너지는 순간순간을
맞으며 남편의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하느님께 질문하려다가 입을 닫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니.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죽었고 그는 아팠지만 살아있었다.(…)
나는 그동안 소리 없는 총을 구하고 다녔다. 그래, 물론 그의 심장을 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야.”
거기에다 시어머니까지 쓰러져 9년 동안 병상에 있다 돌아갔다. 신씨는 보따리 장사로 생활을
꾸리기도 한 어려움 속에서도 마흔이 넘어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 결국 대학교수의 꿈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도 이룬다.
신씨는 말한다. “나는 불바다의 결혼 생활을 지나온 사람이지만 결혼은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화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어. 결혼은 그냥 옆에 있는 것이야.
‘우리’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 그 정도로만 생각하면 어떨까.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그냥 필요한 존재로 그저 그렇게 말이야.”
출처: 문화일보/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