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이 전쟁에서 사망한 장수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빈현 대불사 석굴.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위령제를 지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이 감동했다고 한다.
중국 CCTV-10 채널에 ‘백가강단(百家講壇)’ 프로그램이 생긴 건 2001년 7월이었다. 음식과 양생 등 온갖 잡다한 상식을 전하던 이 프로그램은 2004년부터 중국의 역사와 문학을 알리는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재설정하면서 수 많은 학술 강의 스타를 탄생시켰다. ‘삼국지 강의’와 ‘품인록’ 등으로 중국을 열광시킨 이중텐(易中天), ‘논어심득’의 위단(于丹) 등이 모두 백가강단 출신이다.
‘정관의 치, 위대한 정치의 시대’ 또한 백가강단이 낳은 산물이다. 인민대학 역사학과 부교수인 멍셴스(孟憲實)가 백가강단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백가강단은 학술포럼이 아니다. ‘전문가가 인민에게 봉사한다’는 취지 아래 대중을 상대로 역사적 사실을 강사 자신의 독특한 관점 아래 쉽게 설명한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쉽고 재미있다는 게 장점이다.
‘정관의 치’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치세(治世) 시기를 뜻한다. ‘거리에 물건이 떨어졌어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고,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었던’ 태평성대를 말한다. 정관(貞觀)은 이세민의 연호로 서기 627년부터 649년까지 23년 간 이어졌다. ‘정’은 ‘바른 것(正)’을 가리키며, ‘관’은 사람에게 보여줌을 뜻한다. ‘정관의 치’란 결국 ‘옳은 것을 보여준다’는 게 핵심 내용인 것이다. 이세민은 이후 1300여 년 동안 모든 제왕의 역할 모델이 됐다.
그렇다면 형제들의 피를 제물로 권좌에 오른 그가 어떻게 이같은 치세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이세민의 정치 역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아버지 이연(李淵)을 도와 수나라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당 건국을 돕는 일, 형과 아우를 살해하고 권좌에 오르는 ‘현무문(玄武門)의 변(變)’, 역사에 길이 남을 정관의 치세를 이루는 과정, 끝으로 후계자 문제로 골치를 썩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최고 지도자로서의 이세민의 정치적 고민과 결단 등 정치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4부 20강(講)’으로 정리돼 있다.
멍셴스가 전하는 이세민의 리더십은 크게 ‘위민(爲民)’과 ‘포용’이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다” “백성은 물이요, 황제는 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 등 위민이본(爲民以本) 정신으로 무장한 이세민의 말에선 군림하는 군주가 아니라 백성을 두려워하는 현군으로서의 모습이 배어 나온다.
또 하나의 리더십은 적까지 끌어안는 포용 정신이다. 일단 권좌에 오른 태종은 측근이 내미는 반대파에 대한 살생부를 집어 던진다. 특히 정적인 형을 보좌했던 위징(魏徵)을 중용해 그의 간언(諫言)을 들은 것은 정관의 치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위징은 ‘감히 간언했으며 능히 간언했고 훌륭히 간언해’ 태종으로 하여금 패도를 버리고 왕도를 걷게 만든 인물이 된 것이다.
“사람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거울 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셈이구나.” 위징의 죽음을 슬퍼한 태종의 말이다.
한국과 중국 모두 새 정부가 구성된 올해 나온 이 책은 정치 리더십에 대한 또 하나의 ‘거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유상철 기자
천하는 만인을 위한 것이다
말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이슈가 없는 게 최대 이슈였다’고 비아냥거림을 받을 정도로 무정책 대결, 무한 파벌 대전이었다. 이념에 경도돼 국민을 내팽개친 정치권, 십수년 동안 한솥밥을 먹던 당인들끼리 패를 갈라 다투는 모습에 염증난 국민은 ‘과반수 기권’으로 무언의 항의를 보냈다. 여러 당에 골고루 표를 나눠준 것도 대화와 타협을 주문한 국민의 깊은 뜻으로 해석된다.
국민의 이러한 정치불신 원인은 뭘까. 한마디로 하면,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재’로 요약된다. 대통령 당선 직후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라고 써서 감동을 줬던 이명박 대통령은 측근을 과다 중용하고 경쟁자를 내침으로써 통합·포용정치에 한계를 드러냈다. 요상한 당명을 가진 ‘친박연대’의 선전은 이를 보여준다.
뭔가 산뜻한 대안은 없을까. 여의도를 떠난 민심을 다독여줄 이상적인 정치가상(像)이 궁금하다. 여기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 바로 아버지인 고조 이연(李淵)과 함께 ‘당(唐)’을 수립하고 군웅을 평정하여 중국 통일을 이룬 태종 이세민(598∼649)이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다’고 늘 되뇐 그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 신하와 백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청 리더십, 계파를 초월한 인재 등용으로 ‘정관의 치’라는 후세 제왕의 모범이 되는 통합의 리더십까지 보여준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태종은 집권 직후 신하들을 모아놓고 정책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위징(魏徵)이 낸 의견인 ‘패도가 아닌 왕도 정치’를 새 국가 노선으로 결정했다. 강력한 법제와 무력을 동원한 공포정치가 아닌,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위민정치’를 펴기로 한 것. ‘정관의 치’는 이렇게 시대의식을 재빨리 파악하고 건의한 현신 위징과 그의 의견을 편견 없이 수용한 현군이 이룬 합작 드라마였다. 다음은 태종의 어록이다.
“군주는 국가를 근간으로 하고 국가는 백성을 기본으로 한다. 백성을 핍박해 군주를 받들게 하고 그들의 살을 잘라 배를 채우면, 배는 부르겠지만 몸은 죽어지고, 군주는 부자가 되지만 나라는 망하고 만다. 세금이 무거워지면 백성은 근심하며, 백성이 근심하면 나라는 위기에 처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군주 또한 존재할 수 없다.”
태종의 또 하나의 매력은 ‘위대한 포용력’이다. 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태자와 동생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그의 측근들은 살생부를 내밀며 반대파의 척결을 주장했다. 하지만 태종은 이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정적에게 손을 내밀었다. 포고령을 내려 과거 자신에게 대적한 무리들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또한 계파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인재라면 모두 등용했다. 바로 과거 태자 진영에서 활약한 장수 설만철과 핵심 세력인 위징을 중용한 것이다.
“옥은 아름답지만 갈고 닦지 않으면 한낱 돌멩이와 구별되지 않는다네. 하지만 솜씨 좋은 장인을 만나면 만대에 빛날 보물로 남을 수 있지. 짐은 비록 타고난 재능이 없으나 그대와 끊임없이 치국에 대해 토론했네. 그대가 항상 짐이 인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 오늘날의 짐이 있는 것이다.” 태종이 위징에게 한 말이다.
위징이 죽자 태종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거울 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 짐은 이를 모두 가졌기에 항상 스스로를 단속할 수 있었지만 이제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셈이구나!” 하고 통탄했다.
태종의 치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백성은 물이요, 황제는 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을 가졌던 태종은 민본사상을 정책으로 실현했다. 그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기존의 군주가 아닌 백성을 위하고 또한 두려워할 줄 아는 현군이었다. 태종은 즉위하자마자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국가를 일으켜 세우려고 민본 정책과 함께 작은 정부를 주창했다. 작은 정부 정책은 조정에 드는 비용을 줄여 백성의 세금 부담을 줄였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링컨의 노예 해방에 비견되는 궁녀 해방, 종실 혜택 줄이기, 주현의 합병, 조직의 간소화 등을 들 수 있다. 일찍이 “군주의 도는 먼저 백성들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던 태종은 백성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법제도를 바로 세우고 신중히 집행하도록 했다. 무분별한 사형 집행을 줄이고, 상고제도인 오부주(五復奏)와 삼부주(三復奏)제도도 만들었다.
이러한 내용은 당나라 연구가인 멍셴스(孟憲實) 중국 런민대학 국학원 부교수가 집필한 ‘정관의 치’에 담겨 있다. 멍 교수의 다음 말이 책을 덮어도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좋은 것은 모두 자기가 갖고 힘든 일은 모두 부하들에게 시키는 사람은 절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는 권력이 아닌 권위를 갖춰야 하는데 그 권위는 아랫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책임감이 없는 윗사람은 그저 윗사람일 뿐이지 진정한 지도자는 아니다.”
책 소개 ; "정관의 치" 당태종 천하 다스린 묘책 “먼저 백성을 두려워하라
당태종 천하 다스린 묘책 “먼저 백성을 두려워하라
정관의 치,위대한 정치의 시대
멍셴스 (孟憲實)지음 / 김인지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430쪽, 1만8000원
당 태종이 전쟁에서 사망한 장수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빈현 대불사 석굴.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위령제를 지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이 감동했다고 한다.
중국 CCTV-10 채널에 ‘백가강단(百家講壇)’ 프로그램이 생긴 건 2001년 7월이었다. 음식과 양생 등 온갖 잡다한 상식을 전하던 이 프로그램은 2004년부터 중국의 역사와 문학을 알리는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재설정하면서 수 많은 학술 강의 스타를 탄생시켰다. ‘삼국지 강의’와 ‘품인록’ 등으로 중국을 열광시킨 이중텐(易中天), ‘논어심득’의 위단(于丹) 등이 모두 백가강단 출신이다.
‘정관의 치, 위대한 정치의 시대’ 또한 백가강단이 낳은 산물이다. 인민대학 역사학과 부교수인 멍셴스(孟憲實)가 백가강단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백가강단은 학술포럼이 아니다. ‘전문가가 인민에게 봉사한다’는 취지 아래 대중을 상대로 역사적 사실을 강사 자신의 독특한 관점 아래 쉽게 설명한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쉽고 재미있다는 게 장점이다.
‘정관의 치’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치세(治世) 시기를 뜻한다. ‘거리에 물건이 떨어졌어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고,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었던’ 태평성대를 말한다. 정관(貞觀)은 이세민의 연호로 서기 627년부터 649년까지 23년 간 이어졌다. ‘정’은 ‘바른 것(正)’을 가리키며, ‘관’은 사람에게 보여줌을 뜻한다. ‘정관의 치’란 결국 ‘옳은 것을 보여준다’는 게 핵심 내용인 것이다. 이세민은 이후 1300여 년 동안 모든 제왕의 역할 모델이 됐다.
그렇다면 형제들의 피를 제물로 권좌에 오른 그가 어떻게 이같은 치세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이세민의 정치 역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아버지 이연(李淵)을 도와 수나라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당 건국을 돕는 일, 형과 아우를 살해하고 권좌에 오르는 ‘현무문(玄武門)의 변(變)’, 역사에 길이 남을 정관의 치세를 이루는 과정, 끝으로 후계자 문제로 골치를 썩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최고 지도자로서의 이세민의 정치적 고민과 결단 등 정치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4부 20강(講)’으로 정리돼 있다.
멍셴스가 전하는 이세민의 리더십은 크게 ‘위민(爲民)’과 ‘포용’이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다” “백성은 물이요, 황제는 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 등 위민이본(爲民以本) 정신으로 무장한 이세민의 말에선 군림하는 군주가 아니라 백성을 두려워하는 현군으로서의 모습이 배어 나온다.
또 하나의 리더십은 적까지 끌어안는 포용 정신이다. 일단 권좌에 오른 태종은 측근이 내미는 반대파에 대한 살생부를 집어 던진다. 특히 정적인 형을 보좌했던 위징(魏徵)을 중용해 그의 간언(諫言)을 들은 것은 정관의 치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위징은 ‘감히 간언했으며 능히 간언했고 훌륭히 간언해’ 태종으로 하여금 패도를 버리고 왕도를 걷게 만든 인물이 된 것이다.
“사람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거울 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셈이구나.” 위징의 죽음을 슬퍼한 태종의 말이다.
한국과 중국 모두 새 정부가 구성된 올해 나온 이 책은 정치 리더십에 대한 또 하나의 ‘거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유상철 기자
천하는 만인을 위한 것이다
말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이슈가 없는 게 최대 이슈였다’고 비아냥거림을 받을 정도로 무정책 대결, 무한 파벌 대전이었다. 이념에 경도돼 국민을 내팽개친 정치권, 십수년 동안 한솥밥을 먹던 당인들끼리 패를 갈라 다투는 모습에 염증난 국민은 ‘과반수 기권’으로 무언의 항의를 보냈다. 여러 당에 골고루 표를 나눠준 것도 대화와 타협을 주문한 국민의 깊은 뜻으로 해석된다.
국민의 이러한 정치불신 원인은 뭘까. 한마디로 하면,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재’로 요약된다. 대통령 당선 직후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라고 써서 감동을 줬던 이명박 대통령은 측근을 과다 중용하고 경쟁자를 내침으로써 통합·포용정치에 한계를 드러냈다. 요상한 당명을 가진 ‘친박연대’의 선전은 이를 보여준다.
뭔가 산뜻한 대안은 없을까. 여의도를 떠난 민심을 다독여줄 이상적인 정치가상(像)이 궁금하다. 여기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 바로 아버지인 고조 이연(李淵)과 함께 ‘당(唐)’을 수립하고 군웅을 평정하여 중국 통일을 이룬 태종 이세민(598∼649)이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다’고 늘 되뇐 그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 신하와 백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청 리더십, 계파를 초월한 인재 등용으로 ‘정관의 치’라는 후세 제왕의 모범이 되는 통합의 리더십까지 보여준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태종은 집권 직후 신하들을 모아놓고 정책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위징(魏徵)이 낸 의견인 ‘패도가 아닌 왕도 정치’를 새 국가 노선으로 결정했다. 강력한 법제와 무력을 동원한 공포정치가 아닌,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위민정치’를 펴기로 한 것. ‘정관의 치’는 이렇게 시대의식을 재빨리 파악하고 건의한 현신 위징과 그의 의견을 편견 없이 수용한 현군이 이룬 합작 드라마였다. 다음은 태종의 어록이다.
“군주는 국가를 근간으로 하고 국가는 백성을 기본으로 한다. 백성을 핍박해 군주를 받들게 하고 그들의 살을 잘라 배를 채우면, 배는 부르겠지만 몸은 죽어지고, 군주는 부자가 되지만 나라는 망하고 만다. 세금이 무거워지면 백성은 근심하며, 백성이 근심하면 나라는 위기에 처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군주 또한 존재할 수 없다.”
태종의 또 하나의 매력은 ‘위대한 포용력’이다. 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태자와 동생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그의 측근들은 살생부를 내밀며 반대파의 척결을 주장했다. 하지만 태종은 이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정적에게 손을 내밀었다. 포고령을 내려 과거 자신에게 대적한 무리들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또한 계파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인재라면 모두 등용했다. 바로 과거 태자 진영에서 활약한 장수 설만철과 핵심 세력인 위징을 중용한 것이다.
“옥은 아름답지만 갈고 닦지 않으면 한낱 돌멩이와 구별되지 않는다네. 하지만 솜씨 좋은 장인을 만나면 만대에 빛날 보물로 남을 수 있지. 짐은 비록 타고난 재능이 없으나 그대와 끊임없이 치국에 대해 토론했네. 그대가 항상 짐이 인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 오늘날의 짐이 있는 것이다.” 태종이 위징에게 한 말이다.
위징이 죽자 태종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거울 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 짐은 이를 모두 가졌기에 항상 스스로를 단속할 수 있었지만 이제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셈이구나!” 하고 통탄했다.
태종의 치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백성은 물이요, 황제는 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을 가졌던 태종은 민본사상을 정책으로 실현했다. 그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기존의 군주가 아닌 백성을 위하고 또한 두려워할 줄 아는 현군이었다. 태종은 즉위하자마자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국가를 일으켜 세우려고 민본 정책과 함께 작은 정부를 주창했다. 작은 정부 정책은 조정에 드는 비용을 줄여 백성의 세금 부담을 줄였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링컨의 노예 해방에 비견되는 궁녀 해방, 종실 혜택 줄이기, 주현의 합병, 조직의 간소화 등을 들 수 있다. 일찍이 “군주의 도는 먼저 백성들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던 태종은 백성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법제도를 바로 세우고 신중히 집행하도록 했다. 무분별한 사형 집행을 줄이고, 상고제도인 오부주(五復奏)와 삼부주(三復奏)제도도 만들었다.
이러한 내용은 당나라 연구가인 멍셴스(孟憲實) 중국 런민대학 국학원 부교수가 집필한 ‘정관의 치’에 담겨 있다. 멍 교수의 다음 말이 책을 덮어도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좋은 것은 모두 자기가 갖고 힘든 일은 모두 부하들에게 시키는 사람은 절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는 권력이 아닌 권위를 갖춰야 하는데 그 권위는 아랫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책임감이 없는 윗사람은 그저 윗사람일 뿐이지 진정한 지도자는 아니다.”
세계일보 조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