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콘크리트 살인사건(실)

박진희2008.04.23
조회2,247
일본콘크리트 살인사건(실)


 

예전에 일본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다.

1988년 11월 25일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죄없는 여고생을 하교길에 납치하여 수개월간 감금하며

여러명이서 온갖 고문과 성행위등
`인간으로써 어떻게 저럴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의 폭행, 고문등을 한뒤

무참히 살해하여공사장 인근의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묻어버린뒤,  평상시와 똑같은 일상을 살던 소년들.

 

 

그들의 나이는 불과 15~18세.

그들은 모두 붙잡혔지만 한소년은 자신의 죄를 뉘우침없이

자신들했던 고문과 폭행, 성행위등을 모두 자백하였다.
그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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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콘크리트 살인사건(실)


 

 

1988년 11월 25일 (밤10시)

 

자전거로 귀가 도중의 소녀를 찾아낸 A가

공범이었던 소년C에게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

소녀는 도로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공범C 도주후 주범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준다'며

말을 걸어 납치한다.

 

공범C 소년의 방에 피해자를 데려가 몇사람이 폭행, 강간한다.

C의 아버지는 이때 소녀가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들어

주의를 줬지만 아들이 고함쳤으므로 그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희생자에게는 도망쳐 경찰에 신고해도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한다고 위협하여 도망을 저지하려 했다.

 

 

 

1988년 11월 30일

 

A의 제안으로 피해자의 모친과 친구에게

'친구의 집에 있으니까 수색원은 내지마라'고 공중전화로 시켰다.

 

이때 C의 어머니는 피해자를 목격하고 있다.

C의 어머니가 부엌에 있었을 때 현관으로부터

'오늘밤은'이라며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소녀에게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지만

소녀는 대답을 하지 않고 2층에 올라갔다.

C의 아버지도 C가 내려왔을때 '빨리 돌려보내'라고 말했다.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일주일 후, C의 모친이 화장실을 청소 했을때

생리용품이 있었기 때문에 2층에 올라갔다.

2층에는 공범소년 D와 피해자 소녀가 있었다.

이때 피해자와 말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주소는 사이타마, 고교 3학년. 취직은 정해져있다'라고 말했다한다

 

그 후, 소년C와 그 어머니, 소년D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어

도중에 귀가한 C의 아버지는 '걸프렌드인가. 나에게도 소개해다오'

하고 C에게 얘기를 했지만 무시된다.

 

C의 어머니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젼을 보거나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걸로

알고 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C의 어머니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C와 C의 형이 대기하고 있어 실패.

결국 부모님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 올라

2층의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귀가한 C는 관계없는 일을 하지 말라며

어머니를 수시간에 걸쳐 때린다.

 

 

 

1988년 12월 초

 

소년A등 4명이 낮잠 자고 있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110번에 신고한다.

곧 A에 눈치채여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걸려온 전화는 A가 나와 속인다.

 

물과 음식을 주지 않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즐기다가

우유와 건포도를 먹이자 몸이 반응하지 못하여 토해내면

더럽다고 구타하고

전원이 린치해 라이터기름을 발목에 바르고 불붙인다.

불을끄기위해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치는 것을 하지말라며

폭행하고 그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였다.

 

항문과 성기에 안쪽으로 불꽃놀이등을 꼽아놓고 터트렸으며

(부검당시 소녀의 대장에 심각한 화상이 있었다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웃지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1988년 12월 19일

 

C의 집에 A가 와 피해자에게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불붙인다.

재차에 걸치는 화상에 의해 상처가 곪는 이상한 냄새를 낸다.

악취로 C의 부모님이 눈치채는 것을 무서워 해

아래층의 화장실을 사용시키지 않고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이때 소녀는 이미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게 되어 있었다.

 

 

 

 

1988년 12월 20일

 

소년A등 3인외에 여자가 1명와서

'화장'이라며 피해자의 뺨에 매직으로 수염을 그린다.

 

요즘 소년C는 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고 아는사람에게 공인해

100명정도는 감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보여지며,

재판기록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10명이 강간등에 참가 하고있다.

 

거듭되는 폭행에 의해 뺨이 코높이를 넢을 만큼 부어올라

눈의 위치를 모를 만큼 되어 있었다.

 

감금 당초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키거나

C가 칫솔등을 사주거나 하고 있었지만

상처나 화상이 심해지는 것에 따라

식사, 목욕에 대해 배려하지 않게 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계란등

집에 있던 것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 한컵 먹일 뿐이었다.

 

 

 

 

1988년 12월 21일

 

만약 풀려나면 경찰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줄 때까지 뭐든지 한다고 피해자가 말했기 때문에

'알몸으로 춤춰라', '미치광이 흉내를 내라'등을 지시.

 

 

 

 

1988년 12월 28일

 

A와 C, B 세명이 한밤중의 C의 방에 들어가자

피해자가 배를 누르고 넘어져 있었다.

A의 얼굴을 보며 피해자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다.

A는 물, 콘스프, 포도빵을 건네주었다.

방에서 나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우유를 먹였지만 토해버린다.

그 후, 피해자가 팩의 소변을 흘렸다고 A는 격노,

사과하는 피해자의 하복부를 수십차례 구타,

상반신을 알몸으로 해 혹한(12월)의 베란다에 서게 해

담배 두가치를 동시에 피우게 하지만 구토.

양 대퇴부, 무릎, 정강이 등에 라이터기름을 바르고 점화.

열이 이는 불을 끄려고 하자 손에도 점화.

불이 꺼지면 다시 점화했다.

 

 

 

 

1988년 1월 4일

 

JR아야세역 근처 마작소에서 내기마작을 해

10만엔을 잃은 A는 초조해한다.

가수 코이즈미 교코의 테이프를 틀어 가사안의 '예-이!'에 맞추어

피해자의 옆구리에 마음껏 구타한다.

피해자는 소리를 내면 더 맞기 때문에 고통을 참아

얼굴을 비뚤어지게했다.

그 표정을 보며 소년들은 더욱 재미있어 했다.

 

안면, 복부를 구타해 넘어뜨리고 안면등을 발로차고.

넘어지면 일으켜 때린다.

코나, 입으로부터 피를 흘리고 있는 얼굴에

양초를 늘어뜨려 두눈위에 양초를 세우는 등의 폭해을 가하고

또 팩의 용기에 누게 한 소변을 먹였다.

 

피해자가 카셋트에 부딪쳐 전신을 경련하며 넘어진 것을 보며

'꾀병이다'며 C가 격노.

A는 6kg의 철아령을 피해자의 배에 던지고

대퇴부, 안면을 한층 더 때린다.

구타가 끝난후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터기름을 바르고 불붙였다.

처음은 움직였지만 마지막에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 마지막 폭행은 2시간 가까이에 이르렀다.

 

 

 

 

1988년 1월 5일

 

피해자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A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타일 공장에 가서

모르타르 드럼통 등을 조달.

사체를 가방에 넣어 A의 집 앞에서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었다.

이 때, 공장의 전 상사는 사람을 죽였던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A가 빌려온 웨건을 운전해 도쿄 灣의 매립지에 갔지만

적당한 장소가 없어 도로 틈의 풀숲에 버렸다.

 

일본콘크리트 살인사건(실)


 

 

 

 

 

-주범은 2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당시 17세) 나머지3명은 출소

 

-'콘크리트'라는 제목으로 영화제작

 

-바퀴벌레와 다량의 정액, 소변등을 먹였고 시체발견 당시 손발이

 묶인채로 안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정도였으며

 성기는 안면보다 더한 상태.

 온갖 이물질을 성기에 집어넣고 불을 붙혔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빠짐

 

-감금 사실을 친구들에게 자랑해 대략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10명이상이 강간, 폭행에 가담

 

-감금 당한 장소는 2층 주택이었고(C의집)

 1층의 부모들도 사실을 알고있었지만 신고를 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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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들춰진것은 사건발생 4개월뒤인

평성원년 1989년 3월 29일에 발견되었다.

네리마 소년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 11월 8일에 강간, 절도 등에 의해

소년 감별소로 보내진 소년A를 조사햇을때

담당형사가 무심코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는 질문에

다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하여 모든 사건내용을 자백한다.

 

 

담당형사는 당초의 목적인 강간, 절도의 조사를 받는일 없이

반신반의한 채.. 자백내용에 의지하여 도쿄 코토쿠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드럼통한개만 널려있었으며

드럼통의 콘크리트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경찰은 305kg정도의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메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백에 채워진 이불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

사후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나빳다.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정도로 영양실조 상태.

전신에 구타에 의한 부종

(림프액이 다량으로 모여 부어오른 상태)

이 시신의 상태에 있어 사인은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여겨졌다.

시신의 상태는 안면이 심하게 함몰및 변형되어있었고,

부폐진행중 이였기때문에 외관으로부터의 확인은 곤란했지만,

지문이나 이빨등의 조합으로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 후

귀가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고교 3학년의 소녀(17)인것이 확인됬다.

 

야시오 시내의 아르바이트에 먼저 간 채로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경찰서에 수색원을 냈던 부모는

무사히돌아오는것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있었다.

 

공판기록에 의하면 변호사가

"그정도의 폭행을 가하면서, 그녀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라는질문에

".......생각할수 없었다" 라고대답했으며,

 

"죄를 뉘우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소년B,C,D등은 죄를 뉘우친다 했으나

소년A는

"단지 운이 없어서 잡혔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여 충격을 더했다.

 

일본콘크리트 살인사건(실)


 

당시 드럼통이 발견된 공터

 

 

 

 

도쿄 고등 법원 판결(확정)

소년A는 20년 형을 선고 받았으며,

나머지 3명은 5~10년형을 선고했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실제론 이 소년들 이외에도

10여명의 가해자가 더있지만 그들에겐 약식 기소하였다.

 

그들은 반성조차 하지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취재하러온 기자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부모는 지금 역시 피고인 측에서의 면회신청 및

성묘허가를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하고 있다.

손수 돌봐 길러 온 외동딸을 태연하게 주변에서 문제 삼아,

불안 초조로 긴 날들을 보낸 결과,

끔찍하게도 피해자가 살해되기에 이른 부모등 ..

피해자의 감정은, 지극히 엄하여 피고인에 대해

격렬하게 엄벌을 요구하고 있고

피해자의 아버지는 당심증언에 대해서도,

피고인에 대한 원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해

강한 불신감과 불만의 정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피해자의 모친은..

외동딸의 죽음에 이른 자세한 경과를 들은 뒤,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다.

덧붙여 주범A는 이외는 이미 출소하고있다

A는 2008년에 출소한다고한다.

그들은 사회에 나와 대부분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신병에 시달리고있다고 한다.

 

소년C의 부모는 아직도 재판이 부당하다며 혐의를 부정하며

신문사에 이를 알리는 편지를 수차례씩 보내고있다.

 

그중 소년D는 가장 반성하고 있으며,

폭행당시 소녀는 폭행뒤에 자신에게

"나는 언제 집에갈수 있는거야?"라고 말했다며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일본콘크리트 살인사건(실)


피해자의 사진과 당시 보도된 신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