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김대승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로 데뷔한 후 4년 만이다. 꽤 긴 시간의 간극 만큼이나 두 영화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환생한 전생의 애인과 다시 사랑에 빠진 남자의 멜로드라마였던 와 달리 는 이야기의 규모가 훨씬 크다. 19세기 조선조 말엽 어느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극을 소재로 원귀가 출몰할 듯한 공포영화적 설정에 연쇄 살인범을 쫓는 수사관의 고투라는 범죄 스릴러의 내러티브를 입혔다. 이원재가 쓴 각본은 ‘사극판 ’이라는 소문이 충무로에 돌았을 만큼 이야기 흐름이 탄탄하다. 무속 신앙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은 오지 섬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으로 연쇄 살인을 다루는 이원규 군관(차승원)의 시점을 따라가는 것은 근대 과학과 무속 신앙의 대립이라는 도식을 세워놓고 거기서 중요한 잔가지를 뻗어낸다.
연쇄 살인 과정에 방점을 찍는 것은 잔혹극의 외피다. 연쇄 살인은 현대에선 보기 드문 형태의 수법으로 잔인하게 이뤄지며 그 언저리에는 원귀의 복수라는 무속적 믿음이 어른거린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과거 한때 섬을 다스리던 권력자에게 등을 돌렸던 섬 사람들의 업보를 다룬다는 점에서 권력층과 피지배층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또는 양반 계층과 상놈으로 나뉜 반상의 구별이 흐트러지고 천주교가 들어왔던 19세기 말 근대적 삶의 흔적이 어떻게 사람들을 혼란에 몰아넣었는가를 살펴보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과학과 미신, 지배층과 피지배층, 양반과 상놈, 합리적인 이성과 초자연적인 주술 등의 대립으로 나뉜 이 촘촘한 서사는 결국 마지막에 남녀간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라는 뜻밖의 묵은 사연을 드러낸다. 이 둘은 영화에서 처음과 끝, 수미일관하게 나타나는 인물이다. 여러 대립적인 이야기의 각이 세워져 있고 어느 편에든 설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나오지만 연출자는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결국은 모두 스스로 안에서 무너지는 이야기다. 그것을 감독 김대승은 소돔과 고모라의 변형이라고 이해한다. 표면적인 대립은 있지만 감독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인간의 탐욕이고 그건 어느 쪽에 선 인간이든지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아마도 이런 인간의 탐욕에 대한 부끄러움은 거의 하드고어적인 수준에까지 이른 잔혹한 폭력 묘사다. 여기서 얻어진 정서적 충격이 분노로 바뀌고 서서히 슬픔과 회한으로 남는 것이다. 그게 가 의도한 이야기의 최종 기착지다.
혈의 누 (血의 淚: Blood Tears, 2005)
한국 / 범죄, 스릴러 / 119분 / 감독: 김대승
(★★★★☆)
2005년 제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미술상, 시각효과상, 음향상
2005년 제2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10대영화상, 각본상, 기술상
2005년 제26회 청룡영화상 기술상
2005년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미술상, 의상상
2005년 제13회 춘사대상영화제
올해의 감독상, 편집상, 기술상, 조명상, 촬영상
남우조연상
2006년 제17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판타스틱 대상
2006년 제4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작품상
는 김대승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로 데뷔한 후 4년 만이다. 꽤 긴 시간의 간극 만큼이나 두 영화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환생한 전생의 애인과 다시 사랑에 빠진 남자의 멜로드라마였던 와 달리 는 이야기의 규모가 훨씬 크다. 19세기 조선조 말엽 어느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극을 소재로 원귀가 출몰할 듯한 공포영화적 설정에 연쇄 살인범을 쫓는 수사관의 고투라는 범죄 스릴러의 내러티브를 입혔다. 이원재가 쓴 각본은 ‘사극판 ’이라는 소문이 충무로에 돌았을 만큼 이야기 흐름이 탄탄하다. 무속 신앙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은 오지 섬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으로 연쇄 살인을 다루는 이원규 군관(차승원)의 시점을 따라가는 것은 근대 과학과 무속 신앙의 대립이라는 도식을 세워놓고 거기서 중요한 잔가지를 뻗어낸다.
연쇄 살인 과정에 방점을 찍는 것은 잔혹극의 외피다. 연쇄 살인은 현대에선 보기 드문 형태의 수법으로 잔인하게 이뤄지며 그 언저리에는 원귀의 복수라는 무속적 믿음이 어른거린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과거 한때 섬을 다스리던 권력자에게 등을 돌렸던 섬 사람들의 업보를 다룬다는 점에서 권력층과 피지배층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또는 양반 계층과 상놈으로 나뉜 반상의 구별이 흐트러지고 천주교가 들어왔던 19세기 말 근대적 삶의 흔적이 어떻게 사람들을 혼란에 몰아넣었는가를 살펴보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과학과 미신, 지배층과 피지배층, 양반과 상놈, 합리적인 이성과 초자연적인 주술 등의 대립으로 나뉜 이 촘촘한 서사는 결국 마지막에 남녀간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라는 뜻밖의 묵은 사연을 드러낸다. 이 둘은 영화에서 처음과 끝, 수미일관하게 나타나는 인물이다. 여러 대립적인 이야기의 각이 세워져 있고 어느 편에든 설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나오지만 연출자는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결국은 모두 스스로 안에서 무너지는 이야기다. 그것을 감독 김대승은 소돔과 고모라의 변형이라고 이해한다. 표면적인 대립은 있지만 감독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인간의 탐욕이고 그건 어느 쪽에 선 인간이든지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아마도 이런 인간의 탐욕에 대한 부끄러움은 거의 하드고어적인 수준에까지 이른 잔혹한 폭력 묘사다. 여기서 얻어진 정서적 충격이 분노로 바뀌고 서서히 슬픔과 회한으로 남는 것이다. 그게 가 의도한 이야기의 최종 기착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