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의 새 영화 는 딱 '타란티노 영화'다. 등장인물들은 에서처럼 걸핏하면 모여 앉아서 끝없이 수다를 떨어대고, 다른 영화에서 여러 번 본 장면들인 것 같은데 어딘가 비틀리거나 과장돼 있고, 처음에는 주인공인 줄 알았던 인물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등 그 전개나 결말이 생뚱맞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타란티노스러움’ 중에는 영화의 리듬이 길게 늘어지는 대화와 거침없는 잔혹함 사이를 오가며 경쾌하게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 느닷없이 끝나버린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유치한 척하는 세련된 연출은 기본이고 말이다. 혹자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스턴트맨 마이크(커트 러셀)’의 심리에 대해 정신분석학적 설명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심리학자’의 타이틀을 단 내가 이 자리에 끌려 들어온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에 정신분석학을 들이미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물론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자동차는 일종의 성기이고, 여성에 대한 비열하고 잔인한 태도는 어떤 이유로든 좌절당하고 억압된 성욕을 상징하며, 결과적으로 자동차로 여자를 공격하는 과정은 그에게는 성행위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이런 해석은 '타란티노'가 영화 속에서 늙수그레한 보안관의 입을 빌어 전부 까발린 뒤다. 게다가 자동차와 성욕을 연결 짓는 그런 식의 이야기라면 ‘변태 분야의 전문가’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자신의 영화 에서 충분히 써먹지 않았던가. 정신분석학의 기본 원칙에 따르면 숨은 의미를 드러낸 상징은 더 이상 그 의미를 담지 못한다. 원래 정신분석학의 상징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욕망이나 불안을 무의식 속에 숨겨 몰래 유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자 포장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가면을 쓰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벗어버린다. 이미 얼굴을 드러낸 다음, 무엇 때문에 가면에 집착하겠는가. 게다가 이런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은 실용적 가치도 별로 없다. 왜냐하면 현실세계에서 이런 사람을 찾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차를 아주 험악하게 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자동차를 자기 신체의 일부처럼 애지중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한국의 도로들을 다니다보면 괜히 여자 운전자만 만나면 괴롭히려 드는 인간들도 가끔씩 만나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여자를 멸시하거나 괴롭히는 것과, 자기 차를 상대방의 차에 충돌시켜 상대를 죽임으로써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것 사이에는 적어도 서너 단계의 비약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정상적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기 차에 흠집이 나면 피눈물을 흘릴지언정 자동차 충돌을 성행위의 일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의 뇌를 정신 분석해봐야 할 것이다. 굳이 정신분석학적 틀을 들이대야 한다면 스턴트맨 '마이크'의 자동차를 자궁에 비유하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100% 죽지 않은 자신의 데쓰 프루프 자동차는 쇠돌이의 마징가 제트, 신지의 에바 1호기와도 같은 의미니까. 에 관한 농담 중에서 ‘헬박사가 멍청한 이유는 쇠돌이가 따로 돌아다닐 때 공격했더라면 진작 게임이 끝났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거’ 란 이야기도 있었듯(물론 그가 멍청한 더 큰 이유는 기계수를 몇 달치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보내지 않고 매주 한두 마리씩 보냈다는 것이지만), 마징가에 올라타지 못한 상태의 쇠돌이는 그냥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스턴트맨 '마이크'도 마찬가지다. 그는 철저하게 자동차의 힘에 의존하는 악당이다. 그의 자동차가 무력화됐을 때 그가 얼마나 한심한 존재가 되고 마는지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주 잘 살펴볼 수 있다. 굳이 스턴트맨 마이크를 심리학적으로 진단내리자면 그에게는 '사이코패스(사회병질자, Sociopath라고도 한다)'라는 명칭이 어울린다. 그는 자신의 쾌감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에겐 남들처럼 생활하는 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살인을 계속한다. 그에게 살인은 범죄가 아니라 일종의 게임이고, 갈수록 세련돼지는 자신의 게임 실력에 만족하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의 행태를 보인다. 이런 상태를 종합한 진단명이 '사이코패스'다. 이는 얼마 전 개봉작 의 악당과 같은 유형이다. 왜 이런 인간이 만들어지는지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무섭다. 어릴 적에 겪은 나쁜 경험 때문도 아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도 멀쩡하게 성장한 사람들이 더 많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이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에 등장하는 수사관 '잭 크로포드'의 실제 모델이자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창시자인 '존 더글러스'에 의하면, 연쇄살인범들은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경험, 야뇨증, 심한 동물학대 경험이라는 3대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데(딴 건 모르겠고 연쇄살인마의 탄생에 폭력적인 FPS 게임이나 만화 혹은 영화를 접한 경험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만 분명히 해두자), 뭐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물어보지 않은 이상 그도 같은 경험을 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면서 자동차와 섹스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이나 연쇄살인범의 심리에 대해 고민하는 건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이 못 된다. 이 영화를 관람하는 즐거움은 복잡한 상징구조의 분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통쾌하게 해결되는 과정, 그 자체를 보고 즐기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적나라하게 통쾌한 영화’라고 하겠다. 영화는 거의 비슷한 구조로 흘러가는 두 사건을 보여준다. 첫 번째 사건이 스턴트맨 '마이크'라는 악당을 소개하는 부분이라면, 두 번째 사건은 그 악당의 처절한 몰락에 관한 것이다. 관객들은 순전히 네 여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며 당연히 그녀들을 주인공으로 간주하고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벌어지는 사건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는 보안관 부자의 대화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정리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제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관객들이 알고 난 다음, 또 다시 새로운 4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들의 에피소드 역시 앞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며 관객들은 그녀들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들이 무심하게 쏟아내는 대화 속에 이번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복선이 담겨 있다. 이들 중에는 몸놀림이 날랜데다 ‘운빨’이 끝내주는 스턴트우먼과,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또 다른 스턴트우먼이 끼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중 한 명은 엄청나게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닷지 챌린저를 타보려고 그곳까지 찾아온 모험가이니 말이다. 육체적으로도 강건하고 자동차까지 엄청난 팀이라니, 자동차의 힘에만 의존하는 악당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제대로 된 임자가 걸렸다고 할 수 있다. 때가 되자 마침내 그 복선들은 제때 제 역할을 해주고 드디어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이 복수의 통쾌함을 극대화시키는 최대 공로자는 바로 스턴트맨 '마이크' 자신이다.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악당들은 자신들이 악당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내놓음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사거나, 악당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관객을 매혹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악당들은 만약 때가 돼 죽거나 사라져야 할 때도 뻔뻔하게 폼을 잡아가며 여운을 남기곤 했다. 하지만 스턴트맨 '마이크'는 그러지 않는다. 물론 영화의 전반부에서 그는 사이코패스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만 후반부 복수 장면에서 그의 포장은 깨끗이 까발려지고 카리스마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만큼 증발해버린다. 똥 폼으로 가득 차 있던 그 포장이 벗겨지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주제에 자신이 입은 사소한 상처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징징대고, 궁지에 몰리자 어린애처럼 덜덜 떨며 ‘미안하다, 장난이었다’고 싹싹 비는 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가 이렇게 내적, 외적으로 충실하게 망가져주는 덕분에 의 마지막 액션 장면은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떤 영화보다도 유쾌하고 통쾌한 장면이 될 수 있었다. 장담컨대 앞으로 한동안은 이 영화처럼 100% 카타르시스로 가득 찬 마무리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
데쓰 프루프 (Death Proof, 2007)
미국 / 드라마 / 113분 /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
'쿠엔틴 타란티노'의 새 영화 는 딱 '타란티노 영화'다. 등장인물들은 에서처럼 걸핏하면 모여 앉아서 끝없이 수다를 떨어대고, 다른 영화에서 여러 번 본 장면들인 것 같은데 어딘가 비틀리거나 과장돼 있고, 처음에는 주인공인 줄 알았던 인물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등 그 전개나 결말이 생뚱맞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타란티노스러움’ 중에는 영화의 리듬이 길게 늘어지는 대화와 거침없는 잔혹함 사이를 오가며 경쾌하게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 느닷없이 끝나버린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유치한 척하는 세련된 연출은 기본이고 말이다.
혹자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스턴트맨 마이크(커트 러셀)’의 심리에 대해 정신분석학적 설명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심리학자’의 타이틀을 단 내가 이 자리에 끌려 들어온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에 정신분석학을 들이미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물론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자동차는 일종의 성기이고, 여성에 대한 비열하고 잔인한 태도는 어떤 이유로든 좌절당하고 억압된 성욕을 상징하며, 결과적으로 자동차로 여자를 공격하는 과정은 그에게는 성행위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이런 해석은 '타란티노'가 영화 속에서 늙수그레한 보안관의 입을 빌어 전부 까발린 뒤다. 게다가 자동차와 성욕을 연결 짓는 그런 식의 이야기라면 ‘변태 분야의 전문가’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자신의 영화 에서 충분히 써먹지 않았던가.
정신분석학의 기본 원칙에 따르면 숨은 의미를 드러낸 상징은 더 이상 그 의미를 담지 못한다. 원래 정신분석학의 상징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욕망이나 불안을 무의식 속에 숨겨 몰래 유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자 포장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가면을 쓰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벗어버린다. 이미 얼굴을 드러낸 다음, 무엇 때문에 가면에 집착하겠는가. 게다가 이런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은 실용적 가치도 별로 없다. 왜냐하면 현실세계에서 이런 사람을 찾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차를 아주 험악하게 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자동차를 자기 신체의 일부처럼 애지중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한국의 도로들을 다니다보면 괜히 여자 운전자만 만나면 괴롭히려 드는 인간들도 가끔씩 만나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여자를 멸시하거나 괴롭히는 것과, 자기 차를 상대방의 차에 충돌시켜 상대를 죽임으로써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것 사이에는 적어도 서너 단계의 비약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정상적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기 차에 흠집이 나면 피눈물을 흘릴지언정 자동차 충돌을 성행위의 일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의 뇌를 정신 분석해봐야 할 것이다. 굳이 정신분석학적 틀을 들이대야 한다면 스턴트맨 '마이크'의 자동차를 자궁에 비유하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100% 죽지 않은 자신의 데쓰 프루프 자동차는 쇠돌이의 마징가 제트, 신지의 에바 1호기와도 같은 의미니까. 에 관한 농담 중에서 ‘헬박사가 멍청한 이유는 쇠돌이가 따로 돌아다닐 때 공격했더라면 진작 게임이 끝났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거’ 란 이야기도 있었듯(물론 그가 멍청한 더 큰 이유는 기계수를 몇 달치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보내지 않고 매주 한두 마리씩 보냈다는 것이지만), 마징가에 올라타지 못한 상태의 쇠돌이는 그냥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스턴트맨 '마이크'도 마찬가지다. 그는 철저하게 자동차의 힘에 의존하는 악당이다. 그의 자동차가 무력화됐을 때 그가 얼마나 한심한 존재가 되고 마는지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주 잘 살펴볼 수 있다.
굳이 스턴트맨 마이크를 심리학적으로 진단내리자면 그에게는 '사이코패스(사회병질자, Sociopath라고도 한다)'라는 명칭이 어울린다. 그는 자신의 쾌감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에겐 남들처럼 생활하는 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살인을 계속한다. 그에게 살인은 범죄가 아니라 일종의 게임이고, 갈수록 세련돼지는 자신의 게임 실력에 만족하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의 행태를 보인다. 이런 상태를 종합한 진단명이 '사이코패스'다.
이는 얼마 전 개봉작 의 악당과 같은 유형이다. 왜 이런 인간이 만들어지는지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무섭다. 어릴 적에 겪은 나쁜 경험 때문도 아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도 멀쩡하게 성장한 사람들이 더 많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이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에 등장하는 수사관 '잭 크로포드'의 실제 모델이자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창시자인 '존 더글러스'에 의하면, 연쇄살인범들은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경험, 야뇨증, 심한 동물학대 경험이라는 3대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데(딴 건 모르겠고 연쇄살인마의 탄생에 폭력적인 FPS 게임이나 만화 혹은 영화를 접한 경험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만 분명히 해두자), 뭐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물어보지 않은 이상 그도 같은 경험을 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면서 자동차와 섹스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이나 연쇄살인범의 심리에 대해 고민하는 건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이 못 된다. 이 영화를 관람하는 즐거움은 복잡한 상징구조의 분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통쾌하게 해결되는 과정, 그 자체를 보고 즐기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적나라하게 통쾌한 영화’라고 하겠다. 영화는 거의 비슷한 구조로 흘러가는 두 사건을 보여준다. 첫 번째 사건이 스턴트맨 '마이크'라는 악당을 소개하는 부분이라면, 두 번째 사건은 그 악당의 처절한 몰락에 관한 것이다.
관객들은 순전히 네 여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며 당연히 그녀들을 주인공으로 간주하고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벌어지는 사건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는 보안관 부자의 대화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정리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제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관객들이 알고 난 다음, 또 다시 새로운 4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들의 에피소드 역시 앞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며 관객들은 그녀들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들이 무심하게 쏟아내는 대화 속에 이번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복선이 담겨 있다. 이들 중에는 몸놀림이 날랜데다 ‘운빨’이 끝내주는 스턴트우먼과,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또 다른 스턴트우먼이 끼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중 한 명은 엄청나게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닷지 챌린저를 타보려고 그곳까지 찾아온 모험가이니 말이다. 육체적으로도 강건하고 자동차까지 엄청난 팀이라니, 자동차의 힘에만 의존하는 악당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제대로 된 임자가 걸렸다고 할 수 있다. 때가 되자 마침내 그 복선들은 제때 제 역할을 해주고 드디어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이 복수의 통쾌함을 극대화시키는 최대 공로자는 바로 스턴트맨 '마이크' 자신이다.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악당들은 자신들이 악당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내놓음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사거나, 악당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관객을 매혹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악당들은 만약 때가 돼 죽거나 사라져야 할 때도 뻔뻔하게 폼을 잡아가며 여운을 남기곤 했다. 하지만 스턴트맨 '마이크'는 그러지 않는다. 물론 영화의 전반부에서 그는 사이코패스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만 후반부 복수 장면에서 그의 포장은 깨끗이 까발려지고 카리스마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만큼 증발해버린다. 똥 폼으로 가득 차 있던 그 포장이 벗겨지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주제에 자신이 입은 사소한 상처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징징대고, 궁지에 몰리자 어린애처럼 덜덜 떨며 ‘미안하다, 장난이었다’고 싹싹 비는 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가 이렇게 내적, 외적으로 충실하게 망가져주는 덕분에 의 마지막 액션 장면은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떤 영화보다도 유쾌하고 통쾌한 장면이 될 수 있었다. 장담컨대 앞으로 한동안은 이 영화처럼 100% 카타르시스로 가득 찬 마무리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