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1,2,3은 지금까지의 글들을 쓰고 남은 소재들입니다. 다른 곳에 끼워 넣기가 모호해 간단히 소개만 합니다. 4는 쓰다 보니 길어진 이야기입니다.
1. 법 vs 정치
노무현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그러면 노 대통령은 법과 정치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까요?
노 대통령은 “정치가 법위에 있지 않고, 따라서 후보도 법위에 있지 않으며, 선거도 법위에 있지 않다. 모두가 법에 따라 규제를 받아야 하며 선거전략은 정정당당해야 한다” (2007-9-12)
비교 되는 다른 전직대통령이 한 분 계십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1일 한나라당 공천 갈등과 관련 "정당에 있어서는 정치가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머니투데이 2008-1-31)
2. "역시 법률가 출신이라 다르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소송 관련해서 흔쾌히 지원을 약속하자, 현직 검사장이 한 말입니다.
“역시 법률가 대통령이라 다르더군요.” 5월26일 오후 서초동 서울검찰청사 기자실에서 가진 브리핑 도중 김준규 법무부 법무실장(검사장)이 한 말이다. 이날 브리핑의 주제는 ‘정부법무공단’의 설립이었다. 국가 상대 민사소송이 폭증하고 그 패소금 또한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만큼 향후 모든 국가소송에서 정부 측 변호만 전문적으로 맡을 특수 법무법인(로펌)을 설립, 승소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법무부가 밝힌 취지다. 이 같은 법무부 계획을 보고받은 뒤 노무현 대통령은 “아주 잘 돼있다”고 칭찬하면서 예산지원 등에 있어서 흔쾌히 후원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김 실장은 “대통령께서 ‘그간 정부가 민간 로펌에 수임료는 적게 주고 일만 많이 시켰는데 이제 소송예산도 좀 넉넉히 편성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면서 “역시 법률가 대통령이라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에 실리지 않는가 봅니다. 한 신문기자의 블로그에서 찾은 일화인데, 신문에서는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관련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3. 법제처 업무보고
내가 변호사를 했기 때문에 그런가요? 내가 평소에 하고 싶던 일, 평소 아쉽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잘 지적하고, 대안들을 마련해 주어서 참 좋은 보고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하고 있는 일과 제공하는 서비스가 합리적이면 국민들이 느끼는 만족감은 커지고 신뢰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2005. 4. 29 법제처 업무보고에서)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 무엇일까요? 궁금합니다. 업무보고의 내용은 찾지 못했습니다.
4. 고집 - 공직선거법 제9조
고집이 법률가의 덕목은 아닙니다. 오히려 훌륭한 법률가는 유연한 법률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법률가라면, 자신이 생각해서 시비가 명백한 문제에 대해서는 고집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른바 '대통령의 중립의무'라는 논리에 번번이 맞서왔는데요, 이러한 태도가 국민들이 보기에는 '오기'로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중립의무가 적용되는지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아주 중요한 문제이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통령이 중립이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는 수긍할 만한 것입니다. 어쩌면 잘못된 주장에 맞서서 올바른 법리를 관철시키는 것은, 법질서의 수호자로서 대통령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나긴 논란의 시작은 어느 기자회견이었습니다. 한 기자가 총선전망에 대해 질문했고, 노대통령은,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라는 발언은 즉각 불법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_- 당시 야당은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야당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선관위에 고발했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선관위원장을 탄핵하겠다는 협박 끝에, 노무현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제9조의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선관위 결정을 얻어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중립의무 등 )
①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②검사(군검찰관을 포함한다) 또는 국가경찰공무원(검찰수사관 및 군사법경찰관리를 포함한다)은 이 법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신속·공정하게 단속·수사를 하여야 한다.
당시에는, 선관위의 결정을 보면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참 어이없구나 하고 금새 잊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9조의 '공무원'에 대통령을 포함시켜 해석하는 것도 황당해 보였고, 대통령을 포함해 해석한다고 해도 이번 경우가 중립의무 위반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확장된 해석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헌재를 신뢰하고 있었기에, 언젠가 헌법재판소를 통해서 쉽사리 바로잡아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예의 그 조문 하나 들이대기 신공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은 마치 기정사실인양 언급되곤 했고, 저의 답답함은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소추의 주된 사유가 되기에 이릅니다.
마침내 탄핵심판이 종결된 날, 헌재는 유례없이 TV로 판결문을 낭독했고, 저는 그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숨죽이고 지켜봤습니다. 물론 결과가 제일 궁금했지만, 저는 바로 이 문제 - 공선법 제9조의 중립문제에 대해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무척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선관위의 잘못된 결정을 명쾌하게 뒤집어 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헌재판결은 저의 기대 같지는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상의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은 선거에 의해 당선되지만, 선거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는 없고, 대통령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괜찮지만, 특정 정당을 편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건 괜찮지만 음주운전을 하면 안 된다 정도로 느껴지는 판결입니다.
뿐만 아니라, 헌재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그 이후의 선거법에 대한 비판까지도 위반이라고 설시했습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제 우리도 선진민주사회에 걸맞게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중략) 과거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동원하던 시절의 선거관련법은 이제 합리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라고 말한 점을 들어, 대통령이 선거법을 폄하했다고 단정하고는, 선거법을 폄하하는 것은 법률을 준수하여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정합니다.
저는 그 부분에서 모욕감과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그 판결문은 대통령과 국민에게 '입 닥치고 잠자코 있어'라고 협박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선거법을 들먹이면서 위법이라고 하더니, 이제 그 선거법을 비판하니, 선거법 비판하는 것도 위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 많으면 빨갱이' 논리의 21세기 버전이자, 토론을 거부하는 반지성주의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선거를 왜 합니까? 결국 선거란 법을 바꾸기 위해 하는 것 아닐까요. 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을 새로 뽑아야 하고,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니깐 선거법이 생긴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선거법을 바꾸자는 말을 하면 위법, 위헌이 된다는 것은 좀 우스운 자가당착 아닐까요.
물론 헌재는 법을 개정할 수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현행 법률의 합헌성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면, 정부로 하여금 당해 법률의 위헌성여부를 검토케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합헌적인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제출하도록 하거나 또는 국회의 지지를 얻어 합헌적으로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헌법 제52조) 등을 통하여 헌법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이행해야지……(하략).
하지만 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으면 어떻게 법을 바꿀 수 있습니까? 국회의 지지를 얻어 합헌적으로 법률을 개정하라는데, 법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까? 헌법재판관들은 무언가 신묘한 방법을 알고 계시길래 저리 말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판을 한 게 아니라 폄하했기 때문에 위법,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판과 폄하는 어떻게 구별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폄하입니까?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법을 개정할 수는 있지만, 법개정에 대해 의견을 밝힐 수는 없다는 논리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닙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긴급조치 제1호 이후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논리입니다.
긴급조치 제1호
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한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③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④ 전 1,2,3호에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⑥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정말 살벌하죠? 실제로 위와 같은 긴급조치를 마주했다면 오금이 저렸겠지만, 뒤돌아보는 입장에서는 코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긴급조치의 정당성은 유신헌법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유신헌법의 정당성을 따지려면 긴급조치가 막고 있습니다. 이 짧고 소박한 순환논리가 조금은 재밌습니다.
지금 우리 법에는 긴급조치 제1호의 전통을 따르는 예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공선법 제93조이지요. 이 법에도 웃기는 점이 있지만, 이야기가 너무 샛길로 빠지는 것 같아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합니다.
하여튼 헌재의 탄핵심판을 통해 '대통령에게 중립의무가 있다'는 논리가 기정사실화 되었고, 이에 대한 다툼은 2007년 '개인 노무현'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때까지 잠잠해 집니다.
그리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소원 제기했을 때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저는 기뻤습니다. 이 문제는 임기를 마치기전 어떻게든 바로잡고 나가야 할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대통령의 헌법소원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지, 정치인인 대통령에게도 공무원의 중립의무가 적용되는지가 그 논점이었습니다.
헌재판결(2008. 1. 17, 2007헌마700)은 이번에도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선거법 제9조의 중립의무는 여전히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구절이 너무 모호하다는 청구인(노무현)의 주장또한 기각합니다. 그 구절을 '공직자가 공직상 부여되는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을 국민 모두에 대하여 봉사하고 책임을 지는 그의 과제와 부합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용하여 선거에서의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라고 해석하면, 그 '구체적 의미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판시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떤 경우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고, 어떤 경우는 아닌지 예측하실 수 있습니까? 대통령은 예측이 가능할까요? 저 문장을 보고 구체적인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9명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한 채로 채로 임기가 끝나 버렸습니다. 대통령은 전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만, 어떤 노선이 국민을 위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정당이 있고, 선거가 있다는 것. 자신의 노선을 선거에서 승인받아 당선된 대통령은 그 노선을 견지해나갈 권한과 의무가 있다는 것. 그 간단한 사실을 확인받는 일이 이렇게 힘듭니다.
대통령이 정책노선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의 의무입니다. 사실 대통령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아닌지 안 밝힌다고 해서 대통령은 별로 아쉬울 거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선 정치색, 정파성이 약할수록 인기가 높습니다. 대통령이 지지선언한 정당이 꼭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탈정치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포장되면, 당하는 것은 국민입니다. 대통령은 이미지를 관리하고 집권여당은 슬그머니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식의 국민기만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의 법적 위치를 정립하는 일은 또다시 미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고군분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에 기록을 남겨뒀다는 것, 잠시나마 미래를 보여줬다는 것이 언젠가 힘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5. 맺음말
'법률가 노무현'을 여기서 마칩니다. 지난 5년간 쌓인 갑갑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볼까 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제 능력이 부족해서 설명이 잘 안 풀리다 보니 오히려 더 답답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이 극히 일천함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범위에서 열심히 생각해 보고, 이해 안 되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면 간혹 분노하고 하였습니다.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따끔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그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률가 노무현 4(마지막)
※아래의 1,2,3은 지금까지의 글들을 쓰고 남은 소재들입니다. 다른 곳에 끼워 넣기가 모호해 간단히 소개만 합니다. 4는 쓰다 보니 길어진 이야기입니다.
1. 법 vs 정치
노무현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그러면 노 대통령은 법과 정치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까요?
노 대통령은 “정치가 법위에 있지 않고, 따라서 후보도 법위에 있지 않으며, 선거도 법위에 있지 않다. 모두가 법에 따라 규제를 받아야 하며 선거전략은 정정당당해야 한다”
(2007-9-12)
비교 되는 다른 전직대통령이 한 분 계십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1일 한나라당 공천 갈등과 관련 "정당에 있어서는 정치가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머니투데이 2008-1-31)
2. "역시 법률가 출신이라 다르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소송 관련해서 흔쾌히 지원을 약속하자, 현직 검사장이 한 말입니다.
“역시 법률가 대통령이라 다르더군요.” 5월26일 오후 서초동 서울검찰청사 기자실에서 가진 브리핑 도중 김준규 법무부 법무실장(검사장)이 한 말이다. 이날 브리핑의 주제는 ‘정부법무공단’의 설립이었다. 국가 상대 민사소송이 폭증하고 그 패소금 또한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만큼 향후 모든 국가소송에서 정부 측 변호만 전문적으로 맡을 특수 법무법인(로펌)을 설립, 승소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법무부가 밝힌 취지다. 이 같은 법무부 계획을 보고받은 뒤 노무현 대통령은 “아주 잘 돼있다”고 칭찬하면서 예산지원 등에 있어서 흔쾌히 후원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김 실장은 “대통령께서 ‘그간 정부가 민간 로펌에 수임료는 적게 주고 일만 많이 시켰는데 이제 소송예산도 좀 넉넉히 편성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면서 “역시 법률가 대통령이라 다르다”고 말했다.
(김태훈, http://blog.naver.com/af103/140013377149)
이런 이야기는 신문에 실리지 않는가 봅니다. 한 신문기자의 블로그에서 찾은 일화인데, 신문에서는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관련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3. 법제처 업무보고
내가 변호사를 했기 때문에 그런가요? 내가 평소에 하고 싶던 일, 평소 아쉽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잘 지적하고, 대안들을 마련해 주어서 참 좋은 보고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하고 있는 일과 제공하는 서비스가 합리적이면 국민들이 느끼는 만족감은 커지고 신뢰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2005. 4. 29 법제처 업무보고에서)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 무엇일까요? 궁금합니다. 업무보고의 내용은 찾지 못했습니다.
4. 고집 - 공직선거법 제9조
고집이 법률가의 덕목은 아닙니다. 오히려 훌륭한 법률가는 유연한 법률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법률가라면, 자신이 생각해서 시비가 명백한 문제에 대해서는 고집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른바 '대통령의 중립의무'라는 논리에 번번이 맞서왔는데요, 이러한 태도가 국민들이 보기에는 '오기'로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중립의무가 적용되는지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아주 중요한 문제이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통령이 중립이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는 수긍할 만한 것입니다. 어쩌면 잘못된 주장에 맞서서 올바른 법리를 관철시키는 것은, 법질서의 수호자로서 대통령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나긴 논란의 시작은 어느 기자회견이었습니다. 한 기자가 총선전망에 대해 질문했고, 노대통령은,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라는 발언은 즉각 불법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_- 당시 야당은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야당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선관위에 고발했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선관위원장을 탄핵하겠다는 협박 끝에, 노무현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제9조의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선관위 결정을 얻어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중립의무 등 )
①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②검사(군검찰관을 포함한다) 또는 국가경찰공무원(검찰수사관 및 군사법경찰관리를 포함한다)은 이 법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신속·공정하게 단속·수사를 하여야 한다.
당시에는, 선관위의 결정을 보면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참 어이없구나 하고 금새 잊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9조의 '공무원'에 대통령을 포함시켜 해석하는 것도 황당해 보였고, 대통령을 포함해 해석한다고 해도 이번 경우가 중립의무 위반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확장된 해석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헌재를 신뢰하고 있었기에, 언젠가 헌법재판소를 통해서 쉽사리 바로잡아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예의 그 조문 하나 들이대기 신공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은 마치 기정사실인양 언급되곤 했고, 저의 답답함은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소추의 주된 사유가 되기에 이릅니다.
마침내 탄핵심판이 종결된 날, 헌재는 유례없이 TV로 판결문을 낭독했고, 저는 그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숨죽이고 지켜봤습니다. 물론 결과가 제일 궁금했지만, 저는 바로 이 문제 - 공선법 제9조의 중립문제에 대해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무척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선관위의 잘못된 결정을 명쾌하게 뒤집어 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헌재판결은 저의 기대 같지는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상의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은 선거에 의해 당선되지만, 선거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는 없고, 대통령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괜찮지만, 특정 정당을 편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건 괜찮지만 음주운전을 하면 안 된다 정도로 느껴지는 판결입니다.
뿐만 아니라, 헌재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그 이후의 선거법에 대한 비판까지도 위반이라고 설시했습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제 우리도 선진민주사회에 걸맞게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중략) 과거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동원하던 시절의 선거관련법은 이제 합리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라고 말한 점을 들어, 대통령이 선거법을 폄하했다고 단정하고는, 선거법을 폄하하는 것은 법률을 준수하여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정합니다.
저는 그 부분에서 모욕감과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그 판결문은 대통령과 국민에게 '입 닥치고 잠자코 있어'라고 협박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선거법을 들먹이면서 위법이라고 하더니, 이제 그 선거법을 비판하니, 선거법 비판하는 것도 위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 많으면 빨갱이' 논리의 21세기 버전이자, 토론을 거부하는 반지성주의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선거를 왜 합니까? 결국 선거란 법을 바꾸기 위해 하는 것 아닐까요. 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을 새로 뽑아야 하고,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니깐 선거법이 생긴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선거법을 바꾸자는 말을 하면 위법, 위헌이 된다는 것은 좀 우스운 자가당착 아닐까요.
물론 헌재는 법을 개정할 수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현행 법률의 합헌성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면, 정부로 하여금 당해 법률의 위헌성여부를 검토케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합헌적인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제출하도록 하거나 또는 국회의 지지를 얻어 합헌적으로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헌법 제52조) 등을 통하여 헌법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이행해야지……(하략).
하지만 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으면 어떻게 법을 바꿀 수 있습니까? 국회의 지지를 얻어 합헌적으로 법률을 개정하라는데, 법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까? 헌법재판관들은 무언가 신묘한 방법을 알고 계시길래 저리 말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판을 한 게 아니라 폄하했기 때문에 위법,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판과 폄하는 어떻게 구별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폄하입니까?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법을 개정할 수는 있지만, 법개정에 대해 의견을 밝힐 수는 없다는 논리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닙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긴급조치 제1호 이후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논리입니다.
긴급조치 제1호
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한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③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④ 전 1,2,3호에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⑥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정말 살벌하죠? 실제로 위와 같은 긴급조치를 마주했다면 오금이 저렸겠지만, 뒤돌아보는 입장에서는 코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긴급조치의 정당성은 유신헌법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유신헌법의 정당성을 따지려면 긴급조치가 막고 있습니다. 이 짧고 소박한 순환논리가 조금은 재밌습니다.
지금 우리 법에는 긴급조치 제1호의 전통을 따르는 예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공선법 제93조이지요. 이 법에도 웃기는 점이 있지만, 이야기가 너무 샛길로 빠지는 것 같아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합니다.
하여튼 헌재의 탄핵심판을 통해 '대통령에게 중립의무가 있다'는 논리가 기정사실화 되었고, 이에 대한 다툼은 2007년 '개인 노무현'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때까지 잠잠해 집니다.
그리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소원 제기했을 때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저는 기뻤습니다. 이 문제는 임기를 마치기전 어떻게든 바로잡고 나가야 할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대통령의 헌법소원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지, 정치인인 대통령에게도 공무원의 중립의무가 적용되는지가 그 논점이었습니다.
헌재판결(2008. 1. 17, 2007헌마700)은 이번에도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선거법 제9조의 중립의무는 여전히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구절이 너무 모호하다는 청구인(노무현)의 주장또한 기각합니다. 그 구절을 '공직자가 공직상 부여되는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을 국민 모두에 대하여 봉사하고 책임을 지는 그의 과제와 부합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용하여 선거에서의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라고 해석하면, 그 '구체적 의미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판시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떤 경우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고, 어떤 경우는 아닌지 예측하실 수 있습니까? 대통령은 예측이 가능할까요? 저 문장을 보고 구체적인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9명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한 채로 채로 임기가 끝나 버렸습니다. 대통령은 전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만, 어떤 노선이 국민을 위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정당이 있고, 선거가 있다는 것. 자신의 노선을 선거에서 승인받아 당선된 대통령은 그 노선을 견지해나갈 권한과 의무가 있다는 것. 그 간단한 사실을 확인받는 일이 이렇게 힘듭니다.
대통령이 정책노선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의 의무입니다. 사실 대통령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아닌지 안 밝힌다고 해서 대통령은 별로 아쉬울 거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선 정치색, 정파성이 약할수록 인기가 높습니다. 대통령이 지지선언한 정당이 꼭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탈정치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포장되면, 당하는 것은 국민입니다. 대통령은 이미지를 관리하고 집권여당은 슬그머니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식의 국민기만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의 법적 위치를 정립하는 일은 또다시 미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고군분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에 기록을 남겨뒀다는 것, 잠시나마 미래를 보여줬다는 것이 언젠가 힘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5. 맺음말
'법률가 노무현'을 여기서 마칩니다. 지난 5년간 쌓인 갑갑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볼까 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제 능력이 부족해서 설명이 잘 안 풀리다 보니 오히려 더 답답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이 극히 일천함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범위에서 열심히 생각해 보고, 이해 안 되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면 간혹 분노하고 하였습니다.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따끔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그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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