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봉사활동 후기.

노진규200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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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의 2주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 대단원에 막을 내렸다. 한국에서 현미가 경미한 교통사고가 났지만 크지않은 상처에 안도하며 감정이 남아있을때 봉사활동에 대하여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난 봉사보단 새로운 세상을 본단 생각에 처음엔 맘이 떨렸다. 동남아시아여행은 처음이여서 더욱 그랬던것 같다. 처음 외국에 발을 디뎠을때 가졌던 그 순수한 가슴떨림이 다시 들리는듯 했다. 캄보디아는 더웠다. 생각보다 더 더웠고 더러웠다. 정말 이곳에서 적응할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첫인상은 절망적이였다.

 

캄보디아... 9살무렵인가? 아버지가 무리하시면서까지 사주신 20권짜리 올칼라과학전집. 그땐 할일이 없어서 매일 그 그림을 보던것이 하루일과였던(글자는 읽기가 왜그렇게 싫었는지..후후) 그 책에서 처음 보았던 이름.. 캄보디아.. 앙코르 왓이 있는 나라 캄보디아... 하지만 그나라의 수도조차 모르고 난 이곳에 발을 붙이고 말았다.

물론 한자의 캄보디아말조차 모른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ㅋ

 

의료봉사기간 내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무었인가 이야기 해주고 설명해주고 싶지만 말을 할수가 없다. 답답했다. 무기력했다.

태권도시범때 웃는사람들이 처음엔 야속하고 밉기도 했다, 사실 그들이 미운것이 아니라 준비가 부족했던 내가 미웠다.

 

물위에 2일째 강아지 시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누구하나 치우는 사람이 없고 10M떨어진 곳에선 아이들이 즐겁게 물장구를 치고 놀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체를 물에서 건져냈다. 이미 물고기 먹이가 되었는지 강아지의 머리는 없었다. 냄새보다 충격적인것은 손발과 머리가 떨어져 나가있던 강아지 시체의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을 방치해두는 사람들의 무관심이였다. 어쩌면 이들에게 필요한것은 "의료봉사"가 아니라 "기초청결 의식계혁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앙코르 왓~ 이곳은 옛 크메르인들의 부의 상징이며 역사의 현장이며 나의 삶의 목표중 하나였다(죽기전 세계7대 불가사이를 전부 보는것이 삶의 목표이다)이곳은 그 사원의 규모나 석판의 정교함보다 자연과 조화되어있는 건축양식에 매료되어 버렸다. 태양이 뜨고 지는 사원과 우물에 비치는 사원.. 모든 순간순간이 여성의 모습처럼 8색조 모양으로 우둑히 서 있었다. 다음엔 이곳에서 건물의 일부분으로써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에서 돌아섰다.

 

'다일공동체' 처음들어보는 단체가 하고있는 큰 사업이 나의 마음한구석에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실제 크리스천에 좋은 감정이 없던 나에게 성경말씀을 실천적으로 행하고있는 단체에서 많은 희망을 그리고 나의 오만함을 한번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한국에서 나보다 잘난 사람들만 부러워하던 나의 모숩이 너무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웠다.

 

쭙따뜨라우마을.. 산악마을에서의 1주일.. 공사... 공사... 공사...

계획차질로 화장실을 완공하진 못하였지만 마지막 마을 잔치때 열심히 해준 우리 단원들과 한국문화를 보시고 열심히 호응해주시고 춤도 춰주신 마을분들에게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물리면 피가 나는 불개미와 나의 삽질에 안타깝게 비명횡사한 개구리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바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행복에 대하여 잠깐 생각을 했다. 그들의 삶이 하루하루 생존에 대한 투쟁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욱 현재에 집중하고 사랗할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난 어떠한가? 이젠 행복과 발전은 일종의 시소놀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소에 중심을 잡을수 있을때 행복과 발전은 같이 갈것이고 행복의 시소를 높이고 낮추는것은 자신의 현실에 대한 성찰에서 부터 올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캄보디아 ... 꼭 다시 가고 싶다. 그때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