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올림픽공원에 가까이 살고 중국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그것에 관련해 물어보려 전화가 여러번 왔었던것 같다.
부재중으로 남아 있는 그 전화들은 나는 서울로 돌아온뒤, 사태의 소식을 접한후에야 확인을 했다.
아니, 자신이 사람 죽여보고 싶다고 아무 이유없는 학생을 살해하질 않나
이 놈의 정부는 문제의 요지는 회피해가면서 소고기 안전하다고만 떠들어 대질 않나
서울 한복판에서 외국인들 5천명이 넘는 수가 폭행을 해도 맞아야 하질 않나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무슨 이유를 붙여도 그날의 중국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정부의 대처도 그에 포함된다.
당연히 관련자 모두들을 강제추방조치하고 적어도 평생은 아니더라도 다년간 귀국금지를 해야하는게 마땅한 절차 아닌가?
쉽게 생각해서 중국인이 아닌 자국인인 내가 그런 시위를 벌였다고 가정하자.
내가 지금 여기서 타자 두들기고 있을까, 경찰서에 있을까?
이건 어떤 이해를 대입해보려해도 풀어지지가 않는 이야기이다.
최근에 티베트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중국을 좋아하며, 중국역사를 업으로 오랜 기간 공부했던 나였기에 더 많은 질문을 받았던것 같은데
나는 그때마다 항상 내 생각은 배제한체 그냥 드러난 정보만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현재 티베트에 관한 정보는 모두 차단되있는 상태에서 내가 습득하는 정보들이 어느곳에서, 어떤 의도로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중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던, 내 개인적인 감정이 어떠하던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강제 합병은 옳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티베트와 중국에 대해서,
여러곳에서 많은 견해와 정보를 쏟아내고 있지만
어느 정도 주관적임이 드러날수 있는 내 개인적인 지식과 배웠던 역사를 기반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 날의 사태에 대한 문제로 중국인들의 폭행을 들 수도 있고, 경찰의 무책임을 들 수도 있고, 성화 봉송에 참여한 선수나 연예인들을 들 수도 있고, 그 전과 후의 정부의 정책도 들 수 있겠으나 그 모든것의 시작은 티베트 사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측의 주장?
중국의 입장은 이러하다.
티베트는 13세기 몽골이 세력 확장을 할 당시 처음 병합을 당했다. 나라 이름을 원으로 정한 몽골은, 쿠빌라이 칸이 티베트에 그랜드 라마를 정해주어서 통치하게끔 하였다. 이후 명조때 분립과 통제 정책에 따라 티베트는 분할 통치를 시작하였으며 달라이 라마와 판첸라마등의 통치속에 항상 중국 중앙정부의 승인을 통해 라마의 환생 승계를 받아왔으니 그때부터 중국과 하나였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티베트를 해방시켜줬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티베트는 라마를 신으로 모시는 봉건제를 하고 있었는데 국민의 대다수가 농노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그 농노들은 사람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살았다. 지주 계급(고위급 승려,귀족등)의 노예신분으로 한평생을 살았으며 모든것을 착취당했고 무엇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다. 지주 계급은 여성 농노들중 관계를 맺고 싶은 농노들은 아주 자유롭게 자신들끼리 교환해가며 성폭행을 일삼았고 한명의 남성이 4,5명의 여자를 차지하였다. 그럼에도 그 여성농노들 마저 다른 남성농노들과 다른 대우는 받지 못하였다.
또 그들에게 행하는 고문들이 잔인하였는데, 눈알을 뽑고 수족을 절단하고 다리를 분쇄하는등의 방법이 있었다.
그런 티베트들의 농노들을 중국이 해방시켜주고 그들에게 토지를 주었으며 안정된 생활을 장려했다고 하는것이다. 실제로 1951년 티베트의 농노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직접 자신들의 해방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또한 소수민족우대정책으로 2명의 자녀제한정책을 쓰고 있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티베트인에게는 3명의 제한정책의 배려를 해주고 있다. 그리고 티베트어 사용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며 티베트인들에게는 주민등록증을 티베트어로 발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많은 사원과 사찰을 보수해 오히려 티베트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보존했다고 한다.
그리고 독립의 투쟁을 원하는 이들은 서민들이 아닌 예전의 귀족들과 고위 승려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전의 부귀를 다시 누리고 싶어하여 독립을 원하고 있는것이지, 일반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달라이 라마의 활동 지원을 미국에서 하고 있는점을 들어, 미국이 중국의 세력 분열을 위해 티베트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두들 사실이고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주장들은 아주 위험한 부분들이 있다.
바로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해석될수 있다는 점과, 그 사건의 원인은 뺀채 결과만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래서부터는 위의 중국측, 또는 중국을 지지하는 측에서 말하는 위의 이야기들을 티베트.. 아니 제 3자의 시각에서 이야기 해보겠다.
원나라때부터 중국의 영토?
원나라에게 병합되고 그들의 왕에 의해 달라이 라마가 정해진것은 맞다.
하지만 그 이후 명조의 분할통치때부터 그들의 입장이 갈리는데, 중국의 입장은 청나라때까지도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왔으니 자신들의 영토라 주장하는데이것은 조금 맞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강한 나라에게 외교적으로 취하는 당시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맞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왕이 되면 중국에 사신을 보내 인사를 하고 인정을 받으려는 모습이 항상 보이는데, 그럼 우리 나라도 중국과 합병상태였다는것이 된다. 어쨋던 애초에 명조의 분할통치때부터 티베트는 다시 독립나라의 틀을 갗추어서 살아왔고, 또 중국 본인들도 티베트는 원때부터 자신의 나라였다고 주장하면서 티베트를 병합시킨후에 자신들이 한 일은 전부 1950년 인민해방군의 입성 이후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티베트와 세계역사학자들은 인민해방군이 입성한 1951년을 티베트 강제 합병의 시기로 보고있는데, 중국측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티베트를 자신들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조치를 한것은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말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티베트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구제가 필요한 열등한 문화를 가진 지역이라 티베트를 묘사하면서 식민주의를 합리화 하였다.
1912년부터 1940년까지 영국은 티베트는 몇차례 침공하였는데, 당시 러시아는 내전문제로 티베트에 관심을 쏟을수 없었으며 청나라또한 아편전쟁때문에 티베트를 등한시 했다. 영국은 티베트를 점령하여 자신들의 식민지인 인도와 병합시켜 관리하려고 갖은 수를 썼는데, 2차대전 이후 인도에서 철수하면서 떠나갔다. 1949년에는 중국 공산당이 혁명에 성공하자 그들은 티베트의 평화로운 해방을 약속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독립하는듯 하였다.
하지만 51년 인민해방군이 입성하여 농노의 보호 조치를 시작하였다. 중국이 사회주의기때문에 티베트를 사회주의화할것을 두려워한 티베트의 지주계급들은 인민해방군에 가담하지 않게끔 농노들을 협박하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농노들은 중국 공산당에 농노제 폐지를 요구하였고 56년엔 지주 계급에서 봉건제 유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에 인민해방군은 지주들의 재산을 압수해 농노들에게 분배하기 시작하였다. 승려들은 59년, 티베트 독립 정부를 창설한다. 그리고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독립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자신들을 해방시켜준 중국에 대해 농노들이 호감이 있었으므로 적은 수의 지주계급만이 투쟁했던 독립시위는 실패하게 된다. 그 반란의 주동자로 지목된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을 한다.
이 때까지는 중국이 말한대로 그들이 티베트 사람들을 해방시켜준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억압은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1966년부터 76년까지는 티베트인들이 가장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시기다. 중국 자신들도 인정한 문화 혁명이라는 이 탄압의 시기에 중앙정부는 티베트인들에 대한 혹독한 종교 탄압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4천명이 넘는 티베트인들을 투옥시켰다. 또한 티베트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강제 집산화하였으며 티베트 땅의 절반만 '티베트 자치구'로 지정하고 나머지 땅은 기존 각 성에 통합시켰다. 곡물재배의 의무를 부과하였으며 사원과 사찰을 철폐하고 파괴하기까지 하였다. 나중에 보수한 사원과 사찰들은 이때에 중국 자신들이 파괴한 사찰을 도로 복원한것에 불과하다.
76년부터 80년까지는 비난여론에 의해 비로소 개혁을 하여 티베트 인들의 삶이 나아지는듯 했다.
이전까지는 티베트인들이 토지를 소유하지도 못하였고, 사육과 곡식 재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였고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을수 없었는데 이 시기에 이 부분들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90년대에 한족 이주 정책으로 다시 티베트는 억압이 시작된다.
민족주의 혐의를 씌워 티베트 공무원들을 해고시킨후 한족을 이주하여 관료를 차지하게 하기를 시작으로
중국에 대한 복종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 달라이 라마와 그들의 종교에 대한 비방 선전을 시작한다.
또 이때부터 분리주의 활동과 정치적 전복에 연결되는 활동을 했다는 죄를 씌워 억울한 티베트인들을 체포하고 수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체포된 티베트인들에게는 물과 음식, 담요도 재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티베트의 역사,문화,종교 교육을 모두 없애고 금지했다. 대신 중국 역사와 문화에 중점을 둔 교육을 티베트 어로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이유로 1989년 대규모 독립시위가 발생하였고 중국정부는 유혈 진압을 하였다. 그 이후 크고 작은 독립시위가 끊이질 않았고,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크게 일어난것이다.
안타까운것은,
근래에 티베트에 대한 글을 보고 있노라면 '티베트의 진실' '티베트 조작 신화'등등의 이름으로 티베트의 옛 역사에 중점을 두는 글들이 많아졌다는것이다.
도대체 그런 글들을 읽고 있자면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한건지
중국이 옳다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 안드는것도 아니고
도대체 의도를 모르겠는 글들이 많다.
물론 그들의 의도는 어떻게든 티베트에게 흠집을 내보려고 하는것임은 알지만,
그 역사가 어쨋던 저쨋던과 티베트의 독립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데 말이다. 참으로 애석하다.
물론 그들이 미국의 지원으로 활동을하여 조종당하고 있다는 비판을 거둘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 지원 없이 독립 운동을 펼칠 수 있을까?
미국의 의도가 어떻든 티베트는 자신들의 의지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자금이 필요한데 미국이 손을 내밀어서 잡았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현재이다.
과연 지금 티베트가 독립을 한다고 봉건제로 돌아갈수 있을까?
예전처럼 귀족들과 몇의 지주계급들만 잘먹고 잘사는 사회로 돌아갈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것을 과연 모를까?
그렇게 돌아가리라 믿고 투쟁하는것이라고 보여지는가?
1950년대에 이루어졌던 독립시위와는 지금과 다른게 있다.
바로 그 참여에 예전에 없었던 농노계급의 사람들이 있다는것이다.
지금은 특정계급이 아닌 티베트인 전체가 프리 티벳을 외치고 있다.
바로 그 티베트 자체가 독립을 바라고 있는것이다.
중국의 억압을 피해 죽기를 각오하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도주했던 그들이 자국의 독립에 힘을 보태려 다시 그 길을 넘어서 들어오고 있다.
오는 길의 중국의 무차별적인 총탄세례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는다.
그들이 외치는것은 자신들의 나라를 자신들이 결정하게 해달라는것, 그것이다
덧붙여, 많은 이들이 현재 티베트 독립투쟁의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달라이 라마를 비난하고 있는 부분도 반박을 하겠다.
물론 이전의 그들의 역사가 암울했던것처럼, 그들의 지도자들인 달라이 라마들은 굉장히 부패했었다. 서로 싸우고 죽이는 반복을 통해 170년동안 5명의 라마가 살해당했다. 그렇게 달라이 라마는 신성함과는 거리가 먼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재 달라이 라마는 그 기득권 세력을 누려본적이 없다.
그는 망명 당시 15세였으며, 항시 이전의 티베트에 대한 문제점을 많이 지적하였다. 물론 지주계급과 달라이 라마또한 그 문제점속에 항시 속해있었다.
또 평화적인 시위를 주장하고 있는데, 최소한 홍콩정도의 자치만이라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독립 또는 자치 보장후에 자신은 지도자가 아닌 종교인으로 남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오늘 티베트와 중국의 서로 입장에 대해 써내려가 보았다.
성화가 이동하는 도중 몇번 시위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조직적인 계획에 의해 행하여진 시위는 서울이 유일하다.
이 얼마나 우리 주권을 무시하는 처사인가?
일제 병합당시에 그렇게 무시당했던 우리나라 주권이 또 한번 중국인들에 의해 내팽개쳐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 스스로 내팽개쳤다.
하지만 중국의 '길게 생각해 보지 않고 뛰어들었던 시위'로 인해 그들은 세계의 비난을 면치 못할것이다.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그 나라 자국민을 저렇게 때리는 국민들인데, 자신들의 통치권 안인 티베트안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억압을 하고 있을까?
요번 사태에 합당한 처사가 이뤄지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해본다.
처음에는 중국 시위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너무 감정적인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원인인 티베트의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해서 그것이 다른 나라가 통치해도 된다는것이 되는건 아니다.
또한, 다른 나라가 점령하여 이런 저런 이점이 있었다고 그 통치가 옳은것도 절대 아니다. 그건 항상 침략하는 자들이 말해왔던 것이다.
중국의 서울 시위, 그리고 티베트 사태
사건이 다 끝난후인 일요일 밤 10시경이 되서야 소식을 접했다.
주말 내내 너무 바쁘게 돌아다녔고 일요일날은 광명시에 내려가 있었기때문이기도 했는데,
아마 내가 올림픽공원에 가까이 살고 중국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그것에 관련해 물어보려 전화가 여러번 왔었던것 같다.
부재중으로 남아 있는 그 전화들은 나는 서울로 돌아온뒤, 사태의 소식을 접한후에야 확인을 했다.
아니, 자신이 사람 죽여보고 싶다고 아무 이유없는 학생을 살해하질 않나
이 놈의 정부는 문제의 요지는 회피해가면서 소고기 안전하다고만 떠들어 대질 않나
서울 한복판에서 외국인들 5천명이 넘는 수가 폭행을 해도 맞아야 하질 않나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무슨 이유를 붙여도 그날의 중국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정부의 대처도 그에 포함된다.
당연히 관련자 모두들을 강제추방조치하고 적어도 평생은 아니더라도 다년간 귀국금지를 해야하는게 마땅한 절차 아닌가?
쉽게 생각해서 중국인이 아닌 자국인인 내가 그런 시위를 벌였다고 가정하자.
내가 지금 여기서 타자 두들기고 있을까, 경찰서에 있을까?
이건 어떤 이해를 대입해보려해도 풀어지지가 않는 이야기이다.
최근에 티베트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중국을 좋아하며, 중국역사를 업으로 오랜 기간 공부했던 나였기에 더 많은 질문을 받았던것 같은데
나는 그때마다 항상 내 생각은 배제한체 그냥 드러난 정보만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현재 티베트에 관한 정보는 모두 차단되있는 상태에서 내가 습득하는 정보들이 어느곳에서, 어떤 의도로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중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던, 내 개인적인 감정이 어떠하던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강제 합병은 옳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티베트와 중국에 대해서,
여러곳에서 많은 견해와 정보를 쏟아내고 있지만
어느 정도 주관적임이 드러날수 있는 내 개인적인 지식과 배웠던 역사를 기반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 날의 사태에 대한 문제로 중국인들의 폭행을 들 수도 있고, 경찰의 무책임을 들 수도 있고, 성화 봉송에 참여한 선수나 연예인들을 들 수도 있고, 그 전과 후의 정부의 정책도 들 수 있겠으나 그 모든것의 시작은 티베트 사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측의 주장?
중국의 입장은 이러하다.
티베트는 13세기 몽골이 세력 확장을 할 당시 처음 병합을 당했다. 나라 이름을 원으로 정한 몽골은, 쿠빌라이 칸이 티베트에 그랜드 라마를 정해주어서 통치하게끔 하였다. 이후 명조때 분립과 통제 정책에 따라 티베트는 분할 통치를 시작하였으며 달라이 라마와 판첸라마등의 통치속에 항상 중국 중앙정부의 승인을 통해 라마의 환생 승계를 받아왔으니 그때부터 중국과 하나였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티베트를 해방시켜줬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티베트는 라마를 신으로 모시는 봉건제를 하고 있었는데 국민의 대다수가 농노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그 농노들은 사람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살았다. 지주 계급(고위급 승려,귀족등)의 노예신분으로 한평생을 살았으며 모든것을 착취당했고 무엇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다. 지주 계급은 여성 농노들중 관계를 맺고 싶은 농노들은 아주 자유롭게 자신들끼리 교환해가며 성폭행을 일삼았고 한명의 남성이 4,5명의 여자를 차지하였다. 그럼에도 그 여성농노들 마저 다른 남성농노들과 다른 대우는 받지 못하였다.
또 그들에게 행하는 고문들이 잔인하였는데, 눈알을 뽑고 수족을 절단하고 다리를 분쇄하는등의 방법이 있었다.
그런 티베트들의 농노들을 중국이 해방시켜주고 그들에게 토지를 주었으며 안정된 생활을 장려했다고 하는것이다. 실제로 1951년 티베트의 농노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직접 자신들의 해방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또한 소수민족우대정책으로 2명의 자녀제한정책을 쓰고 있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티베트인에게는 3명의 제한정책의 배려를 해주고 있다. 그리고 티베트어 사용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며 티베트인들에게는 주민등록증을 티베트어로 발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많은 사원과 사찰을 보수해 오히려 티베트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보존했다고 한다.
그리고 독립의 투쟁을 원하는 이들은 서민들이 아닌 예전의 귀족들과 고위 승려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전의 부귀를 다시 누리고 싶어하여 독립을 원하고 있는것이지, 일반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달라이 라마의 활동 지원을 미국에서 하고 있는점을 들어, 미국이 중국의 세력 분열을 위해 티베트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두들 사실이고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주장들은 아주 위험한 부분들이 있다.
바로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해석될수 있다는 점과, 그 사건의 원인은 뺀채 결과만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래서부터는 위의 중국측, 또는 중국을 지지하는 측에서 말하는 위의 이야기들을 티베트.. 아니 제 3자의 시각에서 이야기 해보겠다.
원나라때부터 중국의 영토?
원나라에게 병합되고 그들의 왕에 의해 달라이 라마가 정해진것은 맞다.
하지만 그 이후 명조의 분할통치때부터 그들의 입장이 갈리는데, 중국의 입장은 청나라때까지도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왔으니 자신들의 영토라 주장하는데이것은 조금 맞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강한 나라에게 외교적으로 취하는 당시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맞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왕이 되면 중국에 사신을 보내 인사를 하고 인정을 받으려는 모습이 항상 보이는데, 그럼 우리 나라도 중국과 합병상태였다는것이 된다. 어쨋던 애초에 명조의 분할통치때부터 티베트는 다시 독립나라의 틀을 갗추어서 살아왔고, 또 중국 본인들도 티베트는 원때부터 자신의 나라였다고 주장하면서 티베트를 병합시킨후에 자신들이 한 일은 전부 1950년 인민해방군의 입성 이후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티베트와 세계역사학자들은 인민해방군이 입성한 1951년을 티베트 강제 합병의 시기로 보고있는데, 중국측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티베트를 자신들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조치를 한것은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말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티베트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구제가 필요한 열등한 문화를 가진 지역이라 티베트를 묘사하면서 식민주의를 합리화 하였다.
1912년부터 1940년까지 영국은 티베트는 몇차례 침공하였는데, 당시 러시아는 내전문제로 티베트에 관심을 쏟을수 없었으며 청나라또한 아편전쟁때문에 티베트를 등한시 했다. 영국은 티베트를 점령하여 자신들의 식민지인 인도와 병합시켜 관리하려고 갖은 수를 썼는데, 2차대전 이후 인도에서 철수하면서 떠나갔다. 1949년에는 중국 공산당이 혁명에 성공하자 그들은 티베트의 평화로운 해방을 약속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독립하는듯 하였다.
하지만 51년 인민해방군이 입성하여 농노의 보호 조치를 시작하였다. 중국이 사회주의기때문에 티베트를 사회주의화할것을 두려워한 티베트의 지주계급들은 인민해방군에 가담하지 않게끔 농노들을 협박하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농노들은 중국 공산당에 농노제 폐지를 요구하였고 56년엔 지주 계급에서 봉건제 유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에 인민해방군은 지주들의 재산을 압수해 농노들에게 분배하기 시작하였다. 승려들은 59년, 티베트 독립 정부를 창설한다. 그리고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독립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자신들을 해방시켜준 중국에 대해 농노들이 호감이 있었으므로 적은 수의 지주계급만이 투쟁했던 독립시위는 실패하게 된다. 그 반란의 주동자로 지목된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을 한다.
이 때까지는 중국이 말한대로 그들이 티베트 사람들을 해방시켜준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억압은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1966년부터 76년까지는 티베트인들이 가장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시기다. 중국 자신들도 인정한 문화 혁명이라는 이 탄압의 시기에 중앙정부는 티베트인들에 대한 혹독한 종교 탄압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4천명이 넘는 티베트인들을 투옥시켰다. 또한 티베트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강제 집산화하였으며 티베트 땅의 절반만 '티베트 자치구'로 지정하고 나머지 땅은 기존 각 성에 통합시켰다. 곡물재배의 의무를 부과하였으며 사원과 사찰을 철폐하고 파괴하기까지 하였다. 나중에 보수한 사원과 사찰들은 이때에 중국 자신들이 파괴한 사찰을 도로 복원한것에 불과하다.
76년부터 80년까지는 비난여론에 의해 비로소 개혁을 하여 티베트 인들의 삶이 나아지는듯 했다.
이전까지는 티베트인들이 토지를 소유하지도 못하였고, 사육과 곡식 재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였고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을수 없었는데 이 시기에 이 부분들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90년대에 한족 이주 정책으로 다시 티베트는 억압이 시작된다.
민족주의 혐의를 씌워 티베트 공무원들을 해고시킨후 한족을 이주하여 관료를 차지하게 하기를 시작으로
중국에 대한 복종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 달라이 라마와 그들의 종교에 대한 비방 선전을 시작한다.
또 이때부터 분리주의 활동과 정치적 전복에 연결되는 활동을 했다는 죄를 씌워 억울한 티베트인들을 체포하고 수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체포된 티베트인들에게는 물과 음식, 담요도 재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티베트의 역사,문화,종교 교육을 모두 없애고 금지했다. 대신 중국 역사와 문화에 중점을 둔 교육을 티베트 어로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이유로 1989년 대규모 독립시위가 발생하였고 중국정부는 유혈 진압을 하였다. 그 이후 크고 작은 독립시위가 끊이질 않았고,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크게 일어난것이다.
안타까운것은,
근래에 티베트에 대한 글을 보고 있노라면 '티베트의 진실' '티베트 조작 신화'등등의 이름으로 티베트의 옛 역사에 중점을 두는 글들이 많아졌다는것이다.
도대체 그런 글들을 읽고 있자면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한건지
중국이 옳다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 안드는것도 아니고
도대체 의도를 모르겠는 글들이 많다.
물론 그들의 의도는 어떻게든 티베트에게 흠집을 내보려고 하는것임은 알지만,
그 역사가 어쨋던 저쨋던과 티베트의 독립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데 말이다. 참으로 애석하다.
물론 그들이 미국의 지원으로 활동을하여 조종당하고 있다는 비판을 거둘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 지원 없이 독립 운동을 펼칠 수 있을까?
미국의 의도가 어떻든 티베트는 자신들의 의지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자금이 필요한데 미국이 손을 내밀어서 잡았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현재이다.
과연 지금 티베트가 독립을 한다고 봉건제로 돌아갈수 있을까?
예전처럼 귀족들과 몇의 지주계급들만 잘먹고 잘사는 사회로 돌아갈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것을 과연 모를까?
그렇게 돌아가리라 믿고 투쟁하는것이라고 보여지는가?
1950년대에 이루어졌던 독립시위와는 지금과 다른게 있다.
바로 그 참여에 예전에 없었던 농노계급의 사람들이 있다는것이다.
지금은 특정계급이 아닌 티베트인 전체가 프리 티벳을 외치고 있다.
바로 그 티베트 자체가 독립을 바라고 있는것이다.
중국의 억압을 피해 죽기를 각오하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도주했던 그들이 자국의 독립에 힘을 보태려 다시 그 길을 넘어서 들어오고 있다.
오는 길의 중국의 무차별적인 총탄세례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는다.
그들이 외치는것은 자신들의 나라를 자신들이 결정하게 해달라는것, 그것이다
덧붙여, 많은 이들이 현재 티베트 독립투쟁의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달라이 라마를 비난하고 있는 부분도 반박을 하겠다.
물론 이전의 그들의 역사가 암울했던것처럼, 그들의 지도자들인 달라이 라마들은 굉장히 부패했었다. 서로 싸우고 죽이는 반복을 통해 170년동안 5명의 라마가 살해당했다. 그렇게 달라이 라마는 신성함과는 거리가 먼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재 달라이 라마는 그 기득권 세력을 누려본적이 없다.
그는 망명 당시 15세였으며, 항시 이전의 티베트에 대한 문제점을 많이 지적하였다. 물론 지주계급과 달라이 라마또한 그 문제점속에 항시 속해있었다.
또 평화적인 시위를 주장하고 있는데, 최소한 홍콩정도의 자치만이라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독립 또는 자치 보장후에 자신은 지도자가 아닌 종교인으로 남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오늘 티베트와 중국의 서로 입장에 대해 써내려가 보았다.
성화가 이동하는 도중 몇번 시위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조직적인 계획에 의해 행하여진 시위는 서울이 유일하다.
이 얼마나 우리 주권을 무시하는 처사인가?
일제 병합당시에 그렇게 무시당했던 우리나라 주권이 또 한번 중국인들에 의해 내팽개쳐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 스스로 내팽개쳤다.
하지만 중국의 '길게 생각해 보지 않고 뛰어들었던 시위'로 인해 그들은 세계의 비난을 면치 못할것이다.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그 나라 자국민을 저렇게 때리는 국민들인데, 자신들의 통치권 안인 티베트안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억압을 하고 있을까?
요번 사태에 합당한 처사가 이뤄지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해본다.
처음에는 중국 시위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너무 감정적인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원인인 티베트의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해서 그것이 다른 나라가 통치해도 된다는것이 되는건 아니다.
또한, 다른 나라가 점령하여 이런 저런 이점이 있었다고 그 통치가 옳은것도 절대 아니다. 그건 항상 침략하는 자들이 말해왔던 것이다.
아주 간단한 논리로,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영국이, 러시아가, 중국이.. 우리나라가? 아니 미국도 아니다.
티베트의 종교문제, 계급문제, 사회문제는
그 티베트 인들이 해결할 몫이라는것이다.
어떠한 것도 중국의 침략과 무력을 합리화 시킬수 없음을 한번 더 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