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공기업 A사장이 2주 전 겪은 실화. 한참 업무 중이던 그에게 청와대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자신을 청와대 행정관이라고 밝힌 B씨는 수화기 너머로 대뜸 "왜 직원 인사를 맘대로 하느냐"는 질책을 쏟아냈다. 수인사도 없이 일개 행정관에게 훈계를 들은 A사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B씨가 말하는 요점은 총선이 끝날 때까지 기관별 개별 인사를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A사장이 전화를 받은 것은 총선 후 공공기관장들이 줄사표를 내기 딱 일주일 전이다. 직제로 따지면 A씨는 1급 차관보, B씨는 5급 사무관이다. 실세를 빙자해 직위와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인사지침 통보가 이뤄진 셈이다. 봉변을 당한 A사장은 "바뀐 정권이 제 사람 챙기는 건 당연하지만, 법과 원칙은 따로 두고 이렇게 음성적인 방법으로 (인사를)해야 하나"라며 탄식했다.
정부 산하 공기업에 인사태풍이 불고 있다. 임기와 무관하게 정부 산하 기관장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새 정부 신임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공공기관운영법상 총 305개에 이르는 공공기관들은 민영화라는 개혁의 본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인적인 쇄신 규모에 귀를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문제는 공기업 인사가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없이 과거 청와대가 주도했던 인사 행태를 그대로 밟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경제 취재팀이 조언을 구한 공기업 전문가들은 "국정운영세력 교체에 따른 인사는 타당성이 있는 일"이라면서도 "절차와 원칙을 세워 적합한 인재를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낙하산 인사를 한다면 제대로 해서 공기업 개혁을 이끌 '황금 낙하산'을 찾으라는 제언이다.
◆ '인사파일 골라잡기' 안 될 말
= 새 정부 공기업 인적 쇄신에 대해 일반인이 가장 의구심을 가지는 부분은 이른바 '파일 골라잡기식' 인사다. 공공기관 운영법과 개별 공공기관법에 규정된 기관장 선임 규정 자체가 무시된 상황에서 소수 인사권자 손에 들어가는 이력서가 곧 인사를 결정하는 행태를 빗댄 말이다.
이는 청와대 중심의 밀실인사 폐해와도 궤를 같이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물론 대통령이 임명할 자리도 많겠지만 청와대 영향력이 과도한 것은 문제"라며 "전문성과 공공성을 두루 갖춘 인사를 하려면 비공식적인 인사결정 범위는 제약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앞선 공기업 A사장 사례 역시 따지고 보면 공기업 인사결정 체계가 '비선'에 너무 의존해 생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원구환 한남대 교수는 "정부 부처는 물론 공공기관도 따지고 보면 국민이 주인"이라며 "소수 인사가 골라잡기식 인사를 하면 정당성을 의심받게 마련"이라고 평가했다. 원 교수는 "전문성과 공공성을 두루 갖춘 인사를 찾는다는 의미에서도 공공기관 인사가 좀 더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무ㆍ전문직 가려서 쓰자 = 일선 공공기관에선 "기관 성격상 정치권(정무직) 인사가 필요한 곳과 전문성을 인정할 곳을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무직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이념을 반영하는 문화ㆍ체육계 공기업이다.
잘못된 임기 보전 사례는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앞둔 대한체육회다. 김정길 회장 체제인 체육회는 현재도 문화체육관광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체육회 예산 중 97%는 나랏돈인데 올림픽에 대해 새 정부와 단 한 차례도 업무 협의를 안 했다"는 불만을 내비친다.
김 회장은 친노 성향인 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으로 지난 총선에선 통합민주당에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탈락해 눈총을 받은 바 있다. 김 회장은 아직도 '임기제'를 근거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개혁이 필요한 자리는 정무직이 맡고,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는 전문직이 가야 한다"며 "문화계는 이념적 성향이 강해 정무직이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 공기업 CEO 선임절차 투명하게 = 공기업 CEO 결정과 관련해 이 밖에도 △절차적인 투명성 확보 △민간기업 출신 인사에 대한 냉정한 평가 △공기업 CEO 임기 조정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90년대 말 공기업 개혁에 참여했던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퇴임한 이철 철도공사 사장 사례에서 보듯 정치인과 낙하산 인사 경영역량이 오히려 뛰어난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신 이런 인사가 이뤄질 때는 임원추천위원회와 주무장관 제청, 대통령 임명 등으로 이뤄진 현행 공공기관 대표 선임 절차가 좀 더 일반에게 공개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간기업 출신 경영자에게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밥그릇 챙기기라는 의견도 있지만 공기업 실적을 보면 민간 경영자 출신이 오히려 조직을 버린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과 경쟁하는 공기업에 민간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맞지만 공공성이 강한 조직은 교수나 기관 내부 승진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윤재오 금융부차장(팀장) / 윤경호 워싱턴특파원 / 장박원 기자 / 윤상환 기자 / 황인혁 기자 / 김태근 기자 / 강다영기자]
능력있는 `황금 낙하산`ㆍ 내부인재 발탁하라
한참 업무 중이던 그에게 청와대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자신을 청와대 행정관이라고 밝힌 B씨는 수화기 너머로 대뜸 "왜 직원 인사를 맘대로 하느냐"는 질책을 쏟아냈다. 수인사도 없이 일개 행정관에게 훈계를 들은 A사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B씨가 말하는 요점은 총선이 끝날 때까지 기관별 개별 인사를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A사장이 전화를 받은 것은 총선 후 공공기관장들이 줄사표를 내기 딱 일주일 전이다. 직제로 따지면 A씨는 1급 차관보, B씨는 5급 사무관이다. 실세를 빙자해 직위와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인사지침 통보가 이뤄진 셈이다. 봉변을 당한 A사장은 "바뀐 정권이 제 사람 챙기는 건 당연하지만, 법과 원칙은 따로 두고 이렇게 음성적인 방법으로 (인사를)해야 하나"라며 탄식했다.
정부 산하 공기업에 인사태풍이 불고 있다. 임기와 무관하게 정부 산하 기관장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새 정부 신임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공공기관운영법상 총 305개에 이르는 공공기관들은 민영화라는 개혁의 본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인적인 쇄신 규모에 귀를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문제는 공기업 인사가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없이 과거 청와대가 주도했던 인사 행태를 그대로 밟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경제 취재팀이 조언을 구한 공기업 전문가들은 "국정운영세력 교체에 따른 인사는 타당성이 있는 일"이라면서도 "절차와 원칙을 세워 적합한 인재를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낙하산 인사를 한다면 제대로 해서 공기업 개혁을 이끌 '황금 낙하산'을 찾으라는 제언이다.
◆ '인사파일 골라잡기' 안 될 말
이는 청와대 중심의 밀실인사 폐해와도 궤를 같이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물론 대통령이 임명할 자리도 많겠지만 청와대 영향력이 과도한 것은 문제"라며 "전문성과 공공성을 두루 갖춘 인사를 하려면 비공식적인 인사결정 범위는 제약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앞선 공기업 A사장 사례 역시 따지고 보면 공기업 인사결정 체계가 '비선'에 너무 의존해 생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원구환 한남대 교수는 "정부 부처는 물론 공공기관도 따지고 보면 국민이 주인"이라며 "소수 인사가 골라잡기식 인사를 하면 정당성을 의심받게 마련"이라고 평가했다. 원 교수는 "전문성과 공공성을 두루 갖춘 인사를 찾는다는 의미에서도 공공기관 인사가 좀 더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무ㆍ전문직 가려서 쓰자
= 일선 공공기관에선 "기관 성격상 정치권(정무직) 인사가 필요한 곳과 전문성을 인정할 곳을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무직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이념을 반영하는 문화ㆍ체육계 공기업이다.
잘못된 임기 보전 사례는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앞둔 대한체육회다. 김정길 회장 체제인 체육회는 현재도 문화체육관광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체육회 예산 중 97%는 나랏돈인데 올림픽에 대해 새 정부와 단 한 차례도 업무 협의를 안 했다"는 불만을 내비친다.
김 회장은 친노 성향인 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으로 지난 총선에선 통합민주당에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탈락해 눈총을 받은 바 있다. 김 회장은 아직도 '임기제'를 근거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개혁이 필요한 자리는 정무직이 맡고,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는 전문직이 가야 한다"며 "문화계는 이념적 성향이 강해 정무직이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 공기업 CEO 선임절차 투명하게
= 공기업 CEO 결정과 관련해 이 밖에도 △절차적인 투명성 확보 △민간기업 출신 인사에 대한 냉정한 평가 △공기업 CEO 임기 조정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90년대 말 공기업 개혁에 참여했던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퇴임한 이철 철도공사 사장 사례에서 보듯 정치인과 낙하산 인사 경영역량이 오히려 뛰어난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신 이런 인사가 이뤄질 때는 임원추천위원회와 주무장관 제청, 대통령 임명 등으로 이뤄진 현행 공공기관 대표 선임 절차가 좀 더 일반에게 공개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간기업 출신 경영자에게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밥그릇 챙기기라는 의견도 있지만 공기업 실적을 보면 민간 경영자 출신이 오히려 조직을 버린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과 경쟁하는 공기업에 민간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맞지만 공공성이 강한 조직은 교수나 기관 내부 승진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윤재오 금융부차장(팀장) / 윤경호 워싱턴특파원 / 장박원 기자 / 윤상환 기자 / 황인혁 기자 / 김태근 기자 / 강다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