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4월 25일, 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국 중난하이(中南海)에서 평화적인 상방(上訪)을 통해, 파룬궁 진상과 톈진 공안국에서 발생한 파룬궁 수련생 불법 체포, 구타사건을 알리고 있다. 중난하이 평화 상방은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하는 중요한 구실이 되었다. 사진은 1999년 4월 25일 당일 베이징 푸유제(北京府右街)에 상방하러 온 수련생들의 모습. 맞은편의 붉은 벽 뒤가 바로 중난하이이다. 모든 과정이 질서정연하고 매우 평화로웠다. ⓒ 명혜망
[대기원]1999년 4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진 1만인 평화 상방은 국내외를 놀라게 했다. 만 명이 넘는 중국 파룬궁 수련생들은 베이징시 푸유제의 국무원 청원사무실에서 평화로운 단체 상방을 통해 톈진 공안이 구금한 파룬궁 수련생의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 국무원 총리였던 주룽지는 친히 나와 명확한 처리를 약속해 사건은 정부와 상방인들이 모두 희망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당시 중공 총서기였던 장쩌민이 고집을 부려 1억 명이 넘는 중국 민중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고, 9년이 지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 파룬궁 수련생 3148명이 박해로 사망했다고 파룬궁 명혜망은 밝혔다.
9년 동안 중공은 모든 국가 기구와 선전수단을 동원하여 4.25와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
이 글은 4.25 사건 전후의 역사사실을 시간순으로 간략히 기술하여, ‘4.25사건’의 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4.25 중난하이 1만인 상방
▲ 1999년 4월 25일, 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국 중난하이(中南海)에서 평화적인 상방(上訪)을 통해, 파룬궁 진상과 톈진 공안국에서 발생한 파룬궁 수련생 불법 체포, 구타사건을 알리고 있다. 중난하이 평화 상방은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하는 중요한 구실이 되었다. 사진은 1999년 4월 25일 당일 베이징 푸유제(北京府右街)에 상방하러 온 수련생들의 모습. 맞은편의 붉은 벽 뒤가 바로 중난하이이다. 모든 과정이 질서정연하고 매우 평화로웠다. ⓒ 명혜망
[대기원]1999년 4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진 1만인 평화 상방은 국내외를 놀라게 했다. 만 명이 넘는 중국 파룬궁 수련생들은 베이징시 푸유제의 국무원 청원사무실에서 평화로운 단체 상방을 통해 톈진 공안이 구금한 파룬궁 수련생의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 국무원 총리였던 주룽지는 친히 나와 명확한 처리를 약속해 사건은 정부와 상방인들이 모두 희망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당시 중공 총서기였던 장쩌민이 고집을 부려 1억 명이 넘는 중국 민중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고, 9년이 지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 파룬궁 수련생 3148명이 박해로 사망했다고 파룬궁 명혜망은 밝혔다.
9년 동안 중공은 모든 국가 기구와 선전수단을 동원하여 4.25와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
이 글은 4.25 사건 전후의 역사사실을 시간순으로 간략히 기술하여, ‘4.25사건’의 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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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html?no=10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