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시내버스 여행기 (2/2)

신형식2008.04.29
조회304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400여㎞. KTX를 타면 2시간 40분이면 닿고, 비행기로는 1시간여 만에 해운대 앞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길을 김진효(21·연세대 역사문화학과 2년)씨는 최근 시내버스로 주파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버스를 갈아 탄 횟수만 26번. 버스비는 모두 합쳐 3만7300원이 들었다. 김씨의 1박2일 희한한 여행 스토리를 1인칭 시점으로 소개한다.

 

‘진짜여행’을 해 보겠다고 벼른 것은 대학입학 때부터다. 외동아들로 자란 탓에 또래들에게 자랑할 만한 훈장 같은 추억거리가 없던 데다 무작정 여행이 그립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여행이 뭐람? 막연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서울∼부산 시내버스 여행’. 즉각 “바로 이거”라고 무릎을 쳤다.

 

실행은 인터넷이 하는 게 아니다. 우선 여행 계획을 짜는 것부터 녹록지 않았다. 이동 경로는 물론 버스 27대의 배차 간격까지 사전에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버스가 하루 3∼4대만 오가는 곳에서 환승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지 않겠는가. 이런 여행에 플래너는 없었다. 급한 대로 여행 동호회 인터넷 사이트에 개략적인 일정표를 올린 뒤 도움을 청했다. 며칠이 지나자 일면식도 없는 네티즌들이 여기저기 버스 노선을 추천해 주기 시작했고, 운행 시간까지 알아봐 주었다. 대단한 계획이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도 많았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도 일정표를 짜는 데 도움이 됐다. 경비도 문제. 가장 신경 쓰이는 숙박은 친구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출발 하루 전에야 최종 일정이 확정됐다. KB국민 후불카드와 서울 버스카드, KTX 패밀리 카드 등 환승시 경비를 절약할 수 있는 카드란 카드는 모조리 챙겼다. 교통 카드가 통하지 않는 지방 시내버스도 있다고 해 1000원짜리 20장도 미리 준비했다. 환승 시간을 맞추다 보면 식사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 같아 간단한 간식까지 챙겼다. 자신감이 생겼냐고? 천만에. 출발 전날까지도 ‘제대로 될까’ 하는 걱정에 마음을 졸이고 또 졸였다.

 

내가 사는 경기 고양시 벽제에서 첫 버스를 탄 시각은 오전 4시19분. 서울 구파발역에 도착한 뒤 강남역으로 향하는 471번 버스에 올랐다. 새벽인데도 앉을 자리가 없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만원이라니….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을 하게 된 순간이다.

 

경기 안성시 죽산터미널에서 광혜원 공동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17번 버스 운전사는 승객 모두와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이 운전사는 내 일정 정보도 꼼꼼히 챙겨줬다. 충북 진천으로 향하는 버스의 여성 운전사는 “우리 아들도 대학생인데 꼭 버스 여행을 해보라고 권해야겠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다음 노선을 묻자 박정하게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운전사도 있었고, 비싼 좌석버스 표를 사라는 것인지, 일반 버스 노선이 없다고 우기는 매표소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해외 배낭여행에서 소매치기나 사기를 당한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추억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박정한 운전사는 전날 피곤했고, 매표소 직원은 신참이라 노선을 잘 몰랐던 것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푸근한 시골 인심이다. 원래 충북 영동에서 추풍령을 넘을 생각이었는데, 추풍령을 넘는 시내버스편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양산농협을 출발해 영동군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15번 버스에 탑승했을 때의 일이다. 한마디로 막막했다.

 

그러나 몇몇 승객이 나섰다. 휴대전화로 전화까지 해가며 시내버스 노선을 알아봐 주었다. 괜한 고생하지 말라며, 영동역에 전화를 해 부산행 기차 시간을 알아봐 주는 동네 아저씨 같은 분도 있었다. 세상은 어쩌면 이리도 푸근한가. 마침내 황간, 김천, 왜관을 거쳐 후배 집이 있는 대구 경산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부산에 닿았다.

 

시간을 두고 여러 곳을 둘러볼 수는 없었다. 시간을 재는 여행의 한계다. 못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골 인심과 낯선 풍경에 설레는 시내버스 여행의 기억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진짜여행이 뭔지는 사실 지금도 모르지만 인심을 만나기 위해, 풍경을 접하기 위해 언젠가 또다시 시내버스에 올라타고 긴 여행을 하게 될 것 같다.

 

# 김진효씨의 서울∼부산 시내버스 여행 일지

벽제 출발(760번)

구파발(471번)

강남역(3000번)

경기 수원 이춘택병원(10번)

안성 죽산터미널(17번)

충북 진천 광혜원 공동 버스정류장(진천터미널행)

진천터미널(711번)

청주 지하상가(405번)

대전 신탄진역(701번)

대전 신용보증기금(640번)

충북 옥천 시내버스터미널(14번)

영동군 양산면 양산농협(15번)

영동군 버스터미널(황간행)

황간터미널(김천행)

경북 김천버스터미널(55번)

구미(11번)

왜관 남부시내버스 정류장(250번)

대구 북부정류장(309번)

수성 성삼병원(609번)

경북 경산역(1박·840번)

경산시 하양읍사무소(55번)

영천 시외버스터미널(경주행)

경주시 아화 버스정류장(300번)

경주역(600번)

경주 모화2리(402번)

울산 학성공원(1127번)

부산 노포동역 도착

 

#시내버스 여행기 버스정보

http://www.segye.com/Service5/images/file/travel.x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