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교수는 1992년 문화방송 노조 파업 사건으로 구속되는 과정에서 올곧은 언론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MBC 당사에서 그를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MBC에서 눈밖에 났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신념을 지켰던 것이 오늘 그를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언론의 정론직필을 위해 노력하였던 모습과 늦깍이로서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공부하는 열정을 통해 비판적 시대정신을 봅니다*
-상준샘 소개*
손석희(孫石熙, 1956년 6월 20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아나운서이자, 현직 대학 교수이다.
목차 [숨기기]
1 생애
2 방송활동
3 약력
4 수상경력
5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
6 저서
7 바깥 고리
[편집] 생애
서울 출생으로 휘문고등학교와 국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도 갖고 있다.
고교때부터 방송반에서 활동하였으며 1984년 MBC에 데뷔했다. 이후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상태에서 1992년 문화방송 노조 파업 사건으로 구속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바른 말 잘 하는 곧은 이미지를 쌓았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많이 맡아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방송인으로 꼽히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겸임 교수를 지냈으며, 2006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촌마을(지금은 북한땅)에서 아버지가 소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서울로 와서 쌀가계에서 점원으로 일할 때, 자전거로 쌀 두가마를 옮기는 것을 밤늦게까지 연습하여 누구보다도 빨리 배달을 하여 주인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소 하나 없이 영국의 차관을 얻어, 조선소를 지으면서 배를 건조하게 되는 신화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첫 수주를 받을때 어떻게 조선소도 없이 배를 만드냐는 선주에게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이미 1592년에 이순신 장군이 철갑선을 세계최초로 만들어낸 것을 이야기하며 설득합니다.
올림픽 민간 유치위원장을 맡았을때는 선진국 IOC위원들보다는 계발도상국 위원들과 접촉하며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이 계발도상국에 희망이 됨을 이야기하고, IOC위원들 부인들에게 장미꽃을 배달하여 결국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게 됩니다.
소떼방북도 잘 알려진 이야기!, 그는 말합니다. “신념이 있는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상준샘 소개-
정주영 [鄭周永, 1915.11.25~2001.3.21]
요약
현대그룹의 창업자.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1998년 판문점을 통해 '통일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어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98년 남북 민간교류의 획기적 사건인 '금강산관광'을 성사시켰다.
본관 하동
호 아호 아산
국적 한국
활동분야 경제
출생지 강원 통천
주요수상 만해상 평화상(2001)
주요저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991)
본문
아호는 아산(峨山)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에서 아버지 정봉식(鄭捧植)과 어머니 한성실(韓成實)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0년 송전소학교를 졸업했으나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한 끝에 1937년 9월에 경일상회라는 미곡상을 시작했다.
1940년 서울에서 가장 큰 경성서비스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던 이을학(李乙學)의 소개로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하게 된다. 그 뒤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였고, 1947년 5월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 1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1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현대건설은 6·25전쟁 후 점차 늘어가는 건설수요를 감안하여 1964년 6월 시멘트공장을 준공하였고, 1970년 1월 현대시멘트주식회사로 독립하였다. 이후 해외건설시장 개척과 울산 조선소 건설, 서산 앞바다 간척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2001년 5월 사후에 만해상 평화상을 받았다.
1987년 명예회장으로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정주영은 1992년 초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여 대표최고위원이 되었으며, 제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전국구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같은해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1993년 초 통일국민당 대표최고위원직을 사임하고 1993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되었다. 2000년 5월 명예회장직을 사퇴하였으며, 2001년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사망했다.
1969∼1989년 지역사회학교후원회 회장, 1977∼19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1982∼1984년 대한체육회 회장 겸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1989∼1992년 한·소경제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82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 199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명예인문과학박사 등의 학위를 받았다.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북 '통일소'라고 불린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는 이벤트를 연출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여러 차례 더 방북하며 남북 민간교류의 획기적 사건인 '금강산관광'을 성사시켜 1998년 11월 18일 첫 출항하였다.
제1회 한국경영대상(1987), 국민훈장 무궁화장(1988), IOC훈장(1998), 노르웨이 왕실훈장(1998) 등을 수상하였고, 타임지 선정 '아시아를 빛낸 6인의 경제인'(1996) 등에 선정되었다. 주요저서에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991),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온 이야기》(1998) 등이 있다.
이사야 8: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Isaiah 8:13 The Lord Almighty is the one you are to regard as holy,
he is the one you are to fear, he is the one you are to dread.
인물소개(손석희, 정주영)
보다 겸손하고 순수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켜나가는 우리가 되어요~^^
*손석희 교수는 1992년 문화방송 노조 파업 사건으로 구속되는 과정에서 올곧은 언론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MBC 당사에서 그를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MBC에서 눈밖에 났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신념을 지켰던 것이 오늘 그를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언론의 정론직필을 위해 노력하였던 모습과 늦깍이로서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공부하는 열정을 통해 비판적 시대정신을 봅니다*
-상준샘 소개*
손석희(孫石熙, 1956년 6월 20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아나운서이자, 현직 대학 교수이다.
목차 [숨기기]
1 생애
2 방송활동
3 약력
4 수상경력
5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
6 저서
7 바깥 고리
[편집] 생애
서울 출생으로 휘문고등학교와 국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도 갖고 있다.
고교때부터 방송반에서 활동하였으며 1984년 MBC에 데뷔했다. 이후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상태에서 1992년 문화방송 노조 파업 사건으로 구속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바른 말 잘 하는 곧은 이미지를 쌓았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많이 맡아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방송인으로 꼽히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겸임 교수를 지냈으며, 2006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편집] 방송활동
1985년 MBC 1분뉴스, MBC 아침뉴스, 현장85 앵커
1986년 MBC 0시뉴스 앵커.
1986년 여기는 MBC 앵커
1987년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
1989년 MBC 뉴스센터 앵커, 장학퀴즈 MC
1990년 MBC 저녁뉴스 앵커
1994년 MBC 뉴스와이드 앵커
1995년 MBC 뉴스투데이 앵커
1997년 MBC 굿모닝 코리아 앵커
1999년 MBC 아침뉴스2000 앵커
[편집] 약력
1984년~2003년 MBC 앵커.
2004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2005년~2006년 MBC 아나운서국 국장
2006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커뮤니케이션 교수
[편집] 수상경력
1995년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편집]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
MBC 표준 FM 《손석희의 시선집중》
MBC 《MBC 100분 토론》
[편집] 저서
《풀종다리의 노래》(1993년) ISBN 8976960033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1996년) ISBN 미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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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은 한 개인의 신념의 힘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촌마을(지금은 북한땅)에서 아버지가 소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서울로 와서 쌀가계에서 점원으로 일할 때, 자전거로 쌀 두가마를 옮기는 것을 밤늦게까지 연습하여 누구보다도 빨리 배달을 하여 주인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소 하나 없이 영국의 차관을 얻어, 조선소를 지으면서 배를 건조하게 되는 신화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첫 수주를 받을때 어떻게 조선소도 없이 배를 만드냐는 선주에게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이미 1592년에 이순신 장군이 철갑선을 세계최초로 만들어낸 것을 이야기하며 설득합니다.
올림픽 민간 유치위원장을 맡았을때는 선진국 IOC위원들보다는 계발도상국 위원들과 접촉하며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이 계발도상국에 희망이 됨을 이야기하고, IOC위원들 부인들에게 장미꽃을 배달하여 결국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게 됩니다.
소떼방북도 잘 알려진 이야기!, 그는 말합니다. “신념이 있는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상준샘 소개-
정주영 [鄭周永, 1915.11.25~2001.3.21]
요약
현대그룹의 창업자.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1998년 판문점을 통해 '통일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어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98년 남북 민간교류의 획기적 사건인 '금강산관광'을 성사시켰다.
본관 하동
호 아호 아산
국적 한국
활동분야 경제
출생지 강원 통천
주요수상 만해상 평화상(2001)
주요저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991)
본문
아호는 아산(峨山)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에서 아버지 정봉식(鄭捧植)과 어머니 한성실(韓成實)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0년 송전소학교를 졸업했으나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한 끝에 1937년 9월에 경일상회라는 미곡상을 시작했다.
1940년 서울에서 가장 큰 경성서비스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던 이을학(李乙學)의 소개로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하게 된다. 그 뒤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였고, 1947년 5월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 1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1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현대건설은 6·25전쟁 후 점차 늘어가는 건설수요를 감안하여 1964년 6월 시멘트공장을 준공하였고, 1970년 1월 현대시멘트주식회사로 독립하였다. 이후 해외건설시장 개척과 울산 조선소 건설, 서산 앞바다 간척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2001년 5월 사후에 만해상 평화상을 받았다.
1987년 명예회장으로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정주영은 1992년 초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여 대표최고위원이 되었으며, 제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전국구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같은해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1993년 초 통일국민당 대표최고위원직을 사임하고 1993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되었다. 2000년 5월 명예회장직을 사퇴하였으며, 2001년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사망했다.
1969∼1989년 지역사회학교후원회 회장, 1977∼19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1982∼1984년 대한체육회 회장 겸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1989∼1992년 한·소경제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82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 199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명예인문과학박사 등의 학위를 받았다.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북 '통일소'라고 불린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는 이벤트를 연출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여러 차례 더 방북하며 남북 민간교류의 획기적 사건인 '금강산관광'을 성사시켜 1998년 11월 18일 첫 출항하였다.
제1회 한국경영대상(1987), 국민훈장 무궁화장(1988), IOC훈장(1998), 노르웨이 왕실훈장(1998) 등을 수상하였고, 타임지 선정 '아시아를 빛낸 6인의 경제인'(1996) 등에 선정되었다. 주요저서에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991),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온 이야기》(1998) 등이 있다.
이사야 8: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Isaiah 8:13 The Lord Almighty is the one you are to regard as holy,
he is the one you are to fear, he is the one you are to dread.
awesome God**(Alex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