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문주영200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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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나는 1985년 2월 5일 화요일 오전 10시 20분경

포르투갈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데이라라는 작은 섬나라에서 태어났어.

 

 

 

이모가 지어준 크리스티아노와 어머니가 지어준 호날두를

모두 사용하기로 해서 내 이름이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되었지.

 

 

 

내가 축구를 하게된 게 언제부턴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그냥 친구들과 늘 축구를 했곤 했어. 해가 지고 어두워질때까지말야.

 

 

 

정식적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된건 6살 때부터였어.

사촌의 추천으로 집 근처에 있는 안두리냐라는 축구팀에 들어가게 되었지.

 

 

 

나는 늘 열심히 했어.

특히 나는 누구보다 축구를 잘하고 싶었거든.

 

 

 

그렇게 나는 나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어렸을 때 내 이름을 마데이라 전역에 알렸지.

 

 

 

 

그덕에 나는 10살이 되던 해에 나시오날로 이적하여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잡을 수 있었어.

단지 유니폼과 축구공을 받는 조건하에 말이지. 집의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였거든.

 

 

 

나는 언제나 그라운드를 누벼다니곤 했지.

그때를 생각해보면 난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던 것같아.

팀플레이를 전혀 하지 않았고 혼자서 플레이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

 

 

 

또한 나는 언제나 나이많은 선배들 사이에서 경쟁을 해야 했어.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나는 항상 이기길 원했고 거침없이 달렸어.

 

 

 

 

지금도 그렇지만 난 항상 승부욕이 강했어.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화냈고, 절대 지는 것을 싫어했지.

철이 없긴 했지만 난 그럴수록 이기기 위해 더욱 열심히 했어.

그렇게 나는 팀의 최고가 될수 있었어.

 

 

 

어느날 나시오날 코치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어.

나의 재능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도 마데이라를 떠나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이지.

 

 

 

 

(K리그의 FC서울에서도 잠시 활약했던 프랑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시오날은 프랑코라는 선수를 영입하여

스포르팅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포르팅에 나를 보내게 되었지.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어. 내가 성장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으니까.

 

 

 

 

모두의 지원으로 나는 스포르팅의 테스트를 받게 되었고,

결국 12세에 명문팀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지.

 

 

 

그러나 나는 가족을 두고 홀로 고향 마데이라를 떠나게 되었어.

어린 나이에 혼자 새로운 세상에 직면한다는 건 힘든 일이였지.

 

 

 

또한 환경이 180도 달라지게 되었어. 처음보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고

무엇보다 그곳(리스본)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말을 쓰고 있었던 거지.

그로인해 나는 어린나이에 큰 스트레스를 받곤 했지. 그것이 나의 첫번째 시련이였어.

 

 

 

하루는 한 선생님께서 나의 마데리안 억양에 크게 비웃었고

나는 이에 화나 의자를 선생님에게 던져버리고 교실을 나갔을 때도 있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차 안정을 찾고 적응을 해나갔지.

 

 

 

 

 외로운 타지에서 내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축구였어.

나는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기회를 잡으면서 더욱 열심히 했고 실력을 쌓아갔지.

 

 

 

나는 최고의 선수가 되는 날을 생각하며 매우 노력했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남들보다 그 이상으로 몰입했던거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려갔고 빠르게 팀내에서 나의 입지를 넓혀갔지.

 

 

 

그렇게 나는 17세에 성인팀 선수가 될수 있었어. 프로가 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였어.

나는 프로가 되면서 더 큰 세계를 보았고 거대한 야망을 가지게 되었지.

 

 

 

항상 최고가 목표였던 나였기에 프로가 되었다는 것이 크게 힘들진 않았어.

나는 나의 능력을 믿었고, 프로라는 것이 실력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나는 매경기 출장 기회를 잡기 시작했고 실력을 백분 발휘하였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플레이로 단숨에 모든 이로부터 주목을 받는데 성공했어지.

어느새 명문팀의 영입명단에도 내 이름이 새겨지게 되었지.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당시 콰레스마와 함께 스포르팅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가 되었고,

한시즌 만에U-17, U-19, U-21 대표팀을 모두 경험하기도 했어.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2002년 8월 13일,

스포리팅 리스본의 홈구장인 호세 알발라데의 개장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경기를 가지게 되었어.

 

 

 

사실 경기 전날에는 맨유같은 명문팀과 경기를 한다는 실감하기 힘들었어.

긴장해있던 나를 보더니 친구인 세메두가 나에게 말하길,

 

 

 

"내일 경기에서 맨유를 완전히 녹여버려! 최선을 다해서 네 모든 것을 모여주란 말이야

어쩌면 그들이 너를 데려 갈지도 모르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친구의 말을 부정했지만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흥분하고 있었지.

 

 

 

좋아, 맨유와의 경기에서 내 모든 것을 보여주겠어!

나는 이 경기에서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활약을 보였고

3 :1 승리에 크게 기여하며 퍼거슨 감독을 놀라게 하는데 성공했지.

 

 

 

사실 난 3개월 전(5월)에 맨유와 스포르팅과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이적대상의 첫번째 선수로 뽑혀있었어.

그런데 이 경기를 보고 퍼거슨 감독이 나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영입하겠다는 것이였어!

(단지 예정일 뿐, 스포르팅은 타팀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을 수 있었다.)

 

 

 

갑작스런 일이였지만 나는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고,

더 큰 무대를 경험하기 위해 곧바로 이적을 결심하게 되었지.

 

 

{나(퍼거슨)의 새로운 벡스(베컴의 애칭)}

 

나는 1,750만 유로라는 이적료로 10대선수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유로 이적하는데 성공했지.

또한 나는 스포르팅에서 달았던 28번을 요구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나를 높이 평가해주었고

얼마전 이적한 베컴에 이어 맨유에서 최고의 선수만 달수 있다는 7번을 주었던거지.

 

 

 

맨유의 7번

조지 베스트, 브라이언 롭슨,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등

그것은 결코 아무나 달수 있는 것이 아니였어.

 

 

 

그렇기 때문에 주위의 반응은 어수선했어.

더군다나 내 나이는 18세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지.

일단은 내가 7번이 배정받은 것에 대해 나 스스로도 놀랐으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선수라는 것을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였어. 

 

 

데뷔전인 볼튼과의 개막경기에서 교체투입된 나는

페널티킥 유도와 퇴장 유도를 기록하며

팬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데 성공했어.

 

 

 

 

03/04 시즌 나는 주전자리를 잡는데 성공하였고

38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하는데 기록했지.

 

 

사실 이적 초기에만 해도 나는 인정받지 못한 선수였어.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탓에 팀플레이나 마무리에 서툴렀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는 성숙한 플레이로 점차 인정받기 시작했지.

그러나 첫시즌이였던 탓에 나는 팬들에게 나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어.

 

 

 

때마침 유로 2004가 다가웠어.

 

 

 

조국인 포르투갈에서 열렸던 탓에 소속팀에서 가졌던 두려움과 긴장 따윈 없었고

야망과 자신감으로 가득했지. 따라서 내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었어.

 

 

 

 

 

나는 2골을 성공시키며 팀이 위기의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지.

 

 

그리고 그리스와의 운명의 결승전

 

 

 

 

전 국민이 안방에서 포르투갈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어.

나는 그들을 보고 반드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었지.

 

 

 

그러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여신은 그리스의 손을 들어주었어.

 

 

 

 (감정에 북받친 호날두)

 

경기가 끝난 후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

너무나 아쉬운 결과였거든.

 

 

 

어쨌든 유로 2004에서 나는 좋은 기량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지.

 

 

 

그렇게 시작한 04/05 시즌.

그러나 시즌 초반에 나는 아버지를 잃고 말았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였어.

항상 나를 아낌없이 격려해주었고 사랑해주었던 아버지였는데...

 

 

 

그러나 죽음앞에선 아무것도 할수 없었어.

많은 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고 스스로 자책했지.

 

 

 

나는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다시 경기에 전념했어.

지금 어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늘 마음속 가까이에 계시기에...

그래서 기쁠때나 슬플때나 난 언제나 아버지를 떠올리지.

'아버지, 지금 저 보고 계시죠?' 하면서 말이야.

 

 

 

 

휴우증으로 인해 04/05 시즌

나는 리그 34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넣는데 그쳤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나는 더더욱 훈련에 열중했어.

또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선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했지.

 

 

 

 

05/06 시즌 나는 리그에서 34경기에 출전하며 9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더많은 팬들로부터 인정받는데 성공했어.

어느새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수식어를 듣기도 했지.

 

 

 

또한 지역(유럽)예선에서 7골을 성공시키며

2006 독일 월드컵 티켓을 손쉽게 거머쥐었지.

 

 

 

그리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월드컵,

나는 월드컵 첫 출전이였지만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포르투갈은 무난히 8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어.

 

 

 

2006 월드컵 8강 잉글랜드 전

그 경기 이후 내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했지.

 

 

 

상황을 설명하자면 격렬한 경기가 계속 되던 중

잉글랜드팀이자 소속팀의 절친한 친구인 웨인 루니가 팀동료인 카르발료를 밟았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심판에게 달려가 격렬하게 항의했지.

당연한거 아니겠어? 하지만 루니는 그런 내가 미웠는지 나를 밀치며 원망했어.

 

 

 

결국 루니는 퇴장을 받게 되었어.

여기까지는 큰 문제 없었지만...

 

 

 

 

루니가 퇴장을 받은 후 나는 팀벤치에 윙크를 날렸어.

사실 나는 경기 중 큰 '악의없이' 윙크를 자주 하곤 하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엄청난 오해를 받게 되었던 거지.

(다르게 해석하면 팀벤치에서 호날두에게 잘했다는 사인에 호날두의 제스쳐 정도)

 

 

 

잉글랜드는 루니가 없는 불안감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는 포르투갈이 승리하는데 어느정도 작용했어.

 

 

 

 그 이후 아무일도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잉글랜드팬들은 모두가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어.

그들이 경기에서 패한 이유를 엉뚱하게 나에게 찾았지.

 

 

 

(호날두 다트판) 

(호날두 인형 - 헐리웃 액션으로 넘어지거나 윙크하면서 빛이나는 기능 + 지단 박치기 인형)

 

잉글랜드팬들의 나에 대한 인신공격과 비난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어.

팬들과 각종 언론들은 모두 나를 잡아먹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였고,

집의 유리창까지 파손하는 바람에 나는 집을 이사하기도 했고, 심지어 살해협박을 받기도 했지.

 

 

 

 

월드컵 후에 이어진 06/07 시즌,

나는 원정경기에서 야유를 들으며 경기를 뛰어야 했는데

솔직히 그 사건에 대해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단지 그들이 나에게 하고 있는 행동이 그저 화풀이로 밖에 보이지 않아.

내 조국을 위해선 당연한 행동이였어. 축구경기에서는 더더욱 말이지.

이렇게까지 욕먹을 짓이라곤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거든.

 

 

 

나는 납득을 하지 못한채 욕을 먹었기 때문에 더욱 억울했지.

그로인해 나는 맨유 아니 프리미어리그를 떠나기로 마음먹기에 이르렀어.

 

 

 

뒤를 보지 않고 떠나려는 그때!

퍼거슨 감독이 나에게 다가왔어.

 

 

 

"호날두, 부탁한다. 맨유에 남아다오."

 

"....."

 

"비록 지금은 힘들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

네가 우리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라는 것을"

 

"하지만...."

 

"그냥 당하기만 하면 억울하지? 그렇다면 내가 조건을 제시해주지."

 

 

 

퍼거슨 감독은 나늘 이해시키려는데만 그치지 않았어.

나에게 2010년까지 계약을 연장하고 주급 3배 이상을 인상하며 사정했지.

 

 

 

나는 퍼거슨 감독에게 너무 감사했어.

그리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지.

 

 

 

'그래, 지금 사람들에 나에 대한 이 야유를 반드시 환호로 바꾸고 말겠어.'

 

 

 

또한 동시에 여유를 가지기로 했어.

나는 항상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거든.

그러다보니 너무 앞서가기도 했지.

 

 

 

그 결과, 나는 한층 달라졌어.

전보다 플레이가 부드러워졌고 동료들의 호흡도 깔끔해졌지.

 

 

 

그리고 나는 느낄 수 있었어.

내가 들어야 했던 비난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비난 대신 환호가 들려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전율을 느꼈지. 

 

 

 

 

나는 06/07 시즌 49경기에 출전하며 무려 23골과 20도움을 기록하는 등

득점왕과 EPL 올해의 선수상과 영플레이어상을 받게 되었어.

파란만장한 한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만 가득했지.

 

 

 

 

그리고 07/08 시즌, 나는 또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

나는 시즌 33골을 기록하며 맨유 윙어 한시즌 역대 최다 득점기록을 기록을 갱신했거든.

(2008년 3월 23일 오전 11시 현재)

 

 

 

불과 2~3년 전에만 해도 나는 사람들에게 미완의 대기로 통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모두가 나를 최고라고 치켜세워주고 있지.

 

 

 

 

또한 사실 난 문제를 많이 일으키곤 했어.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출전 정지를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고,

사생활, 여자 문제로 구설수에 수차례 오르기도 했지.

항상 의욕이 앞선 탓에 말보단 행동이 앞섰거든.

그러면서 나는 점차 인생을 배워나갔지.

 

 

 

그런데 실력을 인정받게 되니 더이상 나에 대한 잡음은 사라지고 있어.

사실 실력을 인정받는 것만큼 기분좋은 일도 없지. 안그래?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내 나이 이제 스물셋에 불과하지만 난 지금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최고가 되기 위해 나는 뒤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지.

 

그리고 그 눈물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해주었어.

 

그래서 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의 부끄러움은 잠깐이겠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고 인생을 배우지 못한다면 평생 부끄러운 눈물로 보내야겠지.

 

이젠 점점 눈물을 흘리는 일도 사라지고 있어. 최고에 가까워 질수록 말이지.

 

평생을 부끄러운 눈물로 보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눈물을 얼마든지 흘려도 괜찮아!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아름다운 눈물, Cristian Ronaldo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으며 내 인생 내내 배울 것이다."

-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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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날두 사진(스압 조심)

 

 

baby

 

 

스포르팅 유소년 시절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내 이름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풋풋한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