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집단 성폭행 및 성추행 사건은 대구뿐 아니라, 전국의 학부모들의 학교 안전에 대한 믿음을 무너지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혜진 · 예슬양의 일로 전국이 비통한 심정으로 물들었고, 바로 며칠 전에는 소위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여고생의 딸을 하늘로 먼저 보내야 하는 어느 부모의 마음에 함께 울어 준 슬픈 날이었지요. 그러니 이젠 우리 사회의 학부모들, 특히 딸을 둔 엄마 아빠들은 과연 자신의 자녀들을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행은, 벌건 대낮에 해당 학교 잔디밭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졸업 선배인 남자 중학생들과 고학년 초등학생들이 같은 학교 남·녀 후배들에게 저지른 파렴치한 사건이지요. 선배 상급생들은 성인 음란물에서 본대로 후배들에게 성폭행을 자행했으며, 이와같은 일은 학교 선후배들 사이에서는 마치 전통과 관습처럼 3~4년간 이어져 왔다는 기사 내용을 보곤 맥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친구에게 맞서는 용기”
이 표현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핀도르 기숙사 반이 우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네빌 롱바텀에게 교장인 덤블도어가 감동적으로 던진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친구들이 필요하며, 그러한 친구들과는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세상과 사회를 살아가는 활동들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자칫 학생의 신분에서 크던 작던 벗어나게 되는 잘못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본 기사의 내용처럼 하나님께 또는 부모와 이웃 그리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 통념을 크게 벗어나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일로 일생동안 괴로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여러가지 모임이나 대인관계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공동의 뜻을 선택하고 약속하며 행동해야 하는 준사회인입니다. 하지만 절친한 친구의 부탁이나 약속 그리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 질서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면 당당하게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두려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러한 용기있는 행동은 자신과 친구의 미래를 위한 멋진 결단인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범죄에 참여하면 당장은 그 친구에게 용기가 있다며 인정받을지는 모르지만, 그와같은 결정은 훗날 자기 인생에 대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평가만이 돌아올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그 누가 노아와 그의 방주 사업를 인정해 주었던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주를 경외하는 참된 믿음이, 노아로 하여 한 사람의 믿음만으로도 죄로 물든 이 세상 전체를 평가할 수 있다는 놀라운 선례를 보여준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었던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시대를 이끈 위대한 리더는 자신에게 닥친 손해와 피해에 대한 두려움 보다도, 정직과 의를 생명처럼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했으며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죠.
친구에게 맞서는 용기
초등생 집단 성폭행 및 성추행 사건은 대구뿐 아니라, 전국의 학부모들의 학교 안전에 대한 믿음을 무너지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혜진 · 예슬양의 일로 전국이 비통한 심정으로 물들었고, 바로 며칠 전에는 소위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여고생의 딸을 하늘로 먼저 보내야 하는 어느 부모의 마음에 함께 울어 준 슬픈 날이었지요. 그러니 이젠 우리 사회의 학부모들, 특히 딸을 둔 엄마 아빠들은 과연 자신의 자녀들을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행은, 벌건 대낮에 해당 학교 잔디밭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졸업 선배인 남자 중학생들과 고학년 초등학생들이 같은 학교 남·녀 후배들에게 저지른 파렴치한 사건이지요. 선배 상급생들은 성인 음란물에서 본대로 후배들에게 성폭행을 자행했으며, 이와같은 일은 학교 선후배들 사이에서는 마치 전통과 관습처럼 3~4년간 이어져 왔다는 기사 내용을 보곤 맥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친구에게 맞서는 용기”
이 표현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핀도르 기숙사 반이 우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네빌 롱바텀에게 교장인 덤블도어가 감동적으로 던진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친구들이 필요하며, 그러한 친구들과는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세상과 사회를 살아가는 활동들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자칫 학생의 신분에서 크던 작던 벗어나게 되는 잘못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본 기사의 내용처럼 하나님께 또는 부모와 이웃 그리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 통념을 크게 벗어나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일로 일생동안 괴로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여러가지 모임이나 대인관계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공동의 뜻을 선택하고 약속하며 행동해야 하는 준사회인입니다. 하지만 절친한 친구의 부탁이나 약속 그리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 질서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면 당당하게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두려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러한 용기있는 행동은 자신과 친구의 미래를 위한 멋진 결단인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범죄에 참여하면 당장은 그 친구에게 용기가 있다며 인정받을지는 모르지만, 그와같은 결정은 훗날 자기 인생에 대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평가만이 돌아올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그 누가 노아와 그의 방주 사업를 인정해 주었던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주를 경외하는 참된 믿음이, 노아로 하여 한 사람의 믿음만으로도 죄로 물든 이 세상 전체를 평가할 수 있다는 놀라운 선례를 보여준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었던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시대를 이끈 위대한 리더는 자신에게 닥친 손해와 피해에 대한 두려움 보다도, 정직과 의를 생명처럼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했으며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