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in Park - What I"ve Done

윤지훈2008.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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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kin Park - What I've Done

 

 

난 예전에 린킨 파크와 제이지의 "Numb / Encore"라는 하이브리드 곡에 대해 말하면서, 형체가 보이지 않는 젊음의 열기와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1) 그런데 이번에 새로이 발표된 린킨 파크의 곡을 보면서, "Reanimation"과 "Collision Course" 앨범이 내세운 그 하이브리드의 모호함에 대한 논리와는 다른 궤이지만 결국 이번에도 똑같은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추측을 하고 싶다. 밴드의 DJ 조셉 한이 감독한 뮤직비디오는 자연 윤리와 인종 차별을 넘어 역사와 세계 사회 속의 부조리들을 아우르는 일련의 몽타주를 캘리포니아 사막에서의 연주와 함께 병치하여 이미지를 만든다. 비록 철지난 유행이라도 이는 기존의 린킨 파크가 뮤직비디오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들처럼 꽤 근사한 것으로 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정성에 대한 정말로 깊이있는 담론이나 호소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어떤 공허함이 자리한다면 그것은 필시 뮤지션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자기 이해의 과잉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최상층인 미국 백인의 팝문화에서 당대 사회 타락의 운명성을 편집하고 그것을 고속으로 나열하여 자기를 용서하는 속죄의 말을 늘어놓는 것은 비록 계급 윗사람의 위선같아도 패자의 것보다 훌륭하게 최소한 이상의 윤리를 거둘 수 있다고 믿어지는 정당한 권력 행위의 최근 경향이지만, 틴에이지 세대가 가진 폭발스런 혈기에 편승하는데 주력했던 이들의 그릇의 음악적 그릇에 비해 린킨 파크의 이번 것은 좀 과한 살 입히기 정도로 보이는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당대의 음악에 대해 노래 가사가 시(詩)에 다다른다는 그런 경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어쨌든 나치즘부터 줄기 세포 문제까지 장렬한 이미지가 나열되는 와중에도 "내가 해온 것들을 용서한다"는 수식들은 여전히 찢어지는 자아의 조각들을 붙잡기 바쁜 고난이나 혹은 환경에의 증오로부터 나를 찾는다는 이기적인 성장담을 이야기했던 이전 앨범들의 그 추상적인 자기 갈등의 궤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수요층이 되는 청소년들의 사춘기 자아 찾기와 그 어린 투쟁법 만을 역설하던 자기들의 젊은 역사에선 뭔가가 아무리 괘씸해도 그것이 앞서 이미지로 선보인 인류학적 규모의 용서와 속죄까지 구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 곡을 통해 투영되는 린킨 파크의 이번 행보는 음악적 외형으로서 질풍노도의 치기어린 사춘기성을 덧입은 이야기의 연장이 아니라, 그들의 이전 음악을 듣던 청소년들이 적당히 몸과 마음이 자라 이제 20세기의 나쁜 과거들과 직면해야하는 제 1세계 시민사회의 성인으로 어설프게나마 들어선 현실에 어울리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번 5월에 발매되는 정식 3집이 린킨 파크의 앨범 최초로 "Parental Advisory" 등급을 받았다는건 그런면에서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린킨 파크가 젊은 대중의 열광으로 이룬 자신들의 위대한 신화를 적절히 이용하여 인류의 현대사에 대해 총체적인 비판의 계시록을 남기며 그 대단해보이는 일에 득의를 내세우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라도 곧 '어른'의 입장에 대해 젊은 세대의 대표자 격으로 군림하는 과도한 자의식에 도취되는 것으로 보여지는게 사실이다. 이제 나이 30의 문턱을 넘은 밴드의 멤버들은 자기들보다 딱 10살 아래의 성인식을 갓 넘긴 소년들에게, 정말 아직 과도기를 끝내지 못한걸지도 모르는 그들 앞에 여전히 매력적인 음악 스타일을 기반으로두고 거기에 새로운 어른의 삶이 가져다줄 진짜 운명보다는 사회를 책임지고 어쩌고하는 어른의 늠름한 향기를 통해 성인 세대를 향유한다는 매혹을 첨가하여 지금의 성장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과거의 린킨 파크와 결별하는 것이다. 청소년의 10살 위인 20대의 자리에서 정작 음악을 통해 린킨 파크가 그동안 진행해 온 이야기는 완전히 10대의 것이자 아니면 10대의 성질을 즐기는 일종의 취향으로서, 그것은 관찰자로서의 거시적인 반성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여전히 뜨거운 10대 육신의 체험이다. 하지만 이 어른스러운 메타포를 고수하는 "What I've Done"에서 변화한 이들의 성장 의식은, 소년성을 벗어나 새로운 삶의 문턱을 맞이하는 20대를 위해 그 진솔한 세대 반영을 이어나가는게 아니라 그저 독립된 젊은 성인에게 강요되는 사회 전체에 대한 과용된 책임정신으로 범벅이된 그러한 선전적인 야심에 편승하고있다. 그런게 정말 젊은 인생들의 절실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회에 대한 비전이 미디어의 주된 선전 무기가 된 세상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무언가가 성장하고 또 진보해야만 한다는 청년들의 충만한 강박관념은 결국 한 세대에 대한 성실한 직관은 낡고 정체된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에 사회적인 계몽만이 젊은이들의 성장 그 자체로 이해되는 현실을 잉태하는 것이다. 지금의 린킨 파크는 그런 세계의 반영이자 그들 스스로의 실천을 한다.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이미지들은 젊은 세대의 진짜 성인식을 말하는게 아니라 바로 30대가 되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린킨 파크 자신들의 성장욕이 지금 사회의 그 일방적인 성장관념에 적당히 맞춰져 체현되는 것이다. '깨어있음'에 대한 열망의 와중에도 실체를 알아볼 수 없는 혼전의 딜레마는, 곧 또다른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린킨 파크와 아직 과도기 청년들의 우상이 되고 싶은 락스타의 대중성 사이에 결여된 '순수한 20대의 성찰'의 처참한 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국의 음악평론가 배리 월터스는 롤링스톤지에서 그들의 두번째 앨범 "Meteora"에 대해 평가하면서, 린킨 파크는 예술을 향한 진행 그 자체가 그것의 시작이나 끝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었다.(2) 여기에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들이 말하는 성장의 담론은 결국 본질에 대한 이해나 스스로의 기반에 대한 마음가짐이 뜻하는 예술의 '시작'과, 퍼포먼스를 통해 보여지는 결과의 최종적인 성취가 뜻하는 예술의 '끝'에는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시도만으로도 어떻게든 존재감을 입증하고 당위성을 인정받으려는 그런 기술은 범람하는 유행 속에서 지금의 젊은 피들이 행하는 자기 합리화이며, 더불어 어떤 심도있는 이야기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도 없는 장광설에 불과하다. 아직 발매되지 않은 앨범을 두고 밴드의 랩퍼인 마이크 시노다는 죽음과 탄생의 운명을 다루는 메타포가 중심이 될 거라 말했지만, 이 곡에서 보여지는 단상은 어쨌든 린킨 파크 스스로도 결국 현실의 적당한 선에서 그럴듯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체감한 듯 보인다. 린킨 파크의 이전 노래들은 그 말미에 항상 혼란의 10대에서 벗어난 해방을 통해 성장의 미래를 암시하고 막을 내렸지만, 정작 이 변화와 성숙의 장에서 찾아온 것은 온통 '나아가야한다'는 설득과 강조만 잔뜩 들어찬 세계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찾아오는 어른의 세계가 그런 식으로 이해되는 것은 비단 린킨 파크만의 사정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내딛는 과도기의 운명은 오히려 음악이 아닌 실재하는 현실에서 더욱 이데올로기만으로 해석되는데 급급하며 그런 세계에선 여전히 어떤 '혈기'만으로도 잘 통하고 먹히는데 익숙하다. 그런 상황에서 린킨 파크는 차라리 그 자체로 시대에 대한 괜찮은 투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난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 레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