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Emma's Bliss, Emmas Gluck, 2006)
감독 : 스벤 타딕켄
그 여자가 사는 법, 참 부럽다
요즘 내 꼬라지가 말이 아니어서 글 한 줄 쓰기가 쉽지 않았다. 목 양쪽으로 임파선이 퉁퉁 붓고 치통에 생리통까지 겹쳐 오면서 몸살기마저 느껴지는 와중에 아토피 증세는 극한으로 치달아 눈을 뜨기조차 힘든 상태.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쓰면 신세 한탄 신파이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 캐발랄 가식덩어리 거짓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하여 한동안 침묵모드.
그러나 이렇게 침묵하고 있자니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다. 젠장, 눈물도 찔끔 나려고 한다.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꼬라지를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할 수는 없다. 파워 업 기분 업 시켜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더구나 오늘은 나의 생일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작년 생일에도 끙끙 앓면서 보냈는데 올해는 더 심하다. 이거, 나이들고 있다는 증거? 아, 슬프도다. ㅠㅠ) 내게 선물하는 셈치고 묵혀두었던 영화 한 편을 골랐다.
올 초 씨네큐브에 갔다가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본 영화, 그래서 영영 놓쳐버린 영화, 하지만 무진장 유쾌하고 재미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독일영화, 제목부터 심상찮은 다.
우와~ 어찌 이 재미있는 영화를 여즉까지 안 보고 버텼을고? 화면, 스토리, 연출, 배우, 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매력으로 똘똘 뭉친 영화다. 엠마가 돼지를 도살하는 다소 엽기적인 첫 장면에서 헉, 하고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피를 뽑아낸 돼지의 털을 깎고 배를 가르는 엠마의 천연덕스러운 손짓에 키득거리고 만다. 세상 시름따위는 죄다 바람에 날려버리고 평온함만을 전해줄 것 같은 푸른 풍광에 넋을 잃고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러나 인간적인 인물들의 기발한 대사에 무릎을 치며 웃는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시한부 암선고 앞에서 온갖 찌질한 표정을 다 지으며 극적인 최후를 꿈꾸던 한 남자의 뒷통수를 후려치며 정신차리라고, 삶이 여행이듯이 죽음 역시 나들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영화가 바로 다. 삶과 죽음 앞에서 행복과 고통 앞에서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갖은 제스쳐를 다 취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 감정 과잉, 표현 과잉의 시대를 비웃는 영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섹스하고 싶을 때 섹스하고(상대가 없다고 슬퍼 말지어다, 구닥다리 모터사이클이면 또 어떠리!) 그렇게 돼지처럼 살다가 죽음이 닥쳐올 때 기꺼이 죽음을 맞아들이는 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도무지 과장할 줄 모르는 인물들의 단조로울 수도 있는 대사와 행위들로 100분이 채 안 되는, 요즘 영화 치고는 짧은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의 반응은 실로 버라이어티하다. (적어도 나는 버라이어티했다) 무릎을 치고 발을 구르며 킬킬거리다가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짓다가 한동안 넋이 나가 있다가... 한마디로 미친X 널뛰듯 신나게 영화를 보았다.
이 버라이어티한 관람의 이유 중 99.9%는 주인공 엠마 때문이다. 이후 이토록 사랑스러운 여자주인공은 처음 만났다. 그리 예쁘게 생기진 않은 평범한 얼굴, 육덕진 몸매, 남자도 번쩍번쩍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근력, 침입자다 싶으면 총부터 겨누는 배포, 그리고 무엇보다 아등바등 오버액션 없이 평화롭게 죽음에 이르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지혜까지 겸비한 그녀의 매력은 지금껏 봐온 어떤 여성캐릭터보다 사랑스럽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Emma's Bliss, Emmas Gluck, 2006)
감독 : 스벤 타딕켄
그 여자가 사는 법, 참 부럽다
요즘 내 꼬라지가 말이 아니어서 글 한 줄 쓰기가 쉽지 않았다. 목 양쪽으로 임파선이 퉁퉁 붓고 치통에 생리통까지 겹쳐 오면서 몸살기마저 느껴지는 와중에 아토피 증세는 극한으로 치달아 눈을 뜨기조차 힘든 상태.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쓰면 신세 한탄 신파이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 캐발랄 가식덩어리 거짓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하여 한동안 침묵모드.
그러나 이렇게 침묵하고 있자니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다. 젠장, 눈물도 찔끔 나려고 한다.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꼬라지를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할 수는 없다. 파워 업 기분 업 시켜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더구나 오늘은 나의 생일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작년 생일에도 끙끙 앓면서 보냈는데 올해는 더 심하다. 이거, 나이들고 있다는 증거? 아, 슬프도다. ㅠㅠ) 내게 선물하는 셈치고 묵혀두었던 영화 한 편을 골랐다.
올 초 씨네큐브에 갔다가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본 영화, 그래서 영영 놓쳐버린 영화, 하지만 무진장 유쾌하고 재미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독일영화, 제목부터 심상찮은 다.
우와~ 어찌 이 재미있는 영화를 여즉까지 안 보고 버텼을고? 화면, 스토리, 연출, 배우, 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매력으로 똘똘 뭉친 영화다. 엠마가 돼지를 도살하는 다소 엽기적인 첫 장면에서 헉, 하고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피를 뽑아낸 돼지의 털을 깎고 배를 가르는 엠마의 천연덕스러운 손짓에 키득거리고 만다. 세상 시름따위는 죄다 바람에 날려버리고 평온함만을 전해줄 것 같은 푸른 풍광에 넋을 잃고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러나 인간적인 인물들의 기발한 대사에 무릎을 치며 웃는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시한부 암선고 앞에서 온갖 찌질한 표정을 다 지으며 극적인 최후를 꿈꾸던 한 남자의 뒷통수를 후려치며 정신차리라고, 삶이 여행이듯이 죽음 역시 나들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영화가 바로 다. 삶과 죽음 앞에서 행복과 고통 앞에서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갖은 제스쳐를 다 취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 감정 과잉, 표현 과잉의 시대를 비웃는 영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섹스하고 싶을 때 섹스하고(상대가 없다고 슬퍼 말지어다, 구닥다리 모터사이클이면 또 어떠리!) 그렇게 돼지처럼 살다가 죽음이 닥쳐올 때 기꺼이 죽음을 맞아들이는 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도무지 과장할 줄 모르는 인물들의 단조로울 수도 있는 대사와 행위들로 100분이 채 안 되는, 요즘 영화 치고는 짧은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의 반응은 실로 버라이어티하다. (적어도 나는 버라이어티했다) 무릎을 치고 발을 구르며 킬킬거리다가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짓다가 한동안 넋이 나가 있다가... 한마디로 미친X 널뛰듯 신나게 영화를 보았다.
이 버라이어티한 관람의 이유 중 99.9%는 주인공 엠마 때문이다. 이후 이토록 사랑스러운 여자주인공은 처음 만났다. 그리 예쁘게 생기진 않은 평범한 얼굴, 육덕진 몸매, 남자도 번쩍번쩍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근력, 침입자다 싶으면 총부터 겨누는 배포, 그리고 무엇보다 아등바등 오버액션 없이 평화롭게 죽음에 이르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지혜까지 겸비한 그녀의 매력은 지금껏 봐온 어떤 여성캐릭터보다 사랑스럽다.
엠마, 그 여자가 부럽다. 그 여자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