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김영환2008.05.05
조회28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 대한민국은 혁명 전야?

 

그것은 '운명'이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이를 굳이 길게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대단히 지루하게 긴 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두 편으로 나눠 쓴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지난 겨울. '경제 살리기'라는 실체없는 막연한 선동질과 특정 종교의 대책없는 광신 행위에 많은 사람들이 휘둘렸을 때에, 한숨은 내쉬면서도 그 누구도 이렇게까지 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당시에 별다른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현 대통령의 당선은 하나의 시대적 필연이요 '운명'이었다. 참으로 참담할 뿐이지만.

 

 

저조한 투표율의 의미는?

 

하지만 그 참담함 속에, 더욱 무시무시한 불길함이 숨어 있었음을 주목한 사람은 의외로 적었던 것 같다. 수구언론은 48%지지율을 가지고 '온 국민의 대통령'이라고 떠들었지만, 역대 최저를 기록한 저조한 투표율의 의미에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는 '보수의 외연 확장'을 말하는 수구언론의 호들갑 속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아니나다를까, 이어진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로 과반수에 미달하는 투표율이 나왔다.

물론 정치적으로 안정된 선진국의 투표율도 그리 높지는 않다. 하지만 과연 지금 한국 사회를 그것에 비교하여 낙관할 수 있을까? 역시나 연이어 터져나온 사건들은 그에 대한 부정적 해답을 내기에 충분했다.

 

 

'미친소 정국'은 폭발의 시작일 뿐이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미친소 정국'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광우병이 뭐 당장 터지는 문제도 아니고, 좀 시끌하다가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정권의 성향으로 볼 때, 앞으로 갈 길에도 지뢰는 곳곳에 깔려 있다. 지금 정권 관계자들은 '정치적 선동'이나 운운하며 진화에 나서는 모습인데,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이런 식으로라면, 앞으로도 폭발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터질 때마다 '야당의 배후선동' 심지어 '북의 조종'따위 추리소설이나 써댈 것인가? 당신들은 정치인이지 소설가가 아니다. 그리고 소설은 똑같은 레파토리를 반복하면 재미없어진다. 재미없는 소설은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독자없는 소설가, 그건 끝장난거다.

 

 

제 선동에 제가 세뇌된 삼류 선동가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이태백'의 시대에 '댓글알바'라는 새로운 업종을 개발하여 상당한 일자리를 창출(?)하며, 세계 정치사적으로 상당히 주목할 만한 대중선동기술을 선보여 노무현 정권을 레임덕에 빠트리며 10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한국의 수구세력. 확실히 그들은 자신들의 건재를 만천하에 과시했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그러나 어이없게도 사태를 지나치게 낙관하여 오판을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선동에 스스로 세뇌되어, 선동 내용과 현실을 혼동하며 감각을 잃은 것인지, 그들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적'의 존재를 망각하고 안하무인격의 세도정치를 펴려 하고 있다. 분명,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데.

그들의 오판에 대한 반응은 이미 격렬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륀쥐'의 자신감, 그 끝은 참담했다.

착각은 자유다. 하지만 그 대가는 비싸다.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나라 곳곳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멀티태스킹의 초고속 시대라 그런지, 각계 각층의 변화와 대응도 너무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대단히 혼란스럽다.

'무뇌정권 탄핵'까지 운운하며 막장 시장주의 정권의 막장스런 행태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큰 만큼, 그 반대편에서는 '좌파색출'등의 쌍팔년도 언어가 부활하는가 하면 과거에는 맞아죽을까봐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뉴라이트'적인 발언도 연일 터져나오며 모든 면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대중의 정치적 의사 표출의 반대편에서는 국민의 정치적 행동을 제한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실정법들이 버젓이 남아 있고, 현 정권은 그것들을 보다 철저히 강력하게 집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글쎄, 한국의 대중들이 힘으로 억누르면 말을 듣는 사람들이었던가?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안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지금 한국의 왼쪽과 오른쪽에서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가치를 서로 내세우고 있다.

한판 제대로 맞짱 뜰 태세다.

 

 

'타협'에서 '통합'으로. '온건 중도'의 몰락, 그 불안한 균열의 전주곡

 

5년 전 사상 처음으로 취약한 정치적 기반에도 불구 범서민층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는 '선거 혁명'을 일으켰던 노무현씨는 '대화와 타협'을 모토로 내세웠다.

돌이켜보면 이는 참으로 절묘한 수사였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함을 인지하면서 반대편의 반감을 무마하려는 수사인 동시에,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를 꺾지는 않을 것임을 표현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그가 레임덕에 빠진 시점에 이르러서 당시의 여당 내 반노무현 세력은 뜬금없이 '통합'을 들고나왔다. 지금 제1야당의 이름도 '통합민주당'이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타협'과 '통합'.

얼핏 비슷해 보이는 이 두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타협'은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여 일종의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통합'은 터져나오는 갈등을 뭉뚱그려서 일단 봉합하고 보겠다는 뜻이다.

'타협'에서 '통합'으로의 변화. 이 후퇴가 불길하게 보였던 것은 다만 한 듣보잡의 기우일 뿐일까.

'타협'에 실패했다면, 갈등의 폭발은 막을 방법은 확실히 '통합' 뿐이다. '통합'이란 그냥 서로 입 닫고 조용히 있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제1야당은 '중도 개혁'의 온건 보수정당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듯 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음은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이제 누구도 그들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사태에도 그들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몇몇 과격한 진보논객들은 이러한 통합민주당의 무기력함을 지적하며 '때가 왔음'을 확신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이미 행동을 시작하고 있다.

어쨌든, '온건 중도'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양 극단의 '강경'만 남는다. 87년의 '민주화'이후 '통합'을 견지해 왔던 '온건 중도'의 방화벽이 사라지고, 그 벽의 양쪽에서 칼 갈던 수구와 진보의 정면 충돌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은, 단지 한 듣보잡의 망상에서만 보이는 신기루에 불과한 것일까?

 

 

'목까지 차오른 물이 파도칠 때,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1

 

이번 '촛불문화제'의 참가자 대부분이 10대 학생들이라고 한다.

허허, 중고생들이 꽃다운 몸 던져 나라를 구했던 4.19 그때의 시대정신으로 회귀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지금 그들은 순수하게, 정말 아이들다운 공포 때문에 거리로 나왔다. '미친소'가 수입되면 자신들이 급식을 통해 가장 먼저 먹게 될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예측이 집단적인 공포를 불러왔고, 그것이 지옥같은 입시에 억눌려 있던 그들을 거리로 내몬 것이다. 그들은 '좌빨들에게 선동당한 날라리들'이 아니라, 착하디 착한 평범한 아이들이다.

사실 한국의 민중들은 역사적으로 멍청한 데다 신중하고 착하기까지 했다. 윗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정말 그런 줄 안다. 힘들어져도 팔자려니 하고, 정권의 무능과 부패가 백일하에 드러나도, '몇몇 탐관오리들 때문'으로 여긴다. 그랬기에 한반도에서는 한 왕조가 5백년 이상씩을 지속해갈 수 있었으며, 신라를 제외하고는 민중봉기로 무너진 왕조가 없었던 것일 게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많은 착한 백성들은 나라님의 '경제를 살린다'는 약속을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렇게 착한 백성들도 막다른 벼랑에 몰리면, 괭이를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세도가에 빌붙은 수령이 다 뜯어가서 자식을 팔아도 입에 풀칠 못 할 지경이 되면, 나라님이 못하는 일 대신하러 떼지어 관아와 서원, 반가의 저택으로 몰려가 '탐관오리를 징치'할 수밖에 없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라는 생각이 들면, 착한 백성들의 선량했던 눈빛도 살기품은 야수가 된다.

바로 그러한 때에 궁예가 나오고 신돈이 나오고 전봉준이 나온다. 그리고 그 궁예가 실각하고 신돈이 살해되고 전봉준이 분노를 선동한다면, 어쩌면 착했던 민중은 혁명의 횃불로 온 산하를 덮으며 광기어린 피의 행군을 할 것이다. 1894년 그때의 함성처럼.

어떤 역사학자의 말을 빌리면,

'혁명은 압제의 물이 대중의 목까지 차오르고, 그 상태에서 파도가 한 번 칠때 터진다'

고 한다.

지금 터진 '미친소' 지뢰. 그리고 앞으로 깔려 있는 수많은 지뢰들. 몇 번째 어느 지뢰가 물을 대중의 목까지 차오르게 할 것이며, 또 어떤 지뢰가 마지막 파도를 일으킬지. 그런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현 정권에 최소한의 지혜가 있다면, 지뢰를 적절히 피해가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사실 쉬운 일이다. 압제의 물을 허리까지만 유지해줘도 혁명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칭찬받는 정권'이라는 어느 진보논객의 날선 평론은, 역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그들이 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대단히 수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러나 만약 지금처럼, 욕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지뢰를 밟아대며 질주한다면, 끝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상상은 그냥 어느 듣보잡의 한심한 기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이런 덧없는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실존하는 현실이 진정 두렵다.

역사에 실존했던 수많은 폭력혁명들의 전율스러운 전말을 주워들은 나는, 진정으로 정의보다 평화를 더 사랑한다.

혁명이라는 괴물은, 단 한번도 눈을 뜨고 태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지금 한반도에서 혁명의 괴물이 태어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이어지는 글에서, 과거의 추억을 더듬어 이것을 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