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에서 한강에 흘러든 포르말린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괴물이 탄생한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판타지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영화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친숙'한 것들이었다.
정말로 한강에 괴상한 식인괴물이 나타났다면 서울이 온통 뒤집어졌을 것 같은데, 영화 속 사람들은 괴물의 출현에 놀라고 당황하기보다는 그 속에서도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삶을 그대로 지속할 뿐이다. 무기력하고, 냉정하고, 치사하고, 교활하며 이기적인, 자본주의사회의 인간군상은 '괴물 정국'에서도 변함없었다.
나치 시대에도 '일상'은 평범했다.
뜬금없이 영화 이야기를 한 이유는, 흔히 특별하게 여기는 역사상의 어떤 사건이나 격변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지속 속에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모든 독일인이 광기에 선동되어 '미쳐돌아가'고 있었을 것 같은 나치 시대, 하지만 최근 유럽의 포스트모던계열 사학자들 사이헤서 유행하는 '나치 시대 일상사 연구'의 결과들을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추구했던 가치나 그것을 위한 행동양상들은 오늘날의 우리들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당시 많은 독일인들은 그저 그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하였을 뿐이었다.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나치 관료도 집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선량한 가장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유럽에서 나치에 대해 말하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고 있다. 말하려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연구여야만 한다. 자유롭고 선진화된 유럽인데도 나치에 대한 태도만큼은 마치 반공주의 군사정권 시대 한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와 비슷하다. 아직도 그것은 그들에겐 그저 잊고 싶은 악몽이다.
그것은 그들 특히 나치의 주적이었던 영미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우리의 관념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감정적으로 '악'으로 규정한다. '빨갱이'와 비슷한 어감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부정한다고 해서 실존했던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1920~30년대 독일에서 나치는 결코 '악'이 아니었다.
절망적인 일상 속에서 태어난 괴물 - 나치 혁명
패전과 대공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던 1920년대 말 독일. 세계사상 전무후무한 초인플레이션. 지폐로 도배를 하는 것이 벽지를 사는 것보다 나았던 절망의 시대. 한편에서는 패전국 독일에 대한 승전국의 압력이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고, 또 한편에서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의 몰락이 눈앞에 다가온 듯 했던 혼돈의 때에, 혜성처럼 등장한 나치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분열조장적인' 맑시즘을 모두 배격하며 '민족사회주의'라는 멋드러지고 기가막힌 대안을 내놓았다. 피끓는 듯한 열정어린 히틀러의 연설에, 일상 속에서 억압받던 대중은 열광했다.
그리고 나치는 집권했다. 다름아닌,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법체제 내에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나치는 독일 제 1당이 되었다.
그리고 나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과 국위회복을 이룩했다. 대공황 당시 40%를 초과했던 절망적인 실업률.(지금 심각하다는 한국의 실업률과 비교해보라.) 그런데 나치 집권 후 불과 수년만에 실업률 0%,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완전고용이 달성되었다. 패전의 멍에에 눌려 있던 독일은 다시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그 상징이었다. 게슈타포와 SS로 상징되는 전체주의 공포정치,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슬라브족.유태인.집시에 대한 대학살은 그 이후에 이어진 이야기이다.
합법적 집권과 성공적인 통치. 나치의 집권은 다름아닌 독일 국민의 선택이었고, 다수의 독일 국민은 나치의 성공적인(적어도 외면의 수치상으로는) 통치를 지지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흔히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나치의 진실이다.
왜 독일인들은 스스로 나치를 선택했을까? 독일인들이 바보여서? 잠시 집단최면에라도 걸려서? 20세기초의 독일은 인문.자연.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수준이었던 지성의 나라였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당대의 지성들도 나치의 지지자였다.
어느 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의 독일인들이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세계의 어느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나치가 국가 운용과 통치에 활용한 방법론들이 1945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계속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라지고 금기가 된 것은 단지 '나치'라는 이름과 껍데기일 뿐, 그 알맹이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의 어느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도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자유로울까? 이쯤에서 빛바랜 추억 하나를 되짚어 봐야겠다.
못다 핀 한반도판 나치즘 - '주사파'의 추억
유럽인들이 나치에 '시끕'한다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빨갱이'에 '시끕'한다. 금기라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을 앞세워 거부하는 것. 이 점에서 양자는 같다. 다만 양자가 다른 점이 있다면, 많은 유럽인들은 나치에 대해 잘 알려고 노력하지만 한국인들은 '빨갱이'에 대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다는 것이다.
혹시 '주사파'를 아는가? '빨갱이'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면 '주체'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나마는, '주체사상'이란 사실 대단히 간단하다. 주체사상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 단순명료함에 있다.
요새도 심심챦게 들을 수 있는 구호인 '우리 민족끼리'('양키고홈'도 동의어다.)에다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식 사회주의'('사회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면 바로 다카키마사오의 그것이 된다. 놀라울 뿐이다;;) 를 더하고
거기에 다시 '위수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과 '친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만 첨가하면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많은 한국인들은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의 철권통치하에서 이른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을 꿈꿨던 사람들 즉 소위 '운동권'의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매료되었던 사상이 바로 주체사상이었다. '주사파' 즉 주체사상파란 바로 운동권 내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때의 '주사파'들을 비롯한 '운동권'들 중 상당수가 바로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주사파라고 하면, 초중등학교의 반공세뇌교육이 받은 인문교육의 거의 전부인 사람이야 그저 '수령동지'란 단어나 '김일성'의 이름에 '시끕'하며 '미쳤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맑시즘을 비롯한 근대 철학사조의 중요문건의 원문을 밤새워가며 읽었던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암울한 시대 혁명의 한 대안으로 받아들였음은, 단지 그 시대의 아이러니일 뿐이었을까.
흔히 '주사파'는 '빨갱이로' '빨갱이'는 곧 '좌익'으로 연결하는게 반공세뇌교육에 찌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구조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주체사상은 극우 민족주의에 가깝다.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나치 역시 '민족사회주의'를 내세웠음을 주지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나치를 좌파라고 하지 않는다. 세상에 '민족'을 내세우는 좌파는 없다.
(나치당의 정식 명칭은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다. 맨 앞의 '민족'만 빼면 그대로 사회주의 좌파정당의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주체사상과 나치즘은 어쩌면 그리도 닮았을까? 둘 다 '민족'을 내세운 '사회주의'다. 히틀러는 그대로 김일성에 대입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암울한 시대의 혁명적 대안'
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혼돈과 절망 속, 대중은 '강력한 혁명적 대안'을 갈구한다.
거듭 말하게 되지만 나치스는, 그리고 주사파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그들은 무슨 악마나 흉악범이 아니라, 암울한 시대의 대안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찾아나가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군사독재하에서 떠올랐던 주체사상은 한때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 빛바랜 추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조만간 대중들에게 '암울한 시대의 혁명적 대안'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다. 한 듣보잡의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오래 전에 용도폐기된 주체사상이 그대로 되살아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나치즘의 방법론들이 여전히 재활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껍데기를 바꾸어 얼마든지 재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혼돈과 절망이 이르면,
다시 말하면 '목까지 찬 물에서 파도가 치면',
대중은 '강력한 혁명적 대안'을 갈구한다.
그러한 열망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 혁명의 괴물이 태어난다.
'2,30년대 독일에서 그것은 나치였고 '7,80년대 한국에서 그것은 주체사상이었다.
21세기 한국에서, 혁명의 괴물은 다시 태어날 것인가? 만약 태어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주사파'의 추억에서, 여전히 일상속에 살아 숨쉬며 다시 깨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있는 그 실루엣을 보았다.
그렇다면 흔히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잘 하는 말대로 그 괴물을 '경계'하며 그 출현을 저지해야 할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말했듯이 나는 정의보다 평화를 더 사랑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어차피 괴물은 대안이 없는 절망 속에서 나타난다.
만약 괴물이 나타난다면, 나도 열광하는 대중 속에서 그 추종자가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혁명전야(?)에 다시 생각해보는 "주사파"의 추억 - 2
: '괴물'은 일상속에 산다
영화 속, 너무나 일상적인 '괴물 정국'
'비현실적이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영화'
내게는 괴수영화라기보다는 블랙코미디로 기억되는 한 영화에 대한 어떤 사람의 평이다.
미군기지에서 한강에 흘러든 포르말린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괴물이 탄생한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판타지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영화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친숙'한 것들이었다.
정말로 한강에 괴상한 식인괴물이 나타났다면 서울이 온통 뒤집어졌을 것 같은데, 영화 속 사람들은 괴물의 출현에 놀라고 당황하기보다는 그 속에서도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삶을 그대로 지속할 뿐이다. 무기력하고, 냉정하고, 치사하고, 교활하며 이기적인, 자본주의사회의 인간군상은 '괴물 정국'에서도 변함없었다.
나치 시대에도 '일상'은 평범했다.
뜬금없이 영화 이야기를 한 이유는, 흔히 특별하게 여기는 역사상의 어떤 사건이나 격변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지속 속에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모든 독일인이 광기에 선동되어 '미쳐돌아가'고 있었을 것 같은 나치 시대, 하지만 최근 유럽의 포스트모던계열 사학자들 사이헤서 유행하는 '나치 시대 일상사 연구'의 결과들을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추구했던 가치나 그것을 위한 행동양상들은 오늘날의 우리들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당시 많은 독일인들은 그저 그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하였을 뿐이었다.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나치 관료도 집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선량한 가장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유럽에서 나치에 대해 말하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고 있다. 말하려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연구여야만 한다. 자유롭고 선진화된 유럽인데도 나치에 대한 태도만큼은 마치 반공주의 군사정권 시대 한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와 비슷하다. 아직도 그것은 그들에겐 그저 잊고 싶은 악몽이다.
그것은 그들 특히 나치의 주적이었던 영미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우리의 관념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감정적으로 '악'으로 규정한다. '빨갱이'와 비슷한 어감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부정한다고 해서 실존했던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1920~30년대 독일에서 나치는 결코 '악'이 아니었다.
절망적인 일상 속에서 태어난 괴물 - 나치 혁명
패전과 대공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던 1920년대 말 독일. 세계사상 전무후무한 초인플레이션. 지폐로 도배를 하는 것이 벽지를 사는 것보다 나았던 절망의 시대. 한편에서는 패전국 독일에 대한 승전국의 압력이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고, 또 한편에서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의 몰락이 눈앞에 다가온 듯 했던 혼돈의 때에, 혜성처럼 등장한 나치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분열조장적인' 맑시즘을 모두 배격하며 '민족사회주의'라는 멋드러지고 기가막힌 대안을 내놓았다. 피끓는 듯한 열정어린 히틀러의 연설에, 일상 속에서 억압받던 대중은 열광했다.
그리고 나치는 집권했다. 다름아닌,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법체제 내에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나치는 독일 제 1당이 되었다.
그리고 나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과 국위회복을 이룩했다. 대공황 당시 40%를 초과했던 절망적인 실업률.(지금 심각하다는 한국의 실업률과 비교해보라.) 그런데 나치 집권 후 불과 수년만에 실업률 0%,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완전고용이 달성되었다. 패전의 멍에에 눌려 있던 독일은 다시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그 상징이었다. 게슈타포와 SS로 상징되는 전체주의 공포정치,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슬라브족.유태인.집시에 대한 대학살은 그 이후에 이어진 이야기이다.
합법적 집권과 성공적인 통치. 나치의 집권은 다름아닌 독일 국민의 선택이었고, 다수의 독일 국민은 나치의 성공적인(적어도 외면의 수치상으로는) 통치를 지지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흔히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나치의 진실이다.
왜 독일인들은 스스로 나치를 선택했을까? 독일인들이 바보여서? 잠시 집단최면에라도 걸려서? 20세기초의 독일은 인문.자연.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수준이었던 지성의 나라였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당대의 지성들도 나치의 지지자였다.
어느 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의 독일인들이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세계의 어느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나치가 국가 운용과 통치에 활용한 방법론들이 1945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계속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라지고 금기가 된 것은 단지 '나치'라는 이름과 껍데기일 뿐, 그 알맹이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의 어느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도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자유로울까? 이쯤에서 빛바랜 추억 하나를 되짚어 봐야겠다.
못다 핀 한반도판 나치즘 - '주사파'의 추억
유럽인들이 나치에 '시끕'한다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빨갱이'에 '시끕'한다. 금기라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을 앞세워 거부하는 것. 이 점에서 양자는 같다. 다만 양자가 다른 점이 있다면, 많은 유럽인들은 나치에 대해 잘 알려고 노력하지만 한국인들은 '빨갱이'에 대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다는 것이다.
혹시 '주사파'를 아는가? '빨갱이'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면 '주체'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나마는, '주체사상'이란 사실 대단히 간단하다. 주체사상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 단순명료함에 있다.
요새도 심심챦게 들을 수 있는 구호인 '우리 민족끼리'('양키고홈'도 동의어다.)에다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식 사회주의'('사회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면 바로 다카키마사오의 그것이 된다. 놀라울 뿐이다;;) 를 더하고
거기에 다시 '위수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과 '친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만 첨가하면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많은 한국인들은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의 철권통치하에서 이른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을 꿈꿨던 사람들 즉 소위 '운동권'의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매료되었던 사상이 바로 주체사상이었다. '주사파' 즉 주체사상파란 바로 운동권 내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때의 '주사파'들을 비롯한 '운동권'들 중 상당수가 바로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주사파라고 하면, 초중등학교의 반공세뇌교육이 받은 인문교육의 거의 전부인 사람이야 그저 '수령동지'란 단어나 '김일성'의 이름에 '시끕'하며 '미쳤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맑시즘을 비롯한 근대 철학사조의 중요문건의 원문을 밤새워가며 읽었던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암울한 시대 혁명의 한 대안으로 받아들였음은, 단지 그 시대의 아이러니일 뿐이었을까.
흔히 '주사파'는 '빨갱이로' '빨갱이'는 곧 '좌익'으로 연결하는게 반공세뇌교육에 찌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구조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주체사상은 극우 민족주의에 가깝다.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나치 역시 '민족사회주의'를 내세웠음을 주지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나치를 좌파라고 하지 않는다. 세상에 '민족'을 내세우는 좌파는 없다.
(나치당의 정식 명칭은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다. 맨 앞의 '민족'만 빼면 그대로 사회주의 좌파정당의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주체사상과 나치즘은 어쩌면 그리도 닮았을까? 둘 다 '민족'을 내세운 '사회주의'다. 히틀러는 그대로 김일성에 대입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암울한 시대의 혁명적 대안'
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혼돈과 절망 속, 대중은 '강력한 혁명적 대안'을 갈구한다.
거듭 말하게 되지만 나치스는, 그리고 주사파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그들은 무슨 악마나 흉악범이 아니라, 암울한 시대의 대안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찾아나가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군사독재하에서 떠올랐던 주체사상은 한때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 빛바랜 추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조만간 대중들에게 '암울한 시대의 혁명적 대안'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다. 한 듣보잡의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오래 전에 용도폐기된 주체사상이 그대로 되살아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나치즘의 방법론들이 여전히 재활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껍데기를 바꾸어 얼마든지 재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혼돈과 절망이 이르면,
다시 말하면 '목까지 찬 물에서 파도가 치면',
대중은 '강력한 혁명적 대안'을 갈구한다.
그러한 열망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 혁명의 괴물이 태어난다.
'2,30년대 독일에서 그것은 나치였고 '7,80년대 한국에서 그것은 주체사상이었다.
21세기 한국에서, 혁명의 괴물은 다시 태어날 것인가? 만약 태어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주사파'의 추억에서, 여전히 일상속에 살아 숨쉬며 다시 깨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있는 그 실루엣을 보았다.
그렇다면 흔히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잘 하는 말대로 그 괴물을 '경계'하며 그 출현을 저지해야 할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말했듯이 나는 정의보다 평화를 더 사랑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어차피 괴물은 대안이 없는 절망 속에서 나타난다.
만약 괴물이 나타난다면, 나도 열광하는 대중 속에서 그 추종자가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