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이 있다느니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발견하였다느니 하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러한 거짓말에 침묵할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대한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글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길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그리스도교의 시작이며 기초이며 근거입니다. 만일 어떤 분들이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않는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며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거부할 사람은 아마 없을거라고 봅니다. 이에 저는 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신앙적 진실 더 나아가 역사적 진실로 믿고 있는지 제가 읽은 책의 내용을 옮겨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본문
시간이 시작된 이후, 남자들과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욥의 울부짖음과 같은 외침 - "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욥기 14장 14절)- 으로 대응해 왔다. 인간적인 철학과 이방종교들은 단지 물음표. 기원 또는 모호한 소망으로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헬라철학의 위대한 천재인 플라톤이 " 우리가 다시 살 수 있을까요? " 란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나는 그렇게 소망하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할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마호메트 또는 석가모니 또는 공자의 무덤은 이날까지 비어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그것에 비하면 다른 모든 교리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며, 모든 기독교 교리들 중 가장 중요한 이 교리를 - 을 믿는가? 심지어 부활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순히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었으며 하나님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지고 고소당한 한 사람임을 상징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언된 것은 바로 부활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그의 속죄 제사가 하나님께 수납되었다고 선언된 것도 바로 부활에 의해서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 그것에 따라 모든 것들이 서거나 넘어진다. 그러므로 19세기를 통틀어 모든 종교적인 회의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자기들의 가장 긴 총부리를 겨누어 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는 다른 어떤 역사적인 사실 보다 더욱 주의 깊게 검토되어 왔다 ! 그것은 가장 위대한 학자들에 의해 비교 검토되었고 고찰되었다. 그들 중에는 하버드 법학부를 걸출하게 만드는데 일조하였고, 세계 역사상 법정 증거에 대해 가장 뛰어난 권위자로 불리었으며, 1833-48년에 하버드대학교 법학교수였던 그린리프가 있다. 그린리프가 그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부활로 바꿔 모든 증거 법률의 빛에서 그것에 초점을 맞추었을때,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실재이며,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며, 그것에 대한 증거를 정직하게 검토한 사람은 이것이 그 진상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 책을 쓰기 시작한 영국인 변호사 모리슨에게도 그러했다. 그는 그의 책을 썼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가 쓰기 시작했던 그 책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검토하면서, 이 회의론자 법률가는 그것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가 그것을 받아들여 신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쓴 [누가 그 돌을 옮겼는가? ] 란 제하의 그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첫 장은 " 쓰여지길 거절한 책" 이라 불리운다! 왈러스( Lew Wallace)도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의 부활을 반박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으나,그것들을 변호하는 유명한 책을 쓰는 것으로 끝맺었다. 그 책은 [벤허] 라 이름 붙여졌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그것을 검토할 시간을 가졌던 자들의 견해들에 따르면 매우,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않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부활에 대한 증거들에 관해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어본 사람치고 그것을 믿지 않았던 사람은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
이 증거들 중 몇몇의 실제 내용을 살펴보자. 주의 날과 관련된 사실이 있다. 수천년 동안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안식일 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의 날을 제 7일에서 제 1일로 바꾼 유대인들이었던 초대 기독교인들의 한 무리를 알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지켜왔던 것을 포기한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주의 그 첫 날에 발생했던 그리스도의 죽은자들로부터의 부활, 그 주의 그 첫 날에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그 주의 그 첫 날에 오순절의 그 교회에 그의 영을 부어주심과 같은 그런 기념비적인 사건들로만 오로지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를 예배하기 위해 만났던 날이 그 주의 그 첫날이었음을 안다.
다음으로 부활절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 이 날은 유대의 절기인 유월절을 대치한 것이다. 왜 유대인들은 그들이 고수해왔던 그 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유월절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의 절기중의 절기였던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포기했을까? 인사는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다!" 였다. 그리고 그 대답은 " 그리스도께서 정말 일어나셨다. !" 였다. 부활의 사실 외에 다른 어떤 사실이 초대 교회때까지 어디에서나 그 기원을 추적해 갈 수 있는 부활절 잔치의 실존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성례들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을 가르킬 뿐 아니라 그의 권능으로 부활하심을 가르킨다.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바로 그 때까지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그 기원이 추적된다. 기독교 예술과 관련된 사실이 있다. 박해 때부터 로마의 카타콤들에 기독교인들의 매우 초기 믿음들의 일부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표현들이 벽들에 새겨져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또한 기독교의 찬송가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장 초창기부터 찬송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불려졌다.
다음으로 부정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된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부활 사이를 연결시키지 않지만, 그러나 모든 학자들은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계 역사상 존재했던 또는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큰 조직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최고 전성기시대의 로마 제국 보다 다섯배나 더 크다. 오늘날 20억의 인구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배하며 고백한다. 그러한 조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 까? 어떤 사람이 말했던 것 처럼, " 그랜드 캐년은 인디안의 쟁기 자루에 의해 형성되지 않았다." 또한 이미 스쳐 지나간 날들의 게으른 몽상가들의 백일몽에서도 그리스도의 교회 크기 만한 조직체는 생겨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유래는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때인 주후 30년 예루살렘 도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모든 역사가들에 의해 알려졌다.
여러분은 웰(H.G Well) 의 [역사개요] 또는 다른 세속 역사 서적들을 정독하면 대체적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후 새로운 장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출현과 제자들의 선포에 대해 들려주면서 시작되며,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두장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조직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전파되기 시작한 때인 주후 30년 예루살렘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믿음의 사실이 아니라, 역사의 사실이다.
초대 기독교인들의 메시지의 바로 그 핵심과 실체는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이었다. 오순절에 전파된 그 첫 메세지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그것에 앞서 구약성경에 있었던 예언들에 대해서, 그들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처형했으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들이 이 일들의 목격자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부활하신 주께서 지금 그의 영을 부어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주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였다.
성경과 불신자들 및 기독교의 적대적인 적들의 모든 증언도 마찬가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이 가르침 때문에 모든 곳에 퍼졌다고 단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사도들이 선포하였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 한가지 사실이다.
세가지 대안이 가능하다.
(1) 이는 사기이며 사도들이 거짓말 하였다.
(2) 그들은 속았고, 기만당했고 , 그리고 잘못했다.
(3)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려고 애쓴 회의론자들의 노력을 살펴보자.
이십여년 이상 부활을 연구해 온 나는 그것이 동심원들을 그리며 주위를 둘러싼 온갖 종류의 암초들로 보호되고 있는 섬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섬을 파괴하려고 통과를 시도하는 배는 어떤 배라도 그 암초들 중 하나 또는 다른 어떤 암초에 좌초될 것이다. 오로지 소수의 이론들만이 부활에 가장 큰 총부리를 돌려댄 회의론자들, 무신론자들, 불신자들에 의해 제안되어 왔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 해 좀 더 큰 확신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이론들을 검토해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이지 알게 될 것이다.
넬슨 박사의 [무신앙의 원인과 치료]는 대학과 대학원 시절에 한 젊은이로서 그는 그의 신앙을 잃었으나 그러나 여전히 양심의 가책으로 마음이 어지러웠음을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불신앙을 스스로 밑받침하기 위해 그는 가장 훌륭한 모든 회의론자들의 서적을 읽었다. 그들의 주장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공허하여 그것들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한 정신적인 통찰력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우리는 구약성경에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들의 성취 그리고 그가 붙잡혀 채찍질하고 당하고, 그리고 십자가형에 처해지며, 제 삼일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그리스도 그자신의 예견들의 성취에 직면해 있다. 만약 그가 어떤 음모에 가담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 전 세계가 함께 모여 지금까지 세상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위대하고, 가장 윤리적이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정직한 사람이라고 단언한 이 사람- 의 인품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텅빈 무덤 - 많은 이론들이 부딛치게 되는 그 암초 - 을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수의들, 목격자의 증언,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던 열두번의 다른 경우들, 그가 부활했음을 보았던 오백명 이상의 사람들, 그들이 그를 손대고 만졌던 오전과 오후와 저녁, 실내와 실외에서의 이러한 출현들의 본질, 그리고 두려워하고 미련했던 겁장이들이 복음의 담대한 선포자들이 된 사도들의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있다. 한때 작은 소녀도 두려워했던 사도 베드로는 몇일 후에 산헤드린 전체와 맞서서 그들에게 그는 그가 보고 들은 것만 오로지 밝힐 수 있다고 확언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목격자들 -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피로 그들의 증언을 인쳤다 - 의 신실성, 인품, 고난, 그리고 죽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심리학의 역사상, 어떤 사람이 거짓이라고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내주었다는 것은 결코 알려진 적이 없다. 나는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사도들과 모든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그러한 고통과 그러한 엄청난 믿기지 않는 고문을 겪도록 허락하셨는지 이상하게 여기곤 했다. 기독교의 터들은 그렇게 세워졌기 때문에 오늘날 결코 그것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리틀( Paul Little)은 "사람들은 그들이 참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설사 그것이 실제로는 거짓일지라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이라고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위해서는 죽지 않는다. " 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관련된 사실과 증언이 있다. 사도바울의 엄청난 회심 -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요 살해자인 사울에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인 바울- 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부활을 교묘히 둘러대어 부정하려고 애쓰는 다양한 이론들 중 몇몇을 살펴보자. 기만의 영역에는, 제자들 스스로 또는 예수 그리스도와 협력하여 제자들이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다고 믿도록 세상을 속이려는 음모를 획책했다는 착상이 있다. 이는 가장 먼저 제안된 이론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성경에서도 발견된다. 파수꾼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의 지도부)에게 무덤이 비었다는 것과 일어났던 모든 일을 보고 했을 때, 산헤드린은 그 파수꾼들에게 큰 돈을 주면서 말했다. "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마 28: 13-14) 법학의 전 역사에서 잠든 동안 일어난 거에 대해 검증을 요구받은 목격자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있어 본적이 없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사도들이 왔다." 경계 임무 중 잠들었다는 것은 로마 병사들에게는 죽음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것은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스코틀랜드 신학자인 힐 박사는 내 생각에 전형적인 인용문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곳에서 이 거짓 착상에 대해 논평하였다. 그는 모든 증거들을 검토한 후 말하였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진리의 모든 출현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그들의 증언은 거짓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모순을 드러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대 상황들이 여러분에게 떼지어 몰려올 것이다. 여러분은 야심찬 견해들을 자신들이 닿을수 없는 그리고 자신들의 사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었던 비참한 신분으로 살던 천한 출신의 무학력자 열두명의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없이, 지금까지 인간의 마음을 헤아렸던 것들 중 가장 고상한 계략을 세웠고, 그 계략을 실행할 가장 과감한 수단을 채용하였으며, 순박하고 선한 체하여 그 협잡을 숨기는 그러한 솜씨로 그것을 수행해 갔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여러분은 신성모독과 거짓의 범죄자들이 세상을 선하게 만들려는 잘 궁리된 시도- 그것은 실제로 성공적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안에 연합하였으며,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어떤 유익도 구하지 않고, 손해와 이익을 공공연하게 경멸하며, 모욕과 박해를 확실히 예상한 채 단 하나의 대담한 계획을 세웠고, 비록 서로 서로의 악행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라도 그 기만을 폭로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제공받으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았으며, 그러나 육체의 가장 아픈 고통 가운데서도 그들은 세상을 속여 경건하고 정직하고 인정 많게 만들려한 그들의 음모를 끝까지 고집하였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참으로 그러한 가정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기적들을 반대할 자격조차 없다.
변호사 모리슨은 말한다. "우리는 그(교회)의 친구들의 열정 뿐 아니라 그의 적들의 무기력과 그에게 넘어온 새개종자들의 끊임없는 성장 기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예루살렘의 고위층 인사들이 이 운동을 그 태동의 때에 억누르려고 마련했을 그러나 할 수 없었던 것- 사도들을 침묵시키려고, 그 율리시즈의 진짜 화살, 대 박해가 그들의 손 안에서 매듭지어지고 산산조각 날 때까지, 잇따른 극심한 수단이 채용되었던 방법- 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구실들과 비봉책들 배후에 무언의 대답없는 사실, 지리와 바로 그 운명들 그것들이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던 사실이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또한,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가공할 크기로 성장해 가고 있던 4년 동안, 자신들의 명성과 개인적인 평판이 그 새 교리에 의해 모욕받고 손상당했던 가야바도 안나스도 그리고 공인된 사두개인 비밀결사 요원들 중 어느 누구도 결코 그들의 곤경들을 헤쳐나갈 분명한 지름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만약 예수의 몸이 여전히 요셉이 안치했던 그 무덤에 누워있다면, 또는 그들 자신들이 그것을 취하여 그 밖에 다른 곳에 두었다면, 왜 그들은 그렇 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들은 그것에 관한 어떤 일을 하기에는 무기력했고 완전히 무능력했다. 그들의 유일한 방편은 대박해였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은 단지 점점 불어난 전설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고등비평가들이 복음서들은 그 사건 이후 백년 내지는 이백년에 쓰여졌다고 말하던 때인 지난 세기에 유행한 이론이었다. 그러나 고고학의 발전으로 이 비평은 침묵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복음서들은 그것들이 담고 있는 이름들의 저자들에게로 곧바로 거슬러 올라가며, 부활의 증언은 그것이 발생했던 바로 그 시대에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전설이 발전할 만한 가능한 시간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전설이 적어도 16년 이상 발전해 왔다면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던 사람들이 오백명- 그들 중 대부분은 그 때에도 살아 있었다- 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환상이론은 여전히 아마도 덜 타당한 것 같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출현들이 예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으면 하는 이 사람들의 커다란 기대들에 의해 생겨난 단순한 환상이거나 환영이었다고 추측한다. 만약 그것이 실제 진상이라면, 그 여자들이 향유를 지닌채 그 무덤에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들은 부활한 그리스도 또는 시체 중 어디에 기름바르려 하였는가? 우리는 마리아가 그녀의 주가 죽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체를 도난당했기 때문에 무덤 밖에서 울며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엠마오 도상의 두 사람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구원했어야 했던 메시아였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들을 잃게되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완전히 의기소침했고 낙담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예수께서 그들의 의혹에 대해 꾸짖으셨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렇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환영의 역사에서 서로 다른 출신 배경과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 오백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똑같은 환상을 본 사건은 지금까지 전혀없었다. 더군다나 그 배가 좌초하게 될 다른 수많은 암초들이 있다. 만약 그들이 보고있던 그것들이 단순한 환영들이라면, 제자들 중 어느 누군가 그 몸이 여전히 그곳에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무덤으로 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들이 그들의 "환영" 들을 선포할 때 그들의 적들 중 어느 누군가 몇 발자국 걸어가서 그 무덤을 검사해 볼 것을 고려하지 못했을까? 베드로가 오순절에 그의 "커다란 환영" 에 대해 설교할 때, 그는 단지 그 무덤에서 십분 거리에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으나, 수많은 사람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다. 어느 누구하나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따라 걸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 확실히 현학적이며 음모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두개인들은 이것이 단순한 환영이라는 것을 보여줄 모든 기회를 가졌을 것인데.
마지막으로, "실신" 이론이 있다. 이는 벤투리니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것은 에디의 저서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유월절 음모]의 스콘필드의 작품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죽지 않았다는 밀담이 기독교의 친구들로부터 또는 그들의 가장 화해하기 어려운 적들로부터 천 팔백여년 동안 결코 없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 최근의 작가들 중 몇몇은 이제 예수는 단순히 기절상태에 있다가 삽자가에서 내려졌고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런후 무덤의 차가움으로 인해 그는 정신이 들었고 밖으로 나와 그의 제자들에게 그는 죽은 자로부터 일어났다고 확신시켰다는 개념을 용인한다. 그 배는 결코 우리의 부활 섬 백마일 내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그 백부장에 의한 상처 - 로마의 창에 옆구리를 찔려 피와 물이 쏟아진 - 는, 피가 그 구성 요소들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생명이 끝났다는 것의 경험적인 증거이다는 것이 무시되고 있다. 빌라도에 의해 파송된 사형을 관할하고 주선하는 백부장의 증언이 있다. 그의 임무는 예수가 죽었다는 것을 형집행관으로서 아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수의와 관련된 사실이 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수의들로 시체들을 쌌으며, 접히는 곳들 사이에 백파운드의 향로를 사용하였으며, 그 시체들을 미이라처럼 수의로 밀봉했다. 머리 또한 감싸졌다. 의학계의 권위자들은 예수가 기절했다면 밀폐된 무덤이 아니라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고 진술한다.
확실하게 필요치 않았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의 머리를 둘러싼 수의들과 코와 입을 막은 향로들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기절상태에 있는 사람을 차가운 무덤안에 둔다는 것은, 설사 그가 살아있다 하더라도, 가사나 심장박동의 중지를 발생시킬 것이다. 그가 어쨌든 이 수의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스스로 그것들에서 벗어난 후, 무덤을 봉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에게로 갔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십자가형에서 사용되던 커다란 로마 못들에 꿰뚫린 손으로 그것을 움직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손들을 이 큰 돌의 안쪽 평평한 곳에 올려놓고 단순하게 그것을 멀리 굴려야만 했을 것이다.복음서의 헬라어 단어들은 그것이 오르막실로 굴려졌음을 암시한다. 정말로, 그것은 그 성격상 기적적인 업적이다 ! 그런후 그는 로마 무장 파수꾼을 제압하고 그날 오후에 14마일 떨어진 엠마오까지 걸어서 갔다가 되돌아와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못들이 발을 꿰뚫은 이후여서 발을 풀어주는 것이었으며 그가 산을 오르던 곳인 팔레스틴 북부 갈릴리까지의 모든 행로를 걷기 위해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부활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기절 이론과 같은 무의미한 생각도 믿지 않는 유명한 비평가 스트라우스는 말한다. " 무덤에서 방금 나와, 허약하고 병들어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붕대 감기, 기운 북돋기, 그리고 조심스런 간호와 같은 의학적인 치료를 요하며, 적어도 고통에 굴복했던 반죽음인 사람이 그는 죽음과 무덤의 정복자- 그는 생명의 임금- 이며 그들의 미래 사역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인상을 제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한 소생은 그가 삶과 죽음을 통해 그들에게 미쳤던 그 인상을 단지 약화시킬 뿐이다.
예수의 승천을 살펴보자, 용케도 스스로 되살아나 그 무덤에서 나온 이 분이 또한 하늘로 날아올라 갔을까? 이는 제자들이 확언했던 바이다. 아니면, 우리는 그 제자들을 이 사기에 포함시켜야 할까? 기억하라, 그들은 그 결과 자신들의 생명을 끔직한 죽음들로 주었다. 그렇다, 제안되어온 모든 이론들은 우리가 사실들을 너무도 명백하게 검토하여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결코 논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먼지로 사라졌다.
빈무덤은 기독교의 친구들에 의해서 뿐 아니라 그 적들에 의해서도 인정된다. 로마 파수꾼도 그것을 인정하였다. 산헤드린도 그의 제자들이 그를 훔쳤다고 말하도록 병사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을 은연중에 인정하였다. 가장 이른 시대의 위대한 유대 변증가들 중 한명인 트리포는 순교자 유스틴과 나눈 대화에서 " 한 예수, 갈릴리의 사기꾼, 우리는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밤중에 그를 십자가에서 풀어 눕혀 놓았던 그 무덤에서 그를 훔쳤으며, 지금은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으며 하늘로 승천했다고 우김으로써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정말로 심지어 트리포도, 비록 제자들이 그 몸을 훔쳤다는 오늘날 아무도 믿지않은 이론을 제안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무덤은 텅 비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기독교인의 체험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전세계 구석 구석까지 가셨고, 그는 이 땅의 모든 나라, 언어 , 그리고 부족의 인간 존재들을 붙잡으셨고 변화시켰으며, 셀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계시며 그들의 삶에 들어가 그들을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 계 1:18 ; 요 11:26) 라고 말하는 분이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문앞에 서서 두드리시면서 그는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들의 실험실에서 체험적으로 그를 알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과 올 세상에서 희망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와 그의 부활은 유일한 인류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땅에 있는 블랙홀만을 바라보게 된다.
정말로,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 그가 말씀하셨던 대로 그는 살아계시며, 그리고 우리가 기꺼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에게 우리의 신뢰를 두면 그도 기꺼이 우리의 마음 안으로 오셔서 사실 것이다.
질문: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종교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다른 종교인에게도 있었던 일이며 역사적기록을 보면 심지어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저 역시 부활의 사건은 예수그리스도께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다른 종교인에게도 심지어 아무 종교도 갖지않은 사람에게도 일어난적 있는 사건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기독교인중에서도 드물게 의사의 사망진단을 받고서 다시살아난 사건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유일하지도 않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그의 신성을 입증 하는 가장 유력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의 부활이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시체의 단순하고 우연한 소생'이 아니라 자신의 부활을 생전에 예고 했던 분의 부활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생전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며 신적인 가르침과 능력을 나타냈던 분의 부활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사건은 부활이후 다시 죽지않은(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시체소생사건의 주인공들은 모두 몇년, 몇십년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유일한 분의 부활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 갖는 특별한 이유입니다.
[부활에 대한 어떤 그리스도인의 고백]
" 만약 우리가 어느 한 장소에 100년 이상 서있는 건물을 본다면 우리는 그 건물의 기초가 튼튼한지 튼튼하지않은지 의심하지않고 아무 증명의 필요없이 그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100년 이상 한 곳에 서있었다는 사실자체가 기초의 튼튼함을 이미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2000년간 그 진리의 토대위에서 무너지지않고 서있습니다. 동방카톨릭교회와 서방 카톨릭교회로 분열될 때에도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에도 지금처럼 다양한 분파로 존재할 때에도 교회는 항상 그 진리의 기초위에 서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가 얼마나 튼튼한 기초위에 세워져있는가를 알 수 있게되며 우리를 더 이상 의심과 주저함에 머물지않고 부활의 소망으로 나아갈 수 있게하는 불변의 근거를 얻게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가?
요즈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이 있다느니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발견하였다느니 하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러한 거짓말에 침묵할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대한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글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길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그리스도교의 시작이며 기초이며 근거입니다. 만일 어떤 분들이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않는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며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거부할 사람은 아마 없을거라고 봅니다. 이에 저는 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신앙적 진실 더 나아가 역사적 진실로 믿고 있는지 제가 읽은 책의 내용을 옮겨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본문
시간이 시작된 이후, 남자들과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욥의 울부짖음과 같은 외침 - "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욥기 14장 14절)- 으로 대응해 왔다. 인간적인 철학과 이방종교들은 단지 물음표. 기원 또는 모호한 소망으로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헬라철학의 위대한 천재인 플라톤이 " 우리가 다시 살 수 있을까요? " 란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나는 그렇게 소망하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할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마호메트 또는 석가모니 또는 공자의 무덤은 이날까지 비어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그것에 비하면 다른 모든 교리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며, 모든 기독교 교리들 중 가장 중요한 이 교리를 - 을 믿는가? 심지어 부활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순히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었으며 하나님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지고 고소당한 한 사람임을 상징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언된 것은 바로 부활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그의 속죄 제사가 하나님께 수납되었다고 선언된 것도 바로 부활에 의해서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 그것에 따라 모든 것들이 서거나 넘어진다. 그러므로 19세기를 통틀어 모든 종교적인 회의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자기들의 가장 긴 총부리를 겨누어 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는 다른 어떤 역사적인 사실 보다 더욱 주의 깊게 검토되어 왔다 ! 그것은 가장 위대한 학자들에 의해 비교 검토되었고 고찰되었다. 그들 중에는 하버드 법학부를 걸출하게 만드는데 일조하였고, 세계 역사상 법정 증거에 대해 가장 뛰어난 권위자로 불리었으며, 1833-48년에 하버드대학교 법학교수였던 그린리프가 있다. 그린리프가 그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부활로 바꿔 모든 증거 법률의 빛에서 그것에 초점을 맞추었을때,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실재이며,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며, 그것에 대한 증거를 정직하게 검토한 사람은 이것이 그 진상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 책을 쓰기 시작한 영국인 변호사 모리슨에게도 그러했다. 그는 그의 책을 썼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가 쓰기 시작했던 그 책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검토하면서, 이 회의론자 법률가는 그것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가 그것을 받아들여 신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쓴 [누가 그 돌을 옮겼는가? ] 란 제하의 그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첫 장은 " 쓰여지길 거절한 책" 이라 불리운다! 왈러스( Lew Wallace)도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의 부활을 반박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으나,그것들을 변호하는 유명한 책을 쓰는 것으로 끝맺었다. 그 책은 [벤허] 라 이름 붙여졌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그것을 검토할 시간을 가졌던 자들의 견해들에 따르면 매우,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않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부활에 대한 증거들에 관해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어본 사람치고 그것을 믿지 않았던 사람은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
이 증거들 중 몇몇의 실제 내용을 살펴보자. 주의 날과 관련된 사실이 있다. 수천년 동안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안식일 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의 날을 제 7일에서 제 1일로 바꾼 유대인들이었던 초대 기독교인들의 한 무리를 알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지켜왔던 것을 포기한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주의 그 첫 날에 발생했던 그리스도의 죽은자들로부터의 부활, 그 주의 그 첫 날에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그 주의 그 첫 날에 오순절의 그 교회에 그의 영을 부어주심과 같은 그런 기념비적인 사건들로만 오로지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를 예배하기 위해 만났던 날이 그 주의 그 첫날이었음을 안다.
다음으로 부활절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 이 날은 유대의 절기인 유월절을 대치한 것이다. 왜 유대인들은 그들이 고수해왔던 그 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유월절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의 절기중의 절기였던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포기했을까? 인사는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다!" 였다. 그리고 그 대답은 " 그리스도께서 정말 일어나셨다. !" 였다. 부활의 사실 외에 다른 어떤 사실이 초대 교회때까지 어디에서나 그 기원을 추적해 갈 수 있는 부활절 잔치의 실존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성례들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을 가르킬 뿐 아니라 그의 권능으로 부활하심을 가르킨다.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바로 그 때까지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그 기원이 추적된다. 기독교 예술과 관련된 사실이 있다. 박해 때부터 로마의 카타콤들에 기독교인들의 매우 초기 믿음들의 일부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표현들이 벽들에 새겨져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또한 기독교의 찬송가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장 초창기부터 찬송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불려졌다.
다음으로 부정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된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부활 사이를 연결시키지 않지만, 그러나 모든 학자들은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계 역사상 존재했던 또는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큰 조직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최고 전성기시대의 로마 제국 보다 다섯배나 더 크다. 오늘날 20억의 인구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배하며 고백한다. 그러한 조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 까? 어떤 사람이 말했던 것 처럼, " 그랜드 캐년은 인디안의 쟁기 자루에 의해 형성되지 않았다." 또한 이미 스쳐 지나간 날들의 게으른 몽상가들의 백일몽에서도 그리스도의 교회 크기 만한 조직체는 생겨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유래는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때인 주후 30년 예루살렘 도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모든 역사가들에 의해 알려졌다.
여러분은 웰(H.G Well) 의 [역사개요] 또는 다른 세속 역사 서적들을 정독하면 대체적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후 새로운 장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출현과 제자들의 선포에 대해 들려주면서 시작되며,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두장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조직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전파되기 시작한 때인 주후 30년 예루살렘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믿음의 사실이 아니라, 역사의 사실이다.
초대 기독교인들의 메시지의 바로 그 핵심과 실체는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이었다. 오순절에 전파된 그 첫 메세지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그것에 앞서 구약성경에 있었던 예언들에 대해서, 그들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처형했으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들이 이 일들의 목격자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부활하신 주께서 지금 그의 영을 부어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주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였다.
성경과 불신자들 및 기독교의 적대적인 적들의 모든 증언도 마찬가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이 가르침 때문에 모든 곳에 퍼졌다고 단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사도들이 선포하였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 한가지 사실이다.
세가지 대안이 가능하다.
(1) 이는 사기이며 사도들이 거짓말 하였다.
(2) 그들은 속았고, 기만당했고 , 그리고 잘못했다.
(3)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려고 애쓴 회의론자들의 노력을 살펴보자.
이십여년 이상 부활을 연구해 온 나는 그것이 동심원들을 그리며 주위를 둘러싼 온갖 종류의 암초들로 보호되고 있는 섬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섬을 파괴하려고 통과를 시도하는 배는 어떤 배라도 그 암초들 중 하나 또는 다른 어떤 암초에 좌초될 것이다. 오로지 소수의 이론들만이 부활에 가장 큰 총부리를 돌려댄 회의론자들, 무신론자들, 불신자들에 의해 제안되어 왔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 해 좀 더 큰 확신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이론들을 검토해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이지 알게 될 것이다.
넬슨 박사의 [무신앙의 원인과 치료]는 대학과 대학원 시절에 한 젊은이로서 그는 그의 신앙을 잃었으나 그러나 여전히 양심의 가책으로 마음이 어지러웠음을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불신앙을 스스로 밑받침하기 위해 그는 가장 훌륭한 모든 회의론자들의 서적을 읽었다. 그들의 주장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공허하여 그것들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한 정신적인 통찰력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우리는 구약성경에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들의 성취 그리고 그가 붙잡혀 채찍질하고 당하고, 그리고 십자가형에 처해지며, 제 삼일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그리스도 그자신의 예견들의 성취에 직면해 있다. 만약 그가 어떤 음모에 가담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 전 세계가 함께 모여 지금까지 세상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위대하고, 가장 윤리적이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정직한 사람이라고 단언한 이 사람- 의 인품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텅빈 무덤 - 많은 이론들이 부딛치게 되는 그 암초 - 을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수의들, 목격자의 증언,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던 열두번의 다른 경우들, 그가 부활했음을 보았던 오백명 이상의 사람들, 그들이 그를 손대고 만졌던 오전과 오후와 저녁, 실내와 실외에서의 이러한 출현들의 본질, 그리고 두려워하고 미련했던 겁장이들이 복음의 담대한 선포자들이 된 사도들의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있다. 한때 작은 소녀도 두려워했던 사도 베드로는 몇일 후에 산헤드린 전체와 맞서서 그들에게 그는 그가 보고 들은 것만 오로지 밝힐 수 있다고 확언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목격자들 -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피로 그들의 증언을 인쳤다 - 의 신실성, 인품, 고난, 그리고 죽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심리학의 역사상, 어떤 사람이 거짓이라고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내주었다는 것은 결코 알려진 적이 없다. 나는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사도들과 모든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그러한 고통과 그러한 엄청난 믿기지 않는 고문을 겪도록 허락하셨는지 이상하게 여기곤 했다. 기독교의 터들은 그렇게 세워졌기 때문에 오늘날 결코 그것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리틀( Paul Little)은 "사람들은 그들이 참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설사 그것이 실제로는 거짓일지라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이라고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위해서는 죽지 않는다. " 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관련된 사실과 증언이 있다. 사도바울의 엄청난 회심 -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요 살해자인 사울에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인 바울- 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부활을 교묘히 둘러대어 부정하려고 애쓰는 다양한 이론들 중 몇몇을 살펴보자. 기만의 영역에는, 제자들 스스로 또는 예수 그리스도와 협력하여 제자들이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다고 믿도록 세상을 속이려는 음모를 획책했다는 착상이 있다. 이는 가장 먼저 제안된 이론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성경에서도 발견된다. 파수꾼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의 지도부)에게 무덤이 비었다는 것과 일어났던 모든 일을 보고 했을 때, 산헤드린은 그 파수꾼들에게 큰 돈을 주면서 말했다. "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마 28: 13-14) 법학의 전 역사에서 잠든 동안 일어난 거에 대해 검증을 요구받은 목격자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있어 본적이 없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사도들이 왔다." 경계 임무 중 잠들었다는 것은 로마 병사들에게는 죽음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것은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스코틀랜드 신학자인 힐 박사는 내 생각에 전형적인 인용문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곳에서 이 거짓 착상에 대해 논평하였다. 그는 모든 증거들을 검토한 후 말하였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진리의 모든 출현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그들의 증언은 거짓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모순을 드러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대 상황들이 여러분에게 떼지어 몰려올 것이다. 여러분은 야심찬 견해들을 자신들이 닿을수 없는 그리고 자신들의 사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었던 비참한 신분으로 살던 천한 출신의 무학력자 열두명의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없이, 지금까지 인간의 마음을 헤아렸던 것들 중 가장 고상한 계략을 세웠고, 그 계략을 실행할 가장 과감한 수단을 채용하였으며, 순박하고 선한 체하여 그 협잡을 숨기는 그러한 솜씨로 그것을 수행해 갔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여러분은 신성모독과 거짓의 범죄자들이 세상을 선하게 만들려는 잘 궁리된 시도- 그것은 실제로 성공적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안에 연합하였으며,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어떤 유익도 구하지 않고, 손해와 이익을 공공연하게 경멸하며, 모욕과 박해를 확실히 예상한 채 단 하나의 대담한 계획을 세웠고, 비록 서로 서로의 악행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라도 그 기만을 폭로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제공받으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았으며, 그러나 육체의 가장 아픈 고통 가운데서도 그들은 세상을 속여 경건하고 정직하고 인정 많게 만들려한 그들의 음모를 끝까지 고집하였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참으로 그러한 가정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기적들을 반대할 자격조차 없다.
변호사 모리슨은 말한다. "우리는 그(교회)의 친구들의 열정 뿐 아니라 그의 적들의 무기력과 그에게 넘어온 새개종자들의 끊임없는 성장 기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예루살렘의 고위층 인사들이 이 운동을 그 태동의 때에 억누르려고 마련했을 그러나 할 수 없었던 것- 사도들을 침묵시키려고, 그 율리시즈의 진짜 화살, 대 박해가 그들의 손 안에서 매듭지어지고 산산조각 날 때까지, 잇따른 극심한 수단이 채용되었던 방법- 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구실들과 비봉책들 배후에 무언의 대답없는 사실, 지리와 바로 그 운명들 그것들이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던 사실이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또한,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가공할 크기로 성장해 가고 있던 4년 동안, 자신들의 명성과 개인적인 평판이 그 새 교리에 의해 모욕받고 손상당했던 가야바도 안나스도 그리고 공인된 사두개인 비밀결사 요원들 중 어느 누구도 결코 그들의 곤경들을 헤쳐나갈 분명한 지름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만약 예수의 몸이 여전히 요셉이 안치했던 그 무덤에 누워있다면, 또는 그들 자신들이 그것을 취하여 그 밖에 다른 곳에 두었다면, 왜 그들은 그렇 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들은 그것에 관한 어떤 일을 하기에는 무기력했고 완전히 무능력했다. 그들의 유일한 방편은 대박해였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은 단지 점점 불어난 전설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고등비평가들이 복음서들은 그 사건 이후 백년 내지는 이백년에 쓰여졌다고 말하던 때인 지난 세기에 유행한 이론이었다. 그러나 고고학의 발전으로 이 비평은 침묵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복음서들은 그것들이 담고 있는 이름들의 저자들에게로 곧바로 거슬러 올라가며, 부활의 증언은 그것이 발생했던 바로 그 시대에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전설이 발전할 만한 가능한 시간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전설이 적어도 16년 이상 발전해 왔다면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던 사람들이 오백명- 그들 중 대부분은 그 때에도 살아 있었다- 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환상이론은 여전히 아마도 덜 타당한 것 같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출현들이 예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으면 하는 이 사람들의 커다란 기대들에 의해 생겨난 단순한 환상이거나 환영이었다고 추측한다. 만약 그것이 실제 진상이라면, 그 여자들이 향유를 지닌채 그 무덤에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들은 부활한 그리스도 또는 시체 중 어디에 기름바르려 하였는가? 우리는 마리아가 그녀의 주가 죽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체를 도난당했기 때문에 무덤 밖에서 울며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엠마오 도상의 두 사람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구원했어야 했던 메시아였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들을 잃게되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완전히 의기소침했고 낙담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예수께서 그들의 의혹에 대해 꾸짖으셨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렇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환영의 역사에서 서로 다른 출신 배경과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 오백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똑같은 환상을 본 사건은 지금까지 전혀없었다. 더군다나 그 배가 좌초하게 될 다른 수많은 암초들이 있다. 만약 그들이 보고있던 그것들이 단순한 환영들이라면, 제자들 중 어느 누군가 그 몸이 여전히 그곳에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무덤으로 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들이 그들의 "환영" 들을 선포할 때 그들의 적들 중 어느 누군가 몇 발자국 걸어가서 그 무덤을 검사해 볼 것을 고려하지 못했을까? 베드로가 오순절에 그의 "커다란 환영" 에 대해 설교할 때, 그는 단지 그 무덤에서 십분 거리에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으나, 수많은 사람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다. 어느 누구하나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따라 걸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 확실히 현학적이며 음모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두개인들은 이것이 단순한 환영이라는 것을 보여줄 모든 기회를 가졌을 것인데.
마지막으로, "실신" 이론이 있다. 이는 벤투리니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것은 에디의 저서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유월절 음모]의 스콘필드의 작품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죽지 않았다는 밀담이 기독교의 친구들로부터 또는 그들의 가장 화해하기 어려운 적들로부터 천 팔백여년 동안 결코 없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 최근의 작가들 중 몇몇은 이제 예수는 단순히 기절상태에 있다가 삽자가에서 내려졌고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런후 무덤의 차가움으로 인해 그는 정신이 들었고 밖으로 나와 그의 제자들에게 그는 죽은 자로부터 일어났다고 확신시켰다는 개념을 용인한다. 그 배는 결코 우리의 부활 섬 백마일 내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그 백부장에 의한 상처 - 로마의 창에 옆구리를 찔려 피와 물이 쏟아진 - 는, 피가 그 구성 요소들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생명이 끝났다는 것의 경험적인 증거이다는 것이 무시되고 있다. 빌라도에 의해 파송된 사형을 관할하고 주선하는 백부장의 증언이 있다. 그의 임무는 예수가 죽었다는 것을 형집행관으로서 아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수의와 관련된 사실이 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수의들로 시체들을 쌌으며, 접히는 곳들 사이에 백파운드의 향로를 사용하였으며, 그 시체들을 미이라처럼 수의로 밀봉했다. 머리 또한 감싸졌다. 의학계의 권위자들은 예수가 기절했다면 밀폐된 무덤이 아니라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고 진술한다.
확실하게 필요치 않았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의 머리를 둘러싼 수의들과 코와 입을 막은 향로들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기절상태에 있는 사람을 차가운 무덤안에 둔다는 것은, 설사 그가 살아있다 하더라도, 가사나 심장박동의 중지를 발생시킬 것이다. 그가 어쨌든 이 수의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스스로 그것들에서 벗어난 후, 무덤을 봉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에게로 갔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십자가형에서 사용되던 커다란 로마 못들에 꿰뚫린 손으로 그것을 움직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손들을 이 큰 돌의 안쪽 평평한 곳에 올려놓고 단순하게 그것을 멀리 굴려야만 했을 것이다.복음서의 헬라어 단어들은 그것이 오르막실로 굴려졌음을 암시한다. 정말로, 그것은 그 성격상 기적적인 업적이다 ! 그런후 그는 로마 무장 파수꾼을 제압하고 그날 오후에 14마일 떨어진 엠마오까지 걸어서 갔다가 되돌아와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못들이 발을 꿰뚫은 이후여서 발을 풀어주는 것이었으며 그가 산을 오르던 곳인 팔레스틴 북부 갈릴리까지의 모든 행로를 걷기 위해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부활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기절 이론과 같은 무의미한 생각도 믿지 않는 유명한 비평가 스트라우스는 말한다. " 무덤에서 방금 나와, 허약하고 병들어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붕대 감기, 기운 북돋기, 그리고 조심스런 간호와 같은 의학적인 치료를 요하며, 적어도 고통에 굴복했던 반죽음인 사람이 그는 죽음과 무덤의 정복자- 그는 생명의 임금- 이며 그들의 미래 사역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인상을 제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한 소생은 그가 삶과 죽음을 통해 그들에게 미쳤던 그 인상을 단지 약화시킬 뿐이다.
예수의 승천을 살펴보자, 용케도 스스로 되살아나 그 무덤에서 나온 이 분이 또한 하늘로 날아올라 갔을까? 이는 제자들이 확언했던 바이다. 아니면, 우리는 그 제자들을 이 사기에 포함시켜야 할까? 기억하라, 그들은 그 결과 자신들의 생명을 끔직한 죽음들로 주었다. 그렇다, 제안되어온 모든 이론들은 우리가 사실들을 너무도 명백하게 검토하여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결코 논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먼지로 사라졌다.
빈무덤은 기독교의 친구들에 의해서 뿐 아니라 그 적들에 의해서도 인정된다. 로마 파수꾼도 그것을 인정하였다. 산헤드린도 그의 제자들이 그를 훔쳤다고 말하도록 병사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을 은연중에 인정하였다. 가장 이른 시대의 위대한 유대 변증가들 중 한명인 트리포는 순교자 유스틴과 나눈 대화에서 " 한 예수, 갈릴리의 사기꾼, 우리는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밤중에 그를 십자가에서 풀어 눕혀 놓았던 그 무덤에서 그를 훔쳤으며, 지금은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으며 하늘로 승천했다고 우김으로써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정말로 심지어 트리포도, 비록 제자들이 그 몸을 훔쳤다는 오늘날 아무도 믿지않은 이론을 제안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무덤은 텅 비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기독교인의 체험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전세계 구석 구석까지 가셨고, 그는 이 땅의 모든 나라, 언어 , 그리고 부족의 인간 존재들을 붙잡으셨고 변화시켰으며, 셀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계시며 그들의 삶에 들어가 그들을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 계 1:18 ; 요 11:26) 라고 말하는 분이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문앞에 서서 두드리시면서 그는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들의 실험실에서 체험적으로 그를 알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과 올 세상에서 희망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와 그의 부활은 유일한 인류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땅에 있는 블랙홀만을 바라보게 된다.
정말로,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 그가 말씀하셨던 대로 그는 살아계시며, 그리고 우리가 기꺼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에게 우리의 신뢰를 두면 그도 기꺼이 우리의 마음 안으로 오셔서 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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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질문]
질문: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종교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다른 종교인에게도 있었던 일이며 역사적기록을 보면 심지어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저 역시 부활의 사건은 예수그리스도께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다른 종교인에게도 심지어 아무 종교도 갖지않은 사람에게도 일어난적 있는 사건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기독교인중에서도 드물게 의사의 사망진단을 받고서 다시살아난 사건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유일하지도 않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그의 신성을 입증 하는 가장 유력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의 부활이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시체의 단순하고 우연한 소생'이 아니라 자신의 부활을 생전에 예고 했던 분의 부활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생전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며 신적인 가르침과 능력을 나타냈던 분의 부활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사건은 부활이후 다시 죽지않은(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시체소생사건의 주인공들은 모두 몇년, 몇십년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유일한 분의 부활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 갖는 특별한 이유입니다.
[부활에 대한 어떤 그리스도인의 고백]
" 만약 우리가 어느 한 장소에 100년 이상 서있는 건물을 본다면 우리는 그 건물의 기초가 튼튼한지 튼튼하지않은지 의심하지않고 아무 증명의 필요없이 그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100년 이상 한 곳에 서있었다는 사실자체가 기초의 튼튼함을 이미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2000년간 그 진리의 토대위에서 무너지지않고 서있습니다. 동방카톨릭교회와 서방 카톨릭교회로 분열될 때에도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에도 지금처럼 다양한 분파로 존재할 때에도 교회는 항상 그 진리의 기초위에 서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가 얼마나 튼튼한 기초위에 세워져있는가를 알 수 있게되며 우리를 더 이상 의심과 주저함에 머물지않고 부활의 소망으로 나아갈 수 있게하는 불변의 근거를 얻게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