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박재혁200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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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불안으로 빚어진 최근의 정권반대 투쟁이  사회적 히스테리인가 아니면 거리의 정치 복원을 알리는 푸른 신호탄인가. 언제나 그렇듯 갑작스레 터져나오는 사회적 변수 앞에서 그 어떤 노회한 이론가도 이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진 못 한다. 거리엔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친다. 어떤 이들에겐 이 청소년들의 준동의 배후를 의심하게 하고, 한 편으론 나와 같은 이들에겐 이러한 흐름이 68년 5월의 기운을 호흡하게 한다.

 


 




온라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는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정치경제적, 건강권적 담론이 펼쳐지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여전히 미궁인 듯 싶으나 분명한 건 단 0.0...1%의 생명 위협의 가능성이 있는 식품이라면 당연히 국가가 책임있고 투명한 자세로 이에 대한 수입 여부를 결정지어야 한다는 점이니, 광우병 의심 개연성이 얼만큼인지를 떠나 이 모든 사태의 근본 책임은 무능한 ‘실용정부’ 이명박 정부에게 있음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근의 이 광우병 파동을 보며 문득 다른 시선을 갖게 된다.

 





공안 분위기로 이 자발적인 시민군의 투쟁을 차단하려는 조중동을 위시한 극우 세력이나, 그 다른 편에서 노사모적 분위기로 어게인 2002를 재현하려는 이른바 ‘개혁세력’이나 내게는 도찐개찐이다. 이들 보수 양당세력의 추종자들이 벌이는 정치게임은 발랄한 전복을 몸소 보여주는 청소년들의 순수한 건강함에 비교할 때 너무도 추악한 것이니까. 집회장에서 특정 단체의 깃발이나 구호를 자율적으로 금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나는 지지한다. 그냥 내버려둬 보자. 알아서 뭉치고 알아서 춤추며 알아서 삿대질하고 욕지거리하면서, 그래, 그렇게 무정형의 투쟁이야말로 가장 권력에 위협적인 것이니.

 





사실 이 틈을 파고 들어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새로운 담론은 이런 것 아닐까. 육류식품의 과잉 속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비대한 허리 둘레를 지니고 뒤뚱거리는 우리 인간들에 대한 생태적 반성이라든가, 그도 아니면 시민들이 알아서 밤거리에 모여 자유토론하고 떠들겠다는데 무슨무슨 일몰 이후 집회는 불법 운운하는 같잖은 집시법 따위에 대한 저항적 접근 등등 말이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러나 드물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태극기와 윤도현 밴드의 ‘애국가’만을 허용하면서 또 하나의 애국파시즘으로 귀결될까 하는 일부의 우려가 전혀 기우이지 않은 것이 이러한 현상에서 근거화된다.

 





아무튼 미스테리인 점은 분명하다. 그 누구의 조직적 동원없이 집권 백일도 안 된 정부의 심장을 향해 시민들이 주먹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불과 한 달 여전에 그 정권의 휘하 똘마니들을 원내에 대거 진입시킨 그 시민들이 말이다.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의 관망층 역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불안 심리를 지니고 있음은 여러 데이터에서 확인되고 있다.

 




답은 간단하다. 사실 나는 이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의 근원에는 정작 ‘광우병’은 없다고 본다. 광우병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0.00..1%의 위협에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우리를 불안케하는 이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이다. 미쳐 날뛰는 물가와 취업대란, 공무원 감축을 통한 만성화된 실업란에 노출된 88만원 세대의 불안, 투기 거간꾼들만의 매도 매수가 판치는 부동산 공화국, 건강보험 민영화를 통한 의료 불안, 이 모든 ‘불안’ 속에서 국민들은 이제 평상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 누적된 불안과 공포가, ‘광우병’ 파동을 촉매로 하여 터져 나온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영화 ‘GP 506'에서, 소대원들은 광기에 시달리며 불안으로 인한 살상을 저지른다. 살상을 저지르는 순간에 그들은 그들 본래의 자아를 망각하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이 정글 자본주의 사우스 코리아에서 늘 만성화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 불안은 이제 공포로 변하고 타자에 대한 적대와 배제의 폭력으로 변질화된다. 그리고 그 끝은? 그러나 그 끝을 향한 파국의 직전에서, 우리는 최소한의 이성과 희망의 몸짓을 본다. 그것이 바로 그 불안의 원천인 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그렇기에 ‘광우병’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문제는 이 모든 생존의 불안을 야기하는 신자유주의, 그것이다. 이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구조적 저항의 엔진을 대중에게 장착시킬 그 지난한 사업이, 바로 진보를 꿈꾸는 당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