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조현진2008.05.10
조회95
새벽

제대하고나서.. 가끔 내가 제대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때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좋았던 나빴던간에, 무언가에 구속되어있다는것, 즉 갖혀있다는것은 내가 경험한 그 어떤 폭력보다도 강력하고 집요한 것이었다. 매순간이 살아있는것이라면,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개별적인 하나의 생(生)이라고 볼수 있다면 그때의 경험과 기억을 지금은 고마워할수는 있을지 몰라도 당시의 나 자신에게는 아직도 연민을 감출수가 없다. 마치 거짓말인것처럼 문득(?)제대해버린날, 나는 바다를보러 서울과는 반대쪽인 대진항으로향했다. 겨울 바다는 춥기보다 시원한 느낌이었고 비린내가 묻어나왔다. 대진항은 퍽 작은 항구라고 들었는데 나는 그 수수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곳곳에 어망과 리어카와 식칼을 든 어민들이 있었고 큰 다랑어가 죽어있었고 이름모를 생선들이 큰 대야에 닮겨져 있었다. 조그만 잡종 강아지들은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집적댔다. 나는 홀로 걸었다. 맑은날에 북쪽바다를 보면 북한어선을 볼수있다는 말을들었다. 멀리 어선이 보이긴 했지만 북한에 소속된것인지 남한에 소속된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보이지 않는 소속이라는것이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존재’ 한다는것과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그들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 이상으로 떼어놓고있다는 것만을 알수있었다. 바다와 산맥은 끝이 없었다. 나는 여지껏 실제로 바다를 구경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곳에선 방파제에 올라 정면을보면 무한한 바다요, 뒤돌아보면 장구한 산맥이 눈앞을 가득채웠다. 산과 바다의 거대하고도 무한한 존재감, 해와 구름의 너무나도 선명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색채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듯했지만 나는 알아들을수 없었다. 그것들은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고, 인간이 스스로 위로할 수 없는것들을 감당할만한 여유가 있는것같았지만 내겐 벅찬것들이었다. 겨울바다위에 오른 태양은 까닭없이 슬펐고, 거대한 산맥앞에서 내 몸은 움츠러들었다. 난 아직 이들과도 소통할수없었다. 제대하기전, 대기하는 몇일간 김훈의 ‘칼의노래’를 읽었다. 늦은밤까지 읽었다. 수백년전 영웅의 삶은 고독하고 버거웠으며, 말과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을 이야기 했다. 고통받고 슬퍼하는 인간의 맑은힘은 놀라운 집중력을 가진다는것을, 나는 알았다. 지금까지도 전쟁과 기아에 고통받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그동안 내가 나에게 베푼 관대함은 나를 민망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랑의 불가능, 인간의 불가능을 나는 정확히 인지 하지 못했다. 슬퍼하지도, 긍정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기만했다. 긍정했을때에 길이 보일듯했다. 이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법을 익혀야만했다. 두 번째로 읽었던 ‘현의노래’는 삼국과 가야가 공존했던 시절, 악사 우륵의 이야기였다. 오백년전의 세상과 천오백년전의 세상은 사람이 사람의 머리를 베고 창자를 뚫고 사지를 절단하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같았다. 세상은 지옥이었고 헛것이 판치는 세상이었다. 소리는 인간과 같았다. 소리는 울리는동안에만 소리이고 그 울림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악다구니를 부리거나 궁상을 떨어도 세상은 세상이고 인간은 인간이며 소리는 소리였다. 우리는 울림가운데서 적막을, 적막가운데서 울림을 그리워하며 계속찾아 헤맬 운명인듯했다. 나는 이것만큼 슬픈것을 본적이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이른 아침, 방파제에 올라 바라본 하늘과 태양은 아마도 그런 종류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이야기한다기보다 알고 있으면서 상관하지 않는자의 도도함인듯도 했다. 대진항에서 아침을 먹고 속초로 향했다. 속초에 사는 후배를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도착해서 후배를 기다리는 동안 동명항을 구경했다. 동명항은 동해안 큰도시의 항구다웠다. 규모가 컸고 한쪽에는 오래되서 운행할수 없는 거대한 유람선이 정박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많았고, 낚시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대진항이 한적하고 수수했다면 이곳은 활기차고 자신감이 넘쳤다. 바다는 무한감으로 환하게 빛났고 갈매기떼들이 여객선뒤를 쫓아 날았다. 후배를 만나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오후에 구름이 끼어 일몰을 보는것은 포기했다. 회와 소주를 시켜먹은뒤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전역하는날, 나는 새로시작하고싶었고 이제는 그무엇에도 거리낌없기를 바랬다. 새벽의 어촌과 태양이 빛나는 바다를보며 내 가슴이 좀더 넓어지기를, 산이나 바다처럼 무거우면서도 고요하기를 바랬다. 세상 모든것이 헛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어쩔수없는 슬픔이 있는 한편 벅찬 희망 또한 존재하는 세상이라는것을.. 긍정하면서 살길 바랬다. 오늘은 제대하고나서 처음으로 새벽에 잠이 깼다. 새벽은 정말 특별한 시간이다. 말과 글로 정확하게 표현할수는 없지만 이 시간은 (적어도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할수 있는시간이고 모든게 잘될것이라고 낙관할수있는 시간이다. 작게 소리내어 노래할수있는 시간이고 조용히 기도할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당신을 언제까지나 소중히 기억하길 바라고 당신에게 너무 집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목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고 현명하기를 바라고 우리가족들이 건강하기를 바라고.... 늘 소망하기를, 간절히 원하기를 바라고 마침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