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서른이 넘은 나이로 BoA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발표하는 앨범마다 차트를 휩쓸어 버리고,
폭발적인 춤과 뛰어난 라이브, 화려한 무대 매너까지 겸비한
이 시대 최고의 댄스 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가수를 좋아하겠는가.
물론, 처음부터 BoA를 열렬히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누구나 그랬듯, 나 역시 그 작았던 소녀가 이렇게 세상을 뒤집어 놓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 '꼬마 소녀', 세상에 등장하다
2000년 가을, 일병 휴가를 나와서 케이블TV를 통해 BoA를 처음 보았다.
만 13세의 소녀 가수. 작년 원더걸스의 소희나 선미보다 두 살이나 어렸던 나이다.
BoA는 데뷔곡 [ID:Peace B]로 인터넷을 통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BoA의 첫 인상은 SBS <스타킹>에나 출연했을 법한 '노래 잘하고 춤 잘추는 꼬마 소녀'에 불과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확실히 어려 보인다 -_-;;
그도 그럴 것이 2000년 가을 당시엔 4인조 '3인조' 여성 미소녀 그룹 핑클이 3집 앨범 [NOW]를 들고 나왔고,
군인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베이비복스도 후속곡 [배신]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파격 변신하며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으니
만 13살의 꼬마 소녀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고양이와의 에피소드를 다룬 후속곡 [Sara]역시 차트에서 큰 힘을 내지 못하고,
곧바로 1.5집 [Don't start now]를 발표했지만, 역시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1.5집 활동 당시 밀었던 교복 패션도 핑클의 후속곡 [Feel your love]의 패션과 겹쳤다.그 때만 해도 어린 소녀 하나가 가요계의 쓴 맛을 맛본채 조용히 사라질 줄로만 알았다.한국 활동이 여의치 않았던(실은 미리 계획돼 있던) BoA는 2001년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고,드디어 2002년 1월 엄청난 소식을 가지고 돌아 왔다.일본 진출 네 번째 싱글이었던 [Listen to my heart]가 당당히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이다!지금은 동방신기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가수들이 오리콘 차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당시만 해도 BoA의 오리콘 차트 정복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No.1]2. '꼬마 소녀', 정상에 오르다
당시 BoA의 패션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딱히 유행을 하진 않았지만 -_-;;;
국내에서 발표했던 데뷔 앨범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음에도 BoA는일본에서 얻은 후광 때문에
2집 앨범 컴백 당시 각종 가요 프로램에서 '스페셜 무대'를 보장 받았다.
그리고 1년 만에 돌아온 BoA는 인터넷 ID를 자랑하던 꼬마와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골반의 움직임을 강조했던 안무와 한층 안정된 라이브,
무대에서의 여유까지 되찾은 BoA는 단숨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BoA의 2집은 개인적으로 BoA가 발표한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음반이다.
타이틀곡 [NO1]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에 어울리는 깜찍한 노래 [My Sweetie],
BoA의 향상된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발라드 넘버 [늘]과 [My Genie],
타이틀곡으로도 손색이 없던 [난(Beat it!)]
보너스 트랙 [Listen to my heart]의 한국어 버젼까지
버릴 노래가 없을 만큼 꽉 찬 앨범이었다.
[NO.1] 의 대히트로 탄력을 받은 BoA는 일본에서
[VALENTI],[MIRACLE], [Jewel Song]으로 이어지는
싱글 3연타를 모두 히트시키며 오리콘 1위가 '반짝'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VALENTI]는 '가장 BoA스러운 노래'로 꼽힌다.
BoA는 2002년 한 해에만 일본에서 5장의 싱글 앨범과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국내에서도 한 장의 정규 앨범과 한 장의 스패셜 앨범을 선보이는 등
한·일 양국을 정복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BoA가 최고의 주가를 올리자 '제2의 BoA'를 꿈꾸며 다나, 조앤, 하늘 등 소녀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BoA는 이미 '넘볼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돼 있었고,
이들은 모두 '아류' 취급을 받은 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3. '꼬마 소녀', 여왕을 꿈꾸다
BoA의 거침없는 행보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5월에는 정확히 1년 만에 3집 앨범 [아틀란티스 소녀]로 또 한 번 국내 차트를 휩쓸었고,
일본에서도 [Shine we are], [Double], [Rock with you] 같은 싱글을 차례로 발표했다.
[아틀란티스소녀]에서 BoA는 오랜만에 국내 작곡가(황성제)와 작업하면서
여전사, 댄싱머신 이미지를 벗고 발랄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3년과 2004년은 BoA 말고도 많은 여가수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특히 채연, 채소연, 故 유니로 이어지는 섹시 여가수 트리오는
군바리들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들이 한결같이 선보였던 흐느적거리는 '섹시 웨이브'는 여가수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BoA는 2004년에 발표한 4집 [My name]을 통해서
마치 복제 인간처럼 똑같은 춤을 추던 여가수들을 한큐에 정리해 버린다.
BoA의 복근도 대략 이때서부터 -_-;;
BoA는 [My name]을 통해
Mnet,KM MUSIC VIDEO FESTIVAL(MMF) ‘최우수 작품상(대상)’과 12월 29일 2004 SBS 가요대전 최고인기상을 휩쓸었고,
파워풀한 [My name]의 안무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연예인들에 의해 패러디되고 있다.
BoA는 2005년에도 오랜만에 유영진과 손을 잡고 [Girls on top]을 발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2005년 7월 3일에는 '아시아 스타 BoA의 성공'이라는 제목으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했고,
그 달 23일엔 영국 BBC에서 '세계에 한국을 알릴 새 얼굴'로 BoA를 취재했으며,
그 해 11월 18일에는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 만찬에서 특별 공연을 하기도 했다.
4. 노력의 화신, BoA
이제 BoA를 '꼬마 소녀'라고 부르는 것은 큰 실례다.
많은 이들이 각 분야에서 재능있는 인재를 보면 '천재'라는 한 마디로 묶어 버린다.
사실 그 말은 대단한 칭찬같지만, 무대 뒤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그 말을 듣는다면 무척 슬플 것이다.
BoA가 지난 9년 동안 이뤄낸 성과는..
고등학교 진학까지 포기하면서 이룬 것이고,
평범한 10대 소녀의 생활을 포기하면서 이룬 것이며
일주일에도 서너번씩 현해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BoA는 '천재'보다는 '노력가'에 가깝다.
그 노력이 있었기에...
[ID:Peace B]를 부를 때만 해도 4분도 채 안되는 곡을 끝까지 완주해 내는 것도 힘들어 보이던 BoA가
이제는 수만명의 관객 앞에서 3시간짜리 단독 공연을 소화할 수 있는 '거물'이 됐고,
우리 말로 인터뷰하는 것도 수줍고 어색해 하던 꼬마 소녀가
이제는 영어, 일본어 인터뷰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경지가 됐다.
BoA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줬고,
그녀의 음악과 무대를 기다리는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해줬다.
이제 또 BoA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줄지는 알 수 없지만,
감히 그녀에게 딱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일본에서만 하는 콘서트를 국내에서도 '제발'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_-;;
그 날은 아마도,
소문으로는 존재하지만 그 실체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거대 점조직
'보삼협(보아를 사랑하는 30대 협회)'의 첫 번째 정모날이 될 것이다.
2007 03월~04월 “2007 MADE IN TWENTY(20)” 4개 도시 7회 일본 투어 콘서트 10월 06일 제1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 해외인기상 수상 10월 18일 2007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수상 11월 26일 일본 베스트 히트가요제 골드 아티스트상’(6년 연속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6년 연속 출연
2006 01월 25일 일본 쥬얼리 베스트 드레서 상 수상 05월 21일 제 59회 칸 국제 영화제 프리미어 행사 참석 09월~11월 ‘BoA The Live 2006’ 6개 도시 12회 일본 투어 콘서트 11월 30일 일본 1억 3천만이 뽑은 NTV 베스트 아티스트 공연 12월 02일 美 CNN ‘Talk Asia’ 방송 12월 31일 제48회 TNS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5년 연속 출연”
2005 04월 “BEST OF SOUL” 4개 도시 8회 일본 투어 콘서트 07월 03일 로이터 통신- ‘아시아 스타 BoA의 성공’ 특별 인터뷰 07월 28일 영국 BBC- ‘세계에 한국을 알릴 새 얼굴,BoA’ 특별 인터뷰 11월 18일 2005 APEC 정상 만찬 문화공연 특별 공연 11월 27일 M.net, Km Music Festival 여자 솔로가수상 수상 11월 30일 일본 1억 3천만이 뽑은 2005 베스트 아티스트 공연 12월 29일 SBS가요대전 본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전
2004 01월 31일 “love & honesty” United World Chart(유나이티드 월드차트) 1위 02월 28일 MTV 아시아 어워즈(MAA) 한ㆍ일 공동 대표 한국 최고 인기가수상(Favorite Artist Korea),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가수상(Most Influential Artist in Asia) 수상 03월~04월 “LOVE & HONESTY” 5개 도시 9회 일본 투어 콘서트 12월 01일 FNS 가요제 12월 04일 Mnet,KM MUSIC VIDEO FESTIVAL(MMF) ‘최우수 작품상(대상)’ 수상 12월 29일 2004 SBS 가요대전 최고인기상, 본상 수상 12월 31일 TNS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전
2003 03월 12일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 본상 수상 03월~04월 오사카, 나고야, 도쿄 총 6회 일본 투어 콘서트 05월 미국 공영방송 ‘PBS TV Korea: Hub of Asia' 출연 06월 07일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만찬회 공식 초청 08월 21일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공식 주제가 '함께 내일로' 개막식 열창 09월 06일 제30회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수상 11월 29일 일본 베스트 히트 가요제 2003 골드 아티스트 상 수상 12월 02일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12월 03일 FNS 가요제 12월 10일 KMTV 2003 Korea Music Awards 본상, 스페셜어너 수상 12월 11일 외신기자상 수상 12월 12일 대한민국 국회대상 수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상 본상 수상 12월 31일 MBC 10대 가수 가요제 본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전
2002 02월 8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1면 대서 특필 06월 01일 프랑스 르몽드지 기사 게재 08월 01일 SBSi 2002 상반기 네티즌 인기대상 여자솔로부문 09월 24일 제3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가수부문 포토제닉상 11월 29일 m.net Music Video Festival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댄스부문 최고 뮤직비디오상 수상 12월 05일 일본 후지 TV FNS가요제 인기가수상 수상 12월 06일 제13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수상 12월 13일 일본 유선대상 본상 수상 12월 28일 KMTV 2002 Korea Music Awards 본상, 모바일 뮤직상 수상 12월 29일 SBS가요대전 본상, 대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전 12월 31일 MBC 10대 가수가요제 본상
2001 03월 07일 일본 단독 Showcase 개최 - 벨파레 공연장
2000 11월 24일 M.net 2000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신인상 수상 12월 13일 2000 KMTV 가요대전 올해의 여자 신인상 수상
BoA - 세상을 뒤집은 꼬마소녀.
나는 BoA를 좋아한다.
그것도 꽤 많이 좋아한다.
대한민국에서 서른이 넘은 나이로 BoA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발표하는 앨범마다 차트를 휩쓸어 버리고,
폭발적인 춤과 뛰어난 라이브, 화려한 무대 매너까지 겸비한
이 시대 최고의 댄스 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가수를 좋아하겠는가.
물론, 처음부터 BoA를 열렬히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누구나 그랬듯, 나 역시 그 작았던 소녀가 이렇게 세상을 뒤집어 놓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 '꼬마 소녀', 세상에 등장하다
2000년 가을, 일병 휴가를 나와서 케이블TV를 통해 BoA를 처음 보았다.
만 13세의 소녀 가수. 작년 원더걸스의 소희나 선미보다 두 살이나 어렸던 나이다.
BoA는 데뷔곡 [ID:Peace B]로 인터넷을 통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BoA의 첫 인상은 SBS <스타킹>에나 출연했을 법한 '노래 잘하고 춤 잘추는 꼬마 소녀'에 불과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확실히 어려 보인다 -_-;;
그도 그럴 것이 2000년 가을 당시엔 4인조 '3인조' 여성 미소녀 그룹 핑클이 3집 앨범 [NOW]를 들고 나왔고,
군인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베이비복스도 후속곡 [배신]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파격 변신하며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으니
만 13살의 꼬마 소녀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고양이와의 에피소드를 다룬 후속곡 [Sara]역시 차트에서 큰 힘을 내지 못하고,
곧바로 1.5집 [Don't start now]를 발표했지만, 역시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1.5집 활동 당시 밀었던 교복 패션도 핑클의 후속곡 [Feel your love]의 패션과 겹쳤다.그 때만 해도 어린 소녀 하나가 가요계의 쓴 맛을 맛본채 조용히 사라질 줄로만 알았다.한국 활동이 여의치 않았던(실은 미리 계획돼 있던) BoA는 2001년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고,드디어 2002년 1월 엄청난 소식을 가지고 돌아 왔다.일본 진출 네 번째 싱글이었던 [Listen to my heart]가 당당히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이다!지금은 동방신기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가수들이 오리콘 차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당시만 해도 BoA의 오리콘 차트 정복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No.1]2. '꼬마 소녀', 정상에 오르다당시 BoA의 패션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딱히 유행을 하진 않았지만 -_-;;;
국내에서 발표했던 데뷔 앨범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음에도 BoA는일본에서 얻은 후광 때문에
2집 앨범 컴백 당시 각종 가요 프로램에서 '스페셜 무대'를 보장 받았다.
그리고 1년 만에 돌아온 BoA는 인터넷 ID를 자랑하던 꼬마와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골반의 움직임을 강조했던 안무와 한층 안정된 라이브,
무대에서의 여유까지 되찾은 BoA는 단숨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BoA의 2집은 개인적으로 BoA가 발표한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음반이다.
타이틀곡 [NO1]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에 어울리는 깜찍한 노래 [My Sweetie],
BoA의 향상된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발라드 넘버 [늘]과 [My Genie],
타이틀곡으로도 손색이 없던 [난(Beat it!)]
보너스 트랙 [Listen to my heart]의 한국어 버젼까지
버릴 노래가 없을 만큼 꽉 찬 앨범이었다.
[NO.1] 의 대히트로 탄력을 받은 BoA는 일본에서
[VALENTI],[MIRACLE], [Jewel Song]으로 이어지는
싱글 3연타를 모두 히트시키며 오리콘 1위가 '반짝'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VALENTI]는 '가장 BoA스러운 노래'로 꼽힌다.
BoA는 2002년 한 해에만 일본에서 5장의 싱글 앨범과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국내에서도 한 장의 정규 앨범과 한 장의 스패셜 앨범을 선보이는 등
한·일 양국을 정복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BoA가 최고의 주가를 올리자 '제2의 BoA'를 꿈꾸며 다나, 조앤, 하늘 등 소녀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BoA는 이미 '넘볼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돼 있었고,
이들은 모두 '아류' 취급을 받은 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3. '꼬마 소녀', 여왕을 꿈꾸다
BoA의 거침없는 행보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5월에는 정확히 1년 만에 3집 앨범 [아틀란티스 소녀]로 또 한 번 국내 차트를 휩쓸었고,
일본에서도 [Shine we are], [Double], [Rock with you] 같은 싱글을 차례로 발표했다.
[아틀란티스소녀]에서 BoA는 오랜만에 국내 작곡가(황성제)와 작업하면서
여전사, 댄싱머신 이미지를 벗고 발랄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3년과 2004년은 BoA 말고도 많은 여가수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특히 채연, 채소연, 故 유니로 이어지는 섹시 여가수 트리오는
군바리들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들이 한결같이 선보였던 흐느적거리는 '섹시 웨이브'는 여가수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BoA는 2004년에 발표한 4집 [My name]을 통해서
마치 복제 인간처럼 똑같은 춤을 추던 여가수들을 한큐에 정리해 버린다.
BoA의 복근도 대략 이때서부터 -_-;;
BoA는 [My name]을 통해
Mnet,KM MUSIC VIDEO FESTIVAL(MMF) ‘최우수 작품상(대상)’과
12월 29일 2004 SBS 가요대전 최고인기상을 휩쓸었고,
파워풀한 [My name]의 안무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연예인들에 의해 패러디되고 있다.
BoA는 2005년에도 오랜만에 유영진과 손을 잡고 [Girls on top]을 발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2005년 7월 3일에는 '아시아 스타 BoA의 성공'이라는 제목으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했고,
그 달 23일엔 영국 BBC에서 '세계에 한국을 알릴 새 얼굴'로 BoA를 취재했으며,
그 해 11월 18일에는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 만찬에서 특별 공연을 하기도 했다.
4. 노력의 화신, BoA
이제 BoA를 '꼬마 소녀'라고 부르는 것은 큰 실례다.
많은 이들이 각 분야에서 재능있는 인재를 보면 '천재'라는 한 마디로 묶어 버린다.
사실 그 말은 대단한 칭찬같지만, 무대 뒤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그 말을 듣는다면 무척 슬플 것이다.
BoA가 지난 9년 동안 이뤄낸 성과는..
고등학교 진학까지 포기하면서 이룬 것이고,
평범한 10대 소녀의 생활을 포기하면서 이룬 것이며
일주일에도 서너번씩 현해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BoA는 '천재'보다는 '노력가'에 가깝다.
그 노력이 있었기에...
[ID:Peace B]를 부를 때만 해도 4분도 채 안되는 곡을 끝까지 완주해 내는 것도 힘들어 보이던 BoA가
이제는 수만명의 관객 앞에서 3시간짜리 단독 공연을 소화할 수 있는 '거물'이 됐고,
우리 말로 인터뷰하는 것도 수줍고 어색해 하던 꼬마 소녀가
이제는 영어, 일본어 인터뷰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경지가 됐다.
BoA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줬고,
그녀의 음악과 무대를 기다리는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해줬다.
이제 또 BoA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줄지는 알 수 없지만,
감히 그녀에게 딱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일본에서만 하는 콘서트를 국내에서도 '제발'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_-;;
그 날은 아마도,
소문으로는 존재하지만 그 실체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거대 점조직
'보삼협(보아를 사랑하는 30대 협회)'의 첫 번째 정모날이 될 것이다.
2007
03월~04월 “2007 MADE IN TWENTY(20)” 4개 도시 7회 일본 투어 콘서트
10월 06일 제1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 해외인기상 수상
10월 18일 2007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수상
11월 26일 일본 베스트 히트가요제 골드 아티스트상’(6년 연속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6년 연속 출연
2006
01월 25일 일본 쥬얼리 베스트 드레서 상 수상
05월 21일 제 59회 칸 국제 영화제 프리미어 행사 참석
09월~11월 ‘BoA The Live 2006’ 6개 도시 12회 일본 투어 콘서트
11월 30일 일본 1억 3천만이 뽑은 NTV 베스트 아티스트 공연
12월 02일 美 CNN ‘Talk Asia’ 방송
12월 31일 제48회 TNS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5년 연속 출연”
2005
04월 “BEST OF SOUL” 4개 도시 8회 일본 투어 콘서트
07월 03일 로이터 통신- ‘아시아 스타 BoA의 성공’ 특별 인터뷰
07월 28일 영국 BBC- ‘세계에 한국을 알릴 새 얼굴,BoA’ 특별 인터뷰
11월 18일 2005 APEC 정상 만찬 문화공연 특별 공연
11월 27일 M.net, Km Music Festival 여자 솔로가수상 수상
11월 30일 일본 1억 3천만이 뽑은 2005 베스트 아티스트 공연
12월 29일 SBS가요대전 본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전
2004
01월 31일 “love & honesty” United World Chart(유나이티드 월드차트) 1위
02월 28일 MTV 아시아 어워즈(MAA) 한ㆍ일 공동 대표
한국 최고 인기가수상(Favorite Artist Korea),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가수상(Most Influential Artist in Asia) 수상
03월~04월 “LOVE & HONESTY” 5개 도시 9회 일본 투어 콘서트
12월 01일 FNS 가요제
12월 04일 Mnet,KM MUSIC VIDEO FESTIVAL(MMF) ‘최우수 작품상(대상)’ 수상
12월 29일 2004 SBS 가요대전 최고인기상, 본상 수상
12월 31일 TNS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전
2003
03월 12일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 본상 수상
03월~04월 오사카, 나고야, 도쿄 총 6회 일본 투어 콘서트
05월 미국 공영방송 ‘PBS TV Korea: Hub of Asia' 출연
06월 07일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만찬회 공식 초청
08월 21일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공식 주제가 '함께 내일로' 개막식 열창
09월 06일 제30회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수상
11월 29일 일본 베스트 히트 가요제 2003 골드 아티스트 상 수상
12월 02일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12월 03일 FNS 가요제
12월 10일 KMTV 2003 Korea Music Awards 본상, 스페셜어너 수상
12월 11일 외신기자상 수상
12월 12일 대한민국 국회대상 수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상 본상 수상
12월 31일 MBC 10대 가수 가요제 본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전
2002
02월 8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1면 대서 특필
06월 01일 프랑스 르몽드지 기사 게재
08월 01일 SBSi 2002 상반기 네티즌 인기대상 여자솔로부문
09월 24일 제3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가수부문 포토제닉상
11월 29일 m.net Music Video Festival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댄스부문 최고 뮤직비디오상 수상
12월 05일 일본 후지 TV FNS가요제 인기가수상 수상
12월 06일 제13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수상
12월 13일 일본 유선대상 본상 수상
12월 28일 KMTV 2002 Korea Music Awards 본상, 모바일 뮤직상 수상
12월 29일 SBS가요대전 본상, 대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수상
12월 31일 일본 NHK 홍백가합전 출전
12월 31일 MBC 10대 가수가요제 본상
2001
03월 07일 일본 단독 Showcase 개최 - 벨파레 공연장
2000
11월 24일 M.net 2000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신인상 수상
12월 13일 2000 KMTV 가요대전 올해의 여자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