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마지막 일요일 이른 새벽, 나는 탈주범 신창원의 마지막 공판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경찰을 따돌리고 절묘하게 도망다닐 때 그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마치 열광적인 스포츠 경기와도 같이 언론은 연일 그를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진정 한 인간으로서 절규하는 법정은 썰렁하기만 했다. 지난번 접견 때 구형을 앞둔 신창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내가 봐도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에요. 내가 저지른 죄만큼 오랜 고통과 반성이 있은 뒤에 용서받아야 마땅할 것 같아요." 이미 그는 무기수였다. 끝없는 회색의 세월을 감옥 안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아직 젊은 그에겐 그 세월이 너무 벅찰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신창원씨는 시와 수필을 좋아하잖아. 감옥 안에서 글을 써 봐요.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도 활짝 열린 마음을 글로 담아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징역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시인에게는 감옥의 담장은 이미 없는 거니까." 내 말을 듣고 난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청송교도소에도 책은 오천권이나 있어요. 책도 열심히 읽고 청소년들에게 내 과거를 얘기하고 나 같이 되지 말라고 편지도 쓸게요. 나 같은 놈도 다 할 일이 있네요."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엔 살고 싶다는 생각이 타오르는 듯했다. 부산법원 103호 법정, 넓은 법정 안은 썰렁했다. 이제는 기자도, 관심을 가진 시민들도 거의 없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먼저 공판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한 어조로 증거관계와 범죄전력, 탈주동기와 범행을 자세히 설명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피고인 신창원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성격이 비뚤어지고, 출소한 뒤에도 흉악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의 교도소 안에서의 기록을 보면 난동을 부려 징벌을 받는 등 선량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려는 흔적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피고인 신창원은 지금까지도 경찰과 정치인을 상대로 전쟁을 완수하지 못하여 후회스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교정당국에 문제가 있다고 일기장에 쓴 것들은 탈주범행을 합리화하려는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땅의 정의를 위해, 이런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피고인을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만이 적절한 국가 형벌권의 행사라고 봅니다."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진 검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피고인 신창원을 사형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의 구형이 끝나자 나는 변론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신창원이 소리쳤다. "변호사님! 차라리 아무런 변론도 하지 마세요. 그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순간 법정 안에 얼음장 같은 긴장이 맴돌았다. 검사석 판사석 등 요소요소에 배치된 날렵한 경교대 요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했다. "그래도 변론하세요." 재판장의 명령이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변론을 시작했다. "광주항쟁이 터질 무렵 열네 살의 신창원은 과수원에 가서 몰래 복숭아를 따다가 들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독재정권의 순화교육은 한 아이를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그의 전과만 보고 그를 흉악범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후배들이 이미 사람을 죽인 뒤에 현장에 합세한 바람에 억울하게 흉악범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가 청송 교도소 무기수 시절 고열과 통증을 호소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약이 아닌 처절한 매와 고문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희망마저 상실한 무기수에게 어쩌면 탈주는 자유를 그리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도피 도중 그는 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해치거나 생명을 빼앗지는 않았습니다. 그 동안 여러 날을 지켜본 변호인의 결론은 신창원 역시 가장 평범하고 싶은 보통의 인간이란 것입니다. 공소장에 그는 정치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엄청난 인간으로 묘사했지만 사실 그는 강아지 한 마리 죽이지 못할 사람입니다." 신창원이 원망스런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나에게 재판에서 절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했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변호사이므로 내가 본 진실은 밝혀야 하는 게 나의 의무였다. "피고인 신창원의 죄는 중형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춥고 고독한 생을 살아온 피고인에게 세상의 따뜻함과 법의 관용이 공평하게 비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론이 끝났다. 신창원에게 최후 진술의 기회가 주어졌다. 고해성사 같은 그의 과거가 흘러나왔다. 어린 시절 교도소 높은 철창에 수갑으로 채워져 대롱거리던 대목에서 그는 오열했다. 그에게 천사같이 대해주던 피해자들의 대한 참회와 감사의 말도 나왔다. 대통령의 아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현실과 천덕꾸러기로 철저히 소외된 자신에 대한 한도 터졌다. "저에게 조금의 인정도 주지 마시고 죽이세요. 사형선고 내려도 절대로 항소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변명도 동정 받을 가치도 없는 놈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신창원 알고 말하자
2000년 1월 마지막 일요일 이른 새벽, 나는 탈주범 신창원의 마지막 공판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경찰을 따돌리고 절묘하게 도망다닐 때 그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마치 열광적인 스포츠 경기와도 같이 언론은 연일 그를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진정 한 인간으로서 절규하는 법정은 썰렁하기만 했다. 지난번 접견 때 구형을 앞둔 신창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내가 봐도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에요. 내가 저지른 죄만큼 오랜 고통과 반성이 있은 뒤에 용서받아야 마땅할 것 같아요." 이미 그는 무기수였다. 끝없는 회색의 세월을 감옥 안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아직 젊은 그에겐 그 세월이 너무 벅찰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신창원씨는 시와 수필을 좋아하잖아. 감옥 안에서 글을 써 봐요.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도 활짝 열린 마음을 글로 담아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징역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시인에게는 감옥의 담장은 이미 없는 거니까." 내 말을 듣고 난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청송교도소에도 책은 오천권이나 있어요. 책도 열심히 읽고 청소년들에게 내 과거를 얘기하고 나 같이 되지 말라고 편지도 쓸게요. 나 같은 놈도 다 할 일이 있네요."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엔 살고 싶다는 생각이 타오르는 듯했다. 부산법원 103호 법정, 넓은 법정 안은 썰렁했다. 이제는 기자도, 관심을 가진 시민들도 거의 없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먼저 공판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한 어조로 증거관계와 범죄전력, 탈주동기와 범행을 자세히 설명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피고인 신창원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성격이 비뚤어지고, 출소한 뒤에도 흉악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의 교도소 안에서의 기록을 보면 난동을 부려 징벌을 받는 등 선량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려는 흔적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피고인 신창원은 지금까지도 경찰과 정치인을 상대로 전쟁을 완수하지 못하여 후회스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교정당국에 문제가 있다고 일기장에 쓴 것들은 탈주범행을 합리화하려는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땅의 정의를 위해, 이런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피고인을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만이 적절한 국가 형벌권의 행사라고 봅니다."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진 검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피고인 신창원을 사형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의 구형이 끝나자 나는 변론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신창원이 소리쳤다. "변호사님! 차라리 아무런 변론도 하지 마세요. 그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순간 법정 안에 얼음장 같은 긴장이 맴돌았다. 검사석 판사석 등 요소요소에 배치된 날렵한 경교대 요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했다. "그래도 변론하세요." 재판장의 명령이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변론을 시작했다. "광주항쟁이 터질 무렵 열네 살의 신창원은 과수원에 가서 몰래 복숭아를 따다가 들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독재정권의 순화교육은 한 아이를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그의 전과만 보고 그를 흉악범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후배들이 이미 사람을 죽인 뒤에 현장에 합세한 바람에 억울하게 흉악범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가 청송 교도소 무기수 시절 고열과 통증을 호소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약이 아닌 처절한 매와 고문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희망마저 상실한 무기수에게 어쩌면 탈주는 자유를 그리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도피 도중 그는 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해치거나 생명을 빼앗지는 않았습니다. 그 동안 여러 날을 지켜본 변호인의 결론은 신창원 역시 가장 평범하고 싶은 보통의 인간이란 것입니다. 공소장에 그는 정치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엄청난 인간으로 묘사했지만 사실 그는 강아지 한 마리 죽이지 못할 사람입니다." 신창원이 원망스런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나에게 재판에서 절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했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변호사이므로 내가 본 진실은 밝혀야 하는 게 나의 의무였다. "피고인 신창원의 죄는 중형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춥고 고독한 생을 살아온 피고인에게 세상의 따뜻함과 법의 관용이 공평하게 비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론이 끝났다. 신창원에게 최후 진술의 기회가 주어졌다. 고해성사 같은 그의 과거가 흘러나왔다. 어린 시절 교도소 높은 철창에 수갑으로 채워져 대롱거리던 대목에서 그는 오열했다. 그에게 천사같이 대해주던 피해자들의 대한 참회와 감사의 말도 나왔다. 대통령의 아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현실과 천덕꾸러기로 철저히 소외된 자신에 대한 한도 터졌다. "저에게 조금의 인정도 주지 마시고 죽이세요. 사형선고 내려도 절대로 항소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변명도 동정 받을 가치도 없는 놈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 엄상익 변호사 칼럼中 -
PS.신창원이란 인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거 같아서 이렇게 올립니다.
알고 떠드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