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3월 ,고3 때 전체학생의 직접 투표로 대대장(학생회 부위원 장 겸임)에 당당히 당선되었을 때
*1959년 3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합격했을 때.
*1963년 3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동양사 전공]에 합격 했을 때. 더욱 기뻣던 것은 나 한사람만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1963년 4월, 영등포여고에 발령 받아 선생님이 되었을 때.
*1964년10월, 그이[김종원교수]와 약혼하고 이듬해 봄 그와 결혼 했을 때.
*1965년 12월, 큰딸 문희를 낳았을 때.
*1967년 10월, 큰 아들 형욱이를 낳았을 때.
*1969년12월, 그이가 한양대학교에 전임교수가 되었을 때.
*1971년 5월, 작은 아들 형열이를 낳았을 때.
*1975년 3월, 출산과 육아로 수년간의 휴직 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시 재발령을 받았을 때.
*1978년 3월, 한양대학교 시간 강사가 되었을 때.
*198ㅇ년, 부산으로 이사와 부산대학교 시간강사가 되었을 때.
*1981년 3월, 동의대학교 전임교수 발령을 받았을 때.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정식 교수가 되었다.
*1983년 8월, 그이가 서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1986년 10월,지금 사는 연산9동의 42평짜리 한양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처음으로 넓은 집에 살게 된 기쁨.
*1991년 1월, 큰딸 문희 시집 보냈을 때. 시원섭섭함 과 기쁨의 혼합. 아빠는 딸을 보내며 울었다.
[사위 조철우는 국립대학 공대교수였음.]
*1992년 그이가 교수들의 투표로 인문대 학장에 선임 되었을 때
*1992년 5월, 첫 손녀 성연이가 영국에서 태어났을 때.
*1993년 8월, 나자신이 53살의 늦깍기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1986년에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8년만에 받았다(53세)
*1994년, 첫 외손자 성훈이가 태어났을 때. 4.5키로그램의 미남자였다. 사위가 외동이니까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사명을 완수한 셈이다.
*1995년 1월, 큰아들 형욱이를 지연이와 결혼시켰을 때.
*1997년, 나의 첫 책 [송경령연구]가 일조각 출판사에서 처음으 로 출판 되었을 때. 그리고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기쁨을 배가 시켰다.
*1999년 1월, 둘째 아들 형열이를 광자와 결혼시켰을 때.
이제 세 아이의 짝을 다 맞추었으니 부모 할 일은 다 하다...
*1999년 그이의 책 [근세 동아시아관계사 연구]가 혜안출판사에서
출판되어 높이 평가되었을 때. 그이는 이해 8월에 정년퇴임을 했다.
*2000년, [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 (상.하) 이 장기간 번역의 노력끝에 한울출판사에서 출판되었을 때.
*2001년 3월, 결혼 후 각고의 노력 끝에 결혼 6년만에 친손자 준이가 미국에서 태어났을 때. 제왕절개로 태어난 준이도 4.5kg이나 되는 미남자였다. 그 해 우리 부부의 미국 방문은 기쁨이 넘쳐 흘렀다.
*2002년 6월, 친손녀 채은이가 태어났을 때. 그날은 피파대회에서 우리나라가 핀란드에게 이긴 환희의 날이었다.
*2004년 6월, 친손녀 민이가 미국에서 태어났을 때. 준이 한명으로 체념하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민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송미령 평전]이 번역 출판 된 기쁨도 함께..
*2005년 5월, 큰 아들 형욱이가 7 년간의 노력 끝에 미국의 카네기 맬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드디어 랜스레어공과대학 [R.P.I.]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하였으며.... 또한 삼성에 스카웃 되어 귀국한 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과장 3년차로 취직되어 근무하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5월 23일 금의환향한 큰 아들네 식구를 공항에서 맞이하던 날의 기쁨. 네 식구의 아름다운 모습....
*2006년 3월 둘째 아들 형열이가 중국 남경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던 날.
* 2006년 3월 둘째 아들 형열이와 함께 번역한 책 [주은래와 등영초]가 출판된 후 곧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가 된 일.
*2006년 9월 둘째 아들이 대학 에서 전임 발령을 받던 날.
*12월 말 나의 교직생활 36년을 마감하는 ...가족들의 축하 모임을 다 함께 가진 날.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2006년 8월에 정년 퇴임을 했다. 그이가 퇴직한 지 7년 후다.
2006년 12월 그간 4년간이나 맡아서 일해 왔던 중국사학회 회장직을
퇴임하던 날. 충북대 전순동교수에게 넘겨주면서 정말 보람되고 시원한 마음을 간직한채 주관했던 5회에 걸친 국제학술대회를 회상했다.
중국사학회 발전에 일조할 수 있었음을 기뻐하면서...
*2007년 5월 큰 아들이 삼성전자 제품이 미국에서 클레임 걸린 사건을 직접 가서 잘 해결하고 돌아와 회사 내외의 칭찬을 받던 날. 힘들게 외국유학시켜 공부시킨 큰 보람이 가슴에 가득한 날이었다.
엄마, 아빠는 외국 유학하고 싶었으나 못했고 외국어를 내 나라 말처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하는데, 두 아들 그리고 사위, 딸, 며느리들은 모두 영어와 중국어를 내 나라말처럼 구사하니 기쁘고 대견하다.
이제 곧 외동 딸 문희가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나의 기쁨은 그 정점에 이른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최소한 6명은 나오니까...
그이, 나, 큰 아들, 둘째 아들, 사위, 딸 이렇게 6명이다.
***대부분의 기쁨이 만남, 출산, 학위취득, 취직, 업적의 출판 등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집안이니까]***
[내가 살아 오면서 기뻣던 날들...]
1994년도 중국 절강성 소흥현 난정에서
[내가 살아 오면서 기뻣던 날들...]
* 1953년 3월, 국가고시를 거쳐 경남여중에 3등으로 합격하였을 때.
* 1958년3월 ,고3 때 전체학생의 직접 투표로 대대장(학생회 부위원 장 겸임)에 당당히 당선되었을 때
*1959년 3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합격했을 때.
*1963년 3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동양사 전공]에 합격 했을 때. 더욱 기뻣던 것은 나 한사람만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1963년 4월, 영등포여고에 발령 받아 선생님이 되었을 때.
*1964년10월, 그이[김종원교수]와 약혼하고 이듬해 봄 그와 결혼 했을 때.
*1965년 12월, 큰딸 문희를 낳았을 때.
*1967년 10월, 큰 아들 형욱이를 낳았을 때.
*1969년12월, 그이가 한양대학교에 전임교수가 되었을 때.
*1971년 5월, 작은 아들 형열이를 낳았을 때.
*1975년 3월, 출산과 육아로 수년간의 휴직 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시 재발령을 받았을 때.
*1978년 3월, 한양대학교 시간 강사가 되었을 때.
*198ㅇ년, 부산으로 이사와 부산대학교 시간강사가 되었을 때.
*1981년 3월, 동의대학교 전임교수 발령을 받았을 때.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정식 교수가 되었다.
*1983년 8월, 그이가 서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1986년 10월,지금 사는 연산9동의 42평짜리 한양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처음으로 넓은 집에 살게 된 기쁨.
*1991년 1월, 큰딸 문희 시집 보냈을 때.
시원섭섭함 과 기쁨의 혼합. 아빠는 딸을 보내며 울었다.
[사위 조철우는 국립대학 공대교수였음.]
*1992년 그이가 교수들의 투표로 인문대 학장에 선임 되었을 때
*1992년 5월, 첫 손녀 성연이가 영국에서 태어났을 때.
*1993년 8월, 나자신이 53살의 늦깍기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1986년에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8년만에 받았다(53세)
*1994년, 첫 외손자 성훈이가 태어났을 때. 4.5키로그램의 미남자였다. 사위가 외동이니까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사명을 완수한 셈이다.
*1995년 1월, 큰아들 형욱이를 지연이와 결혼시켰을 때.
*1997년, 나의 첫 책 [송경령연구]가 일조각 출판사에서 처음으 로 출판 되었을 때. 그리고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기쁨을 배가 시켰다.
*1999년 1월, 둘째 아들 형열이를 광자와 결혼시켰을 때.
이제 세 아이의 짝을 다 맞추었으니 부모 할 일은 다 하다...
*1999년 그이의 책 [근세 동아시아관계사 연구]가 혜안출판사에서
출판되어 높이 평가되었을 때. 그이는 이해 8월에 정년퇴임을 했다.
*2000년, [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 (상.하) 이 장기간 번역의 노력끝에 한울출판사에서 출판되었을 때.
*2001년 3월, 결혼 후 각고의 노력 끝에 결혼 6년만에 친손자 준이가 미국에서 태어났을 때. 제왕절개로 태어난 준이도 4.5kg이나 되는 미남자였다. 그 해 우리 부부의 미국 방문은 기쁨이 넘쳐 흘렀다.
*2002년 6월, 친손녀 채은이가 태어났을 때. 그날은 피파대회에서 우리나라가 핀란드에게 이긴 환희의 날이었다.
*2004년 6월, 친손녀 민이가 미국에서 태어났을 때. 준이 한명으로 체념하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민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송미령 평전]이 번역 출판 된 기쁨도 함께..
*2005년 5월, 큰 아들 형욱이가 7 년간의 노력 끝에 미국의 카네기 맬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드디어 랜스레어공과대학 [R.P.I.]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하였으며....
또한 삼성에 스카웃 되어 귀국한 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과장 3년차로 취직되어 근무하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5월 23일 금의환향한 큰 아들네 식구를 공항에서 맞이하던 날의 기쁨. 네 식구의 아름다운 모습....
*2006년 3월 둘째 아들 형열이가 중국 남경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던 날.
* 2006년 3월 둘째 아들 형열이와 함께 번역한 책 [주은래와 등영초]가 출판된 후 곧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가 된 일.
*2006년 9월 둘째 아들이 대학 에서 전임 발령을 받던 날.
*12월 말 나의 교직생활 36년을 마감하는 ...가족들의 축하 모임을 다 함께 가진 날.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2006년 8월에 정년 퇴임을 했다. 그이가 퇴직한 지 7년 후다.
2006년 12월 그간 4년간이나 맡아서 일해 왔던 중국사학회 회장직을
퇴임하던 날. 충북대 전순동교수에게 넘겨주면서 정말 보람되고 시원한 마음을 간직한채 주관했던 5회에 걸친 국제학술대회를 회상했다.
중국사학회 발전에 일조할 수 있었음을 기뻐하면서...
*2007년 5월 큰 아들이 삼성전자 제품이 미국에서 클레임 걸린 사건을 직접 가서 잘 해결하고 돌아와 회사 내외의 칭찬을 받던 날. 힘들게 외국유학시켜 공부시킨 큰 보람이 가슴에 가득한 날이었다.
엄마, 아빠는 외국 유학하고 싶었으나 못했고 외국어를 내 나라 말처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하는데, 두 아들 그리고 사위, 딸, 며느리들은 모두 영어와 중국어를 내 나라말처럼 구사하니 기쁘고 대견하다.
이제 곧 외동 딸 문희가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나의 기쁨은 그 정점에 이른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최소한 6명은 나오니까...
그이, 나, 큰 아들, 둘째 아들, 사위, 딸 이렇게 6명이다.
***대부분의 기쁨이 만남, 출산, 학위취득, 취직, 업적의 출판 등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집안이니까]***
작은 아들, 엄마, 아빠, 큰 아들. 사위와 딸이 빠져있다.
2005년도 가족 사진
2007년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