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지진.. 죽음앞에서도 가치를 실현한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김윤호200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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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다가 오늘도 눈물을 흘렸다.
요즘 세상이 눈물날 일이 유독 많은것인지, 나의 눈물이 유독 많아진 탓인지..
정말 쉬지 않고 나의 마음을 자극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오늘의 자극은 중국의 이야기였다.

지난날 우리나라 지하철 방화사건때나 미국의 9.11, 그 외의 여러 사건들때처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서로를 돕고 희생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고, 슬프고..
나이와 기존의 연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희생하는 모습들은 아름답다고 보여지기까지 하였다.

이럴때마다 항시 나는 나를 돌이켜본다.
쓸대없는 망상일지는 모르나
과연 내가 저 자리, 저 분의 입장이 되었으면 어떻게 하였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예전 이야기를 하나 해본다.
언젠가 훈련소에서 우리 소대 20명이 마셔야할 양의 물을 한 동기가 혼자 거의다 마셔버린적이 있었다.
여름군번이라 30~40도를 넘나드는 더위속에서 모두들 목말라 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그 행동은 나의 자제력을 잃게하기에 충분하였는데,
그래도 나는 분대장으로써 침착을 유지하며 그 친구를 불러 대화를 하려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아하면서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너는 진짜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전우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 나는 못해. 난 도망갈꺼야."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남 생각할 겨를 없이 내가 목마르니까 물을 양껏 마셨다는 이기적인 발언인 셈인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이기적이었던 그 발언에 대해 나는 아무 답을 달지 않았다.
이미 없어진 물 무엇하냐.. 그리고 그렇게 이기적인 친구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하나 싶어서..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이기적인 친구의 변명같던 그 질문은 이후에도 몇차례나 내 기억속에서 맴돌았고, 그렇게 마주할때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진실되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노력했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아니 특별한 공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는 역사속의 성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럴때도 나는 같은 류의 질문과 마주한다. 나도 그들처럼 목숨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지나온 세월동안, 나는 그래서 목숨에 연연해 하지 않기를 무의식적으로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시절들과는 오늘날의 환경은 많이 달라 그러기가 쉽지 않을테지만 저렇게 중국의 지진처럼 나에게도 그 질문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꼭 현실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항상 말해왔듯이 학문은 실천에 가치가 있는것이기에,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를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까닭의 무의식적속의 노력..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상황은 닥쳐보지 않으면 모르는것이기에, 나는 지금의 나에 만족을 하면 안되고 더 노력해야한다.


그리고 그러므로 이미 그러한 가치를 실현한 저 지하철 방화사건때의 성인들이나, 9.11때의 성인들이나 오늘날의 중국의 성인들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정리하며,
생각해보면 자연이라는것은 정말로 무섭지.
저렇게 함부로 자신들을 다루면 어떻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그리고 또한 중국이 이번 일을 어떻게 헤쳐나가든,
이번이 계기가 되어 사람의 생사에 대해 한번 돌아볼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결국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리고 또 죽음앞에서는 인종이라는것도 아무 의미없는데..
넓은 의미로 중국안에서 탄압을 당하는 소수 민족들에 대해서도 더 크게 생각할수 있는..
그런 계기.

 

 

 

더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지를 않길 바라며..
그리고 앞으로의 기사에 더이상 이런 안타까운 기사가 실리지 않길 바라며.. 오늘의 울음을 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