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박대근20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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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우왕~예전에 샀었던 뉴스메이커 (558호.2004.1.22~29 설 합본호)라는 잡지를 살펴보다가 눈에 확!!띄는 내용을 발견했다눈~!!+_+


우리 명박각하께서 서울시장으로 계실적에 간도 되찾기 캠페인에 적극협력하시겠다면서 인터뷰하신 내용이~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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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이명박 서울시장의 간도영유권론..."<뉴스메이커> 간도 되찾기 캠페인 적극 협력"


 


"간도가 조선땅이니까 일본이 중국에 양도한다고 협약한 것 아닌가요? 또한 조선인의 간도 이주는 요즈음의 이민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1987년,'건설의 신화' 이명박 서울시장이 한 TV 방송에 출연, 간도까지 포함한 한국전도(全圖)를 앞에 두고 강연을 했다. 주제는 '간도의 역사성'이다. 아니 간도의 영토주권을 역설하는 연설이었다.


"경제와 국방은 국제협력의 문제지만 영토는 배타적, 즉 타협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이 시장을 1월 9일 서울시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15년 전과 똑같은 얘기를 했다. "역사와 영토는 주체의식의 문제입니다"라고.


 그는 곧 간도 문제에 관한 국제적 여론 환기를 위해 국제심포지엄을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간도 고토 회복을 위해 <뉴스메이커>와 협조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간도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1980년대 후반 사업차 중국 동북 3성과 구소련 연해주 등에 나들이가 잦았습니다. 그때 '간도가 역사적으로 누구의 영향력 아래 있는 땅이냐'는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역사학자도 만나고 TV에 출연하는 등 간도영토권에 관한 여론을 환기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뉴스케이커>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데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1980년대 당시 간도 문제와 관련해 강조했던 점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입니다. 우선 간도가 조선의 영토가 아니라면 일본과 중국이 굳이 간도협약을 맺어 영토조약을 체결했껬느냐는 것이지요. 이는 간도협약이 국제법적 효력이 있느냐는 문제에 앞선 것입니다. 조선땅이니깐 일본이 양도한다고 협약 한 것 아닌가요? 둘째, 조선인의 간도 이주는 현대의 이민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조선인이 기근을 피해 이주, 간도를 개간했다는 것은 중국의 주장일 뿐입니다. 이것은 1800년대 후반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인의 간도 거주는 '기근의 역사' 이전에 있던 문제입니다. 조선인이 1,500년 전부터 간도에 살아왔다는 역사적 증거는 많습니다."


 


간도 문제를 포함한 우리 역사가 중국의 영향력 때문에 왜곡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만일 중국의 의도대로 된다면 우리나라는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남북 갈등은 확산되고 남한 내부에서도 내홍에 빠져 개방화 시대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개방화란 단지 기업과 상품 진출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와 역사도 개방화에 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상품 가운에 하나입니다. 이런 문제는 국가와 정부가 앞장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기업만 해외에 나간다고(개방화에 적절한 대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도 적극 나설 생각입니다. 만일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면 간도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도 중국의 영토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중국에서는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중앙정부에서는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흔들리는 서울을 지켜야 합니다."


 


서울시의 대응방안은 무엇인지요.


 


"간도 고토(故土) 회복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검토 중입니다. 한국,북한,중국,미국,러시아 등 세계의 사학자가 참여하는 간도국제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역사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고구려 고분은 북한의 요청대로 유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적으로 등재돼야 합니다. 세계문화유적은 1국 1문화재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서울의 고구려 역사 유적을 적극 발굴해서 고구려 역사가 한민족의 역사임을 알릴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서울 아차산 일대 보루군(群)을 북한의 고구려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고구려 의 중국 역사 편입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민족과 한민족 전체가 고구려 역사라는 사실을 세계에 확인시키게 될 것입니다. 남북이 함께 협력해 고구려 역사를 지켜낼 수 있다면 통일 시대를 앞두고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뉴스메이커>가 간도 되찾기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게 결정되지 않았습니다만 누구든지 간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나선다면 당연히 서울시도 적극적으로 협력 할 것입니다."


 


정부는 고구려 역사왜곡 문제조차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한반도 문제와 관련 중국의 영향력과 역할이 너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정면대결을 피하고 싶겠죠. 그러나 역사와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닙니다. 독도 문제가 어떻게 됐습니까. 역사와 영토는 국가적 중요이슈입니다. 주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는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역사와 영토 문제는 뚜혓한 입장을 갖는 게 주체입니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학계에서 앞장서달라'는 요지의 말을 했더군요. 충격을 받았습니다. 중국은 남북통일 이후 한-중관계를 고려한 장기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중국은 '민간의 나라'가 아니라 '정부의 나라'입니다. 우리 정부는 너무 소홀히 대처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북한도 한국 정부에서 간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제기하길 기대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남북공동의 문제입니다. 남한은 북한에 미루고 북한은 남한에 미룬다면 역사는 왜곡되고 영토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계에 하고 싶은 주문도 있을텐데요.


 


"역사학계에서는 중국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관련 연구자를 집결시키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북한과 공조해 함께 연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경우 역사적 논란이 있는 부분은 공동집필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고 역사왜곡 시비를 피해가고 있습니다. 독일과 폴란드, 독일과 오스트리아-스위스, 독일과 프랑스 등이 역사교과서를 공동집필했듯이 우리도 '한중역사공동위원회'같은 상시적인 협의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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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시던 분이 어쩌다 지금은  정신줄 놓친 짓거리만 하시는거임??ㄷㄷㄷㄷ;


 


보너스로 간도에 관한 몇가지 자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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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1881년 청 길림장군(吉林將軍) 명안(銘安)의 명령을 받은 지부(知



府) 이금용(李金鏞)은 황무지를 답사하다가 중국인이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에 조선인이 이미 8구(區) 8,000여상에 달하는 땅을 개간하



였고 함경도 자사(刺史)가 지권을 발급하고 등록하여 그 지역을 조



선령으로 간주한 것을 발견하였다.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일본의 대표적인 간도문제 연구자인 나이토 코지로(內藤虎次郞)는


〈한국동북강계고략(韓國東北疆界攷略)〉(1906년)에 명-청시대 이



전에도 조-청이 간도지역을 둘러싼 국경문제로 갈등을 빚었다고 썼



다. 또 조선 세종 때 김종서가 두만강 주변에 4진을 설치하고, 1433



년에 6진을 지켜서 완전히 고토를 회복하고 두만강 동북에 거주하



는 야인 여진은 조선 영토인 간도지역에 내속했으며, 간도지방도


 


조선인이 청국인보다 먼저 개척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간도지역이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간도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통치는 조선보다 늦었음은 중국의 〈광서조동화록〉 등


 


에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근대의 변경문제만 고려한다 해도 실질


 


적인 행정권을 먼저 행사한 쪽이 영토 주권을 가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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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죠]★


 1824년 9월 9일 순조 24년 로마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조선교구 제정

여기 올린 사진은 조선말 바티칸에서 인정한 조선의 교구입니다.
1909년 일본이 강제적으로 체결한 간도협약 문제만 보더라도 일본에서조차 이 지역을 우리 영토로 인정하고 청과 협약을 맺은것을 알 수 있습니다.일제 때 일본 정보부나 일본 육군이 작성한 지도들도 북간도를 조선 영역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1952년 체결한 중-일 평화조약에서도 양국은 분명 1941년12월9일 이전 체결한 모든 조약 협약 및 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65년에도 일본은 우리를 대신해 일본이 체결한 협정을 모두 무효로 한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