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입은 진중권

이상호200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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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욜에 큰 마음 먹고 소고기 집회 현장으로 갔다.

소고기 집회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날 뉴스에서 말하길 1만명이 왔다고 한다.

거기서 진보신당의 일원으로 나온 진중권을 봤다.

솔직히 진중권을 보고 많이 놀랐는데, 그것은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개인적인 존경과는

거리가 있는 놀라움이었다.

그는 진보신당의 일원으로 그 집회에 참여하였는데,

같이 진보신당의 일원으로 참여한 학생들과 한 자리에 있었다.

내가 보고 놀란 것은 그 학생들과 진중권이 연출하는 자연스러움이었다.

그 자연스러움 속에는 권위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었고, 진중권이 토론회나 글에서 보여주는

시니컬한 모습 또한 찾아 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는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 아래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난 가끔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참 대단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여러 토론회나 글에서 보여주는 그의

역량은 자타 공인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대단함은 바로 그의 부지런함을 말한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이나 겁 많은 지식인들은 저리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 나는 진중권의 저 대단한 활동력의 원동력이 바로 저와 같은 현실과의 소통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소통은 단지 소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통을 하게 되면 그것을 통해 뭔가 생각하게 되고

좀 더 용기가 있다면 행동하게 된다. 물론 이 소통은 단순 커뮤니케이션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소통은 그 대상을 여러개로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 대단한 활동을 하는 좋아하는 선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강준만이다. 그러나 난

 강준만에게 좀 답답함과 섭섭함을 느낀다.

섭섭함을 느낀다고 말했으니 그리 좋은 말들이 다음 구절에 이어지지 않을 테지만, 난 솔직히 내가 이런 말을 할 수나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 마저 느낀다. 말 그대로 "주제에~ 무슨"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거다.

그러나 적어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건 강준만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나의 그 무엇의 기대는 그가 만들어 냈다.

 강준만은 2008년 1월 한겨레 21에서 자신은 "때가 되면 다시 말을 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욕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쓰고 있다.

강준만이 한겨레 21에서 저와 같이 말한 것은 그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태도 변화에 기인한다.

강준만은 표현이야 어쨌든 이 정부를 지지했었다.

그러나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기점으로 그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분명히 내가 밝혀 두고 싶은 건 나는 그의 태도 변화에 대해 비판하는 게 아니다.

 탄핵 역풍으로 열린 우리당의 엄청난 지지가 시작되고 나서도 실패한 여러 사안들이 한 기대에 찬 지식인이기 전에 시민이었던 그에게 많은 실망으로 다가왔음은 두말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태도 변화는 배신이라기 보단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당연한 귀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밝힌 대로 내가 그에게 느끼는 답답함은 바로 그가 이 과정에서 무엇을 하나 빠뜨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무엇을 빠뜨렸는지 잘 모르겠으나 그는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까닭은 그가 얼마전 내놓은 한국 근대사 산책으로 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내가 당시 든 느낌은 '뜬금없다' 였다  그러나 이 뜬금없는 이라는 말은 그의 현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이 한국 근대사 산책 때문에 그에게 답답함이 아니라 이제 섭섭함을 느낀다.

 현 정부에서 자신의 발언이 좀 애매해 질 수 있겠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리 하지 않음에 대한 섭섭함이다. 입장 표명을 기대하기 때문에 섭섭하다는 말은 그에게 어떤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이 과거 보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그의 기대 그리고 그 기대 만큼의 실망이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커다란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의한 개혁은 혁명이 아닌 이상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