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이어도 상관없어, 쿨하게 한걸음씩... <쿨하게 한걸음>

백혁현200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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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세살이 되고 보니 서른세살이라는 나이는 많지도 적지도 않고, 애인이 있거나 없거나, 결혼을 했거나 안했거나,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직업이 있거나 없거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거나 없거나, 있었는데 모호해졌거나 없었는데 생겼거나, 행복하거나 불안하거나 그럭저럭 살 만하거나, 혹은 그것들의 혼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서른세살을 떠올린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와 직업은 없고 미래에 대한 확신은 애시당초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살만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출근하는 아내가 밥상에 놓아둔 용돈을 곁눈질하며 잠에서 깨어나고, 탄천길에서 자전거로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고, 낚시꾼들에게 말참견을 하다가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오고, 함께 저녁을 먹고 나면 뒹굴뒹굴 낮동안 다 읽지 못한 책이나 마저 읽던...

 

  이렇게 돌이켜보니 소설 속 주인공인 연수, 남자 친구 K와 크리스마스를 앞둔 채 헤어지고 직장은 없고 영화 평론가를 하겠다며 학교 도서관과 지역 도서관을 전전하는 연수의 서른세살과 나의 서른세살이 크게 비껴나있지 않은 듯하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나마 영화 평론가가 되겠다며 도서관을 향하여 열심히 출퇴근하는 연수의 서른세살이 나의 서른세살에 비하면 타이트하지 않은가...

 

  “... 다들 왜 이러실까. 지수는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제보하고, 고모는 줄기차게 전화를 걸어서 연재를 가보라고 하더니 이제는 이모가 하나를 데리고 와서 부탁한다...”

 

  사실 어딘가 띄엄띄엄 한 것처럼 보이는 연수의 서른셋이 그렇게 녹록하기만 한 것은 또 아니다. 정년퇴임 후 사추기를 겪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몰래 흘리는 눈물을 몰래 바라봐야 하는 딸이 되어야 하기도 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자신의 딸의 산후 우울증 치료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고모가 있는가 하면, 잠시 들른 이모의 사춘기 맞이한 딸과 쇼핑도 해야 하고, 미혼과 기혼으로 그리고 애딸린과 애딸리지 않은으로 나뉜 친구들과 속사정들을 나눠야 하고, 도서관에서 만난 대학 동창 남자애와 함께 공부를 하고 밥을 먹다 그의 좋지 않은 결말에 눈물도 흘려야 하는 것이다.

 

  “... 사실 알고 보면 세상은 웬디들의 것이다. 네버랜드가 피터 팬의 것이듯이. 이곳에 살면서 언제까지나 네버랜드를 그리워할 수는 없다. 피터 팬과 네버랜드에 갔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채 얼마나 더 멋진 웬디로 성숙해가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나는 멋진 웬디의 탄생을 축복해주기로 했다.”

 

  이처럼 조금은 아둔해 보이고 요령 없어 보이는 서른세살의 젊은 여성의 일상을 작가는, 짐짓 점잔빼지 않고 ‘쿨하게’ 들여다본다. (그러고보니 나의 서른셋 즈음에 들른 점집에서 난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역학자의 진단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다지 멋부리지 않은 문장은, 그다지 문학적인 멋을 부리지 않는 일상 속의 인물을 표현하는 것에 적절에 보이기까지 하다.

 

  저 멀리 서구에서 ‘칙릿(chic-lit)’이라 불리우며 (우리나라에서는 ‘꽃띠문학’으로 부르길 요구하는 듯하지만) 유행하는 장르가 우리 나라에서도 자리를 잡아가려는 듯한 느낌이랄까. (서유미의 글과 함께 세계 문학상을 받은 백영옥의 『스타일』, 박주영의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도 이 범주에 속하지 않나 싶다) 마냥 가볍고 혹은 철없어 보이는 이런 소설이 창비장편소설상의 수상작이라는 것이 좀 의아하기는 하지만 그게 또한 당대성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있다. 중고생대들이 자신의 사회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도심으로 달려드는 것을 십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한 맘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