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부여 박물관

이창석200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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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부여 박물관

■ 백제금동대향로


• 소 재 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 지정번호 : 국보 제287호

 

 

1993년 12월 12일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하여 백제 나성(羅城)과 능산리고분군 사이 논바닥 제3건물지 중앙칸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출토된 이 향로는 금동광배편 등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수습되었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경이적인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이 향로는 중국 한대<漢代>에 유행한 박산로<博山爐>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는 달리 산들이 독립적․입체적이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세부표현에 생동감이 넘쳐흐르는 이 향로는 제조기법 또한 뛰어나며,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인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케 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라 하겠다.

 

 

 

■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


• 소 재 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 지정번호 : 국보 제288호 
 


부여 능산리사지의 탑(塔) 심초석(心礎石) 윗면에서 출토된 화강석제의 이 사리감(舍利龕)은 위.아래로 긴 직육면체의 윗면을 아치형으로 고른 형태로 앞뒷면에 같은 모양의 감실(龕室)이 마련되어 있는데, 전면에 뚜껑턱까지 마련된 감실이 사리봉안처(舍利奉安處)로 사용되었다.

출토 당시 이미 사리감은 폐기된 상태였으므로 사리 용기는 없었다. 사리감은 위쪽은 원형, 아래쪽은 판판한 높이 74㎝, 가로, 세로 50㎝인 터널형이다. 감실 내부의 크기는 높이 45cm, 너비 25.3cm, 깊이 25.5cm의 크기로 감실 외면에 뚜껑을 덮기 위해 마련된 뚜껑턱의 깊이 4cm를 제외하면 실제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를 넣기 위한 공간은 깊이 21.5cm이다.

감실의 좌.우 양쪽에 각각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서체인 예서(隸書)풍의 글자가 10자씩 새겨져 있는데, 명문(銘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창왕십삼년태세재(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 정해매형공주공양사리 (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로서, 이 사리감은 성왕(聖王)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昌王)[위덕왕(威德王)]에 의해 567년 만들어 졌으며, 성왕의 따님이자 창왕의 여자 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사리감은 백제사연구에 새로운 금석문(金石文) 자료로서, 사리를 봉안한 연대와 공양자가 분명하고 백제사지(百濟寺址)로서는 최초로 절의 창건연대가 당시의 유물에 의해 명확하게 밝혀졌으며, 아울러 같은 사지(寺址)에서 발굴된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의 연대도 밝혀져 백제의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금동관세음보살입상


• 소 재 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 지정번호 : 국보 제293호 
 

 

1970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의 절터에 묻혀 있던 무쇠솥에서 다른 하나의 관음보살입상과 함께 발견된 보살상으로 높이는 21.1㎝이다.

머리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으며, 크고 둥근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가느다란 목걸이를 걸치고 있고, 가슴에 대각선으로 둘러진 옷은 2줄의 선으로 표시되었다.

양어깨에서부터 늘어진 구슬장식은 허리부분에서 자그마한 연꽃조각을 중심으로 X자로 교차되고 있다. 치마는 허리에서 한번 접힌 뒤 발등까지 길게 내려와 있는데 양다리에서 가는 선으로 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작은 구슬을 살짝 잡고 있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져 옷자락을 잡고있다. 보살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2중의 둥근 받침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형태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얼굴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비례에 맞는 몸의 형태, 부드럽고 생기있는 조각수법을 통해 7세기 초 백제시대의 불상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