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술도 발달이 안되었고 성경도 여러 나라 말로 번역이 안되어 있을 때이니까 라틴어 성경밖에 없었습니다.
라틴어 성경은 신부들만 갖고 있었고 교인들은 성경을 못 읽었습니다.
성경을 잘못 읽고 지옥 갈 수 있다 하여 성경은 교황 외에는 아무도 해석할 수 없고
신부도 성경을 읽어주기만 했습니다.
어느 신부가 성경 한 권을 화가에게 갖다 주면서
“자네가 이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그려 주게”
라고 했습니다. 이 화가도 귀한 성경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부터 자세히 읽어보면서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것을 캔버스에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화가에게 평소에 모델을 서 주었던 여성은 페피타였습니다.
페피타는 무희였습니다. 그 당시 춤추는 여자는 창녀들인데 그녀들이 모델을 섰습니다.
페피타가 모델을 서러 가끔 올 때마다 이상한 그림을 하나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델도 없는데 뭘 자꾸 그리고 있으니까 “선생님, 저 사람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화가는 그때 크리스찬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성경을 본 그대로 “이 사람은 예수라는 사람이란다”하고 또 그렸습니다.
페피타가 그 다음날 와보니 그림이 더 많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림을 보고 페피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예수란 사람은 나쁜 사람이군요.”
“아니야.”
“그런데 왜 십자가에 못박아 죽입니까?”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페피타는 더 의심이 생겼습니다.
“아니, 나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습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내가 이 책을 보니 죄는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죄 많은 죄인들 대신 죽었단다.”
화가가 무심코 대답했는데 페피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내가 왜 행복하냐?”
“선생님을 위해서 죽어 준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옷을 입고 집에 가버렸습니다. 화가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행복하다니, 나를 위해서도 이 사람이 죽었다니 …’
그래서 성경을 더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예수가 남의 죄를 위해서 죽은 줄 알았는데 그날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이 화가의 집 문을 누군가가 급하게 두드려 나가 보니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하나 있는데 막 울고 있었습니다.
“넌 누구냐?”
“선생님, 우리 어머니가 선생님을 꼭 모시고 오래요.”
“네 어머니가 누구니? 넌 어디에 사니?”
가보니 창녀들이 사는 어느 동네의 페피타라는 여자 집이었습니다.
평생 죄를 짓고 살던 여자가 병을 얻어 임종을 하기 직전인데 신부를 모시고 오려고 하니 더러운 동네라고 안 오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가톨릭에서는 소위 종부성사 즉 천국 가도록 죽을 때 미사 올려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임종을 맞고 보니 도저히 겁이 나서 못 죽겠기에 자기 임종을 지켜줄 사람을 찾다 보니 과거에 모델을 서 주었던 선생님이 생각나서 찾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신부님을 모시고 오려고 했더니 신부님이 더러운 동네라고 안 오시려고 합니다.
죽을 때가 되니 평생 죄밖에 안 지었기 때문에 도저히 겁이 나서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저를 위해서 하실 말씀이 없습니까?”
화가는 자신이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너무너무 딱했습니다.
사람은 죽어가고 할 말은 없고 뭐라고 위로를 해야 이 영혼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순간 옛날에 그녀가 자기 모델을 설 때 주고받은 이야기가 생각나서
“옛날에 내가 그림 그렸던 사람이 생각나느냐? 예수라는 사람이 기억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기억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네가 그때 나에게 참 행복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돌아가고 난 후에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예수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바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네가 가고 나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 선생님 같이 훌륭한 분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죄밖에 안 짓고 그 죄 때문에 병을 얻어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 거룩하신 분이 저 같은 죄인을 위해서 죽으셨겠습니까? 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을 위해서는 죽으셨겠지만 아마 저를 위해서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라고 페피타가 말했습니다. 화가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가 없고 병든 자에게 의원이 쓸 데가 있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너 같은 죄인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어떻게 감히 제가 하나님의 아들을 우러러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너는 환자이고 죄인이지 않느냐.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너같이 병든 환자와 죄인을 위해 죽으셨으니까 너는 지금 이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아,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 저를 위해서 죽으셨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죄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화가는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구절을 다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동안 페피타라는 여인의 마음에 믿어졌습니다.
“내가 이 시간에 믿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밖에 없다.”
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저는 안심하고 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니까 나는 이제 예수님을 믿고 편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죽었습니다.
그 화가가 그렸던 그림이 단순한 그림 같지만 성경이 번역되지 않았던 시대에 진젠도르프를 개심시키고, 진젠도르프가 많은 모라비아 교도들을 살려주었으며, 그 모라비아 교도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 요한 웨슬레를 만나 결국 그가 구원을 받고 영국 전체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을 회심하게 만든 그림을 그렸던 화가에 대한 이야기.
(이 그림이 진젠도르프를 회심하게 한 그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을 회심하게 만든 그림을 그렸던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독일 화가였는데 그 당시에는 성경이 지금처럼 집집마다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인쇄술도 발달이 안되었고 성경도 여러 나라 말로 번역이 안되어 있을 때이니까 라틴어 성경밖에 없었습니다.
라틴어 성경은 신부들만 갖고 있었고 교인들은 성경을 못 읽었습니다.
성경을 잘못 읽고 지옥 갈 수 있다 하여 성경은 교황 외에는 아무도 해석할 수 없고
신부도 성경을 읽어주기만 했습니다.
어느 신부가 성경 한 권을 화가에게 갖다 주면서
“자네가 이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그려 주게”
라고 했습니다. 이 화가도 귀한 성경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부터 자세히 읽어보면서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것을 캔버스에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화가에게 평소에 모델을 서 주었던 여성은 페피타였습니다.
페피타는 무희였습니다. 그 당시 춤추는 여자는 창녀들인데 그녀들이 모델을 섰습니다.
페피타가 모델을 서러 가끔 올 때마다 이상한 그림을 하나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델도 없는데 뭘 자꾸 그리고 있으니까 “선생님, 저 사람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화가는 그때 크리스찬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성경을 본 그대로 “이 사람은 예수라는 사람이란다”하고 또 그렸습니다.
페피타가 그 다음날 와보니 그림이 더 많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림을 보고 페피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예수란 사람은 나쁜 사람이군요.”
“아니야.”
“그런데 왜 십자가에 못박아 죽입니까?”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페피타는 더 의심이 생겼습니다.
“아니, 나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습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내가 이 책을 보니 죄는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죄 많은 죄인들 대신 죽었단다.”
화가가 무심코 대답했는데 페피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내가 왜 행복하냐?”
“선생님을 위해서 죽어 준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옷을 입고 집에 가버렸습니다. 화가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행복하다니, 나를 위해서도 이 사람이 죽었다니 …’
그래서 성경을 더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예수가 남의 죄를 위해서 죽은 줄 알았는데 그날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이 화가의 집 문을 누군가가 급하게 두드려 나가 보니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하나 있는데 막 울고 있었습니다.
“넌 누구냐?”
“선생님, 우리 어머니가 선생님을 꼭 모시고 오래요.”
“네 어머니가 누구니? 넌 어디에 사니?”
가보니 창녀들이 사는 어느 동네의 페피타라는 여자 집이었습니다.
평생 죄를 짓고 살던 여자가 병을 얻어 임종을 하기 직전인데 신부를 모시고 오려고 하니 더러운 동네라고 안 오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가톨릭에서는 소위 종부성사 즉 천국 가도록 죽을 때 미사 올려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임종을 맞고 보니 도저히 겁이 나서 못 죽겠기에 자기 임종을 지켜줄 사람을 찾다 보니 과거에 모델을 서 주었던 선생님이 생각나서 찾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신부님을 모시고 오려고 했더니 신부님이 더러운 동네라고 안 오시려고 합니다.
죽을 때가 되니 평생 죄밖에 안 지었기 때문에 도저히 겁이 나서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저를 위해서 하실 말씀이 없습니까?”
화가는 자신이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너무너무 딱했습니다.
사람은 죽어가고 할 말은 없고 뭐라고 위로를 해야 이 영혼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순간 옛날에 그녀가 자기 모델을 설 때 주고받은 이야기가 생각나서
“옛날에 내가 그림 그렸던 사람이 생각나느냐? 예수라는 사람이 기억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기억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네가 그때 나에게 참 행복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돌아가고 난 후에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예수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바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네가 가고 나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 선생님 같이 훌륭한 분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죄밖에 안 짓고 그 죄 때문에 병을 얻어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 거룩하신 분이 저 같은 죄인을 위해서 죽으셨겠습니까? 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을 위해서는 죽으셨겠지만 아마 저를 위해서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라고 페피타가 말했습니다. 화가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가 없고 병든 자에게 의원이 쓸 데가 있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너 같은 죄인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어떻게 감히 제가 하나님의 아들을 우러러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너는 환자이고 죄인이지 않느냐.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너같이 병든 환자와 죄인을 위해 죽으셨으니까 너는 지금 이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아,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 저를 위해서 죽으셨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죄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화가는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구절을 다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동안 페피타라는 여인의 마음에 믿어졌습니다.
“내가 이 시간에 믿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밖에 없다.”
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저는 안심하고 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니까 나는 이제 예수님을 믿고 편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죽었습니다.
그 화가가 그렸던 그림이 단순한 그림 같지만 성경이 번역되지 않았던 시대에 진젠도르프를 개심시키고, 진젠도르프가 많은 모라비아 교도들을 살려주었으며, 그 모라비아 교도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 요한 웨슬레를 만나 결국 그가 구원을 받고 영국 전체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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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인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하신 일과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을얻고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어떤 행위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행위와 노력이 필요했다면 그여인은 천국으로 평안히 갈 수 없었겠지요..
화가는..."미안하구나 네게 단 1년의 시간만 있었더라도 천국으로 갈 수있었을텐데.." 이렇게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 옆에서 함께 못박혔던 죄수도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를 저주했지만 죽기전에 예수를 믿고
낙원에 함께하리라 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봉사와 헌금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나를 위해서 하신일을 알고 그 일을 믿는 것입니다.
만일에 당신이 어떤 행위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천국에 가려고 한다면...
포기하십시요.. 당신은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성분이 단 1%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주를 받은 이 땅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란...복된 소식으로서...
그 소식을 듣는 사람은 그 소식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듣고 알고 믿는 것 뿐입니다.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의 방도에..내 노력과 수고와 인내와 물질은 포함 되어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