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렷을 적 내 취미는 형이 모은 음악씨디를 방과 후에 듣는 것이었다. 거기엔 김현철, 서태지, 윤종신, 토이, 전람회, 베이시스, 이소라, 이승환, 015B, CB MASS 등등의 양질의 음악들이 가득했다. 형이 그것을 어찌나 애지중지 했던지 내가 만지를 것을 허락하지 않아, 난 언제나 몰래 방과 후에 형 방에서 그것을 간첩이 교신하듯 몰래몰래 들었던 것이다. 그 기억, CD자킷의 그 빳빳한 느낌. 다음 트랙의 곡을 궁금해하며, 보너스 트랙에도 그리 열광을 해댔다. 그러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내 젖은 교복을 말려줄 때면, 난 언제나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형 침대에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내 인생의 행복한 기억이다. 물론, 형이 방과 후 돌아오면 처 맞긴 했지만.
언제부턴가 난 컴퓨터에 앉아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점점 음악은 들을 것이 없어지고, 해외 뮤지션과 특정 음악인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채널은 이제 '음악'을 들려주지 지 않는다. 단 몇 분이면 음반 발매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이름도 좋지 '소리바다'. 근데 이상하게 음악이 재미가 없더라. 이렇게 쉽게 듣는데도 재미가 없어... 그건 왜일까. 내 소중한 음악은 어디에 있는가.
뿌리
현재 많은 아이돌 그룹이 판을 치는 가요계에서 그 뿌리를 찾는 것이 민망할 정도이다.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가수들은 기획사의 상품임을 숨기지 않는다. 철저하기 기획되고, 10대들의 코드에 맞혀서 나왔다는 사실을 떳떳치 공개하고는 그들의 딴따라가 됨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침체된 가요 시장에서 물량공세를 펴는 이 아이돌 그룹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이런 아이돌 그룹들이 음반판매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명의 엔터테이너로서 가수도 비주얼이 되어야 한다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 음악으로서 승부하려 하지 않는다. 진정한 뮤지션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왜 우리는 그들을 들을 기회도 없는 걸까?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은 이런 문제점부터 시작한다. 사라져버린 뮤지션과 음악 없는 가수들.
한국에는 청년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대중가요가 인기를 끌면서 억압된 사회의 젊은이들은 그들을 표현할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요즘처럼 인터넷에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도 없었고, 맘에 안든 인간의 글에다가 신나게 악플을 달수도 없었던 그들은 꽉 막힌 지배층에게 통기타 하나를 둘러매고는 음악으로 그들을 표출했다. 현재 음원이 남아있지 않아 자료는 찾을 수가 없지만 영화에서는 그 문화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에는 ‘엄앵란’과 ‘신성일’, 그리고 그 유명한 ‘트위스트 김’이 바닥이 꺼져라 비비며 트위스트를 추며 그들의 사상을 표현한다.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그들이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남달랐기에 그 파괴력은 더욱 컸다. 덕분에 검열에 걸려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은 열광했다. 그 뿐 아니다. <불타는 청춘>,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배경음악과 주인공들이 부르는 음악으로 그들의 정신을 알 수가 있다. 그 크나큰 압박 속에서 그들은 쉽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사랑했고, 그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방송을 통해서 신나게 진행되던 그들의 사상은 검열이라는 둘레로 감싸지기 시작한 것이 한국음악을 발전시키는 계기라고 하면 믿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다.
저항정신?
유신정권의 본격적인 검열이 시작되자 많은 가요 쇼가 폐지되거나 나올 수 있는 가수와 틀을 수 있는 음악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이런 문화적인 억압은 가뜩이나 음악을 통해 세상에 많은 갈등을 분출하던 젊은이들을 통기타에 집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들을 수 없는 음악을 자신이 직접 연주하며 그들은 자신들을 표출해갔다. 특히, 통기타 음악을 중심이 되었던 <음악 감상실>과 살롱문화 그리고 <청 개구리집> 같은 신인음악가 발굴에 힘쓰는 기관들은 청년들을 열광하게 했고, 그들의 저항정신을 본격화시켰다. 한마디로 귀한 음악이라는 그들의 인식이 생겨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음악을 만들었다.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그들은 더 갈증을 느꼈고, 김민기, 양희은, 조덕배, 권인하 같은 통기타 스타들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마디로 음악의 풍년이었다. 음악을 억압하자 오히려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정서가 생겨난 덕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터진 대마초 사건을 대중음악을 더욱 압박했고, 결국에는 금지곡이라는 규제와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같은 뮤지션을 구속되기 이르렀고, 현재는 명곡이라 불리는 <왜불러>, <고래사냥>, <불꽃>, <아침이슬>같은 곡들은 금지되었다. 그러한 규제는 ‘신중현’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을 탄생시켰고, 포크에서 락으로 국민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저항이 삶이 되어버린 젊은이들이 신중현의 락을 통해서 그 정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들국화’같은 명가수들의 좋은 음악들이 세상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내지르고, 외치고, 두드리는 ‘락’이라는 음악은 분명 억압되고 정체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제격맞춤이었고, 바야흐로 한국 대중음악의 절정이었다.
해결책을 찾아봐.
억압 속에 피어난 한국 음악의 중흥. 우리는 뒤돌아 봐야 한다. 음악은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는 가장 완벽한 친구다. 그 친구가 내 주변에 너무도 많으면 소중함을 쉽게 잊게 된다. 쉽게 접촉하는 한국의 대중음악은 mp3와 tv를 통해 어디서든 들을 수가 있다. “이 노래 좋네? 다운 받아야지.” 클릭 한번으로 음악은 귀에서 울려 퍼진다. 이런 직접성은 음악의 존귀성과 숭고함을 떨어뜨리고, 예술가의 피땀 어린 작업은 가치를 잃어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음악자체에 대한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음악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인식하는 것도 좋지만, 습관이 아닌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의 의미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감성을 존중하는 그 자세야말로 이 시대의 청년문화가 만들었던 음악의 존귀성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인간은 행복한 줄 모른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음악이라는 소중한 문화를 보호해야 한다. 너무도 좋아하는 음악이 질이 떨어진다면 우리는 그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갈 것인가. 당신의 홈페이지 속 배경음악의 질이 당신의 추억까지 퇴색시킬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말이야 좋지. 대책을 적을 수 없다. 난 또 여기다 도덕교과서의 단골멘트를 적고 있다. 이래선 안된다. 저래선 안된다. 이러고 있다... 옛 것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매체의 변화는 이제 디지털 음원이라는 말을 만들고, 내 MP3에는 200곡이 들어간다. 그거 다 지워도 좋으니까. 제발 이제 다운 받기 어려워지길 바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체변화의 과도기라고 하기에는 형 방 선반의 낡은 CD들의 존재가 너무 처량하다. 맞으면서 음악을 듣던 그때가 참으로 행복했다.
형 방 낡은 CD처럼.
www.cyworld.com/mjmovie2
옛 기억.
어렷을 적 내 취미는 형이 모은 음악씨디를 방과 후에 듣는 것이었다. 거기엔 김현철, 서태지, 윤종신, 토이, 전람회, 베이시스, 이소라, 이승환, 015B, CB MASS 등등의 양질의 음악들이 가득했다. 형이 그것을 어찌나 애지중지 했던지 내가 만지를 것을 허락하지 않아, 난 언제나 몰래 방과 후에 형 방에서 그것을 간첩이 교신하듯 몰래몰래 들었던 것이다. 그 기억, CD자킷의 그 빳빳한 느낌. 다음 트랙의 곡을 궁금해하며, 보너스 트랙에도 그리 열광을 해댔다. 그러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내 젖은 교복을 말려줄 때면, 난 언제나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형 침대에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내 인생의 행복한 기억이다. 물론, 형이 방과 후 돌아오면 처 맞긴 했지만.
언제부턴가 난 컴퓨터에 앉아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점점 음악은 들을 것이 없어지고, 해외 뮤지션과 특정 음악인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채널은 이제 '음악'을 들려주지 지 않는다. 단 몇 분이면 음반 발매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이름도 좋지 '소리바다'. 근데 이상하게 음악이 재미가 없더라. 이렇게 쉽게 듣는데도 재미가 없어... 그건 왜일까. 내 소중한 음악은 어디에 있는가.
뿌리
현재 많은 아이돌 그룹이 판을 치는 가요계에서 그 뿌리를 찾는 것이 민망할 정도이다.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가수들은 기획사의 상품임을 숨기지 않는다. 철저하기 기획되고, 10대들의 코드에 맞혀서 나왔다는 사실을 떳떳치 공개하고는 그들의 딴따라가 됨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침체된 가요 시장에서 물량공세를 펴는 이 아이돌 그룹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이런 아이돌 그룹들이 음반판매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명의 엔터테이너로서 가수도 비주얼이 되어야 한다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 음악으로서 승부하려 하지 않는다. 진정한 뮤지션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왜 우리는 그들을 들을 기회도 없는 걸까?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은 이런 문제점부터 시작한다. 사라져버린 뮤지션과 음악 없는 가수들.
한국에는 청년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대중가요가 인기를 끌면서 억압된 사회의 젊은이들은 그들을 표현할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요즘처럼 인터넷에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도 없었고, 맘에 안든 인간의 글에다가 신나게 악플을 달수도 없었던 그들은 꽉 막힌 지배층에게 통기타 하나를 둘러매고는 음악으로 그들을 표출했다. 현재 음원이 남아있지 않아 자료는 찾을 수가 없지만 영화에서는 그 문화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에는 ‘엄앵란’과 ‘신성일’, 그리고 그 유명한 ‘트위스트 김’이 바닥이 꺼져라 비비며 트위스트를 추며 그들의 사상을 표현한다.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그들이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남달랐기에 그 파괴력은 더욱 컸다. 덕분에 검열에 걸려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은 열광했다. 그 뿐 아니다. <불타는 청춘>,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배경음악과 주인공들이 부르는 음악으로 그들의 정신을 알 수가 있다. 그 크나큰 압박 속에서 그들은 쉽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사랑했고, 그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방송을 통해서 신나게 진행되던 그들의 사상은 검열이라는 둘레로 감싸지기 시작한 것이 한국음악을 발전시키는 계기라고 하면 믿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다.
저항정신?
유신정권의 본격적인 검열이 시작되자 많은 가요 쇼가 폐지되거나 나올 수 있는 가수와 틀을 수 있는 음악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이런 문화적인 억압은 가뜩이나 음악을 통해 세상에 많은 갈등을 분출하던 젊은이들을 통기타에 집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들을 수 없는 음악을 자신이 직접 연주하며 그들은 자신들을 표출해갔다. 특히, 통기타 음악을 중심이 되었던 <음악 감상실>과 살롱문화 그리고 <청 개구리집> 같은 신인음악가 발굴에 힘쓰는 기관들은 청년들을 열광하게 했고, 그들의 저항정신을 본격화시켰다. 한마디로 귀한 음악이라는 그들의 인식이 생겨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음악을 만들었다.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그들은 더 갈증을 느꼈고, 김민기, 양희은, 조덕배, 권인하 같은 통기타 스타들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마디로 음악의 풍년이었다. 음악을 억압하자 오히려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정서가 생겨난 덕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터진 대마초 사건을 대중음악을 더욱 압박했고, 결국에는 금지곡이라는 규제와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같은 뮤지션을 구속되기 이르렀고, 현재는 명곡이라 불리는 <왜불러>, <고래사냥>, <불꽃>, <아침이슬>같은 곡들은 금지되었다. 그러한 규제는 ‘신중현’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을 탄생시켰고, 포크에서 락으로 국민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저항이 삶이 되어버린 젊은이들이 신중현의 락을 통해서 그 정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들국화’같은 명가수들의 좋은 음악들이 세상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내지르고, 외치고, 두드리는 ‘락’이라는 음악은 분명 억압되고 정체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제격맞춤이었고, 바야흐로 한국 대중음악의 절정이었다.
해결책을 찾아봐.
억압 속에 피어난 한국 음악의 중흥. 우리는 뒤돌아 봐야 한다. 음악은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는 가장 완벽한 친구다. 그 친구가 내 주변에 너무도 많으면 소중함을 쉽게 잊게 된다. 쉽게 접촉하는 한국의 대중음악은 mp3와 tv를 통해 어디서든 들을 수가 있다. “이 노래 좋네? 다운 받아야지.” 클릭 한번으로 음악은 귀에서 울려 퍼진다. 이런 직접성은 음악의 존귀성과 숭고함을 떨어뜨리고, 예술가의 피땀 어린 작업은 가치를 잃어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음악자체에 대한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음악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인식하는 것도 좋지만, 습관이 아닌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의 의미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감성을 존중하는 그 자세야말로 이 시대의 청년문화가 만들었던 음악의 존귀성을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인간은 행복한 줄 모른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음악이라는 소중한 문화를 보호해야 한다. 너무도 좋아하는 음악이 질이 떨어진다면 우리는 그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갈 것인가. 당신의 홈페이지 속 배경음악의 질이 당신의 추억까지 퇴색시킬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말이야 좋지. 대책을 적을 수 없다. 난 또 여기다 도덕교과서의 단골멘트를 적고 있다. 이래선 안된다. 저래선 안된다. 이러고 있다... 옛 것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매체의 변화는 이제 디지털 음원이라는 말을 만들고, 내 MP3에는 200곡이 들어간다. 그거 다 지워도 좋으니까. 제발 이제 다운 받기 어려워지길 바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체변화의 과도기라고 하기에는 형 방 선반의 낡은 CD들의 존재가 너무 처량하다. 맞으면서 음악을 듣던 그때가 참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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