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참사 D+100

김소희200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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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야, 원두막이야?

 

숭례문 참사 D+100


▲ 2008년 5월4일에 직접 촬영한 사적 제 479 호 행궁터(위쪽)와, 중성문 문루(아래쪽)의 모습. 등산객들의 행락 장소로 바뀌었다

 

북한산성의 행궁은 서울이 적에게 함락될 위기에 처했을 때

임금이 대피해 국토 사수 항전을 지휘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요즘의 개념으로 따지면 대통령의 전쟁 지휘 벙커와 비슷하다.

그러나 휴일만 되면,

행궁이 들어서 있던 건물터가 술자리로 수없이 변한다.

왼쪽의 사진에서 보듯이 등산객들이 행궁의 주춧돌을 식탁으로 활용해

술판을 벌이거나 식사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무개념 등산객들이다 ;; 숭례문 참사 D+100

북한산성 내성의 대문 격인 중성문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문루에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앉아 소풍을 즐기거나,

나무로 된 누각의 마루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이런 사람들도 숭례문 화재 때 조상들 뵐 면목이 없다며 가슴 아파했을까?

 

★이런 몰상식도 있다.

숭례문 참사 D+100


▲중성문 마룻바닥의 크램펀 (일명 아이젠) 자국

 

중성문 문루의 나무 마루바닥은 무언가에 찍힌 듯한 자국으로 가득하다.

자국마다 크기도 비슷하고 자국 구멍의 깊이도 거의 다 비슷하다.

사진 상으로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구멍의 간격까지 대체로 흡사하다.

겨울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등산화에 착용하는 크램펀이 아니라면

무엇이 이런 자국을 만들었겠는가?

등산객들이 등산화에 크램펀까지 착용한 채

문루의 나무바닥 위를 돌아다닌 자국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 뭐……

이 크램펀 자국은 숭례문 화재 전에 저지른 우발적인 실수였다고 치자.

 그런데 4월에 갔을 때도 없었던 이 대못질은 또 뭔가?

 

숭례문 참사 D+100


▲대서문 처마에 못을 박아 연등을 단 모습.

 

5월 중교행사 연등을 달기 위해 문루의 처마에 못을 박고

기둥에 줄을 묶어 놓았다.

숭례문 화재 참사를 겪고 나서도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이것이 불과 백일 전에 조상님 뵐 낯이 없느니,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지었느니 하던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숭례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도 채 안됐다.

그 때 먹었던 마음들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고 정신 똑바로 차리자.

우리 다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숭례문 참사 D+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