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조지오웰, 1945)

이요한200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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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오웰, 1945)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이미 리뷰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도 적어보고 저렇게도 적어보았지만 역시나 다른 내용을 베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 시간은 족히 고민한 것 같다. 책의 내용 말고 시대상을 적어볼까도 했지만 이것도 마땅치 않았다. “동물농장”을 리뷰하면서 그 당시 시대상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역시나 이미 다양한 글들이 있다. 또 작가에 대해서 적어볼까도 했지만 조지 오웰은 서양문학사에 거장이다. 그를 내 짧은 소견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초심으로 돌아왔다.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이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농장”을 건설했다. 동물들끼리 자급자족하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이전보다 풍요로워졌고 평화로웠다. 성경의 10계명처럼 이들은 7계명을 만들고 지키기로 약속한다. 이후에 인간들의 공격도 막아냈지만, 농장내에서 일어난 혁명(돼지 나폴레옹의 스노볼 축출)을 시작으로 7계명은 희미하게, 하지만 조금씩 바뀌어간다. 결국에 모든 계명이 사라지고 하나의 계명만이 남게 되며, 인간을 몰아냈던 동물들이 인간을 흉내내고 인간과 공존한다

  어느 사회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무리가 있다. 돼지 스퀼러는 달변가로 다른 동물들을 속인다. 다른 동물들이 7계명을 물어올 때마다 염소 벤자민(돼지외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은 읽어주지 않는다.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처음으로 깨고 계명을 읽었을 때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일곱 번째 계명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바뀌어 있었다. 앞장서서 속이는 자나 잠잠코 있는 자나 진실을 왜곡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동물농장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사례를 보더라도 그렇다. 소련과 미국의 대치상황에서 가장 긴장감이 고조되었던 곳이 바로 우리나라이다. 여기서 미국은 반공주의의 확산에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선택한다. 미국의 지원속에 1948년 김길준(金吉俊)에 의해 처음으로 번역된다.(동물농장은 1945년 8월 17일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미국군정이 남한을 반공의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한 여러 정책중 하나였고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 정신은 반공주의에 의해 왜곡되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덕분에 오웰도 자기 해명을 하는데 힘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영국의 한 보수단체에서 강연 초청을 받았는데 이를 거절하면서 답신을 보냈다. “유럽의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하면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않는 단체의 초청에 나는 응할 수 없다. 나는 러시아 전체주의를 증오하고 그것이 영국에 끼치는 악영향을 증오하지만, 나는 좌파소속이며 따라서 나는 좌파안에서 일해야 한다.” 이렇듯 오웰은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반공을 외치는 자가 아니라 열혈한 사회주의자다.

  결국 동물들도 알게된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아무쪼록 동물농장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한 책이다. 그래서 아직도 읽히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1천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외치던 시대는 끝났다. 올바른 정치관과 국가관을 심어주지 못하는 무조건적인 반공교육이 나은 세대가 지금의 기성세대요, 그 문화를 이어받은게 지금의 10대와 20대다. 사회주의를 알려주지 않고, 공산주의를 알려주지 않고 반공을 가르치던 시대가 “동물농장”을 반공주의로 만들어 초중고 권장도서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진실을 왜곡한 교육이 보수가 무엇이고 진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10대를 촛불을 들고 청계천으로, 시청앞으로 모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게 아니다.

(저는 진실로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