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경험의 지평에 대하여- 기독교 철학의 관점에서

강경국200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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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적 경험의 지평은 4가지 상이한 선험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불가분의 통일성 속에서 결합된 상이한 4영역들을 갖는다. 이 영역들은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질서 속에서 배열된다.

 

(1) 첫번째 영역 곧 초월적 지평은 인간실존의 종교적 근원인 마음이다. 우리의 경험은, 그것이 우리의 인식활동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결코 우리의 마음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분리는 실존의 종말과 이생의 마감을 의미할 뿐이다. 

 

(2) 두번째 영역 곧 선험적 지평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시간적 실재가 표현하는 국면들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경험한다. 지상에서의 모든 경험은 시간 곧 시계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 뿐 아니라 우주적 시간에 연루된다. 우리는 우주적 시간을 넘어서는 어떤 일도 경험할 수 없다.   

 

(3) 세번째 영역은 양상적 지평이다. 이 영역은 양상 국면들의 구조와 특수본질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만일 인간이 심미적 주체- 기능을 갖지 않는다면, 즉 인간이 심미적 양상국면의 구조를 파악할 직관적 통찰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동물처럼 무감동하게 지나쳐버릴 것이다. 그 전체성 속에서 시간적 실재의 국면들의 풍요성은 양상적 선험의 지평 때문에 우리 인간적 경험에 접근될 수 있다. 개체적 사물들의 그 놀라운 다양성과는 대조적으로 그 양상국면들은 그것들의 선험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구조적 연속성을 갖는다. 

 

(4) 네번째 영역은 형성적 지평으로서 구체적 사물들, 사건들 그리고 사회적 형식들의 개체구조들에 관한 지평이다. 집과 교회건물들 모두 그 최종적 주체- 기능이 물리적 국면에 있는 사물들이다. 그것들의 양상적 선험은 동일하지만 형성적 개체구조는 다르다. 특수한 집이나 교회 건물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양자가 모두 자의적이지 않은 지속적인 형성적(조형적)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그것들에 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집" 이나 "교회"라는 말은 산이나 등잔을 생각나게 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험의 지평은 법칙면과 주체면을 갖는다. 그것의 법칙면은 그것이 신적 세계질서 안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구조 속에서 주어지고, 불변적이다.                       

 

아무도 우리가 앞에서 제시한 4영역들을 벗어나서는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이 지평에 종속되고, 새로운 지평을 창출할 수 없다. 그러나 주체면은 확실히 경우가 다르다. 모든 인간의 통찰력은 혼탁해질 수 있고,불분명해질 수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타락은 우리의 주관적 지평을 흐리게 하였다. 반역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신적 진리의 빛으로부터 차단하고, 모든 삶이 종교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반역적 인간은 자율적 과학이나 주권적인 인간성 속에서 확실성을 추구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인간은 만물의 진정한 근원을 포기하고, 본래적인 영원성이 결여되고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무의미한 것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상실한다. 따라서 인간경험과 과학의 지평은 타락에 의해 어둡게 되었다. 우리 경험의 지평은 신적 계시의 빛에 따라 다시 해방되고, 개현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실존의 대속주로서 진리 자체이시다. 그를 믿는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는 다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이끄신다. " 당신의 빛 속에서 우리가 빛을 봅니다."              

 

 

- J.M 스피어의 기독교 철학입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