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림사지는 백제가 부여로 왕도를 옮긴 사비시대 (538-660)의 중심 사찰터다. 경내에는 백제시대에 건립된 오층석탑(국보 제9 호) 과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 있다. 이 절터는 몇 차례의 학술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절의 배치와 각 시대의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특히 현재 석불좌상이 있는 건물터 에서 발견된 기와 중에 "태평 8년 무진정림사대장당초 < 太平八年 戊辰定林寺大藏唐草 >"라고 새겨진 글이 나와 고려시
에는 정림사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림사의 중요 건물 배치 는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의 중심축선이 남북 일직 선상에 놓 이고, 이를 회랑으로 두른 장방형의 평면 위에 남북일탑식 가람배 치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람배치는 7세기 일본의 사찰가람에 영향을 주어 고대 일본의 사찰 가람배치의 본이 되었다. 발굴조사로 드러난 절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 호하기 위한 건물은 1993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백제시대와 고려 시대의 막새기와를 비롯하여 백제벼루, 토기 등 사찰용품과 소조 불상들이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생활을 알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정림사지
- 사적 제301호
- 정림사지는 백제가 부여로 왕도를 옮긴 사비시대 (538-660)의
중심 사찰터다. 경내에는 백제시대에 건립된 오층석탑(국보 제9
호) 과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 있다.
이 절터는 몇 차례의 학술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절의 배치와 각
시대의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특히 현재 석불좌상이 있는 건물터
에서 발견된 기와 중에 "태평 8년 무진정림사대장당초
< 太平八年 戊辰定林寺大藏唐草 >"라고 새겨진 글이 나와 고려시
에는 정림사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림사의 중요 건물 배치
는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의 중심축선이 남북 일직 선상에 놓
이고, 이를 회랑으로 두른 장방형의 평면 위에 남북일탑식 가람배
치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람배치는 7세기 일본의 사찰가람에
영향을 주어 고대 일본의 사찰 가람배치의 본이 되었다.
발굴조사로 드러난 절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
호하기 위한 건물은 1993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백제시대와 고려
시대의 막새기와를 비롯하여 백제벼루, 토기 등 사찰용품과 소조
불상들이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생활을 알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