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에 대하여 - 기독교철학의 관점에서

강경국2008.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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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이 세계를 참된 세계의 모상 또는 복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감각의 세계의 배후에 이념의 세계 곧 진정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가진 진,선,미의 세계를 정위시켰다. 그는 그것들을 초시간적 실체로 부르면서, 모든 천체들의 법칙에 대한 완전한 실례로 생각하였다.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의 사물들 속에서 "실체" 를 찾았다.    

 

그는 형상(form)과 질료(matter)의 도식속에 모든 실재를 포함시켰고, 형상과 질료가 잠재성과 현실성으로서 서로 관계된다고 간주하였다. 생성은 질료가 형상을 따라 진행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사물의 구조는 질료와 형상 간의 상호관계 또는 상호작용이다. 본질 곧 사물들의 실체는 개체적 사물들 자체보다 더 고상한 실재를 소유하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구체적 말들의 본질인 말은 보편개념일 뿐 아니라 그것은 구체적인 말보다 고상한 실재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적 실체이다. 이 실체는 개체적 사물들과 상관없이 그리고 그 사물들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형이상학적 실체로서 보편적 말(universal horse) 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질료로 말미암아 많은 구체적 말들 속에서 발견된다.

 

형상은 보편적이다. 다수성의 원리 곧 개체화의 원리는 질료속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 속에서는 각 사물의 구조원리를 , 질료속에서는 개체화의 원리는 추구하였다. 사물의 개체원리와 그 구조원리는 기본적으로 서로 반대되고, 이질적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판단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적 실재의 개체구조들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근대인본주의는 중세의 사유를 마감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는 연장되는 실체와 사유하는 실체라는 두 종류의 실체를 확신하였다. 그는 모든 심리학적 기능 이전에 기능들을 연장으로, 그 이후의 모든 기능들을 사유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임마누엘 칸트는 더 이상 정신 외부의 실재 (우리 의식의 외부에 존재하는) 속에서 실체를 추구하지 않고, 그것을 인간 주체 속에서 찾았다. 실체는 사유의 형식 또는 범주로서, 그것이 혼란된 우리의 감각적 인상들로부터 구체적 실재를 구성- 시간과 공간의 형식들의 도움으로 - 한다.

 

실체의 개념은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라 순수하게 인식론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형이상학적 실체로서의 "물자체"는 인식대상이 아니고 신앙의 객체이다. 칸트는 의식의 기능을 신격화하여, 자율적 인간이 스스로 유지하도록 하였다. 실체에 대한 우리의 반박은 단순히 언어적인 것이 아니다. 실체와 함께 시작하는 철학은 기능주의적이다. 그것은 다만 우주의 기능적(양상적) 다양성을 인식할 따름이다. 그것은 시간적 기능들을 초월하는 것을 무시하고, 형성적 지평을 양상적 지평으로 환원시키려고 한다. 기능주의는 언제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시간적 기능을 자충족적인 것으로 선언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들이 더 이상 만물의 근원인 하나님을 지시하지 못하도록 그 의미와 성격을 박탈한다.   

 

- J.M 스피어의 기독교 철학입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