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입시제도, "수능"이 아닌 "순응"일 뿐.

박민진200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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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통해 본 ‘한국의 입시제도’

 

 


 

 97년의 뜨거운 여름 8월 26일 동숭아트홀. 내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러 간 날이다. 무료한 일요일에 건어물처럼 거실에 늘어진 나를 구제해주시기 위한 아버지의 방편으로 난 그날 이 영화를 보러 찾았다.  


  이란의 한 마을 '아마드'는 그날따라 마음이 심란하다. 친구 '네마자데'가 숙제를 해오지 않아 크게 혼을 난 탓에 친구가 참 안쓰럽다. 위로의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지만, 퇴학을 시키느네 마네하는 오버하는 선생 덕에 '아마드'의 마음까지 굳어있는 상태라 쉽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이 때가지만 해도 아마드는 더욱 큰 사건이 자신을 덮쳐올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이 영화가 생각이 난 건 왜일까. 올해 초 한국의 입시제도에서 수능의 강화에 대한 보도를 듣고서는 불현듯 이 작품이 생각났다. 그건 아마도 사고의 틀이 같아서 일 것이다.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생각하는데 이 작품만큼 내게 큰 의미를 준 계기도 없었다. 그리고 아마드의 순수한 미소 속에 참 많은 것을 배웠던 초딩의 나. 그리고 고통스러운 대학입시의 추억들.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내 사고를 건드렸다. 

 

 3년의 고생이 하루에 결판나는 수능이 2008년 더욱 강화된다. 교육과정이 변하면서 교육도 변한다 말을 하는데 구시대적인 수능이라는 제도는 이제 더욱 더 학생들의 목을 죄어온다. 수능의 뜻은 말그대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하여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되는지 학문적인 능력을 측정하는 제도이다. 허나 대학의 서열화로 인해 그 의미는 '수능'이라는 제도에 학생들이 몸을 비비는 '순응'이 되어버렸다.


 '아마드'는 가방을 여는 순간 자신이 '네마자데'의 공책을 가져온 것을 발견하고 크게 놀란다. '네마자데'가 혼나는 모습을 보며 당황했던 탓에 책가방을 싸면서 녀석의 공책까지 같이 넣어버린 것이다. '아마드'의 안면이 굳어온다. 그리고 서둘러 '네마자데'의 마을로 달려간다.  허나 그건 너무도 무모한 짓이었다. '네마자데'는 흔한 이름이라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라면 과장이 심하지만, 동구이천동에서 홍가 찾기 정도는 되는 무모한 짓이었던 것이었다. 다시 힘없이 집으로 돌아온 '아마드'. 친구 '네마자드'가 우는 모습이 눈에 선해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한국 수능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 되면서도,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는 까닭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사회 깊숙히 자리 잡은 '인식'의 깊은 골 때문이다. 한국의 학벌사회는 높은 교육수준이 무조건적인 우대로 이어진다. 많은 이들이 학사에 만족을 못하고, 석사 그리고 박사까지 학업을 잇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학력에 따른 직급과 연봉의 대우가 그들에게 더욱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인식만을 심어준다. 이제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한국의 석박사들을 보면 이 상황들이 얼마나 웃긴지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이놈 저놈 박사에 석사다. 능력은 평가에서 둘째가 되고, 학벌이 우선시되는 이 묘한 분위기. 우리는 그저 순응할 뿐이다.

 


 이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해결방안은 애써 무시되고 있는 '대학평준화'이다. 이 방안을 비판하는 이들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바는 급격한 변화에 대한 파장이다. 그 파장이란 사회의 기초가 되는 대학에 '대학평준화'제도가 미치게 되는 낙후된 분위기. 즉 하양평준화가 되었을 때, 한국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이다. 국력의 기반인 한국의 수험생들과 대학생들에게 학업의 동기와도 같은 대학의 서열화를 깨는 것은 사회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다. 허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해본다. 이유는 그렇다. 한국의 고교평준화의 결과를 알고 있는가. 일부에 지역에서 시행된 고교평준화의 결과는 한국의 OECD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당당히 한국의 학생이 1위 2위를 차지하는 결과로서 성공을 입증했다. 대학생들을 양성하는 고교생들의  고교 평준화가 이처럼 잘 시행된 까닭은 애초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한국의 학벌사회에 대한 불만. 그리고 그에 앞서 더욱 불신의 골이 깊은 한국의 공교육과 사교육비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성공적인 시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문제를 인식한 영리한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인 힘을 보탠 까닭이다. 애초부터 지금 시행되고 있는 고교평준화에 가졌던 우려는 국민들을 과소평가한 것이었고, 우리 국민들은 오히려 반대로 상향평준화를 이뤄 내며, 제도를 정착시켰다. 허나 그것이 또 다른 변화로는 이어지지 못한다. 그 변화란 진정한 학벌사회를 타파하는 계기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말한다. 고교평준화는 대학평준화의 전초전과 같다. 시범경기를 잘 해냈으니 이제 진정한 한국의 학벌제도의 뿌리인 대학의 서열화를 타파해야 할 것이다. 그 부분이 해결이 되어야 쳇바퀴 속의 한국의 교육이 개선되어질 것이다. 

 


 아마드는 우연히 심부름으로 들른 담배 가게에서 네마자데의 아버지를 만난다. 그렇게 찾으려 했던 녀석의 집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허나 따라간 그의 집에는 또 다른 네마자데가 살고 있었다. 허무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 녀석은 결국에, 친구를 위해 밤을 새서 모든 숙제를 대신 하기로 마음먹는다. 친구를 진정 살펴야겠다는 마음과 자신의 숙제까지 포기하는 헌신. 녀석의 마음은 편안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왜 이 방법을 이리도 늦게 찾았을까. 길을 찾음에 있어서 단순해지면 오히려 쉬워진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아마드가 찾은 해답의 끝은 단순함이다. 내가 이 작품을 11살이라는 나이에 접하며 생각한 가장 큰 생각은 지나치게 복잡한 생각 속에 혼란을 겪는 것 보다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부터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꽤 부리지 않고, 꿋꿋이 해냈을 때 비로써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진리랄까? 다소 과장 되어 보일 순 잇으나, 그 단순함이 가장 맘이 편하고,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다. 이번 입시제도에 대한 한국의 교육부의 미진한 태도를 보면서, 단순하게 뿌리부터 접근한 개혁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 국민들은 그리 우둔하지 않다. 망치를 들어 올렸을 때 과감히 삐죽이 나온 나머지 문제들을 내리쳐야 한다. 수능, 그 구시대의 산물을 과감히 타파해야 할 절호의 시점이다.

 

 올해 수능이 다가오고 있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등교하는 학생들의 뒷 모습을 내년에는 보다 따듯한 시선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