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최선호와 패션 디자이너 채은하의 즐거운 나의 집한국의 색을 탐구하는 이, 동시에 추상화 중 추상화인 미니멀리즘으로 무장된 화가 최선호. 그의 시골집은 작고 소박하여 성급한 눈으로 일별해서는, 그 진면목을 알아채지 못했다. 앉아보고, 내다보고, 시간을 두고 보았을 때, 비로소 이 키 낮은 집의 단아한 아름다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그의 그림처럼.
지난 3월, 화가 최선호의 전시가 진행 중인 청담동 화랑을 찾았을 때, 그는 예의 그 담백한 차림에 가슴에는 플라스틱 꽃 한 송이를 꽂고 있었다. 아! 그는 영락없는 화가의 모습이었다. 덕분에, 가슴 한 이 간질간질해졌다. 큰 키에 동그란 안경, 시원시원한 음성과 말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한눈에도 그는 노심 사하거나 서두르며 살아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충청북도의 시골에서 신혼 시절을 보냈는데, 그 시골집이 그와 참 닮은꼴이다” 하였던 소개해준 이의 말이 생각나 마음이 더욱 분주해졌다.기획 홍주희 | 레몬트리
화가의 시골살이 사연
화가 최선호의 시골살이 사연은 이렇다.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간송 미술관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청년 최선호는 올림픽이 있던 해, 호암 미술관에서 열린 「뉴욕 현대 미술제」를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때까지 겸재·단원풍의 그림으로는 스스로를 따라올 사람이 없어 자만하던 차였는데, 현대 미술 작가들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완전히 죽은 사람이다. 17~18세기 할아버지였다’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보장된 미래 대신 과감한 뉴욕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 미술을 전공하며 ‘최선호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갗를 끈질기게 고민했다. “어느 날 서양화를 흉내 내는 나를 보고 선생이 묻더군요. ‘최선호, 당신은 누구인가? 이 그림에서는 당신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 뒤부터 캔버스 위에 유화로 한국적인 색채를 담기 시작했지요.” 과연 최선호의 ‘면분할’ 작품은 서양 작가의 작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니라, 곱게 물들인 천으로 캔버스를 감싼 것 같은 느낌. “조선 시대 규방에서 비롯된 한국적 컬러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는 화가의 지난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4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교수직은 지원했지만, 이 독특한 이력의 화가를 반기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동양화과 출신의 서양화가, 양쪽 모두에서 그는 이단이었다. “세상과 타협이 안 되니 ‘평생 그림이나 그리자’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자랐던 충청도 천안군의 한 폐교에서 혼자 1년 동안 먹고 자고 하면서 그림을 그렸지요.”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기거할 시골집을 찾아나섰다. 그가 생각한 조건은 ‘산수가 좋고, 기운이 따뜻한 집’. 그런데 마음에 차는 집은 6개월 후에야 나타났다. “어느 날, 누에 치던 빈집이 나왔다고 해서 가보았더니, 터가 한눈에 쏙 들어오더라고요. 기교를 부리지 않은 소박한 흙집도 마음에 들고, 산수가 훤하면서 해가 잘 드는 게 감탄이 절로 나오대요.” 두말할 것 없이 계약을 하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얼마 뒤 자신의 전시회에서 만난 부인 채은하 씨와 결혼을 하면서 이 시골집은 자연스레 부부의 신혼집이 되었다.
1 이른 4월, 시골집은 이미 꽃이 지천이었다. 최선호·채은하 부부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딸 서우와 2학년 아들 영조. 2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지만, 시골집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서우와 영조의 별명은 ‘된장과 간장’이라고 한다. 3 집 뒷마당은 작고 예쁜 꽃닭들이 주인이다. 신혼 시절 부부는 고군분투하여 한국화에 등장하는 토종 꽃닭을 구하였다. 4 수류화개(水流花蓋)를 줄여 ‘수와러라는 문패를 달았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집이라는 뜻. 전각에도 능한 최선호 선생이 직접 문패를 만들었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자연과 벗하는 집
충북 괴산군의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들 속을 얼마간 달리자, 인가가 드물어질 즈음 아담한 흙 집 두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번듯하게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날렵한 지붕 선이며 자연스레 울퉁불퉁한 외벽이 예사롭지 않았다. 더욱이 앞마당, 뒷마당에는 기자가 생전 처음 보는 토종 꽃나무들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개나리보다 야무진 모양새의 생강나무 꽃, 방긋방긋 피어 있는 영춘화, 그리고 초록색 꽃술이 청 한 청매화… 그런데, 집을 가득 메운 꽃들은 모두 색채가 수수하고 크기도 소박하였다. ‘헤픈 꽃보다 새침한 꽃’을 좋아하는 주인의 취향 탓이다. “서울 사람들이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는 것처럼, 우리 부부는 마당을 가꾸었어요. 특히 토종 꽃나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지요. 심지어, 집 앞 마당에 옅은 하얀색 봉숭아를 심기 위해서 지리산까지 가서 꽃씨를 구한 일도 있었어요.” 다행히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취향이 똑같았다. 부인 역시 동양화를 전공하였기 때문에,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식물도 정성스레 길러봐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화가 최선호는 뭐든지 뚝딱뚝딱 만드는 재주꾼이다. 전면에 보이는 장식장은 채색을 하였고, 천장에 달린 모빌은 구리를 잘라 직접 만들었다. 가운데 원목 식탁은 디자인만 본인이 하고 제작은 목수에게 맡겼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동양과 서양이 만나다
부부가 ‘빈자의 미학’이라 칭하는 흙집 하나는 살림집, 나머지는 작업실로 꾸며졌다. “원래 동양화에서는 비어 있음을 미학의 절정으로 치지요. 그래서 저희 집의 콘셉트도 ‘비 와 부재’로 정했어요.” 건물 밖은 물론 안에서도 당연히 인공 소재는 찾아볼 수 없다. 집을 고칠 때도, 부부는 “외관이나 내부는 그대로 둔 채, 바닥과 보일러만 깔아주세요”를 주문하였다 한다. 그러니 옛날 나무 서까래를 그대로 살렸고, 작은 창틀과 오래된 나무 문도 모자란 듯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동양화를 전공한 서양화가 ‘최선호의 아이덴티티’를 집 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이 시골스러운 흙집의 거실에 등장한 필립스탁의 루이고스트 체어와 미스 트립 체어가 뜻밖이었다. 안방으로 가자 기자의 감탄은 더욱 커졌다. 연애 시절 구입하였다는 전라도식 먹반닫이 위에 알바알토의 유리 사보이 베이스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전라도식 먹반닫이는 미감을 최고로 치지요. 모던한 비례감과 세련된 블랙 컬러에서 ‘절제의 미’가 느껴져요. 유려한 곡선의 사보이 베이스와 당연히 어울릴 수밖에요.” 동서양 가구가 믹스된 것은 물론이고 소품까지 조화롭게 공존하는 집을 구경하고 나니, “좋은 예술은 보편성을 지닌다”는 화가의 말에 자연스레 공감하게 되었다.
1 최선호는 책장에도 한국의 색을 칠하였다. 러시아 작가 말러비치의 작품과 장안평에서 구입한 조선 ‘해태’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2 나무 서까래와 흙 천장이 그대로 드러난 작업실. 3 작은 풍금은 1년간 살았던 폐교에서 얻어온 것. 벽에 걸린 그림은 히말라야에서 솟는 태양을 보고 그린 ‘The flower’다. 4 얼마 전 『한국의 미 산책』이라는 책을 발간한 그는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한다. ‘철학 하는 화갗라는 별명이 무색지 않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시골 부부의 서울행
이 단정하고 세련된 시골집은 아쉽지만 지금은 가족의 주말 주택이 되었다. 4년 전, 화가 최선호 선생이 사디 교수가 되면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교수로 임용되고 두 아이가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살이가 공고해졌다. 더욱이 동양화를 전공한 부인 또한 그 뒤 패션 디자이너로 변신하였고, 삼청동에 자신의 쇼룸을 마련하였다. “미대생 시절에는 그냥 옷을 좋아하는 여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시골집에서 살던 어느 날 진심으로 멋진 옷을 만들고 싶어졌지요. 고민 끝에 남편에게 상의하였더니, ‘집안에 그림 그리는 사람은 나 하나면 족하다’는 말로 지지해주더군요.” 이후 그녀는 살림집을 줄이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삼청동 20평짜리 한옥에 자신의 쇼룸을 열었다. “저 또한 남편처럼 ‘한국의 미’라는 주제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의식하지 아도, 어느 순간 한국적인 소재와 색채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이 동네에 부티크를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지요.” 얼마 뒤 5월, 패션쇼를 기획하고 있는 그녀는 이번 쇼에서도 그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을 생각이다. “옛 사대부들이 썼던 전통 손명주로 가장 현대적인 의상을 디자인하겠다”는 그녀의 포부를 들으니, 장르가 달라도 부부의 작품 세계는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1 패션 디자이너 채은하의 작업실. 동양화를 전공하였기 때문일까. 한국적인 소재와 색감이 눈에 띈다. 2 벽에 걸린 손명주는 일일이 손으로 짜야 만들 수 있는 고급 전통 옷감. 3 부엌에는 장안평에서 구입한 조선 목가구와 소반이 놓여 있다. 동네 제철소 아저씨를 졸* 장안평에서 구한 돌확을 싱크대처럼 만들어 쓴다. 4 채은하의 삼청동 쇼룸의 마당 전경. 한옥의 바닥과 돌확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풀꽃들을 심었다.
의심 없이 그림에만 매여 있고, 순백의 열정을 다하는 화가 최선호. 지난겨울, 그는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다 한다. 그곳의 태양에서 열정을 본 것일까? 전시 「새로운 세계」에 소개된 그의 그림은 확 달라져 있었다. 눈 덮인 산에 핀 매화가 마치 태양처럼 붉었다. 부디 ‘한국의 색, 한국의 미를 규명하겠다’는 그의 열정 또한 지치지 않고 타오르기를! 덕분에 우리는 또 감동하고, 감탄하며 그의 그림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터이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화가 최선호와 패션디자이너 채은하의 즐거운 나의집
지난 3월, 화가 최선호의 전시가 진행 중인 청담동 화랑을 찾았을 때, 그는 예의 그 담백한 차림에 가슴에는 플라스틱 꽃 한 송이를 꽂고 있었다. 아! 그는 영락없는 화가의 모습이었다. 덕분에, 가슴 한 이 간질간질해졌다. 큰 키에 동그란 안경, 시원시원한 음성과 말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한눈에도 그는 노심 사하거나 서두르며 살아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충청북도의 시골에서 신혼 시절을 보냈는데, 그 시골집이 그와 참 닮은꼴이다” 하였던 소개해준 이의 말이 생각나 마음이 더욱 분주해졌다.기획 홍주희 | 레몬트리
화가의 시골살이 사연화가 최선호의 시골살이 사연은 이렇다.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간송 미술관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청년 최선호는 올림픽이 있던 해, 호암 미술관에서 열린 「뉴욕 현대 미술제」를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때까지 겸재·단원풍의 그림으로는 스스로를 따라올 사람이 없어 자만하던 차였는데, 현대 미술 작가들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완전히 죽은 사람이다. 17~18세기 할아버지였다’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보장된 미래 대신 과감한 뉴욕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 미술을 전공하며 ‘최선호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갗를 끈질기게 고민했다. “어느 날 서양화를 흉내 내는 나를 보고 선생이 묻더군요. ‘최선호, 당신은 누구인가? 이 그림에서는 당신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 뒤부터 캔버스 위에 유화로 한국적인 색채를 담기 시작했지요.” 과연 최선호의 ‘면분할’ 작품은 서양 작가의 작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니라, 곱게 물들인 천으로 캔버스를 감싼 것 같은 느낌. “조선 시대 규방에서 비롯된 한국적 컬러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는 화가의 지난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1 이른 4월, 시골집은 이미 꽃이 지천이었다. 최선호·채은하 부부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딸 서우와 2학년 아들 영조.
자연과 벗하는 집4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교수직은 지원했지만, 이 독특한 이력의 화가를 반기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동양화과 출신의 서양화가, 양쪽 모두에서 그는 이단이었다. “세상과 타협이 안 되니 ‘평생 그림이나 그리자’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자랐던 충청도 천안군의 한 폐교에서 혼자 1년 동안 먹고 자고 하면서 그림을 그렸지요.”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기거할 시골집을 찾아나섰다. 그가 생각한 조건은 ‘산수가 좋고, 기운이 따뜻한 집’. 그런데 마음에 차는 집은 6개월 후에야 나타났다. “어느 날, 누에 치던 빈집이 나왔다고 해서 가보았더니, 터가 한눈에 쏙 들어오더라고요. 기교를 부리지 않은 소박한 흙집도 마음에 들고, 산수가 훤하면서 해가 잘 드는 게 감탄이 절로 나오대요.” 두말할 것 없이 계약을 하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얼마 뒤 자신의 전시회에서 만난 부인 채은하 씨와 결혼을 하면서 이 시골집은 자연스레 부부의 신혼집이 되었다.
2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지만, 시골집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서우와 영조의 별명은 ‘된장과 간장’이라고 한다.
3 집 뒷마당은 작고 예쁜 꽃닭들이 주인이다. 신혼 시절 부부는 고군분투하여 한국화에 등장하는 토종 꽃닭을 구하였다.
4 수류화개(水流花蓋)를 줄여 ‘수와러라는 문패를 달았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집이라는 뜻. 전각에도 능한 최선호 선생이 직접 문패를 만들었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충북 괴산군의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들 속을 얼마간 달리자, 인가가 드물어질 즈음 아담한 흙 집 두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번듯하게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날렵한 지붕 선이며 자연스레 울퉁불퉁한 외벽이 예사롭지 않았다. 더욱이 앞마당, 뒷마당에는 기자가 생전 처음 보는 토종 꽃나무들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개나리보다 야무진 모양새의 생강나무 꽃, 방긋방긋 피어 있는 영춘화, 그리고 초록색 꽃술이 청 한 청매화… 그런데, 집을 가득 메운 꽃들은 모두 색채가 수수하고 크기도 소박하였다. ‘헤픈 꽃보다 새침한 꽃’을 좋아하는 주인의 취향 탓이다. “서울 사람들이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는 것처럼, 우리 부부는 마당을 가꾸었어요. 특히 토종 꽃나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지요. 심지어, 집 앞 마당에 옅은 하얀색 봉숭아를 심기 위해서 지리산까지 가서 꽃씨를 구한 일도 있었어요.” 다행히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취향이 똑같았다. 부인 역시 동양화를 전공하였기 때문에,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식물도 정성스레 길러봐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화가 최선호는 뭐든지 뚝딱뚝딱 만드는 재주꾼이다. 전면에 보이는 장식장은 채색을 하였고, 천장에 달린 모빌은 구리를 잘라 직접 만들었다. 가운데 원목 식탁은 디자인만 본인이 하고 제작은 목수에게 맡겼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동양과 서양이 만나다부부가 ‘빈자의 미학’이라 칭하는 흙집 하나는 살림집, 나머지는 작업실로 꾸며졌다. “원래 동양화에서는 비어 있음을 미학의 절정으로 치지요. 그래서 저희 집의 콘셉트도 ‘비 와 부재’로 정했어요.” 건물 밖은 물론 안에서도 당연히 인공 소재는 찾아볼 수 없다. 집을 고칠 때도, 부부는 “외관이나 내부는 그대로 둔 채, 바닥과 보일러만 깔아주세요”를 주문하였다 한다. 그러니 옛날 나무 서까래를 그대로 살렸고, 작은 창틀과 오래된 나무 문도 모자란 듯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동양화를 전공한 서양화가 ‘최선호의 아이덴티티’를 집 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이 시골스러운 흙집의 거실에 등장한 필립스탁의 루이고스트 체어와 미스 트립 체어가 뜻밖이었다. 안방으로 가자 기자의 감탄은 더욱 커졌다. 연애 시절 구입하였다는 전라도식 먹반닫이 위에 알바알토의 유리 사보이 베이스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전라도식 먹반닫이는 미감을 최고로 치지요. 모던한 비례감과 세련된 블랙 컬러에서 ‘절제의 미’가 느껴져요. 유려한 곡선의 사보이 베이스와 당연히 어울릴 수밖에요.” 동서양 가구가 믹스된 것은 물론이고 소품까지 조화롭게 공존하는 집을 구경하고 나니, “좋은 예술은 보편성을 지닌다”는 화가의 말에 자연스레 공감하게 되었다.
1 최선호는 책장에도 한국의 색을 칠하였다. 러시아 작가 말러비치의 작품과 장안평에서 구입한 조선 ‘해태’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시골 부부의 서울행2 나무 서까래와 흙 천장이 그대로 드러난 작업실.
3 작은 풍금은 1년간 살았던 폐교에서 얻어온 것. 벽에 걸린 그림은 히말라야에서 솟는 태양을 보고 그린 ‘The flower’다.
4 얼마 전 『한국의 미 산책』이라는 책을 발간한 그는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한다. ‘철학 하는 화갗라는 별명이 무색지 않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
이 단정하고 세련된 시골집은 아쉽지만 지금은 가족의 주말 주택이 되었다. 4년 전, 화가 최선호 선생이 사디 교수가 되면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교수로 임용되고 두 아이가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살이가 공고해졌다. 더욱이 동양화를 전공한 부인 또한 그 뒤 패션 디자이너로 변신하였고, 삼청동에 자신의 쇼룸을 마련하였다. “미대생 시절에는 그냥 옷을 좋아하는 여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시골집에서 살던 어느 날 진심으로 멋진 옷을 만들고 싶어졌지요. 고민 끝에 남편에게 상의하였더니, ‘집안에 그림 그리는 사람은 나 하나면 족하다’는 말로 지지해주더군요.” 이후 그녀는 살림집을 줄이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삼청동 20평짜리 한옥에 자신의 쇼룸을 열었다. “저 또한 남편처럼 ‘한국의 미’라는 주제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의식하지 아도, 어느 순간 한국적인 소재와 색채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이 동네에 부티크를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지요.” 얼마 뒤 5월, 패션쇼를 기획하고 있는 그녀는 이번 쇼에서도 그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을 생각이다. “옛 사대부들이 썼던 전통 손명주로 가장 현대적인 의상을 디자인하겠다”는 그녀의 포부를 들으니, 장르가 달라도 부부의 작품 세계는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1 패션 디자이너 채은하의 작업실. 동양화를 전공하였기 때문일까. 한국적인 소재와 색감이 눈에 띈다.
2 벽에 걸린 손명주는 일일이 손으로 짜야 만들 수 있는 고급 전통 옷감.
3 부엌에는 장안평에서 구입한 조선 목가구와 소반이 놓여 있다. 동네 제철소 아저씨를 졸* 장안평에서 구한 돌확을 싱크대처럼 만들어 쓴다.
4 채은하의 삼청동 쇼룸의 마당 전경. 한옥의 바닥과 돌확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풀꽃들을 심었다.
의심 없이 그림에만 매여 있고, 순백의 열정을 다하는 화가 최선호. 지난겨울, 그는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다 한다. 그곳의 태양에서 열정을 본 것일까? 전시 「새로운 세계」에 소개된 그의 그림은 확 달라져 있었다. 눈 덮인 산에 핀 매화가 마치 태양처럼 붉었다. 부디 ‘한국의 색, 한국의 미를 규명하겠다’는 그의 열정 또한 지치지 않고 타오르기를! 덕분에 우리는 또 감동하고, 감탄하며 그의 그림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터이다.기획 홍주희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레몬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