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보은군 ·괴산군과
경북 상주시 경계에 있는 속리산 일대의 국립공원.
면적 283.4㎢. 1970년 3월 24일 지정되었으며,
1984년 충청북도 괴산군 화양동(華陽洞)도립공원이 편입되었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한국 팔경(八景)의 하나인
유명한 경승지로, 제2금강(金剛), 또는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법주사(法住寺)를 중심으로 4km 가량의 반경으로 호를 그리면서,
북쪽에 관음봉(觀音峰)이 있고 이어 문장대(文藏臺)·신선대(神仙臺)·입석대(立石臺)·
비로봉(毘盧峰)·경업대(慶業臺)·천황봉(天皇峰:1,058m) 등
해발고도 1,000m 이내의 산봉이 솟아 있는데 최고봉은 천황봉이다.
속리산국립공원의 입구는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舍乃里)이며
법주사의 사하촌(寺下村)으로 발달하였다.
이 사하촌은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옛 마을이 철거되고 청주나들이골이라는 곳에 새로이 관광촌이 조성되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지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그 후 그 유지(遺址)에 옛 모양을 되살려 재건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경내에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국보 5)·팔상전(捌相殿:국보 55)·석련지(石蓮池:국보 64)·
사천왕 석등(四天王石燈:보물 15)·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보물 216)·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103)·속리산 망개나무(천연기념물 207) 등이 있고,
법주사 일원은 사적 및 명승 4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법주사의 남쪽에는 남산약수(南山藥水)가 있고,
북쪽 가까이에는 수정암(水晶庵) 석문(石門)과 여적암(汝寂庵)이 있다.
법주사에서 천황봉으로 오르는 사내천(舍乃川) 계곡에는
탈골암(脫骨庵)·복천암(福泉庵)·학소대(鶴巢臺)·하환암(下歡庵)·상환암(上歡庵)·
중사자암(中獅子庵) 등의 여러 암자가 있고,
이들을 지나 경북과의 경계에 오르면 전망이 뛰어난 경승지인 문장대에 이른다.
문장대는 2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철책으로 등반로가 만들어져 있다.
상주시 화북면(化北面) 용유리(龍遊里)로 내려가면 견훤성(甄萱城)이 있다.
- 네이버 발췌 - 속리산 설명글
(법주사 철당간지주)
금강문을 들어서면 바로 좌우에 당간지주(幢竿支柱)와 철확(鐵)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당간지주는 당간과 지주가 합쳐진 말이다.
당간은 절의 행사나 법회 등을 알리는 안내문을 높게 세운 깃대로서 찰(刹) 또는
찰주(刹柱)라고도 부른다.
지주는 이 당간을 세울 수 있도록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버팀돌이다.
일반적으로 당간은 목재로 만들기 때문에 남겨진 예가 거의 없고
지주만 남아 흔히 당간지주라고 부른다.
법주사의 당간지주는 고려 초인 1006년(목종 7)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의 높이가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후기인 1866년(고종 3) 대원군의 명령으로
국가에서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기 위해
사찰의 많은 금속물들이 징발 당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시 용화전의 미륵장륙상과 이 철당간이 사라졌던 것이다.
1910년 무렵 22m 높이의 철당간을 확대,
복원하였고 1972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 법주사 발췌 -
(속리산 계곡의 물 줄기)
푸르름이 만연한 속리산의 신록이 계곡물에 반사되어,
너무나 멋진 경치를 선 보입니다.
(속리산 등산로)
법주사를 지나 세심정 휴게소 까지의 도상 거리가 꽤나 길어,
산행길이 지루 할 즈음 목욕소가 나타납니다.
(목욕소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산행클럽 회원님들)
세심정을 향하기 전 목욕소가 나타납니다. 이곳은 세조가 목욕을 하여 피부병을 치료한 곳이라고 합니다.
(두꺼비 바위)
바위 위에 올려 놓은 돌들 때문인지,
더욱더 두꺼비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방향에 따라 거북이 처럼 보인다고도 하네요?
( 문장대 휴게소에서 바라본 얼굴 바위 )
측면에서 바라본 바위는 얼굴 형태와 머리,코,입의
모양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문장대 정상에서 바라본 속리산 전경)
문장대에 오르니 바람이 대단히 강하게 불었답니다.
강한 바람과 이른 아침의 쌀쌀한 날씨로 인하여,
빠르게 정상을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속리산의 전경)
산행에 대한 연륜이 적어 봉우리 넘어 지역에 대한 정보가조금 부족합니다.
이 산 저산 수 많은 산들을 찾아 다니게 되면,
곧 저에게도 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보가 쌓이겠지요?
(문장대에서 바라본 속리산의 절경)
항상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산 아래의 풍경은 너무나 고요하며,
평화로워 보입니다.
(신선대에서 문장대 향하던 중)
꽃,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꽃 내음을 맡아 보려 다가가 봅니다.
(문장대 이동중 속리산의 전경)
한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속리산의 절경,
이 아름다운 산행길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까요?
컬럼비아FT 산행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은 속리산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 입니다.
(속리산의 일출)
속리산의 멋진 일출을 보려 일찍 산에 올랐건만,
아쉽게도 몇분 차이로 일출을 보지 못했네요!
다음에는 더욱더 부지런을 떨어야 겠더라구요?
(경업대에서 바라본 속리산의 전경)
일출 전, 경업대 주변에서 찍어본 사진입니다.
아쉽게도 반대편 능선에서 태양이 뜬 지라,
제대로 된 일출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름다운山行 클럽입니다.
산을 좋아하고, 주말 뜻 깊게 보내실분 이유불문 환영합니다.
http://club.cyworld.com/edelweiss77
▶。˚ 아름다운 山行。제23부 - 속리산
면적 283.4㎢. 1970년 3월 24일 지정되었으며, 1984년 충청북도 괴산군 화양동(華陽洞)도립공원이 편입되었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한국 팔경(八景)의 하나인 유명한 경승지로, 제2금강(金剛), 또는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법주사(法住寺)를 중심으로 4km 가량의 반경으로 호를 그리면서, 북쪽에 관음봉(觀音峰)이 있고 이어 문장대(文藏臺)·신선대(神仙臺)·입석대(立石臺)· 비로봉(毘盧峰)·경업대(慶業臺)·천황봉(天皇峰:1,058m) 등 해발고도 1,000m 이내의 산봉이 솟아 있는데 최고봉은 천황봉이다. 속리산국립공원의 입구는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舍乃里)이며 법주사의 사하촌(寺下村)으로 발달하였다. 이 사하촌은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옛 마을이 철거되고 청주나들이골이라는 곳에 새로이 관광촌이 조성되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지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그 후 그 유지(遺址)에 옛 모양을 되살려 재건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경내에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국보 5)·팔상전(捌相殿:국보 55)·석련지(石蓮池:국보 64)· 사천왕 석등(四天王石燈:보물 15)·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보물 216)·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103)·속리산 망개나무(천연기념물 207) 등이 있고, 법주사 일원은 사적 및 명승 4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법주사의 남쪽에는 남산약수(南山藥水)가 있고, 북쪽 가까이에는 수정암(水晶庵) 석문(石門)과 여적암(汝寂庵)이 있다. 법주사에서 천황봉으로 오르는 사내천(舍乃川) 계곡에는 탈골암(脫骨庵)·복천암(福泉庵)·학소대(鶴巢臺)·하환암(下歡庵)·상환암(上歡庵)· 중사자암(中獅子庵) 등의 여러 암자가 있고, 이들을 지나 경북과의 경계에 오르면 전망이 뛰어난 경승지인 문장대에 이른다. 문장대는 2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철책으로 등반로가 만들어져 있다. 상주시 화북면(化北面) 용유리(龍遊里)로 내려가면 견훤성(甄萱城)이 있다. - 네이버 발췌 - 속리산 설명글
(속리산 국립공원 안내도)
먼저 등산 코스를 살펴 봅니다.
매표소-일주문-법주사-세심정휴게소-비로산장- 경업대-입석대-신선대
문수봉-문장대-냉천휴게소 -중사자암-보현재휴게소-용바윗골휴게소-탈골암
세심정휴게소-법주사-일주문-매표소
산행시작 AM 03:00
산행종료 AM 10:00
(북 보은 시민들의 상수도원인 속리산 저수지)
물이 어찌나 맑던지 그 속에서 노닐던 물고기 떼들이
선명하게 잘 보였답니다.
형님이 던져준 빵 한 조각에 어찌나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 들던지,
하산길 또 하나의 산 친구들을 만들고 갑니다.
(법주사 앞 이정표)
이른 새벽 산행이 시작되어,
올라갈때는 보지 못했던 이정표 였답니다.
아침 9시가 될 무렵 참 많은 이들이 속리산을 찾아 올라 가며,
한마디씩 던지십니다.
'하산 하시는 길이신가봐요?'
아마도 일찍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가봅니다.
(법주사 대웅전)
1987년 3월 9일 보물 제915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2층 건물로, 건축면적이 366㎡인 팔작지붕집이다.
기단은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
그리고 갑석을 쌓아 만든 가구식(架構式) 기단으로,
전면 중앙에는 답도(踏道)와 우석(隅石)을 갖춘, 폭넓은 계단이 있다.
1층 전면과 서측면은 정자살의 분합문을 달고,
뒤쪽과 동쪽면에는 분합문 외에 판벽을 달았다.
2층에는 광창(光窓)을 달았으나, 보수 때 판벽(板壁)으로 고쳤다고 한다.
평면으로 보아 내·외진의 주열을 배열하고 내진주(內陣柱)는
위층까지 올라간 고주(高柱)를 세웠다.
이 내·외진 사이에 툇보를 걸고 그 위에 2층 평주를 올려놓았기 때문에,
툇보를 여러 겹으로 보강하였다.
1층과 2층은 내부에서 통층으로 되어 주요 가구가 노출되나,
1층과 2층의 외측으로는 빗반자를 돌리고 2층 중앙부는 한단 높여 우물반자를 꾸미고 있다.
뒷면 고주 앞에 불단을 길게 마련하여 중앙에는 비로자나불과
그 양쪽에 석가모니 및 노사나불상을 봉안하였다.
공포(栱包)는 내·외 2출목이며,
거의 수평을 이루어 외부로 뻗은 강직한 쇠서받침 끝과
내측에 교두형(翹頭形) 살미[山彌] 끝을 보이게 한 것은 이 건물의 특징이다.
또 귀포 내부에서 한대가 서로 교차되는 점에 기둥을 세우고
45°기울기의 귀보를 건너지른 것도 보기드문 양식이다.
건물 내·외의 단청은 화려한 금모로 시문하고
포벽(包壁)과 2층 벽 등에는 벽화를 그렸다.
- 네이버 발췌 -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높이는 33m이다.
최초의 불상은 신라 제36대 혜공왕 때 승려인 진표가
청동으로 주조한 후 1000여 년 간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흥선대원군이 당백전(當百錢)의 재료로 쓰기 위하여 훼손하였고,
1939년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인 김복진(金復鎭)이
당시 일제강점기 때 독립에 대한 염원을 살려,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그의 《불상습작》을 원형으로 하여
시멘트로 대불을 제작하였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시멘트 미륵대불을 그대로 본떠
청동대불로 조성하는 청동불상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주재로 쓰인 청동만도 116t이나 소요되었다.
당시 청동미륵대불 조성에는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주축으로 한 학자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17인 위원회가 5회에 걸쳐 평가회를 가졌고,
하나로 이어지는 청동불상 조성의 예가 세계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비철금속분야 연구진까지 참여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부 용접 부위에 부식이 진행되면서 얼룩진 외관 때문에
불상으로서의 품위유지가 어려워지자 2000년부터
불상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改金佛事) 공사가 시작되었다.
총 12억 원의 자금이 들어간 공사는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미세한 구멍을 메꾸는 과정부터 옻칠, 금분 칠, 금박 입히기 등
8단계를 거쳐 17개월만인 2002년 6월 5일 끝났다.
순금이 총 80㎏ 소요되었고 연면적 900㎡에 이르는 겉부분에는
3미크론(0.003㎜) 두께의 금박을 입혔으며
섭씨 80℃∼-30℃에서 견딜 수 있는 건식 전기도금공법을 통해 광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수도금하였다.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8m의 기단부 안에는 용화전이 있는데,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 네이버 발췌 -
(법주사쌍사자석등 (法住寺雙獅子石燈)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 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긴다.
사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은 8각으로 높직하며,
네 곳에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을 이루다가 여덟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는데,
꾸밈을 두지 않아서인지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
신라의 석등이 8각 기둥을 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는 물론 후대에 가서도 이를 모방하는 작품이 나타났다.
같은 절 안에 있는 법주사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과 함께
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네이버 발췌 -
- 법주사 발췌 -
(속리산 계곡의 물 줄기)
푸르름이 만연한 속리산의 신록이 계곡물에 반사되어,
너무나 멋진 경치를 선 보입니다.
(속리산 등산로)
법주사를 지나 세심정 휴게소 까지의 도상 거리가 꽤나 길어,
산행길이 지루 할 즈음 목욕소가 나타납니다.
세심정을 향하기 전 목욕소가 나타납니다.
이곳은 세조가 목욕을 하여 피부병을 치료한 곳이라고 합니다.
(두꺼비 바위)
바위 위에 올려 놓은 돌들 때문인지,
더욱더 두꺼비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방향에 따라 거북이 처럼 보인다고도 하네요?
(문장대 휴게소)
급작스런 야간산행으로, 아침식사도 챙기지 못하였는데,
정상 휴게소의 문이 일찍 열렸습니다.
' 가게에 들어서서 막거리 한통과 시레기 국으로 아침 허기를 달랬습니다.'
(문장대 휴게소 암벽에 매달려있는 소나무)
암벽에 살아가는 소나무의 운치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지난 컬럼비아FT 동반 산행 (안개속 산행) 때와는 또 다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문장대 정상 안내표지판과 구.표지석)
높이 1,054m이다.
큰 암석이 하늘 높이 치솟아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한다.
비로봉(毘盧峰)·관음봉(觀音峰)·천황봉(天皇峰)과 함께 속리산(俗離山)에 딸린 고봉이다.
산마루에는 약 5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빈터가 있으며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쇠다리가 놓여 있어 오르내리기에 안전하며,
북쪽 절벽 사이에 있는 감로천(甘露泉)이 유명하다.
1970년 3월 속리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네이버 발췌 -
(문장대 표지석과 문장대 정상)
이른 아침 산행으로 한적하게 문장대 정상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답니다.
다음에는 더욱더 부지런을 떨어야 겠더라구요?
아름다운山行 클럽입니다. 산을 좋아하고, 주말 뜻 깊게 보내실분
이유불문 환영합니다. http://club.cyworld.com/edelweiss77
산행 동참 해주신 아름다운 산행 클럽 회원이신,
조태희님과 한치권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더욱더 좋은 곳으로의 산행 기약하면 글을 마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