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예절학교가 왜 강남에 있어요?” “무슨 소리야, 그럼 부산 어묵은 왜 서울에 있어? 껌 씹으려고 핀란드까지 가야 해? 이러다가 김밥 먹으러 천국 가겄다!” KBS (이하 )의 ‘박 대 박’은 토크쇼를 배경으로 소심한 MC 박성광과 막무가내 게스트 박영진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그려내는 코너다. 합을 정확히 맞춘 액션처럼 착착 맞아떨어지는 말싸움의 향연이 9년 지기인 두 사람의 환상적인 호흡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고 보면 더욱 그럴 듯하다. 열아홉 살 대학 신입생으로 처음 만나 대학로의 공연장을 거쳐 의 무대에 서기까지, 한결같이 함께 개그맨의 길을 걸어온 박성광과 박영진을 가 만났다. 인터뷰 사이사이, 이들은 웃지도 않고 농담을 툭툭 던졌다.
그러다 3월 말 ‘청학동 훈장’ 때부터 기세를 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국회의원’ 편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박영진 : 사실 ‘청학동 훈장’ 때가 코너 존폐의 위기였다. 여기서 그만 접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 때 반응이 좋았다.
박성광 : 사실 우리 코너는 주인공 직업을 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거기에 따라 질문이 나오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찾는데 ‘국회의원’ 편은 1주일 내내 고민하다가 녹화 전날인 화요일 저녁에 갑자기 결정된 아이템이었다.
요즘에는 “얼굴이 있으면 좀 생기세요!” “못생길 거였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지!”등 박성광의 외모를 비하하는 대사도 종종 나오는데, 괜찮나.
박성광 : 사람들이 안 웃으면 안 할 텐데, 거기서 너무 크게 웃는 거다. 아니, 그렇게까지 웃을 필요 있나? (웃음)
대사를 하면서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나.
박영진 : 물론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코너 안에서 그 부분은 ‘보험’이다. 사람들이 100% 웃을 수 있는 부분이라 이제는 고정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한 번 하고 나니까 이제는 성광이가 자진해서 아이디어를 내 준다.
박성광 : “야,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나를) 까 봐!”하면서.
(웃음)
그런데 얼마 전 리허설 현장에서 본 박영진의 성격은 박 대 박’의 안하무인 캐릭터와 달리 말수도 적고 굉장히 깍듯한 편이라 놀랐다.
박영진 : 사실은 낯을 많이 가린다. 무대공포증도 있어서 무대에서는 긴장을 많이 한다. 초반에는 시선처리 같은 것도 엉망이었다. 특별히 포커페이스여서 그런 게 아니라 사색이 돼서 연기하는 건데 사람들은 ‘저 친구는 표정 변화가 없네?’ 정도로 생각해주는 것 같다. (웃음)
9년지기 라던데, 동아방송대 동기로 처음 만나기 전에는 각자 어떻게 살았나. 박영진 : 경북 김천이 고향이다. 부모님과 형이 있고, 친척들도 다 가까이 살았지만 내가 개그맨이 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저렇게 애가 말이 없지? 말 좀 가르쳐 줄까?”했을 정도로 조용한 편이었다. 학교에서도 먼저 앞에 나가 사람들을 웃기거나 분위기를 띄우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웃겨 주는 건 참 기분이 좋은데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건 싫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와서야 무대에서 웃길 때의 희열을 알았다. 박성광 : 아무도 믿지 않지만, 내 고향은 서울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이미 ‘나대는’ 스타일이었다. 영화 같은 데 보면 덩치도 작아서 싸움도 못하면서 싸움 잘하는 애랑 붙어 다니면서 막 깝죽거리고 사고치고 도망 다니는 캐릭터.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해 고등학교 때는 학급 회장도 했다. 공부도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연기에 대한 꿈이 컸다. 박영진 : 조인성이랑 연기학원 동기라더라. 박성광 : 이런 얘기 나오면 조인성이 자기 이름 판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웃음)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박영진 : 미친놈인 줄 알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성광이가 앞에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뭐라고 계속 떠드는 거다.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애들이 그걸 좋아하는 걸 보고 ‘쟤가 웃기려고 그러는구나’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밤에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확 휘어잡고 애들의 시선을 자기한테 모으는 걸 보니까 뭔가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나도 방석이랑 젓가락을 들고 가서 “사인해 주세요!”라고 했다.
술에 취했었나?
박영진 : 음, 취했었다.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박성광 : 돌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떻게 친해진 건가.
박성광 : 학교에 개그 동아리가 없다는 걸 알고 내가 만들기로 했다.
박영진 : 나도 만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게 쉽겠냐?’고 생각하고 농구 동아리로 갔다. 그런데 성광이가 개그 동아리 시험 보러 오라는 거다. 그 땐 좀 친해진 뒤여서 시험 안 봐도 합격시켜줄 줄 알고 시험에 안 갔더니 진짜로 날 떨어뜨렸다. 결국 다음 날 성광이 앞에서 다시 시험을 봤다.
박성광 : 얘 말고도 지원자가 많았다. 100명 좀 안 되는 사람 중에 40명 정도가 들어왔다. 한 학기 지나고 나서 4명 남긴 했지만.
박영진 : 군대도 맞춰서 다녀왔다. 동반입대가 없던 시절이라 그냥 같은 날 입대 신청해서 닷새 차로 제대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개그맨을 준비한 건 언제부터인가.
박성광 : 스무 살 때, 처음으로 개그맨 공채 시험을 봤다. 영진이는 전날 술 마시고 뻗어서 가지도 않겠다고 하는 걸 끌고 가서 일단 시험을 봤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그 때 떨어졌어야 우리가 정신을 차리는 건데. 결국 최종에서 떨어졌는데도 그 뒤로 자만하게 됐다.
박영진 : 주변에서는 다 우리더러 재밌다고 하니까 거만해져 있었다. 떨어지면 “우리 능력을 못 알아보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으니까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러다 안 되면 나는 아무 것도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데 어떡하나 싶었다. 그래서 대학로 공연을 하며 많이 배우고 담도 키웠다. 무대공포증 때문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담을 키우고 싶은데 가끔 객석에 관객이 한 명 있을 때도 있었다.
박성광 : 무대에 있는 사람 수가 관객 수보다 많았던 날도 있다.
박영진 : 대학로 공연을 하면서 느낀 건, 개그도 사실 공연이고 연극의 일종인데 아직까지는 개그를 좀 낮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연극배우’라고 해주는데 ‘개그맨’으로 인식되지 않은 개그하는 사람들을 ‘개그맨 지망생’으로만 여기고 아마추어로 치부하는 게 안타까웠다.
공채 시험에도 몇 번 떨어졌는데, 사실 기약 없는 일이지 않나. 시험에 붙는다는 보장도 없고, 개그맨으로 성공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 그만 접고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박성광 : 그냥 이것 밖에, 이것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다른 일이라면 글쎄, 뭐 하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박영진 : 다른 거 할까, 하는 생각보다는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집에 내려가야지, 했던 적은 있다. 제대하고 나서도 집에 손을 벌려야 했을 때는 특히 힘들었다. 스물 한두 살도 아니고 이제 사회인인데.
박성광 : 그래서 영진이가 집에 몇 번 내려갔다. 안 하겠다고. 그래서 내가 몇 번 데리고 왔다.
박영진 : 데리러 오진 않았고 전화를 했다.
박성광 : 전화해서 막 뻥을 치는 거다. “야, 올라오면 오디션 자리가 있는데 진짜 괜찮은 거야” “이번에 들어온 일 하면 돈방석에 올라앉는대!” 이런 식으로.
거의 매니저 수준인데? (웃음)
박영진 : 그래서 올라와 보면 아무 것도 없다. 영화 조연급으로 나온다고 한 데 가 보면 조연만 한 2백명 되는 거고. (웃음) 그런데 편도 차비만 딱 들고 온 거라 내려갈 차비는 없고, 그럼 어쩔 수 없이 한 달 정도 있으면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거다.
에서 잊혀지지 않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
그러다 드디어 KBS 개그맨 22기 공채에 합격했는데 그게 끝은 아닌 것 같다. 올해 초 박성광이 초보 개그맨으로 출연한 ‘대학로 블루스’라는 코너는 비록 1회 만에 끝났지만 아이디어 고갈, PD와의 관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할 때의 스트레스 등 다양한 애환이 담겨 있어 인상적이었다.
박성광 : 방송에는 5분 정도 밖에 안 나갔지만 내용이 워낙 많아서 녹화는 한 15분 정도 했다. 그 때가 우리에겐 많이 힘들었을 때다.
집중토론’은 끝나고, 영진이 새 코너 편집되고 내 코너도 세 번이나 편집되고. 연초라서 여기저기 ‘2008년 기대주’라고 나왔는데 정작 우리 코너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여전히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고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다음 코너에 대한 부담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박영진 : 일단 목숨이 붙어 있어야겠지. 그리고 그 때도 물론 공개 코미디를 계속 하고 있으면 좋겠고, 좀 준비가 되면 버라이어티에서도 활약을 하고 있는 모습도 그려보는데 이도저도 잘 안 되면 또 모르겠다. 고향 내려가서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의 주인공 박영진이 운영하는 정육점 같은 걸 하고 있을지도.
왜 정육점인가?
박영진 : 시의성을 생각한 거다.
이렇~게 재밌으십니다! (웃음) 어떤가, 서로 활동하고 싶은 분야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는데.
박성광 : 개인적으로 개그를 계속 하면서 연기도 많이 하고 싶다.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싶다.
박영진 : 한 마디로 돈 되는 건 다 하겠다는 얘기다.
연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OCN 에 보험금을 노린 부인에게 살해되는 비극적 캐릭터로 드라마 데뷔를 했다.
박성광 : 정말 어려웠다. 무대 연기와 많이 다른 데다 같은 장면도 카메라 위치 바꿔서 네다섯 번씩 연기하는데 손동작은 매번 똑같이 해야 하고. 또, 공연할 때는 관객들의 리액션에 필을 받을 수도 있는데 드라마는 그런 것도 없으니까.
박영진 : 그러니까 다음에 드라마 찍을 때는 관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해야지.
박성광 : 어쨌든 둘이 하는 활동도 좋고 각자 하는 것도 좋은데, 나중에는 영진이와 나도 컬투 선배들처럼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박영진 : 지금은 신인이니까 각자 개성을 살려서 다양한 것들을 접해보고, 나중에 세월이 좀 더 지난 다음에는 정말 ‘박 대 박 쇼’라던가 ‘투박쇼’같은 걸 해보고 싶다. 둘만 무대에 던져 놔도 한 두 시간 정도는 충분히 놀 수 있으니까. 그 전까지는 그냥 꾸준히 하면서 도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 대 박’이 끝나더라도 이걸로 잊혀지는 게 아니라 새 코너로 다시 관객들에게 인사드리고 싶다.
t매거진 박대박 인터뷰 내용
t 매거진 인터뷰에 실린내용 05-20
“청학동 예절학교가 왜 강남에 있어요?” “무슨 소리야, 그럼 부산 어묵은 왜 서울에 있어? 껌 씹으려고 핀란드까지 가야 해? 이러다가 김밥 먹으러 천국 가겄다!” KBS (이하 )의 ‘박 대 박’은 토크쇼를 배경으로 소심한 MC 박성광과 막무가내 게스트 박영진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그려내는 코너다. 합을 정확히 맞춘 액션처럼 착착 맞아떨어지는 말싸움의 향연이 9년 지기인 두 사람의 환상적인 호흡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고 보면 더욱 그럴 듯하다. 열아홉 살 대학 신입생으로 처음 만나 대학로의 공연장을 거쳐 의 무대에 서기까지, 한결같이 함께 개그맨의 길을 걸어온 박성광과 박영진을 가 만났다. 인터뷰 사이사이, 이들은 웃지도 않고 농담을 툭툭 던졌다.
그러다 3월 말 ‘청학동 훈장’ 때부터 기세를 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국회의원’ 편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박영진 : 사실 ‘청학동 훈장’ 때가 코너 존폐의 위기였다. 여기서 그만 접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 때 반응이 좋았다.
박성광 : 사실 우리 코너는 주인공 직업을 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거기에 따라 질문이 나오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찾는데 ‘국회의원’ 편은 1주일 내내 고민하다가 녹화 전날인 화요일 저녁에 갑자기 결정된 아이템이었다.
요즘에는 “얼굴이 있으면 좀 생기세요!” “못생길 거였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지!”등 박성광의 외모를 비하하는 대사도 종종 나오는데, 괜찮나.
박성광 : 사람들이 안 웃으면 안 할 텐데, 거기서 너무 크게 웃는 거다. 아니, 그렇게까지 웃을 필요 있나? (웃음)
대사를 하면서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나.
박영진 : 물론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코너 안에서 그 부분은 ‘보험’이다. 사람들이 100% 웃을 수 있는 부분이라 이제는 고정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한 번 하고 나니까 이제는 성광이가 자진해서 아이디어를 내 준다.
박성광 : “야,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나를) 까 봐!”하면서.
(웃음)
그런데 얼마 전 리허설 현장에서 본 박영진의 성격은 박 대 박’의 안하무인 캐릭터와 달리 말수도 적고 굉장히 깍듯한 편이라 놀랐다.
박영진 : 사실은 낯을 많이 가린다. 무대공포증도 있어서 무대에서는 긴장을 많이 한다. 초반에는 시선처리 같은 것도 엉망이었다. 특별히 포커페이스여서 그런 게 아니라 사색이 돼서 연기하는 건데 사람들은 ‘저 친구는 표정 변화가 없네?’ 정도로 생각해주는 것 같다. (웃음)
9년지기 라던데, 동아방송대 동기로 처음 만나기 전에는 각자 어떻게 살았나.
박영진 : 경북 김천이 고향이다. 부모님과 형이 있고, 친척들도 다 가까이 살았지만 내가 개그맨이 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저렇게 애가 말이 없지? 말 좀 가르쳐 줄까?”했을 정도로 조용한 편이었다. 학교에서도 먼저 앞에 나가 사람들을 웃기거나 분위기를 띄우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웃겨 주는 건 참 기분이 좋은데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건 싫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와서야 무대에서 웃길 때의 희열을 알았다.
박성광 : 아무도 믿지 않지만, 내 고향은 서울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이미 ‘나대는’ 스타일이었다. 영화 같은 데 보면 덩치도 작아서 싸움도 못하면서 싸움 잘하는 애랑 붙어 다니면서 막 깝죽거리고 사고치고 도망 다니는 캐릭터.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해 고등학교 때는 학급 회장도 했다. 공부도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연기에 대한 꿈이 컸다.
박영진 : 조인성이랑 연기학원 동기라더라.
박성광 : 이런 얘기 나오면 조인성이 자기 이름 판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웃음)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박영진 : 미친놈인 줄 알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성광이가 앞에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뭐라고 계속 떠드는 거다.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애들이 그걸 좋아하는 걸 보고 ‘쟤가 웃기려고 그러는구나’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밤에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확 휘어잡고 애들의 시선을 자기한테 모으는 걸 보니까 뭔가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나도 방석이랑 젓가락을 들고 가서 “사인해 주세요!”라고 했다.
술에 취했었나?
박영진 : 음, 취했었다.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박성광 : 돌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떻게 친해진 건가.
박성광 : 학교에 개그 동아리가 없다는 걸 알고 내가 만들기로 했다.
박영진 : 나도 만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게 쉽겠냐?’고 생각하고 농구 동아리로 갔다. 그런데 성광이가 개그 동아리 시험 보러 오라는 거다. 그 땐 좀 친해진 뒤여서 시험 안 봐도 합격시켜줄 줄 알고 시험에 안 갔더니 진짜로 날 떨어뜨렸다. 결국 다음 날 성광이 앞에서 다시 시험을 봤다.
박성광 : 얘 말고도 지원자가 많았다. 100명 좀 안 되는 사람 중에 40명 정도가 들어왔다. 한 학기 지나고 나서 4명 남긴 했지만.
박영진 : 군대도 맞춰서 다녀왔다. 동반입대가 없던 시절이라 그냥 같은 날 입대 신청해서 닷새 차로 제대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개그맨을 준비한 건 언제부터인가.
박성광 : 스무 살 때, 처음으로 개그맨 공채 시험을 봤다. 영진이는 전날 술 마시고 뻗어서 가지도 않겠다고 하는 걸 끌고 가서 일단 시험을 봤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그 때 떨어졌어야 우리가 정신을 차리는 건데. 결국 최종에서 떨어졌는데도 그 뒤로 자만하게 됐다.
박영진 : 주변에서는 다 우리더러 재밌다고 하니까 거만해져 있었다. 떨어지면 “우리 능력을 못 알아보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으니까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러다 안 되면 나는 아무 것도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데 어떡하나 싶었다. 그래서 대학로 공연을 하며 많이 배우고 담도 키웠다. 무대공포증 때문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담을 키우고 싶은데 가끔 객석에 관객이 한 명 있을 때도 있었다.
박성광 : 무대에 있는 사람 수가 관객 수보다 많았던 날도 있다.
박영진 : 대학로 공연을 하면서 느낀 건, 개그도 사실 공연이고 연극의 일종인데 아직까지는 개그를 좀 낮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연극배우’라고 해주는데 ‘개그맨’으로 인식되지 않은 개그하는 사람들을 ‘개그맨 지망생’으로만 여기고 아마추어로 치부하는 게 안타까웠다.
공채 시험에도 몇 번 떨어졌는데, 사실 기약 없는 일이지 않나. 시험에 붙는다는 보장도 없고, 개그맨으로 성공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 그만 접고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박성광 : 그냥 이것 밖에, 이것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다른 일이라면 글쎄, 뭐 하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박영진 : 다른 거 할까, 하는 생각보다는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집에 내려가야지, 했던 적은 있다. 제대하고 나서도 집에 손을 벌려야 했을 때는 특히 힘들었다. 스물 한두 살도 아니고 이제 사회인인데.
박성광 : 그래서 영진이가 집에 몇 번 내려갔다. 안 하겠다고. 그래서 내가 몇 번 데리고 왔다.
박영진 : 데리러 오진 않았고 전화를 했다.
박성광 : 전화해서 막 뻥을 치는 거다. “야, 올라오면 오디션 자리가 있는데 진짜 괜찮은 거야” “이번에 들어온 일 하면 돈방석에 올라앉는대!” 이런 식으로.
거의 매니저 수준인데? (웃음)
박영진 : 그래서 올라와 보면 아무 것도 없다. 영화 조연급으로 나온다고 한 데 가 보면 조연만 한 2백명 되는 거고. (웃음) 그런데 편도 차비만 딱 들고 온 거라 내려갈 차비는 없고, 그럼 어쩔 수 없이 한 달 정도 있으면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거다.
에서 잊혀지지 않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
그러다 드디어 KBS 개그맨 22기 공채에 합격했는데 그게 끝은 아닌 것 같다. 올해 초 박성광이 초보 개그맨으로 출연한 ‘대학로 블루스’라는 코너는 비록 1회 만에 끝났지만 아이디어 고갈, PD와의 관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할 때의 스트레스 등 다양한 애환이 담겨 있어 인상적이었다.
박성광 : 방송에는 5분 정도 밖에 안 나갔지만 내용이 워낙 많아서 녹화는 한 15분 정도 했다. 그 때가 우리에겐 많이 힘들었을 때다.
집중토론’은 끝나고, 영진이 새 코너 편집되고 내 코너도 세 번이나 편집되고. 연초라서 여기저기 ‘2008년 기대주’라고 나왔는데 정작 우리 코너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여전히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고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다음 코너에 대한 부담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박영진 : 일단 목숨이 붙어 있어야겠지. 그리고 그 때도 물론 공개 코미디를 계속 하고 있으면 좋겠고, 좀 준비가 되면 버라이어티에서도 활약을 하고 있는 모습도 그려보는데 이도저도 잘 안 되면 또 모르겠다. 고향 내려가서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의 주인공 박영진이 운영하는 정육점 같은 걸 하고 있을지도.
왜 정육점인가?
박영진 : 시의성을 생각한 거다.
이렇~게 재밌으십니다! (웃음) 어떤가, 서로 활동하고 싶은 분야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는데.
박성광 : 개인적으로 개그를 계속 하면서 연기도 많이 하고 싶다.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싶다.
박영진 : 한 마디로 돈 되는 건 다 하겠다는 얘기다.
연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OCN 에 보험금을 노린 부인에게 살해되는 비극적 캐릭터로 드라마 데뷔를 했다.
박성광 : 정말 어려웠다. 무대 연기와 많이 다른 데다 같은 장면도 카메라 위치 바꿔서 네다섯 번씩 연기하는데 손동작은 매번 똑같이 해야 하고. 또, 공연할 때는 관객들의 리액션에 필을 받을 수도 있는데 드라마는 그런 것도 없으니까.
박영진 : 그러니까 다음에 드라마 찍을 때는 관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해야지.
박성광 : 어쨌든 둘이 하는 활동도 좋고 각자 하는 것도 좋은데, 나중에는 영진이와 나도 컬투 선배들처럼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박영진 : 지금은 신인이니까 각자 개성을 살려서 다양한 것들을 접해보고, 나중에 세월이 좀 더 지난 다음에는 정말 ‘박 대 박 쇼’라던가 ‘투박쇼’같은 걸 해보고 싶다. 둘만 무대에 던져 놔도 한 두 시간 정도는 충분히 놀 수 있으니까. 그 전까지는 그냥 꾸준히 하면서 도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 대 박’이 끝나더라도 이걸로 잊혀지는 게 아니라 새 코너로 다시 관객들에게 인사드리고 싶다.
박성광 : 개그는 다른 분야보다 더 빨리 잊혀진다고 하지만 나는
에서 잊혀지지 않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
박영진 : 얘는 절대 잊혀지지는 않을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고를 쳐서라도.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