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 세종대학교 영문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했다. 1988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단에 등단, 시집으로 『무림일기』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세상의 모든 저녁』 『세운상가 키드의 생애』, 산문집으로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등이 있다. &#-9;21세기 전망&#-9;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1993년 자신의 대표 시집과 같은 이름의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감독 데뷔를 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했고,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통해 결혼과 동거에 대한 도발적인 시선을 보여주며 연출력과 흥행력을 함께 인정받았다. 그리고 2004년 세 번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대한민국 학교제도에 대해 통쾌하게 일침을 가하며 전국30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았고, 작품 역시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조폭 세계로 시선을 돌린 2006년 작 <비열한 거리>를 선보였다. 현재는 비열한 거리에 이어 조인성을 주연으로 케스팅한 <쌍화점>을 차기작으로 준비 하고있다.
-
유하감독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들을 쭉 보면서 그의 시까지 챙겨 읽게 되었다. 이제는 시인보다 감독으로의 무게추가 기울어진 그를 보며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에게는 이 시대의 불만 가득한 마이너의 향취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불만의 목소리가 격하게 터져 나오며 그는 현재도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시비를 걸어온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은 자신의 시집명이기도 한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이다. 하지만 그가 그 이후 자의든 타의든 작품 활동을 지속하지 않았기에, 그의 또 다른 시작점인 <결혼은 미친 짓이다>부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혼제도’의 부조리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파격적인 베드신 화제를 불러 모았지만,
결혼제도에 대한 도발적인 묘사가 더욱 놀라웠다.
맞선에서 만난 대학 강사인 준영과, 연희는 단 하룻밤 만에 가까워진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더욱 마음을 주지만, 크고 작은 다툼으로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연인이 가진 한가지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결혼에 대처하는 자세다. 준영은 결혼이라는 것을 혐오한다. 각종 허례허식이 두 사람의 관계마저 흩어버리는 피곤함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연희는 결혼상대와 연애상대를 현실적인 잣대로 구분한다.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자와 결혼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연희가 결혼한 후에도 지속된다.
이 시대에서 결혼이 가지는 의미는 무얼까? 유하가 생각한 한 가지는 결혼이 가지는 현실성이 연인시절의 낭만을 앗아가는데도, 그것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다. 두 사람은 서로 끌리고 행복한 만남을 지속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맞지 않음을 인정한다. 사랑하면 결혼을 하는 것은 이제는 옛말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이 쇼핑을 하며 주말부부 행색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다른 이가 보기에 거의 완벽한 매무새로 두 사람은 부부를 재현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결국에는 가면을 쓴 연극놀이일 수도 있다는 점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남녀라면 언제든 재현할 있는 것 일수도 있지만, 막상 했을 때는 연인이 싸우고 나서 서로를 보지 않듯 보잘것없는 의미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준영과 영희 두 사람의 관계도 일상에 결혼의 흔적이 튀자마자 파국의 나락에 빠져든다. 한집에 살며 콩나물밥과 라면으로 싸우게 되는 결혼이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유하의 사회의식이 담긴 빈정거림이다.
대학 강사인 준영(감우성 분)은 결혼제도와 사랑 사이에 놓인 괴리감에 괴로워한다.
이런 사회제도에 대한 불만과 부조리에 대한 냉소는 그의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달의 몰락
-유하
나는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아래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김씨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
이제 한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네가 지금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너처럼 살다가는 폐인 될 수 도 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난 정상인들 틈에서
순식간에 비정상인으로 전락한다
아니 그 전락을 홀로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난 충분히 외롭다
하지만 난 편입의 안락과 즐거움 대신
일탈의 고독을 택했다 난 집밖으로 나간다
난 집이라는 굴레가, 모든 예절의 진지함이,
그들이 원하는 사람노릇이, 버겁다
난 그런 나의 쓸모없음을 사랑한다
중략...
명절이 즐거운 사람이 있을까? 요즘엔 시집 못간 노처녀만 명절 때 괴로운 것이 아니다. 명퇴한 아버지도, 취업 못한 맏아들도, 성적이 부진한 막내까지 명절엔 갈굼의 대상이 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뭔지. 그렇게 틀에 박힌 사회의 규율에 맞춰 사느니 나락의 모퉁이에서 비정상으로 남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비정한 반항아 유하의 모습이 그려진다.
말죽거리 잔혹사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가 본격적인 감독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작품이다. 때는 유신정권, 장소는 군홧발소리가 가득한 고등학교다. 비인간적이며 불합리한 공간에서 피 끓는 청춘들은 아주 당연하게도 찍소리 못하고 숨죽이며 그 시절을 보낸다. 잔혹한 시기를 보낸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유하는 영웅적 판타지를 가미한다. 지나간 현실을 뒤로한 체 소년은 비굴하게 울지 않고, 보다 더욱 잔혹한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고 거짓된 추억을 하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좌측부터 현수(권상우 분), 햄버거(박효준 분), 우식(이정진 분)
‘현수’는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소년이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이소룡을 좋아하는 공통분모와 내기농구에 이기는 것을 계기로 싸움 짱인 ‘우식’과 친해진다. 어느 학창시절이 그렇듯 첫사랑의 쓴맛도 보고, 그걸 계기로 친구 우식과의 관계도 틀어지며, 현수는 잔혹한 시절을 맞이한다. 유하는 그 시절을 보내온 이로서 그 시절이 참으로 힘들고 괴로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 시절이 좋았다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왜냐면 그때는 ‘대한민국 다 X까라’며 창을 깨부술 수 있는 판타지가 있었으니까. 그때는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첫사랑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자신을 억압하는 검열의 굴레가 뚜렷하게 드러난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악을 악하다고 말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정신이 있던 때였으니, 그때는 행복했다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더 보이지 않는 손의 규제에 막혀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그 시절은 잔혹했지만 그 시절은 꽤나 달콤한 판타지를 가지고 답답한 교실에서 버틸 수 있었노라 말한다. 교실 속 언제나 숨죽이던 우리가 현수처럼 다 때려 부술 수 있길 희망하던 때는 그때뿐이었다고 말한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들의 갈등의 시발점이 된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9;은주&#-9;(한가인 분)
학교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부조리한 세계는 유신이 사라진 지금에도 우리의 사회에 남아 그 흔적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그 잔혹한 일들이 잔행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을 옥죄고 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불행하던 시절이 끝나 지금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과연 우리 자신은 검열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학교에서 배운 것
유하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툴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 하는 법
그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현재 학교에 군홧발 소리가 없다하여, 그것이 곧 자유로운 세상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의 잔혹한 세월을 보낸 젊은이들이 현재 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한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겉보기에는 번지르르 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내적인 사상의 검열에 괴로워하는 학생들의 울부짖음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언제나 똑같으니 말이다.
비열한 거리
조폭 영화는 단물이 다 빠졌다고 할 때, 유하감독의 조폭 영화 <비열한 거리>가 극장에 걸렸다. 그리고 식상한 조폭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유하의 영화는 새롭게 다가왔다.
이 영화에서 조폭은 직장생활을 하는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만 일하는 것이 남들과 다르게 조금 험한 것일 뿐이다. 적은 월급에 고생하고, 큰 돈을 만지기 위해 뭐든지 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선물을 사며, 내 집 장만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까지 판박이다. 이런 설정은 유하가 하려는 이야기의 기반이 된다.
<비열한 거리>는 소박한 인물로 그려진 조폭들이 우리 사회에서 정착하자
비열한 길을 걷게 됨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조폭보다 중요한 인물은 주인공 병두의 친구인 ‘영화감독 민호’다. 조폭과 영화감독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동창이기에 서로 친구일 수 있다. 동시에 영화 막바지로 가며 병두가 파국의 길을 걷게 되는 이유를 제공한 ‘적’이 된다. 유하는 조폭이라 불리는 세상의 이질적인 존재들이 결코 먼 존재들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민하는 젊음이자 평범한 감독 ‘민호’를 통해 우리가 조폭과 또 다른 것은 무엇인가 반문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고, 배신하고, 이용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비열한 젊음들이 뒷골목 조폭과 다를 것이 없음을 말한다.
조폭이 우리와 가까워 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점점 조폭의 습성을 닮아가고 있다. 아니 본래부터 이 사회가 더 비열한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 사회가 양산하는 인물들은 약한 영화감독 민호가 조폭인 병두를 죽음으로 몰 듯, 더욱 악랄하고, 비열한 거리를 걷는다. 유하 특유의 냉소적인 시각이 이 영화에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사회의 시스템 자체를 바라보는 사려 깊은 눈이 기존의 조폭 영화를 진일보시켰다는 생각을 해본다.
순박한 청년들이 구성한 조폭이라는 세계가 평범한 일반인에 의해 비열해질 때, 유하의 눈에는 이질적인 조폭들이 내 곁에 다가온 친구일 수 있다는 섬뜩함을 느낀 것이다.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조인성 분>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인간냄새 나는 조폭을 훌륭히 연기한다.
다음 시는 유하가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이 영화 <비열한 거리>와 많이 닮아 있어 골라봤다.
나무를 낳는 새
유하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 와
나무에게 키스했을 때
나무는 새의 입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 주었습니다.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바람이, 떨어진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싹을 틔워 잎새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그렇듯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새떼가 날아갑니다.
울창한 숲의 내세가 날아갑니다
좌측부터 <쌍화점>의 감독인 &#-9;유하&#-9;와 세 주인공 주진모, 송지효, 조인성
쌍화점
08년 개봉을 목표로 하는 유하 감독의 차기작이다. 쌍화점은 아시다시피 고려속요 계통의 남녀상열지사로서, 그 당시 조선사회에서도 퇴폐한 성윤리를 너무 노골적으로 그린다하여 배척되기도 했던 문제작(?)이다. 이런 제목을 단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벌써부터 기대가 된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영화의 시대배경은 고려 원 간섭기의 왕비와 호위무사간의 사랑과 배신을 그린다고 한다. 예상일뿐이지만 구속된 성윤리와 신분적 갈등에 따른 이데올로기에 대한 유하의 시각이 잘 드러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장르가 무협액션에다가 조인성과 주진모 주연이니, 유하의 폼 나는 스타일을 다시 한번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세상의 삐딱이로서 시인이자 감독인 &#-9;유하&#-9;
예술가 유하.
그를 읽고 보며 느낀 점은 그의 세밀한 관찰력이다. 모든 사물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그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잘 살아오고 있는 이 세상에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은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그 삐딱한 시선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유발한다. 그가 추구하는 재미의 절대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너무도 평범한 일상에 그 삐딱함에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운명에 곧이곧대로 순응하는 우리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하는 건 아닐까싶다.
부조리에 대해 말하는 영화 감독"유하"
시인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해가고 있는 예술가 유하
유하 바이오그래피.
1963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 세종대학교 영문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했다. 1988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단에 등단, 시집으로 『무림일기』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세상의 모든 저녁』 『세운상가 키드의 생애』, 산문집으로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등이 있다. &#-9;21세기 전망&#-9;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1993년 자신의 대표 시집과 같은 이름의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감독 데뷔를 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했고,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통해 결혼과 동거에 대한 도발적인 시선을 보여주며 연출력과 흥행력을 함께 인정받았다. 그리고 2004년 세 번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대한민국 학교제도에 대해 통쾌하게 일침을 가하며 전국30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았고, 작품 역시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조폭 세계로 시선을 돌린 2006년 작 <비열한 거리>를 선보였다. 현재는 비열한 거리에 이어 조인성을 주연으로 케스팅한 <쌍화점>을 차기작으로 준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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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감독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들을 쭉 보면서 그의 시까지 챙겨 읽게 되었다. 이제는 시인보다 감독으로의 무게추가 기울어진 그를 보며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에게는 이 시대의 불만 가득한 마이너의 향취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불만의 목소리가 격하게 터져 나오며 그는 현재도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시비를 걸어온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은 자신의 시집명이기도 한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이다. 하지만 그가 그 이후 자의든 타의든 작품 활동을 지속하지 않았기에, 그의 또 다른 시작점인 <결혼은 미친 짓이다>부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혼제도’의 부조리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파격적인 베드신 화제를 불러 모았지만,
결혼제도에 대한 도발적인 묘사가 더욱 놀라웠다.
맞선에서 만난 대학 강사인 준영과, 연희는 단 하룻밤 만에 가까워진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더욱 마음을 주지만, 크고 작은 다툼으로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연인이 가진 한가지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결혼에 대처하는 자세다. 준영은 결혼이라는 것을 혐오한다. 각종 허례허식이 두 사람의 관계마저 흩어버리는 피곤함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연희는 결혼상대와 연애상대를 현실적인 잣대로 구분한다.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자와 결혼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연희가 결혼한 후에도 지속된다.
이 시대에서 결혼이 가지는 의미는 무얼까? 유하가 생각한 한 가지는 결혼이 가지는 현실성이 연인시절의 낭만을 앗아가는데도, 그것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다. 두 사람은 서로 끌리고 행복한 만남을 지속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맞지 않음을 인정한다. 사랑하면 결혼을 하는 것은 이제는 옛말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이 쇼핑을 하며 주말부부 행색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다른 이가 보기에 거의 완벽한 매무새로 두 사람은 부부를 재현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결국에는 가면을 쓴 연극놀이일 수도 있다는 점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남녀라면 언제든 재현할 있는 것 일수도 있지만, 막상 했을 때는 연인이 싸우고 나서 서로를 보지 않듯 보잘것없는 의미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준영과 영희 두 사람의 관계도 일상에 결혼의 흔적이 튀자마자 파국의 나락에 빠져든다. 한집에 살며 콩나물밥과 라면으로 싸우게 되는 결혼이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유하의 사회의식이 담긴 빈정거림이다.
대학 강사인 준영(감우성 분)은 결혼제도와 사랑 사이에 놓인 괴리감에 괴로워한다.
이런 사회제도에 대한 불만과 부조리에 대한 냉소는 그의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달의 몰락
-유하
나는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아래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김씨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
이제 한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네가 지금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너처럼 살다가는 폐인 될 수 도 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난 정상인들 틈에서
순식간에 비정상인으로 전락한다
아니 그 전락을 홀로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난 충분히 외롭다
하지만 난 편입의 안락과 즐거움 대신
일탈의 고독을 택했다 난 집밖으로 나간다
난 집이라는 굴레가, 모든 예절의 진지함이,
그들이 원하는 사람노릇이, 버겁다
난 그런 나의 쓸모없음을 사랑한다
중략...
명절이 즐거운 사람이 있을까? 요즘엔 시집 못간 노처녀만 명절 때 괴로운 것이 아니다. 명퇴한 아버지도, 취업 못한 맏아들도, 성적이 부진한 막내까지 명절엔 갈굼의 대상이 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뭔지. 그렇게 틀에 박힌 사회의 규율에 맞춰 사느니 나락의 모퉁이에서 비정상으로 남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비정한 반항아 유하의 모습이 그려진다.
말죽거리 잔혹사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가 본격적인 감독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작품이다. 때는 유신정권, 장소는 군홧발소리가 가득한 고등학교다. 비인간적이며 불합리한 공간에서 피 끓는 청춘들은 아주 당연하게도 찍소리 못하고 숨죽이며 그 시절을 보낸다. 잔혹한 시기를 보낸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유하는 영웅적 판타지를 가미한다. 지나간 현실을 뒤로한 체 소년은 비굴하게 울지 않고, 보다 더욱 잔혹한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고 거짓된 추억을 하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좌측부터 현수(권상우 분), 햄버거(박효준 분), 우식(이정진 분)‘현수’는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소년이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이소룡을 좋아하는 공통분모와 내기농구에 이기는 것을 계기로 싸움 짱인 ‘우식’과 친해진다. 어느 학창시절이 그렇듯 첫사랑의 쓴맛도 보고, 그걸 계기로 친구 우식과의 관계도 틀어지며, 현수는 잔혹한 시절을 맞이한다. 유하는 그 시절을 보내온 이로서 그 시절이 참으로 힘들고 괴로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 시절이 좋았다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왜냐면 그때는 ‘대한민국 다 X까라’며 창을 깨부술 수 있는 판타지가 있었으니까. 그때는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첫사랑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자신을 억압하는 검열의 굴레가 뚜렷하게 드러난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악을 악하다고 말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정신이 있던 때였으니, 그때는 행복했다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더 보이지 않는 손의 규제에 막혀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그 시절은 잔혹했지만 그 시절은 꽤나 달콤한 판타지를 가지고 답답한 교실에서 버틸 수 있었노라 말한다. 교실 속 언제나 숨죽이던 우리가 현수처럼 다 때려 부술 수 있길 희망하던 때는 그때뿐이었다고 말한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들의 갈등의 시발점이 된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9;은주&#-9;(한가인 분)
학교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부조리한 세계는 유신이 사라진 지금에도 우리의 사회에 남아 그 흔적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그 잔혹한 일들이 잔행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을 옥죄고 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불행하던 시절이 끝나 지금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과연 우리 자신은 검열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학교에서 배운 것
유하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툴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 하는 법
그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현재 학교에 군홧발 소리가 없다하여, 그것이 곧 자유로운 세상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의 잔혹한 세월을 보낸 젊은이들이 현재 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한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겉보기에는 번지르르 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내적인 사상의 검열에 괴로워하는 학생들의 울부짖음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언제나 똑같으니 말이다.
비열한 거리
조폭 영화는 단물이 다 빠졌다고 할 때, 유하감독의 조폭 영화 <비열한 거리>가 극장에 걸렸다. 그리고 식상한 조폭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유하의 영화는 새롭게 다가왔다.
이 영화에서 조폭은 직장생활을 하는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만 일하는 것이 남들과 다르게 조금 험한 것일 뿐이다. 적은 월급에 고생하고, 큰 돈을 만지기 위해 뭐든지 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선물을 사며, 내 집 장만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까지 판박이다. 이런 설정은 유하가 하려는 이야기의 기반이 된다.
<비열한 거리>는 소박한 인물로 그려진 조폭들이 우리 사회에서 정착하자
비열한 길을 걷게 됨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조폭보다 중요한 인물은 주인공 병두의 친구인 ‘영화감독 민호’다. 조폭과 영화감독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동창이기에 서로 친구일 수 있다. 동시에 영화 막바지로 가며 병두가 파국의 길을 걷게 되는 이유를 제공한 ‘적’이 된다. 유하는 조폭이라 불리는 세상의 이질적인 존재들이 결코 먼 존재들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민하는 젊음이자 평범한 감독 ‘민호’를 통해 우리가 조폭과 또 다른 것은 무엇인가 반문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고, 배신하고, 이용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비열한 젊음들이 뒷골목 조폭과 다를 것이 없음을 말한다.
조폭이 우리와 가까워 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점점 조폭의 습성을 닮아가고 있다. 아니 본래부터 이 사회가 더 비열한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 사회가 양산하는 인물들은 약한 영화감독 민호가 조폭인 병두를 죽음으로 몰 듯, 더욱 악랄하고, 비열한 거리를 걷는다. 유하 특유의 냉소적인 시각이 이 영화에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사회의 시스템 자체를 바라보는 사려 깊은 눈이 기존의 조폭 영화를 진일보시켰다는 생각을 해본다.
순박한 청년들이 구성한 조폭이라는 세계가 평범한 일반인에 의해 비열해질 때, 유하의 눈에는 이질적인 조폭들이 내 곁에 다가온 친구일 수 있다는 섬뜩함을 느낀 것이다.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조인성 분>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인간냄새 나는 조폭을 훌륭히 연기한다.
다음 시는 유하가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이 영화 <비열한 거리>와 많이 닮아 있어 골라봤다.
나무를 낳는 새
유하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 와
나무에게 키스했을 때
나무는 새의 입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 주었습니다.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바람이, 떨어진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싹을 틔워 잎새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그렇듯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새떼가 날아갑니다.
울창한 숲의 내세가 날아갑니다
좌측부터 <쌍화점>의 감독인 &#-9;유하&#-9;와 세 주인공 주진모, 송지효, 조인성
쌍화점
08년 개봉을 목표로 하는 유하 감독의 차기작이다. 쌍화점은 아시다시피 고려속요 계통의 남녀상열지사로서, 그 당시 조선사회에서도 퇴폐한 성윤리를 너무 노골적으로 그린다하여 배척되기도 했던 문제작(?)이다. 이런 제목을 단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벌써부터 기대가 된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영화의 시대배경은 고려 원 간섭기의 왕비와 호위무사간의 사랑과 배신을 그린다고 한다. 예상일뿐이지만 구속된 성윤리와 신분적 갈등에 따른 이데올로기에 대한 유하의 시각이 잘 드러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장르가 무협액션에다가 조인성과 주진모 주연이니, 유하의 폼 나는 스타일을 다시 한번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세상의 삐딱이로서 시인이자 감독인 &#-9;유하&#-9;
예술가 유하.
그를 읽고 보며 느낀 점은 그의 세밀한 관찰력이다. 모든 사물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그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잘 살아오고 있는 이 세상에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은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그 삐딱한 시선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유발한다. 그가 추구하는 재미의 절대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너무도 평범한 일상에 그 삐딱함에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운명에 곧이곧대로 순응하는 우리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하는 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