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가 궁금하고, 여자는 남자가 궁금하다. 연애란 건 어쩌면 이 못말리는 궁금증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그 사람의 이름이 궁금하고, 다음엔 밥은 먹었는지가 궁금하고, 점점 그 사람의 과거가 궁금하고, 현재가 궁금하고, 미래가 궁금해진다. 모기에 잘 물리는 편인지 궁금해서 여름까지 못 헤어지겠고, 자는 모습이 궁금해서 함께 잘 수도 있고, 늙어가는 모습이 궁금해서 결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배고프다'는 단순한 말조차 508가지 의미가 응축된 빙산의 일각으로 CSI도 분석 못 할, FBI도 풀 수 없는 암호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가끔 무덤 앞에서 운다. 무덤 앞에서 그리워한다. 그러나 정작 되돌리고 싶은 것은 무덤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일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의 첫사랑이 아니라, 그 눈부신 시절의 생애를. 미치게 사랑하던 그 사람이 아니라, 미친 열정 속에 기꺼이 빠져들 수 있었던 그 무모한 용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끔 갖는 행사는 그 많은 지난 일기장을 쭉 읽어보는 것인데, 그럴 때면 내가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심지어 초등학교 때도, 지금과 비슷한 어떨 때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때보다 키도 컸고, 몸무게도 늘어났고, 책도 영화도 더 많이 보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많아졌지만, 내 고민이나 문제의 근원은 늘똑같았다. 이런 일을 몇번 겪고 나면 사람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들이 생겨나면 죽을 것 같던 아픈 기억들마저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우리는 잠시 안심을 한다. '이제는 괜찮아졌구나..' 그런데 불쑥 사소한 말 한 마디에, 무심코 누군가의 뒷모습에 스쳐가는 체취에 깜짝 놀라 잠시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런 경험. 그렇게 대부분의 기억에는 시간이 약이지만, 어떤 기억들은 뇌가 아니라 뼛속에 아로 새겨져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명징한 자국을 남긴다. 오늘만은, 이 시간만은, 아니, 이 짧은 순간만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겠다. 그렇게 치열한 순간이 모이고, 시간이 모이고, 날이 모이고, 달이 모이면 어느 순간 내 인생 전체가 충실하게 채워질 거라고 믿는다. 대책없는 판타지, 행복적인 비난이라 해도, 이제 나는 이것이 내 삶의 최선임을 안다. [백은하 - 안녕 뉴욕_] 2
백은하 - 안녕 뉴욕
남자는 여자가 궁금하고, 여자는 남자가 궁금하다.
연애란 건 어쩌면 이 못말리는 궁금증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그 사람의 이름이 궁금하고,
다음엔 밥은 먹었는지가 궁금하고,
점점 그 사람의 과거가 궁금하고,
현재가 궁금하고, 미래가 궁금해진다.
모기에 잘 물리는 편인지 궁금해서 여름까지 못 헤어지겠고,
자는 모습이 궁금해서 함께 잘 수도 있고,
늙어가는 모습이 궁금해서 결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배고프다'는 단순한 말조차
508가지 의미가 응축된 빙산의 일각으로
CSI도 분석 못 할, FBI도 풀 수 없는 암호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가끔 무덤 앞에서 운다. 무덤 앞에서 그리워한다.
그러나 정작 되돌리고 싶은 것은 무덤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일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의 첫사랑이 아니라, 그 눈부신 시절의 생애를.
미치게 사랑하던 그 사람이 아니라,
미친 열정 속에 기꺼이 빠져들 수 있었던
그 무모한 용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끔 갖는 행사는
그 많은 지난 일기장을 쭉 읽어보는 것인데,
그럴 때면 내가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심지어 초등학교 때도,
지금과 비슷한 어떨 때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때보다 키도 컸고, 몸무게도 늘어났고,
책도 영화도 더 많이 보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많아졌지만,
내 고민이나 문제의 근원은 늘똑같았다.
이런 일을 몇번 겪고 나면 사람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들이 생겨나면
죽을 것 같던 아픈 기억들마저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우리는 잠시 안심을 한다.
'이제는 괜찮아졌구나..'
그런데 불쑥 사소한 말 한 마디에,
무심코 누군가의 뒷모습에 스쳐가는
체취에 깜짝 놀라 잠시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런 경험.
그렇게 대부분의 기억에는 시간이 약이지만,
어떤 기억들은 뇌가 아니라 뼛속에 아로 새겨져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명징한 자국을 남긴다.
오늘만은, 이 시간만은,
아니, 이 짧은 순간만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겠다.
그렇게 치열한 순간이 모이고, 시간이 모이고,
날이 모이고, 달이 모이면
어느 순간 내 인생 전체가 충실하게 채워질 거라고 믿는다.
대책없는 판타지, 행복적인 비난이라 해도,
이제 나는 이것이 내 삶의 최선임을 안다.
[백은하 - 안녕 뉴욕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