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연행의 현장 기록 - 5/27

최종연200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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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신 고려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의 객관성은 주관적으로 역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획득될 수 없다"고 말하였고, 로버트 카파는 "당신이 좋은 사진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사건에 충분히 가까히 다가가지 않아서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언론의 보도가 흔히 객관적이고 네티즌들이 전하는 게시글과 댓글이 주관적이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주류 언론의 보도에서 이번 시위의 양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 글에서 실체적 진실이 왜곡될 여지가 있다면 오직 내가 선택하는 단어와 조사에 들어있는 함의된 주관성 때문일 것이며, 그 정도의 여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리고 감당해야 하는 주관성일 것이다. 이 기록은 최대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여 쓴 글이며, 언론에서 불법적인 연행과 채증에 관해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가장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자부한다.

 

 

 

5/27~28 촛불집회의 기록

 

 

1. 불법 채증하던 '프락치'의 발견

 

9:30 광화문 도착, 촛불집회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가두시위 행렬은 이미 출발했다 한다. 남은 사람들은 캠코더로 시위참가자들 사이에서 사복을 입고 불법채증을 하던 ‘프락치’를 발견, 신원확인이 될 때까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무대로 쓰이는 트럭을 둘러싸고 지키고 있었다.

 

시민들은 해당 인물의 묵비권을 인정하자는 국민대책회의 측의 제안에 박수로 맞이하였고 경찰관계자가 와서 신원을 확인하고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자리에 함께하기로 했다. 촛불 든 이는 거의 없었다. 캠코더에 있는 클로즈업 영상을 국민대책회의 측 관계자가 언론에 공개, 다수의 사진기자들과 방송기자들이 해당 화면을 촬영해갔다.

 

그러던 와중 진보신당 당원이라는 여성분이 나와서 지금 시청 쪽 프라자호텔 앞에서 행인과 시위대의 무차별적인 검거가 이루어지고 있고 해당 사실이 라디오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고 밝혔다. 상당수의 시민들이 이 사실을 듣고 시위대에 합류하기 위해 시청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김 선배와 나도 시청 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 걸어서 시청쪽으로 갔다.

 

시청 앞 광장과 프라자 호텔 부근에 도착하였으나 무척 한산하였고 전경과 시위대 모두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린 급기야 그 사실을 발언한 진보신당 분이 의도적으로 인원을 분산시키려는 프락치가 아닌가 의심까지 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명동 쪽으로 진입하는 차도가 막혀 명동 쪽에 무슨 일이 있다고 예상되어 그 쪽으로 이동하였다.

 

 

전경들이 을지로 입구 사거리 곳곳에서 대기중이거나 건물 내 자동화 코너, 주차장 등에 숨어서 대기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전경들 사이에는 꼭 두세 명씩 사복을 입고 캠코더를 든, 불법 채증을 맡은 “프락치”들이 눈에 띄었다. 새카만 방패를 든 전경 기동대 가운데에서 어설프게 버버리 남방을 입고 청바지를 입은 그들은 눈에 잘 띄었으며, 전경 지휘부 및 간부들과 담배를 피며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위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차들도 정상적으로 통행하고 있었다.

 

 

 

2. 명동으로 진출하다

 

다시 광화문으로 가려고 을지로 입구 사거리를 건너니 시위대 연락책인 듯한 분들이 전화통화로 초록색 봉고차와 이른바 선동하는 “프락치”들, ‘걸스카웃’들에 대해 경고하고 사진도 찍어놓았다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시위대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광화문에서 시청 쪽으로 진출하다 전경들이 막아서 명동으로 진출하였고, 본인들은 그때 분리되었다고 했다. 이야기하는 와중에 길 건너편의 전경들이 갑자기 명동 안 골목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무슨 일이 있나 전경들을 따라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청계광장에서 프락치를 지키던 국민대책회의 관계자 분들과 시민들 3~40명이 을지로 입구로 이동해 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프락치로 의심받은 인물은 서울경찰청 공안과 형사로 신분확인이 되어 익일 법무부의 공보관 사과를 약속받았고, 시위대에 합류하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이동한다고 하였다. 모여서 가면 전경들에게 제지 또는 연행될까봐 흩어져서 가기로 하였고, 길 건너서 명동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전경들이 명동 입구를 막고 있지 않았다.

 

 

명동에 들어가니 전경들이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봉쇄하고 있어서 우리는 뒷골목으로 우회, 크게 돌아서 명동성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위대 본대와 떨어져서 언덕길 맞은편 끝 쪽으로 진입하여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니 11시 10분이었다. 이미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입구에는 2백명 가까운 전경들이 길 한 편에 앉아서 대기중이었고 일부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달아나는 시위대를 용이하게 쫓아가기 위한 준비로 보였다. 방패 색깔로 보아 역시 기동대로 보였고, 빨간 아디다스 잠바를 입고 캠코더를 입은 불법채증담당 요원이 전경들과 어울려 있었다. 반면 명동성당 진입로 계단에는 열 명 남짓한 시민들만이 앉아 있었다. 명동 내 경로가 봉쇄되어 오기 힘들 거라고들 했다. 활동가로 보이는 한 분이 11시 30분쯤 오셔서 여기는 모이기 틀린 것 같으니 청계광장에 재집결하자고 하여 반신반의 끝에 김선배와 나는 그 사람을 따라 내려갔다. 전경들의 기합 소리가 이따금씩 골목에 군홧발소리와 함께 울려퍼졌고 갑자기 앞 큰길을 가로질러 기동대가 방패를 들고 엄청난 속도로 우르르 달려내려가는 것이 앞에 보였다. 따라가보니 전경들이 시위대를 압박하고 있었고 얼마 되지 않아 기동대는 뒤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명동 CINUS와 맞은편 건물 사이에 시위대 및 시민들이 많이, 그러나 황망하게 뿔뿔히 흩어져 서 있었고 차도 쪽은 전경들이 봉쇄하고 있었다. 서 있는 시민에게 경위를 물어보니 시민들에게 갑자기 전경 기동대가 달려들어 해산시켰으며, 아마 오늘은 이대로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 김 선배는 다시 광화문으로 이동해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기로 했다.

 

 

을지로 입구를 다시 지나 웨스턴 조선호텔 쪽에서 시청광장 쪽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전경들이 앞쪽 길에 대기하고 있고, 시청 쪽 길 끝은 전경들이 봉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길가에는 예비군복을 입은 분들과 아저씨, 젊은이들이 전경 봉쇄를 뜷고 시청 광장 쪽으로 나갈 수 있을까, 지나가려다가 연행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다같이 뭉쳐서 돌아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나와 선배를 포함한 몇몇은 그대로 돌파하기로 했다. 설마 행인을 건드리겠냐는 생각이었다. 결국 상당수의 시민들이 우리 뒤를 따라 프라자 호텔 과 오른편 건물 사이의 골목길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전경들은 그 골목을 막음으로서 명동 쪽에서 오는 시위대를 차단할 생각으로 보였다.

 

 

프라자 호텔 앞쪽을 보니 시민들과 전경들이 엉켜있어 혹시 과잉진압이 아닐까 우려되어 골목길을 건너갔다. 가 보니 전경들이 시청 앞 잔디광장으로 건너가는 짧은 횡당보도를 이중으로 가로막고 있었고 시민들이 이에 대해 통행권을 보장하라며 시위중이었다. 어차피 시청광장을 통해 다시 광화문역으로 가려 했던 나와 선배도 항의하자 경찰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함성을 환호하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전경버스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잔디광장 오른편에는 상당수의 전경들이 길게 열을 이루어 대기하고 있었다. 나와 선배는 광화문역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 시청 광장 안 쪽으로 전경들을 계속 밀고 나아갔고, 일부는 청계광장에 재집결할 생각으로 길을 건넜다.

 

3. 포위의 시작과 불법 연행

 

별안간 우리 앞에서 뒷걸음치던 전경들이 좌우로 흩어지고, 광장에서 대기하던 기동대가 재빠르게 길을 건넌 시민행렬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절대다수는 촛불도 없었고, 구호를 외치고 있지도 않았다. 둘러싸기 시작하자 맨 앞에 있던 우리와 일부 시민들은 정신없이 뛰어서 좌우에서 둘러싸는 전경들을 앞을 돌파했고, 걸음이 빠른 사람들도 포위망을 뜷었으나 걸음이 느린 사람들은 전경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단 십초 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수녀님 한 분과 여학생들, 그리고 젊은이들이 포위망을 피하지 못하고 시청광장 왼편 인도에서 전경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전경들은 2~3겹의 대오로 포위망 안 시민들과 바깥 시민들을 완전히 차단시켰다. 그 때가 12시 정각 아름이었다. 도로점거시위도, 폭력시위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서울시청광장을 인도로 삼아 광화문으로 가려던 사람들 수십 명이 경찰 쪽에 갇혀버렸다.

 

 

 

시민들은 격렬히 항의했다. 왜 통행하는 시민들을 포위하냐고, 경고방송 없이 이래도 되냐고, 이 사람들 연행해 갈 거냐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전경들에게 항의하였다. 곧이어 사복을 입은 김영수 남대문경찰서장이 와서 확성기로 “여러분들은 불법집회 주도 및 참가의 중죄를 저질렀으며, 기자들은 진압 과정에서 다치거나 장비가 파손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경우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고까지 말하고, 기자들은 포위망에서 나오라고 거듭해서 방송했다. 곧이어 "여러분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갇힌 시민들에게 방송하였다. OBS, 한겨레 박승화 기자, 민중의 소리 기자들이 나오지 않자 지목해서 나오라고도 했다. 포위망을 둘러싸고 있던 시민들은 “시민들은 다쳐도 된단 말이냐” “기자 나오지 마세요” “기자 나오지 마” “기자 나오면 다 연행할 작정인가”라고 소리를 질렀고 건장한 기동대가 둘러싸고 있는 포위망 안쪽 상황을 알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것이 12시 10분~40분 사이의 일이었다. 대치상태는 길게 이어졌다. 포위에 항의하는 중학생 한 명이 전경들에게 항의하다가 전경 간부가 직접 연행에 나섰고, 시민들이 달려들어 그 중학생을 전경 간부에게서 “빼앗았다”. 안에 포위된 시민들은 앉아 있었고. 포위망 바깥에 지키고 서 있는 시민들 뒤로도 포위망이 한 겹 더 쳐졌다. 어떤 시민들은 분노하여 바깥쪽 포위망을 형성한 전경에게 “우리도 잡아갈 거야? 잡아갈거면 얘기해봐, 그래야 집에 전화해서 내일 출근 못 한다고 하지”라고 따지기도 하였다. 서울시청 앞에 있는 무대 단상 위에서는 촛불을 든 젊은이들 2~30명이 “통행권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전경들이 갑자기 무대 단상 쪽으로 우르르 내달리기 시작했다. 단상 위에 있던 시민들은 멀리서 보아도 뛰어내리거나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러나 끝내 내려오지 못한 열 몇 명은 단상을 둘러싼 전경들에 의해 순식간에 그대로 포위되었다. 시민들은 달려가서 얘네가 무슨 잘못이 있냐며 전경들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몸싸움을 하였고, 단상 위에 시민들이 내려올 수 있도록 길을 뜷으려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단상 위에 있던 여학생들과 시민들은 불안한 듯 서성거렸고 일부는 놀란 듯 가만히 서있기도 했다.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 원래 포위되었던 시민들이 연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김 선배와 다시 달려가보니 이미 시민들은 포위망 안에서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기사를 보고 자발적으로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간발의 차이로 나와 함께 길을 건너고 인도를 걷던 시민들이 단지 걸음이 느리다는 이유로, 명동에서 시위를 하고 나오는 시위대의 선두로 오인받아, 아무런 위법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규모로 체포되어 우리 눈 앞에서 연행되었다. 불법 연행이었다. 인권운동 사랑방 활동가가 구조물 위에서 전경들에게 체포 연행의 근거가 무엇인지, 인도에서 왜 시민들을 연행해 가는지 강력히 항의하였으나 전경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다행히 단상 쪽에 포위되었던 시민들은 전경이 포위망을 풀어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추가 시위나 항의는 없었다. 전경들은 이열 종대로 전경 버스로 퇴각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이들을 향해 "보람찬 하루를 보냈구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