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음

주선희2008.05.29
조회31
제목없음

그 남자

약속도 없는 휴일 오후.
늘어지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동생이 방문을 열고는 소리를 꽥 지릅니다.

"오빠! 바탕화면 좀 정리해~!
오빠 때문에 부팅이 얼마나 느려진 줄 알아?"

"알았다, 알았다, 알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서,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채로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하나씩 문서를 열어보고, 휴지통에 버리고
그러다가 클릭해 본 이름 없는 사진파일 하나..그녀의 얼굴입니다.
사진 속에서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의 얼굴을 하고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찍지마~ 찍지 말라니까"
 사진 속에서는 꺄르륵 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저 날, 사진기를 들고 있었을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한 얼굴이었을까요?


사진 속 그녀의 흔들린 손이 번져 보이는가 했더니..
금새 사진이 두 개로 보이고, 그녀의 얼굴이 뿌옇게 됩니다.
 
"바탕화면 정리 다 했어?"

동생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합니다.

"다 해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금방 끝나. 금방... 끝날 거야..."
 
 
그 여자
 
헤어진 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열 가지.
하나, 책장을 넘기다 그 안에 끼어있는 메모지가 있다면,
절대 펼쳐보지 않기.

둘, 어쩌다 펼쳐보았어도, 그 안에 쓰인 글씨를 손으로 매만지며
글썽거리지 않기.

셋, 지난해 다이어리를 함부로 펼쳐보지 않기.

넷, 혹시나 펼쳐보았다면,

그 안에 붙어있는 스티커 사진을

애써떼어내려 하지 않기.
어차피 깨끗하게 떨어지지도 않을 테니까..

다섯, 책상서랍 속에 폴라로이드 사진의 뒷 장이 보인다면,
절대 뒤집어 보지 않기.

여섯, 혹시라도 뒤집어 보았다면, 너무 오래 들여다 보지는 않기.

일곱, 그 폴라로이드 사진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는 말기.
어차피 내일이면,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꺼내게 될 테니까..

여덟,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확실하지 않은 사진 파일 따위는 열어보지 말기.

아홉, 무심코 열어본 그 사진 파일에 우리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더라도,
무작정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꿈꾸지 말기.
 

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그 사람에게 전화하지는 말기.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 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