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여자

박성수200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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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양은 일생일대의 철학이나 일생일대의 책, 일생일대의 음악을 만난 사람을 불행해지기 마련이다고 얘기하고 있다.

 

나에게도 일생일대의 음악이 있다.

 

우리집 바로 위에는 피아노 치는 여자가 살고 있다. 내가 다른 곳에 있다 돌아와서 잘 몰랐는데 여전히 윗 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내 방은 특히나 방음에 취약하다. 그래서 낮에 있을때는 언제나 이 조금은 낯선 이에게 침입을 허락하게 된다.

 

언제나 2시경이면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더 이상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닳았다. 그때부터 나는 체념하고 그 소리를 즐기고자 노력했다.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면 고즈넉한 자세로 책을 읽든지 커피를 마시든지 하는 식이었다. 그 여자는 피아노를 썩 잘치지는 못했어도 그 곡이 무엇인지는 확연히 알게 해주는 요상한 재능이 있었으니까.

 

그 여자의 피아노 소리는 좀 유별난데가 없지 않았다. 박자나 흐름은 절대로 놓치지 않으면서 음정만은 항상 제멋대로이다. 만약 오르페우스가 지나가다 이 광경을 봤다면 적이 안타까워했으리라.

 

그 연주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부분 부분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완주까지 한번을 쉬지 않기때문이다. 예컨데 연습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녀는 무대기질을 타고났다. 남들이 자신의 연주를 듣고 있음을 확연히 의식한체 연주를 하였으므로.

 

이 세계에는 온전한 삼각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이성으로 하여금 머릿속에서 재구성해야만이 온전한 삼각형이다. '귀'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노래를 듣는 이유는 귀가 제구실을 하고 있다고 '믿기'위함이다. 나는 그 피아노소리를 다시 재구성해서 머릿속으로 흘려보냈다. 가령 불협화음의 케논이 들려온다 치면 다시금 온전한 케논으로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오랜만에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다음에 나올 곡이 무엇인지 맞추는 놀이를 혼자서 하고 있었다. 대게 메이비나 케논 그것도 아니면 라흐마니노프나 슈만따위를 쳐댔으니까. 안타깝게도 라흐마니노프도 슈만도 아니었다. 더욱이 식상한 메이비나 케논도 아니었다. 난 적이 충격을 받았다. 보통 이 노래는 피아노로 치지 않으니까.

 

윗 집의 오르페우스는 나의 일생일대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음정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음악과 함께 상념이 떠오르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 순간 온전히 내 자신은 주인공이었고,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맘만 먹으면 한 편의 예술영화를 찍을 수도 있으니까.

 

이윽고 연주가 끝났고 다시금 식상한 케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한움큼 맺힌 눈방울을 닦아냈다.

 

엉성하기 짝이없는 오르페우스를 뒤로 하고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발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아멜리양은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일생일생대의 음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불행하다니, 그런 허무맹랑한 말이 어딨는가.

 

단지, 그 사람은 남들보다 추억할만한 일이 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