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권리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담은 헌법을 묵살하며 사실상 기능을 정지시켜 버린 그 정권에 대항하고 싶었다.
내가 배운 법... 그 중 가장 소중한 헌법이 순식간에 유린 될 수 있다는 것은 군부정권에서나 가능했던, 그리고 21년전 마지막이었던 전두환이 했던 호헌조치에 버금가는 짓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서 나는 시청으로 갔다. 업무스트레스로 녹초가 된 몸이었지만 시청까지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짐에 또 한숨이 쉬어진다. 넥타이 매고 집회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 나라의 현실 때문에 뱉어지는 한숨이기에 씁쓸했다.
어제는 헌법이 유린당했다는 상실감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정신차리고 내 기본권, 내 헌법을 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시청으로 갔다.
두번째 참석한 집회였지만 오늘의 의미는 첫번째 집회와는 그렇게 의미를 달리했다.
시청역에서 내려 시청 앞 광장 출구인 5번출구로 나가는데 중대급의 전경들이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막 나오려는 순간에 막히기 시작했던지라 비집고 출구로 나오는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서명문에 서명하고선 피켓을 들고 집회에 바로 들어갔다. 8시50분쯤된 늦은 시각이라 촛불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이내 시작된 실력 가두행진 속에서 난 촛불대신 내 목소리를 불태웠다.
경찰들의 길목차단에 막혀 그리 먼 거리를 이동하진 못했지만 행진하던 길거리 곳곳에서 집회자들에 막혀 짜증날 법도 한데 오히려 응원해주던 운전자들과 시민들의 모습을 보니 이게 대한민국이지... 스스로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몇 안되는 자랑스런 우리 민족이지... 란 생각에 벅찬 눈물도 흘렀다.
한참을 고성으로 함성을 외치느라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지만... 그래... 난 지금 내 이성적 판단에 헌신하고 있고, 나는 내가 지성인으로서 갖추어야 된다고 보는 사회적 의무의 하나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어! 란 생각에 더 목청을 돋웠다.
얼마를 걸었을까? 곳곳에서 경찰들에 막혀 크게 돌다가 한참 뒤 다시 서울시청 앞 광장 길로 돌아 와서는 행진은 경찰에 의해 완전히 멈춰섰다.
맨 앞에 있었던지라 그들의 잘 정비되고 조직화 된 방어진이 일사불란하게 펼쳐지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우린 계속 전진했었고, 이내 그들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우린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이명박의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던 공권력이 무서웠다면 애초에 집회에 참석하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담담해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다. 대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첫번째 참석했던 순수한 의도의 格있는 집회는 조금 퇴색된 것이 느껴졌다.
경찰과 대치하는 중에서도 욕설을 하며 그들을 조롱하던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저건 지성인의 모습이 아닌데...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광장 가상에 있던 조형물 위로 오르려고 옆으로 빠져 나왔다. 근데 빠져 나오자 마자 보이는 것은 집회자들 뒤로 눈에 안띠게 빙 돌아나오는 경찰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는게 보였다. 그러다가 경찰 닭장차 석대가 신호대기 중인채로 뒤로 돌아가려는데 나를 포함해 몇몇 집회자들이 뛰기 시작했다. 집회자들이 소수화되면 연행하기 위해 움직이던 닭장차를 막기 위해서...
석대중에 한대는 집회자들 뒤쪽으로 빠져나갔지만 두대는 우리들에 의해 막혔다.
어떤 사람이 나바콘들을 버스 앞쪽에 두고 못가게 막았지만 버스는 무슨일이라도 있냐는 둥 진행하기 시작했고, 이내 집회자 수십명이 버스 앞길에 막아 서기 시작했다. 버스가 멈추게 되자 집회자들은 닭장차에 나를 태우라며 어린 학생들 잡아가지 말라고 항변하기 시작했고 결국 뒤에 있던 세번째 차가 후진하여 돌아 나갔다.
한참을 버스 앞에서 결사하던 집회자들은 두번째 차도 돌려보내려는데 이번에 일이 나고 말았다. 나는 버스 앞 오른쪽에서 버스를 돌려보내기 위해 다른 집회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이 버스가 집회자 중 한 사람을 치게 됐다. 버스에 치이고 깔린 그 사람을 보며 우린 필사의 힘으로 진행하려는 버스를 밀어 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이를 보고 놀란 여학생들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경찰과 대치중인 집회자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 버스 번호판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모자이크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경찰 닭장차의 이 모습을 보고 버스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는데 수십명의 사람들이 이 기계 한대를 당해내질 못한다. 그 안에서 운전하던 사람(실제로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은 온라인 기사를 보며 전경이라고 생각했지만 전경 아니다)과 그 안에 타고 있던 전경으로 추정되는 경찰은 나와서 눈으로 확인하려하진 않고 그 안에서 보이지도 않을텐데 확인한답시고 확인하며 버스를 다시 운전하려고 했다.
집회자들과 시민들이 버스를 저지하는데도 그 운전하던 사람은 거짓말로 생각했던건지, 아니면 이 한사람쯤은... 이라고 생각했던건지 다시 운행하려 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닭장차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앞유리에 붙은 철망을 흔들어 뜯어내려 했고, 버스의 앞문과 뒷문을 발로 차며 차에서 내려 당신들이 한 행동을 눈으로 보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이건 너무 아니다. 나는 내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이 곳에 왔고, 재밌는 구경거리일 망정 집회에 참석한 어린 학생들과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나와 같은 넥타이 부대들도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기에 이 곳을 찾은 것인데 이명박 정권은 대수롭지 않다고 치부하면서 계속해서 유린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은.... 이건 너무 아니다.
왜 우리 대한민국이 21년전으로 돌아가게 된 것인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굳이 이유를 붙여 보자면, 자유라는 것이 이론과 달리 누가 그냥 준 것이 아님에도 피흘리며 쟁취한 그것을 그 사건들을 망각한 20년의 세월 속에 나와 우리들이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닌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깊이있는 가르침보다는 내 자식 오냐오냐 키우며 마냥 방패막이가 되어 준 젊은 친구들의 부모들...내 반세대 위의 부모들에 의해 양산되어 우리보다 나를 생각하며 선거를 등한시한 이유 때문인가?
돌아오는 발걸음은 갈때의 그것보다 많이 무거웠다. 내 등짐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 탓인가 보다.
p.s) 퇴근하면서 바로 향했던 곳이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이어서인지 초점도 잘 안 잡히고 흔들림도 있지만 역사를 담아낼 순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풍랑은 저 먼 곳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시작되는거지...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는거지...
촛불 집회
2008년 5월 29일 오후 4시경...
헌법 제1조가 이명박 정권에 의해 유린되며 헌법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돼 버렸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권리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담은 헌법을 묵살하며 사실상 기능을 정지시켜 버린 그 정권에 대항하고 싶었다.
내가 배운 법... 그 중 가장 소중한 헌법이 순식간에 유린 될 수 있다는 것은 군부정권에서나 가능했던, 그리고 21년전 마지막이었던 전두환이 했던 호헌조치에 버금가는 짓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서 나는 시청으로 갔다. 업무스트레스로 녹초가 된 몸이었지만 시청까지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짐에 또 한숨이 쉬어진다. 넥타이 매고 집회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 나라의 현실 때문에 뱉어지는 한숨이기에 씁쓸했다.
어제는 헌법이 유린당했다는 상실감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정신차리고 내 기본권, 내 헌법을 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시청으로 갔다.
두번째 참석한 집회였지만 오늘의 의미는 첫번째 집회와는 그렇게 의미를 달리했다.
시청역에서 내려 시청 앞 광장 출구인 5번출구로 나가는데 중대급의 전경들이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막 나오려는 순간에 막히기 시작했던지라 비집고 출구로 나오는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서명문에 서명하고선 피켓을 들고 집회에 바로 들어갔다. 8시50분쯤된 늦은 시각이라 촛불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이내 시작된 실력 가두행진 속에서 난 촛불대신 내 목소리를 불태웠다.
경찰들의 길목차단에 막혀 그리 먼 거리를 이동하진 못했지만 행진하던 길거리 곳곳에서 집회자들에 막혀 짜증날 법도 한데 오히려 응원해주던 운전자들과 시민들의 모습을 보니 이게 대한민국이지... 스스로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몇 안되는 자랑스런 우리 민족이지... 란 생각에 벅찬 눈물도 흘렀다.
한참을 고성으로 함성을 외치느라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지만... 그래... 난 지금 내 이성적 판단에 헌신하고 있고, 나는 내가 지성인으로서 갖추어야 된다고 보는 사회적 의무의 하나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어! 란 생각에 더 목청을 돋웠다.
얼마를 걸었을까? 곳곳에서 경찰들에 막혀 크게 돌다가 한참 뒤 다시 서울시청 앞 광장 길로 돌아 와서는 행진은 경찰에 의해 완전히 멈춰섰다.
맨 앞에 있었던지라 그들의 잘 정비되고 조직화 된 방어진이 일사불란하게 펼쳐지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우린 계속 전진했었고, 이내 그들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우린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이명박의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던 공권력이 무서웠다면 애초에 집회에 참석하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담담해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다. 대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첫번째 참석했던 순수한 의도의 格있는 집회는 조금 퇴색된 것이 느껴졌다.
경찰과 대치하는 중에서도 욕설을 하며 그들을 조롱하던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저건 지성인의 모습이 아닌데...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광장 가상에 있던 조형물 위로 오르려고 옆으로 빠져 나왔다. 근데 빠져 나오자 마자 보이는 것은 집회자들 뒤로 눈에 안띠게 빙 돌아나오는 경찰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는게 보였다. 그러다가 경찰 닭장차 석대가 신호대기 중인채로 뒤로 돌아가려는데 나를 포함해 몇몇 집회자들이 뛰기 시작했다. 집회자들이 소수화되면 연행하기 위해 움직이던 닭장차를 막기 위해서...
석대중에 한대는 집회자들 뒤쪽으로 빠져나갔지만 두대는 우리들에 의해 막혔다.
어떤 사람이 나바콘들을 버스 앞쪽에 두고 못가게 막았지만 버스는 무슨일이라도 있냐는 둥 진행하기 시작했고, 이내 집회자 수십명이 버스 앞길에 막아 서기 시작했다. 버스가 멈추게 되자 집회자들은 닭장차에 나를 태우라며 어린 학생들 잡아가지 말라고 항변하기 시작했고 결국 뒤에 있던 세번째 차가 후진하여 돌아 나갔다.
한참을 버스 앞에서 결사하던 집회자들은 두번째 차도 돌려보내려는데 이번에 일이 나고 말았다. 나는 버스 앞 오른쪽에서 버스를 돌려보내기 위해 다른 집회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이 버스가 집회자 중 한 사람을 치게 됐다. 버스에 치이고 깔린 그 사람을 보며 우린 필사의 힘으로 진행하려는 버스를 밀어 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이를 보고 놀란 여학생들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경찰과 대치중인 집회자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 버스 번호판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모자이크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경찰 닭장차의 이 모습을 보고 버스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는데 수십명의 사람들이 이 기계 한대를 당해내질 못한다. 그 안에서 운전하던 사람(실제로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은 온라인 기사를 보며 전경이라고 생각했지만 전경 아니다)과 그 안에 타고 있던 전경으로 추정되는 경찰은 나와서 눈으로 확인하려하진 않고 그 안에서 보이지도 않을텐데 확인한답시고 확인하며 버스를 다시 운전하려고 했다.
집회자들과 시민들이 버스를 저지하는데도 그 운전하던 사람은 거짓말로 생각했던건지, 아니면 이 한사람쯤은... 이라고 생각했던건지 다시 운행하려 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닭장차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앞유리에 붙은 철망을 흔들어 뜯어내려 했고, 버스의 앞문과 뒷문을 발로 차며 차에서 내려 당신들이 한 행동을 눈으로 보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이건 너무 아니다. 나는 내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이 곳에 왔고, 재밌는 구경거리일 망정 집회에 참석한 어린 학생들과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나와 같은 넥타이 부대들도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기에 이 곳을 찾은 것인데 이명박 정권은 대수롭지 않다고 치부하면서 계속해서 유린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은.... 이건 너무 아니다.
왜 우리 대한민국이 21년전으로 돌아가게 된 것인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굳이 이유를 붙여 보자면, 자유라는 것이 이론과 달리 누가 그냥 준 것이 아님에도 피흘리며 쟁취한 그것을 그 사건들을 망각한 20년의 세월 속에 나와 우리들이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닌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깊이있는 가르침보다는 내 자식 오냐오냐 키우며 마냥 방패막이가 되어 준 젊은 친구들의 부모들...내 반세대 위의 부모들에 의해 양산되어 우리보다 나를 생각하며 선거를 등한시한 이유 때문인가?
돌아오는 발걸음은 갈때의 그것보다 많이 무거웠다. 내 등짐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 탓인가 보다.
p.s) 퇴근하면서 바로 향했던 곳이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이어서인지 초점도 잘 안 잡히고 흔들림도 있지만 역사를 담아낼 순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풍랑은 저 먼 곳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시작되는거지...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