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부터 권력(Power)은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권력자들 스스로가 만든 환경’(법과 규정 공권력과 군대)을 토대로 민중들에게 발휘되어지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그리하여 결국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마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1)현세의 역사 속 진정한 허구는 권력
권력의 구조는 지금껏 변화하여왔다. 권력구조의 상층에서부터 비롯된 문제를 상기해보면 답은 쉽게 도출된다. 역사적으로 권력은 우리에게 무수한 잔해와 파편들을 남겼다. 그중 일부를 살펴보아도 권력의 구조와 권력의 형태 그리고 그 이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천하였는지 알아볼 수 있다.
삼단계의 형태로 권력의 변천과정을 나누어 보자면 1.총과 칼의 시대 (가시적 효과로서의 권력) 2.법전과 성경의 시대(비가시적 이며 성문화된 규정과 법규로서의 권력) 3. 거대한부의 시대(거대자본과 다국적 기업 그와 결탁한 정치세력이 곳 법이자 규정이요!) 이다.
(2) 권력의 변천사
1.총과 칼의 시대
과거 수세기 동안의 역사에서 국가를 지배하는 이념과 근간이 되는 사상 규율 법규는 모두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하여 이루어져왔다.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국가와 그 국가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이들 사이에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력의 힘이다. 전란이 끊이질 안던 시대를 상상해봐라 가진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사서 부릴 것이며 힘없는 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그 가진 자 중에 자신이 부리는 자들을 통솔하는 능력이 특출하며 그로인해 다른 많은 가진 자들을 통솔하게 되는 자가 나타나면서 그가 곧 전제 군주가 된 것이다. 흔히 그것을 우리의 역사에서는 연합부족국가에서 봉건군주국으로 그리고 전제군주국으로 풀이를 한다. 그럼 이는 다시 말해 힘없는 일반 민중을 군주가 자신의 욕망과 사욕을 위해 함부로 하더라도 총과 칼로 찍어 누르면 되는 말 그대로 살육의 시대인 것이다. 우리의 역사도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안다. 무수한 정권과 왕조의 교체과정에서의 정변과 국가의 분립, 건국전쟁들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그러나 삼단계의 권력 변천과정에 있어서의 기술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삼단계 모두에 공통되는 것으로 항상 국가의 지배 이념과 법과 규범 사회질서에 따른 규정은 그 핵심과 심층부로 접근해 가면 할수록 권력자들을 위해 서 존재한다. 한마디로 말해 고대로부터 권력은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권력자들 스스로가 만든 환경’(법과 규정 공권력과 군대)을 토대로 민중들에게 발휘되어지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그리하여 결국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마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2.법전과 성경의 시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분히 민중들에게 불가항력적인) 시대를 여과하는 여과지를 뚫고나가는 변수가 존재했다. 홍길동이 그러했고 전봉준, 허균, 박지원 이수광등이 그러했다. 로빈후드와 다수의 민중 혁명가들이 존재하여 우리의 역사 속에 아직도 살아있다. 종종 그들 권력자의 권위와 실추될 수도 있는 위계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공포정치의 실시는 오히려 반발을 불러오는 결과가 되었으며 혹은 오래도록 계속되는 난무하는 권력자들의 폭정과 가혹한 정치는 민중을 억압하여 결국 폭발할 지경에 이르게 했으니 아울러 말미암아 이를 다 설명치 아니하더라도 이해하리라 안다. 이제 권력자들은 좀 더 교묘한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그들의 권력적 지지기반과 환경을 마련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법과 성경(여기에 성경이라 기술하지만 종교일절을 일컬으며 그 대표적 폐단이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이기 때문이다.)이 그것이다. 총칼을 이용한 일방적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권력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규정과 법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구분 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중들이 누리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만들고 그들은 정작 누리고 있었다.)조금 더 교묘하고 눈치를 챌 수 없게 그들은 종교와 윤리라는 명목을 통해 더 많이 민중들이 누릴 권리와 자유를 포기하고 박탈하게 만들었다. 종교는 권력자들과 결탁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권력자들은 종교를 자신들의 지배 이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가 아는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게 되었다.
서구 열강이 열띤 식민지 사업을 벌이던 시기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다양한 문화와 행동양식 정신세계와 종교를 구가하던 여러 문명을 차례차례 짓밟았다. 그런 식으로 오늘날의 대다수의 지역에서 크리스트교는 그들 원주민들의 피와 고혈위에 세워진 탐욕의 전당인 것이다. (예외는 있지만 그것은 서구열강이 아닌 동양이 그런 식민지 사업을 벌이게 되었을 때를 가정하더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일본이 과거 1.2차 세계대전동안 열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그들의 종교인 천황숭배사상과 일본불교는 강력한 지배이념이자 식민지의 피지배민들에게는 강요의 대상이 되었지 아니한가?) 물론 상황의 일례는 있겠지만 중요한 핵심은 바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욕망을 발현하는 방식에 따라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으로서의 종교 또한 변질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와 가톨릭은 일정시기부터 시작 핍박받는 자들을 위한 종교로서 출발했다. 지금 와서 기독교 대다수가 천박한 교세 확장과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추잡해 졌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대다수의 난해한 성문과 법 여러 교리들 규정들 규약들은 현대사회에 와서도 때때로 일반 민중들을 억압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억압으로 작용되고 있다. (한때는 혼전 육체적 사랑을 금기시하던 사회에서부터 한때는 동성동본간의 결혼을 금기시하던 사회적 윤리 규범 대기업과 보험회사들 기업들마다 내거는 고객과의 거래에서 약관과 규정 명시들 사회적 업무처리에 있어서의 여러 규약과 규정들 행정편의주의를 위해 규정과 규약을 모르는 일반 민중들을 향해 명령하고 지시하는 관료와 권력자들 기업들 그 외의 많은 여러 것들)
이런 것은 보다 그것을 얻어 내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들을 위해 일반 민중들이 해서는 안 될 것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를 강요하고 그로인하여 우리에게는 처벌과 훈육이 뒤따르게 된다. (우리는 이미 사회에서 범법자가 아니어도 수없이 많은 처벌과 훈육의 과정을 격어 왔다. 학교에서의 체벌과 암묵적 규율 성적지상주의 군대에서의 무수한 훈육과 인격말살과정)대다수의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누릴 권리를 사회와 권력자의 요구와 지배이념에 의해 접어야하는 사회구조 (우리시대 어린 시절 꿈만큼 어른이 되어 그 길을 찾아간 이들이 얼마나 될까?)
3. 거대한부의 시대
그러나 우리시대에 간과해선 안 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다. 이만큼 인간 역사에서 합리적이면서도 모순적이고 지배와 비지배의 규율을 규정하고 억압하는 효과적 수단이 없다.
현대사회는 거대한 부를 축적한 다국적기업과 그에 결탁하여 그들의 편의대로 법과 사회적 규율과 여러 관습을 규정짓는 정치가들. 기득권자들(유행과 패션성과 사랑 음악과 문화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기업과 정치가들의 횡포)이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경제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도태될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무한경쟁의 치열한 전장에 놓여있다. 이미 개개인의 일상은 산업의 구성 품이 되기 위한 하나의 기계로서의 교육과 훈육이 가해지며 치열한 경쟁의 삶 속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보다 많은 기회와 삶의 질을 결정할 다양한 교육이 배제 되어 국가의 시책과 향후 목표에 의해 하나 된 혹은 누구나 선망하는 길을 향해 치달으며 소위 말하는 머리빡 터지는 경쟁 속에 시달리고 있다. 누구나 열망하는 하나의 것을 위해 기업은 광고와 방송매체를 통해 유행이라는 새로운 관습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또 하나의 인간을 그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합리적 계체로 기계화 하는 하나의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자본의 메커니즘에 의해 좀 더 순종적인 소비자로서의 군중, 민중을 요구한다.
돈을 가진 자들은 축적된 자본을 통해 더 많은 지적 재산을 축적한다. 최근 레이몽 부동(Raymond Bourbon)의 저서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 에 관한 이야기는 노출본능(자신을 매스컴을 통해 이용하고 방송매체와 언론을 통해 가십과 자본을 창출하는 지식인의 본능)에 충실한 지식인 부류에 관한 신랄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지식인은 그들 자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절한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며 기업과 단체는 이를 영리적 목적을 위해 집대성 하고 축적한다. 결국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다수의 집단과 지식인들은 수익성과 지적 권력과 사회적 권위의 획득을 위해 자신들의 지적 소산을 독점하며 어느 정도 권력적 위치에 도달한 지식인들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타인들의 지적 재산을 도용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것인 양 포장하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단지 부동의 사회적 고찰과 비판으로서의 한계는 자유주의를 옹호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위선이 단지 자신들의 지적재산을 독점하려는 소유욕에서 비롯되며 이로 인해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지적 재산을 가급적 보호하기위해 서라는 것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저서에서 문제는 더 나아가 ‘돈과 지적 권력을 획득한 권력집단들이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있는가?’ 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접근은 놓치고 말았다. 중도우익을 표방하는 부동의 저서에서 읽을 수 있는 고찰은 지식인들의 지적 재산에 관한 소유와 권한의 문제에서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의 편을 들어주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돈과 그 돈을 움직이는 집단들 그리고 그들이 ‘사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며 편법과 규제와 탄압을 일삼으려 하느냐’ 아니면 ‘보다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여 모든 인간의 삶에 질을 높이는 데 헌신하는 집단이 되느냐’ ‘지식인들은 과연 그들의 편이 되어 앞선 두 가지 가치판단의 혼란 속 에서 자본주의적 기계가 될 것이냐’ 로 나뉘어 볼 수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다분히 친기업적인 옹호론 적 입장이 저서의 곳곳에서 음모론 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간과 할 순 없다.
본문-시공을 초월한 것들
본문-시공을 초월한 것들
고대로부터 권력(Power)은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권력자들 스스로가 만든 환경’(법과 규정 공권력과 군대)을 토대로 민중들에게 발휘되어지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그리하여 결국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마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1)현세의 역사 속 진정한 허구는 권력
권력의 구조는 지금껏 변화하여왔다. 권력구조의 상층에서부터 비롯된 문제를 상기해보면 답은 쉽게 도출된다. 역사적으로 권력은 우리에게 무수한 잔해와 파편들을 남겼다. 그중 일부를 살펴보아도 권력의 구조와 권력의 형태 그리고 그 이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천하였는지 알아볼 수 있다.
삼단계의 형태로 권력의 변천과정을 나누어 보자면 1.총과 칼의 시대 (가시적 효과로서의 권력) 2.법전과 성경의 시대(비가시적 이며 성문화된 규정과 법규로서의 권력) 3. 거대한부의 시대(거대자본과 다국적 기업 그와 결탁한 정치세력이 곳 법이자 규정이요!) 이다.
(2) 권력의 변천사
1.총과 칼의 시대
과거 수세기 동안의 역사에서 국가를 지배하는 이념과 근간이 되는 사상 규율 법규는 모두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하여 이루어져왔다.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국가와 그 국가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이들 사이에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력의 힘이다. 전란이 끊이질 안던 시대를 상상해봐라 가진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사서 부릴 것이며 힘없는 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그 가진 자 중에 자신이 부리는 자들을 통솔하는 능력이 특출하며 그로인해 다른 많은 가진 자들을 통솔하게 되는 자가 나타나면서 그가 곧 전제 군주가 된 것이다. 흔히 그것을 우리의 역사에서는 연합부족국가에서 봉건군주국으로 그리고 전제군주국으로 풀이를 한다. 그럼 이는 다시 말해 힘없는 일반 민중을 군주가 자신의 욕망과 사욕을 위해 함부로 하더라도 총과 칼로 찍어 누르면 되는 말 그대로 살육의 시대인 것이다. 우리의 역사도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안다. 무수한 정권과 왕조의 교체과정에서의 정변과 국가의 분립, 건국전쟁들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그러나 삼단계의 권력 변천과정에 있어서의 기술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삼단계 모두에 공통되는 것으로 항상 국가의 지배 이념과 법과 규범 사회질서에 따른 규정은 그 핵심과 심층부로 접근해 가면 할수록 권력자들을 위해 서 존재한다. 한마디로 말해 고대로부터 권력은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권력자들 스스로가 만든 환경’(법과 규정 공권력과 군대)을 토대로 민중들에게 발휘되어지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그리하여 결국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마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2.법전과 성경의 시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분히 민중들에게 불가항력적인) 시대를 여과하는 여과지를 뚫고나가는 변수가 존재했다. 홍길동이 그러했고 전봉준, 허균, 박지원 이수광등이 그러했다. 로빈후드와 다수의 민중 혁명가들이 존재하여 우리의 역사 속에 아직도 살아있다. 종종 그들 권력자의 권위와 실추될 수도 있는 위계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공포정치의 실시는 오히려 반발을 불러오는 결과가 되었으며 혹은 오래도록 계속되는 난무하는 권력자들의 폭정과 가혹한 정치는 민중을 억압하여 결국 폭발할 지경에 이르게 했으니 아울러 말미암아 이를 다 설명치 아니하더라도 이해하리라 안다. 이제 권력자들은 좀 더 교묘한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그들의 권력적 지지기반과 환경을 마련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법과 성경(여기에 성경이라 기술하지만 종교일절을 일컬으며 그 대표적 폐단이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이기 때문이다.)이 그것이다. 총칼을 이용한 일방적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권력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규정과 법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구분 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중들이 누리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만들고 그들은 정작 누리고 있었다.)조금 더 교묘하고 눈치를 챌 수 없게 그들은 종교와 윤리라는 명목을 통해 더 많이 민중들이 누릴 권리와 자유를 포기하고 박탈하게 만들었다. 종교는 권력자들과 결탁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권력자들은 종교를 자신들의 지배 이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가 아는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게 되었다.
서구 열강이 열띤 식민지 사업을 벌이던 시기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다양한 문화와 행동양식 정신세계와 종교를 구가하던 여러 문명을 차례차례 짓밟았다. 그런 식으로 오늘날의 대다수의 지역에서 크리스트교는 그들 원주민들의 피와 고혈위에 세워진 탐욕의 전당인 것이다. (예외는 있지만 그것은 서구열강이 아닌 동양이 그런 식민지 사업을 벌이게 되었을 때를 가정하더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일본이 과거 1.2차 세계대전동안 열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그들의 종교인 천황숭배사상과 일본불교는 강력한 지배이념이자 식민지의 피지배민들에게는 강요의 대상이 되었지 아니한가?) 물론 상황의 일례는 있겠지만 중요한 핵심은 바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욕망을 발현하는 방식에 따라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으로서의 종교 또한 변질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와 가톨릭은 일정시기부터 시작 핍박받는 자들을 위한 종교로서 출발했다. 지금 와서 기독교 대다수가 천박한 교세 확장과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추잡해 졌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대다수의 난해한 성문과 법 여러 교리들 규정들 규약들은 현대사회에 와서도 때때로 일반 민중들을 억압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억압으로 작용되고 있다. (한때는 혼전 육체적 사랑을 금기시하던 사회에서부터 한때는 동성동본간의 결혼을 금기시하던 사회적 윤리 규범 대기업과 보험회사들 기업들마다 내거는 고객과의 거래에서 약관과 규정 명시들 사회적 업무처리에 있어서의 여러 규약과 규정들 행정편의주의를 위해 규정과 규약을 모르는 일반 민중들을 향해 명령하고 지시하는 관료와 권력자들 기업들 그 외의 많은 여러 것들)
이런 것은 보다 그것을 얻어 내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들을 위해 일반 민중들이 해서는 안 될 것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를 강요하고 그로인하여 우리에게는 처벌과 훈육이 뒤따르게 된다. (우리는 이미 사회에서 범법자가 아니어도 수없이 많은 처벌과 훈육의 과정을 격어 왔다. 학교에서의 체벌과 암묵적 규율 성적지상주의 군대에서의 무수한 훈육과 인격말살과정)대다수의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누릴 권리를 사회와 권력자의 요구와 지배이념에 의해 접어야하는 사회구조 (우리시대 어린 시절 꿈만큼 어른이 되어 그 길을 찾아간 이들이 얼마나 될까?)
3. 거대한부의 시대
그러나 우리시대에 간과해선 안 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다. 이만큼 인간 역사에서 합리적이면서도 모순적이고 지배와 비지배의 규율을 규정하고 억압하는 효과적 수단이 없다.
현대사회는 거대한 부를 축적한 다국적기업과 그에 결탁하여 그들의 편의대로 법과 사회적 규율과 여러 관습을 규정짓는 정치가들. 기득권자들(유행과 패션성과 사랑 음악과 문화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기업과 정치가들의 횡포)이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경제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도태될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무한경쟁의 치열한 전장에 놓여있다. 이미 개개인의 일상은 산업의 구성 품이 되기 위한 하나의 기계로서의 교육과 훈육이 가해지며 치열한 경쟁의 삶 속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보다 많은 기회와 삶의 질을 결정할 다양한 교육이 배제 되어 국가의 시책과 향후 목표에 의해 하나 된 혹은 누구나 선망하는 길을 향해 치달으며 소위 말하는 머리빡 터지는 경쟁 속에 시달리고 있다. 누구나 열망하는 하나의 것을 위해 기업은 광고와 방송매체를 통해 유행이라는 새로운 관습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또 하나의 인간을 그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합리적 계체로 기계화 하는 하나의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자본의 메커니즘에 의해 좀 더 순종적인 소비자로서의 군중, 민중을 요구한다.
돈을 가진 자들은 축적된 자본을 통해 더 많은 지적 재산을 축적한다. 최근 레이몽 부동(Raymond Bourbon)의 저서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 에 관한 이야기는 노출본능(자신을 매스컴을 통해 이용하고 방송매체와 언론을 통해 가십과 자본을 창출하는 지식인의 본능)에 충실한 지식인 부류에 관한 신랄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지식인은 그들 자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절한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며 기업과 단체는 이를 영리적 목적을 위해 집대성 하고 축적한다. 결국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다수의 집단과 지식인들은 수익성과 지적 권력과 사회적 권위의 획득을 위해 자신들의 지적 소산을 독점하며 어느 정도 권력적 위치에 도달한 지식인들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타인들의 지적 재산을 도용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것인 양 포장하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단지 부동의 사회적 고찰과 비판으로서의 한계는 자유주의를 옹호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위선이 단지 자신들의 지적재산을 독점하려는 소유욕에서 비롯되며 이로 인해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지적 재산을 가급적 보호하기위해 서라는 것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저서에서 문제는 더 나아가 ‘돈과 지적 권력을 획득한 권력집단들이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있는가?’ 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접근은 놓치고 말았다. 중도우익을 표방하는 부동의 저서에서 읽을 수 있는 고찰은 지식인들의 지적 재산에 관한 소유와 권한의 문제에서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의 편을 들어주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돈과 그 돈을 움직이는 집단들 그리고 그들이 ‘사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며 편법과 규제와 탄압을 일삼으려 하느냐’ 아니면 ‘보다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여 모든 인간의 삶에 질을 높이는 데 헌신하는 집단이 되느냐’ ‘지식인들은 과연 그들의 편이 되어 앞선 두 가지 가치판단의 혼란 속 에서 자본주의적 기계가 될 것이냐’ 로 나뉘어 볼 수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다분히 친기업적인 옹호론 적 입장이 저서의 곳곳에서 음모론 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간과 할 순 없다.
08 .5.28 written by K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