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통령이 달라질까요? MB의 어제와 오늘.

박성호200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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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던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생각해보자. 이 프로에서는 상태가 심각하리만큼 문제아 기질을 보이고 있어서 부모나 교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동심리학 전문가나 교육학 전문가들이 등장하여 아이의 주변 환경이나 부모의 상태, 집안의 분위기, 아이의 정신상태 등 여러가지를 체크하여 아이를 재교육시킨다. 이러한 시도는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여전히 제 엄마 물어뜯고 난장치는 아이를 보면 뚜드려패고 싶은 기분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고분고분해져서 말 잘 듣는 변화된 모습을 볼 때에는 사람이라는 게 저럴 수 있구나 놀라워하기도 한다.

 

 

 

  &#-9;실용&#-9;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도 어언 100일. 그러나 돌아가는 정국은 실용은 커녕 &#-9;실정(失政)&#-9;에 가까운 수준이다. 단기간에 고성장을 노리려는 계획으로 고환율 정책을 내세웠지만, 때맞춰 불어온 유가 폭등으로 인해 오히려 국가 기간산업망만 망쳐놓는 결과를 낳았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서부터 시작된 실용정부의 정책들은 하나같이 급박한 진행으로 인한 난맥상들을 노출시키면서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계속 연출하고 있다. 실용정부의 삽질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9;등신외교&#-9;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방문하는 나라마다 퍼주기식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도 매번 귀국길에 오를 때마다 뒤통수를 맞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 자신이 &#-9;아마추어 정부&#-9;라고 비판했던 참여정부보다도 훨씬 무능한 국정수행능력, 이것은 곧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은 지난 5월 초의 일이다. 그 시작점은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맨 처음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이 논란은, 곧이어 터져나오기 시작한 협상 관련 문건들로 인하여 &#-9;졸속 협상&#-9;이라는 맹비난을 받으면서 재협상과 고시 철회라는 시민들의 외침 앞에 좌초되기 시작한다. 집시법을 이유로 딴지를 걸고 넘어지는 정부의 치졸함을 피해 대책위가 선택한 &#-9;촛불문화제&#-9;라는 이름은 대략 3주 가량 그런대로 제 명목을 지키며 여론의 한 구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촛불문화제가 5회를 넘기고 10회를 넘기고 다시 15회를 넘기고 20회에 이를 때까지, 정부는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그 어떠한 쇄신안도 내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지난 24일, 정부의 무능력한 협상력과 불성실한 여론 대처에 분노한 시민들이 본격적인 가두시위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반발은 사실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성난 시민들이 경찰이나 관공서를 향하여 돌을 던지고 각목을 휘둘렀다 하더라도 크게 이상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러한 강경책 대신 &#-9;촛불&#-9;을 내세우는 평화시위를 고집했다. 그것은 87년의 민주화항쟁으로부터 시작하여 2002년 월드컵과 미선-효순 사태, 그리고 2003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겪어낸 시민들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파이(쇠파이프)나 꽃병(화염병)을 던지며 경찰의 방어선으로 뛰어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될 것이며 그러한 목소리에 상대방은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희망이 특이한 형태의 가두시위를 낳았다. 어디까지가 문화제이고 어디서부터가 시위인지 알 수 없는 시민들의 진기한 행렬, 그러나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9;치안유지&#-9;라는 팻말을 뒤통수에 단 의경들의 대오였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헌법은 일종의 &#-9;가이드라인&#-9;의 구실을 한다. 실정법이라는 것이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고 안녕을 꾀하는 데 목적을 둔다면, 헌법이라는 것은 국가의 기틀을 규정하는 &#-9;철학&#-9;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당대의 정치적 논리나 여론 등에 의해 상당부분 영향을 받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헌법은 일반 실정법과는 달라서 그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요, 문학이며, 경전이다. 헌법을 모든 법의 상위에 두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통치 철학이 없는 정권은 삽질을 거듭할 수밖에 없듯이, 기틀에 대한 철학이 없는 나라는 그저 쪽수만 모아놓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이 헌법의 최상단을 점유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헌법은 MB(라고 쓰고 쥐새끼. 라고 읽는다)와 같은 &#-9;풋내기&#-9; 대통령에게 아주 좋은 교과서가 된다. 통치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서, 혹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어려운 초짜 대통령들에게 헌법은 일종의 튜토리얼이다. 나라의 기본적인 철학과 정신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풋내기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인 셈이다. <슬램덩크>에서 풋내기 강백호가 한나씨에게 부채로 맞아가면서 죽어라고 드리블만 연습했던 것처럼, 초짜 대통령에게 헌법은 경전과도 같은 존재다. 독실한 기독교도라는 MB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면 성경보다도 법전을 늘상 끼고 있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했던가, 이 초짜 대통령은 부임한 지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9;경전&#-9;을 궁둥이로 깔아뭉개는 짓거리를 벌인다. 바로 자신들의 의사를 최대한 &#-9;신사적으로&#-9; 전달하려고 하는 국민들을 향해서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다. 비폭력을 연호하며 촛불과 함께 거리로 나섰던 시위대의 실낱같은 희망은 전경들의 곤봉 앞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25일 새벽 4시에 청계천 광장에서 벌어진 폭력진압의 실상은 이 초짜 대통령이 &#-9;제 엄마의 손을 물어뜯는&#-9; 문제아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적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헌법은 1947년 제헌국회 수립 이후 9차례의 개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마지막 9번째의 개정을 거친 현재의 헌법은 어느덧 21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나 우리 앞에 서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 9차 헌법과 함께 발맞추어 걸어가면서 조금씩 민주시민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9;고속성장&#-9;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87년 이후 찾아온 정치적인 안정과 더불어 &#-9;문민정부&#-9; 출범 이후 급격하게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사회 분위기의 덕이 컸다. 물론 우리 자신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2002년 월드컵 당시 전국민을 붉은 악마로 만들었던 거리 응원은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이 9차 헌법과 더불어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9;레드 컴플렉스&#-9;와 같은 비철학적, 비민주적, 비평화적, 이데올로기적 도그마로부터 우리의 시민들이 자유로워졌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순탄한 길을 걸어오던 21살의 청년은 어느 날 해답 없는 문제아와 맞닥뜨리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문제가 없었다. 40% 이상의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MB는 마치 전국민의 염원을 담아서 언젠가 70년대에 이루어내었던 것과 같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할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는 결코 믿지 않았다, 그래서 MB를 찍지도 않았다) 하지만 잘못된 환율정책으로 인해 경제는 오히려 파탄에 이르렀고, 쇠고기 협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국정수행능력의 부족은 이 스물 한 살의 청년을 거리로 내몰았다. 국민의 손을 잡은 채, 87년 6월 항쟁의 정신을 한껏 담아낸 비폭력의 이름으로 문제아를 길들이기 위해 몸소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아는 여기에 공권력이라는 방망이를 내던졌다.

 

  스물 한 살의 청년은 말 그대로 처절하게 얻어맞았다. 어디에도 이 청년의 손을 잡아주는 이는 없었다. 법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경찰은 오히려 법에게 몽둥이찜질을 하기에 바빴고, 법의 대변인이 되어야 할 언론은 정권의 편에 서서 MB 못지 않은 망나니짓을 했다. 21살 먹은 9차 헌법에게 손을 들어준 유일한 동지는 바로 국민들이었다. 헌법과 국민은 밤마다 촛불을 밝히며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그 때마다 처절하게 맞았고, 외면당했고, 모욕당했다. 문제아의 손에 쥐어준 위험한 장난감처럼 MB는 공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고, 무엇 하나 실질적인 &#-9;도구&#-9;를 갖지 않은 헌법은 그저 맞으라면 맞고, 잡혀가라면 잡혀가는 것 외에는 딱히 대책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시민들은 마지막까지 이 청년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이 청년과 시민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정신, 즉 6월 항쟁과 2002년 월드컵, 미선-효순 사건과 노통 탄핵 반대로 이어지는 시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초짜 대통령 MB는 이러한 공명을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었다. 기본 튜토리얼조차 이해하지 못한 초짜가 어찌 강호의 선문답을 이해하겠는가. 철없는 문제아가 휘둘러대는 장난감은 마주잡은 두 손과 촛불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두 &#-9;성인&#-9;을 거세게 흔들어댔다. 하지만 이들은 잡은 두 손을 결코 놓지 않았다.

 

 

 

  아마도 외신들은 이러한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에 대해 놀라워하는 눈치인 듯 싶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MB는 초짜 대통령이다. 비유하자면 이제 막 요람을 벗어난 풋내기라는 거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은 서울시장이 전부, 그나마도 기업인 출신에 대해 한없이 포용하는 포즈를 택했던 한나라당(이라 쓰고 개나라당이라 읽는다)에 의해 졸속으로 정계에 입문한 자다. 그런 MB가 어느날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교육 안 된 어린애에게 위험한 장난감을 쥐어 준 셈이 아닌가. MB가 차라리 천성이라도 착한 아이였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아니나다를까 MB는 구제불능의 문제아였다. 하긴 현대건설 CEO 무렵부터 노조에 대한 강경한 탄압으로 &#-9;잔뼈&#-9;가 굵은 양반이니 국민들을 우습게 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노조와 국민은 애초에 같은 대상일 수 없었다. 문제아와 선생님의 관계, 혹은 초짜와 코치의 관계, 이제 막 90일 지난 풋내기 대통령과 21살 먹은 건장한 헌법의 관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MB는 공권력이라는 장난감을 휘두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헌법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아를 쥐어박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것은 헌법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교육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말썽을 피우는 아이에 대해 체벌을 가하거나 윽박지르는 것은 아이를 교화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아의 무분별한 &#-9;놀이&#-9;에 대해 손찌검을 하고 폭언을 퍼붓는 것은 부모된 자의 도리가 아니다. 시민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공권력이라는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장난감을 붕붕 휘둘러대는 MB의 땡깡 앞에서 끝까지 &#-9;비폭력&#-9;을 외치는 것이 어른된 자로서의 도리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어른된 자로서의 정체성, 즉 &#-9;21살 먹은 9차 헌법의 정체성&#-9;을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경험으로써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상처는 컸다. 여러 명의 사람이 다치고, 많은 사람들이 유치장 신세를 져야만 했다. 민중의 지팡이라던 경찰은 권력의 곰팡이로서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지난 10여년간 민주경찰로서 간신히 다져온 신뢰를 무너뜨렸다. 언론은 외면했고 지식인은 침묵했다. 그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어른이었던 시민들만이 촛불 하나를 밝힌 채 긁히고 멍들고 피흘리며 문제아의 몸부림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것은 사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문제아에게 장난감을 쥐어준 것이 그들 자신이었으므로, 문제아의 말썽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 모든 과정들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국제사면위원회와 아시아인권위원회의 규탄 성명, 잇다라 이어지는 외신 보도, 그리고 비로소 제 목소리를 찾기 시작한 일부 국내 언론의 보도 등으로 인해 MB의 &#-9;땡깡&#-9;은 다소 누그러든 듯하다. 오히려 이제는 제법 부모 앞에서 웃음지을 줄도 알게 되었는지, 딴에는 쇄신안이랍시고 장관 경질이나 관보 게재 연기, 대운하 사업 보류 등의 카드를 내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애들이 보여주는 잠깐의 평화가 결코 지속적인 것이 아님을 국민들은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아직 국민들은 MB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초짜고, 문제아이며, 어린아이다. 아직도 헌법보다는 성경을 즐겨 읽고, 대화보다는 땡깡을 중하게 여긴다. 제 부모와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자기 거울 속 제 모습만을 보면서 그것이 &#-9;국민의 목소리&#-9;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내놓은 쇄신안이라는 얄팍한 술책만 보더라도 불문가지다.

 

  이것은 우리 &#-9;어른&#-9;들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가역반응이다. 우리는 언젠가 무한경쟁의 논리에 현혹되어, &#-9;모범생&#-9; 보다는 &#-9;우등생&#-9;을 우선시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이 &#-9;모범생&#-9;이었다면, 실용정부를 들고 나온 MB는 &#-9;우등생&#-9;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 MB는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고, 안 좋은 성적 이상으로 인성은 더욱 나빴다. 능력도 인성도 과히 좋지 않은 아이에게 장난감을 쥐어줬으니 부모이자 스승인 국민들이 뭇매를 얻어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일단 1라운드는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문제아 MB가 제대로 교화된 것 같지는 않다. "우리 대통령이 달라졌어요"라고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지금은 MB를 퇴학시켜야 할 시점일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스물 한 살의 청년은 현재 MB의 퇴학 서류에 마지막 싸인만을 남겨놓고 있는 실정이다. - 이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MB는 그야말로 퇴학당해도 할 말이 없다 - 어른에 대한 존경도, 학업에 대한 열의도, 학교 질서에 대한 준법 정신도 없는 문제아에게 마지막으로 내릴 수 있는 처방은 행정적인 처벌, 즉 강력한 detention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초짜 대통령은 자기 혼자서만 문제아가 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학내 폭력서클과 연계되어 있어서 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색출과 처단이 필요한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대다수의 &#-9;어른&#-9;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고, 이들 중 몇몇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문제아 MB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31일의 &#-9;항쟁&#-9; 이후 쇄신안을 내놓겠답시고 깝치던 MB가 가져다놓은 답안이란 여전히 낙제감이다. 하긴 국민과 소통하겠다면서 기껏 했다는 짓이 여당 대표 만난 것이 전부였으니, 점수가 잘 나오면 오히려 컨닝했다고 의심하겠다. 중간고사 시험 보는데 수학 한 과목만 공부해와서 전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를 바란다면 그거야말로 도둑놈 심보다. 게다가 인성 교육까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인지라, 여전히 어른을 어른으로 섬길 줄 모르고 공경을 다할 줄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내용이나 제대로 암기하고 있을 지 미지수인 게 현재 MB의 수준이다. 하긴, 90일 무렵에 초짜였던 대통령이 불과 10일 사이에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알 자지라가 통렬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MB는 여전히 문제 투성이의 &#-9;풋내기&#-9;일 따름이다.

 

  개인적인 심정으로 나는 MB를 퇴학시키고 싶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MB를 퇴학시키는 일은 생각외로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한다. 단순히 문제아 하나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배후의 폭력서클 전체를 솎아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MB가 그다지 달라질 것이라고는 기대되지 않는다. 아마도 스물 한 살의 헌법과 그만큼 성장한 국민들에게서 한두차례 더 &#-9;호통&#-9;을 들어야만 그나마 자신이 문제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 역시 요원하다고만 생각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